서울대방동 공군본부가 1989년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삼군본부로 이전하면서 계룡대근무가 시작된지, 지금(20201,8,)으로부터 약32년 전이다,
논산시 두마면이었으나, 2003년 9월 19일 논산시에서 분리되어 계룡시로 승격되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장소는 계룡산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정감록(鄭鑑錄)내용에 밝혀진 계룡산일원이다. 특히 제석봉아래 도읍지(정도령 출현 후) 지금의 계룡대 나인홀 골프장 그리고 숫용추와 암용추다. 정감록은 쉽게 말해 참위설(讖緯說) 류의 민간비결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참위설이란 하늘과 땅의 조짐을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로 해석해 사회 현상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언하는 예언서다.
정감록의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器)’에는 계룡산 아래 신도안을 도읍지로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계룡산 아래 도읍할 땅이 있으니 정씨가 나라를 세우리라. 그러나 복덕이 이씨에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밝은 임금과 의로운 임금이 연달아 나고 세상이 윤회하는 때를 당해 불교를 크게 일으킨다. 어진 재상·슬기로운 장수·불사·문인 등이 왕국에 많이 나서 일대의 예악을 찬란하게 장식하리니 드물게 보는 일일 것이다. 한 나라의 도읍으로는 금강이 제일이고, 다음이 송악, 그 다음이 한산이다. 서경(평양)·동경(경주)은 바다에 가깝고, 북경(원주)·원양은 땅이 몹시 좁으며, 마리산은 비록 바다 가운데 있지만 반드시 왕이 거하리라. 그러나 10년이 못되어 도읍을 옮길 것이다."
이씨 조선이 멸망한 지 1백 년이 흘렀다. 과연 계룡산의 새 시대는 열리는 것일까? 도대체 언제 그 시기가 오고 새 지도자 정도령은 누구일까? 그리고 우리는 정도령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정감록의 기록처럼 계룡산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비스러움으로 가득했던 계룡산 아래 신도안은 대한민국 국군의 사령탑인 계룡대(鷄龍臺)로 변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했다. 계룡산 가시권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행정도시인 세종시가 자리 잡고 서울에 있는 정부기관이 세종시로 속속 이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방관련 최대 학교인 국방대학원이 자운대에 개교를 했다. 그런 면에서 계룡산 인근은 마치 신(神)이 땅속에서 끌어당기듯이 관련기관들이 이전해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계룡산(鷄龍山)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 ? 계룡산의 원명은 계룡산(鷄龍山)이 아니라 봉룡산(鳳龍山)이다.
그런데 봉룡산이라 부르지 않고 계룡산이라 부르는 이유는 현상 세계에서는 봉황이 없음으로 봉황과 유사한 닭(鷄)을 대신하여 계룡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추억이 깃든 장소로 계룡대 삼군본부건물 뒷산으로 올라가면 계룡산의 정기를 받은 바위로 된 계곡에 못이 또 하나 있는데 이를 숫용추라 하고, 구룡숙소 옆길 따라 계곡으로 올라가면 못(웅덩이)이 있는데 용화사 앞산 계곡에 있는 못을 암용추라 한다, 옛날 계룡산 땅속에 암용과 숫용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살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때가 되면 하늘로 올라갈 것을 기대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두 용은 계룡산 밑을 파서 산의 물을 금강으로 흐르게 하였고, 땅속으로는 신도안에서 갑사·동학사·마곡사 쪽으로 어디든지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명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참으로 깨끗한 용들이었고 항상 승천할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땅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이무기(螭龍)들도 승천(昇天)때를 기다렸다. 용들은 그런 이무기들과 달리 몸을 땅위에 전혀 나타내지 않은 채 굴속과 물속에서만 지냈다. 용들은 몹시 비가 내릴 때나 천둥이 칠 때 혹시 하늘에서 자기들을 부르지나 않을까하고 굴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하늘을 바라봤다. 하루는 몹시 비가 내리는데 밖을 내다보는 것을 잊고 땅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두 용들의 승천할 것을 알렸지만 응답이 없어 더 큰 목소리로 부르자, 그때서야 알아듣고 굴속에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다보였다. 「대체 너희들은 하늘의 부름을 거역하려는 것이냐」「너희들은 항상 땅속에서만 살려고 하느냐」하고 하늘에서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용들은「잘못했습니다」「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빌면서 애원했다. 그러자 「땅의 껍질을 벗겨라. 그리고 언제든지 하늘에 올라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주위해야 할 것은 너희들의 정(情)이 너무 지나치니 따로 따로 자리를 정해 다시는 만나지 말아라」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더니 날씨가 쾌청해졌다. 그들은 헤어지기가 아쉬웠지만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작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서로 하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제각기 장소를 정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암용은 물이 꼬불꼬불 흘러 내리다가 맑은소(沼)를 이루는 장소를 택해 땅을 파기 시작했고, 숫용은 계룡산의 정기가 흐르듯 맑은 물이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는 아래쪽 계곡에 자리를 잡고 땅을 파들어 갔다. 이제는 하늘에 올라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용들은 이제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가보다 생각하며 못에서 살그머니 머리를 내미니 하늘에서 「때가 되었으니 어서 올라오너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 두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 이곳 사람들은 암용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를 암용추, 숫용이 올라간 자리를 숫용추로 불렀다. 또한 암용추와 숫용추는 옛날에는 땅속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두용이 땅속을 통해 서로 만났다고도 전해진다. 실제로 암용추와 숫용추는 직선거리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계룡산 정상에서 보면 같은 능선상에 있다. 또 두 용추는 수심이 4-5m정도 이며 이 곳을 제외하고는 계룡산능선 어느 바위계곡에도 이런 웅덩이가 없다.
암용추와 숫용추의 신비스러움은 수 없이 전해지고 있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1958년 여름, 부남리 숫용추 계곡 인근에는 임도(林道)를 내기위해 산길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지역에는 기암괴석등 암반이 많아 공사가 꽤나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공사업체는 폭약을 이용, 돌을 부수곤 했는데 어느 날 폭파 후 불행히도 숫용추는 물론 숫용추계곡 곳곳이 돌로 메워져 버렸다. 이를 안 주민들은 이곳엔 용이 살았고, 계룡산신이 있는 곳이라며 하루 빨리 메워진 숫용추를 복원하라고 공사업체에 요구했다.
주민들은 만약 이 돌멩이들을 치우지 않으면 계룡산신이 노해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계곡이 워낙 깊고 인근에 마땅한 공터가 없어 치울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마을 주민들은 회의를 열고 숫용추 앞에서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용왕과 산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인간들의 힘은 미약해 이 돌덩이를 치울 수 없으니 신(神)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곡히 빌었다. 주민들은 이 같은 기도를 연이어 3번이나 올렸다. 마지막, 기도가 끝난 후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다음 날 주민들이 가보니 바위돌로 메워졌던 숫용추는 단 1개의 돌덩이도 없이 옛 모습처럼 복원되어 있었다, 기도의 영험인지, 많은 비 때문인지 불가사의하지만 숫용추는 감쪽같이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그 후부터 주민들은 비가 오던 날 숫용추 속에 있던 숫용이 승천하면서 주위를 깨끗이 정리했다고 믿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신도안 주민들은 숫용추의 신비스러움을 똑똑히 목격하였으므로 이 일대를 영험한 신이 있는 곳이라고 더욱 깊이 믿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년에 몇 차례 정기적으로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같은 현상은 계룡대로 수용된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반복됐다고 한다. 특히 숫용추에서 계룡산인근 지역 수많은 무속인들의 기도 발길이 멈추지 않았다, 삼군본부가 이전해 옮으로 민간인출입이 철처히 통제되어 숫용추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야심한 밤에 계룡산 뒷산으로 몰래 넘어와서 숫용추에서 무속인들이 제를 지내고 음식(돼지머리,과일,향,초)등을 숫용추에 헌식하면 계곡물을 따라 삼군본부건물 뒤편계곡으로 흘러온 제물을 종종 보곤 했다, 일설에는 가수이은하부모와 인순이 부모도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계룡대 인근지역 맛집으로 동학사 밑 식당밀집지역으로 다양한(육, 해, 공) 메뉴로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특별히 한정식과 감자전과 도토리묵으로 매주 한번 있는 계룡대 체육의 날에는 이곳식당에서 산해진미인 산채 한정식과 동동주로 고향의 맛을 만끽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