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 개발, 여전히 갈팡질팡
올해 또 사업 타당성 조사 … 개발방식 놓고 여전히 찬반 논쟁
공군, 전력공백 현실화 우려 … 최근 국내개발 지지 표명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일명 보라매 사업이 개발방식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사업추진이 결정됐으니 올해로 11년째다. 그 사이 사업 타당성 연구와 관련 조사만 5차례. 올해는 또 6번째 타당성 조사가 예정돼 있다.
연구결과도 들쑥날쑥이다. 최근 몇 년간 타당성 검토결과만 보더라도 건국대는 긍정적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부정적인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렇다 보니 사업추진도 오락가락이다. 지난해 계획만 해도 건국대 연구결과에 따라 체계개발이 올해 추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국방연구원에 의뢰한 타당성 연구결과가 또 다시 부정적으로 나오면서, 타당성 조사를 위한 45억원을 제외한 체계개발 사업비 전액이 올해 예산에서 삭감됐다. 전력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소중한 1년이 또 날아가 버린 셈이다.
절박해진 공군
지루한 논쟁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누가 뭐래도 공군이다. 전력공백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개발방식조차 결정되지 못해 전력공백이 현실화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공군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산정하고 있는 적정 전투기 보유대수는 430여대. 이는 2006년 당시 보유했던 530여대보다 100여대 줄어든 수지만, 차기전투기(F-X)와 한국형전투기(KF-X) 등 성능이 우수한 전투기를 도입함으로써 국가안보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공군은 전망했다. 물론 이 전망은 F-4 및 F-5 전투기 등 노후 전투기들을 대체할 새로운 전투기들이 일정대로 도입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오는 2019년이 되면 공군은 적정 보유대수 대비 100여대의 전투기가 부족한 전력공백기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전투기 도입사업이 계속 지연되면서 전력공백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공군은 지난 1월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2019년이 되면 공군은 적정 보유대수 대비 100여대의 전투기가 부족한 전력공백기에 직면하게 된다’며 ‘올 상반기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라매 사업의) 획득방식이 확정돼야만 한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특히 “직구매든 국내개발이든 요구성능을 충족하는 전투기를 제 때 도입해 전력공백 없이 영공수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면 된다”면서 전투기 도입이 절박한 상황임을 공군은 강조했다.
엇갈리는 비용 논란
현재 KFX 개발방식 논쟁의 핵심은 국내개발과 해외협력이다. 즉 국내 연구개발로 독자적인 전투기를 개발하는 방식과 개조개발과 같은 해외협력 방식이 팽팽한 대립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독자개발을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 국과연의 이대열 항공체계개발 단장은 지난 1월 28일,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주최로 열린 <F-X와 KF-X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라는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주변국 공군력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첨단 전투기 획득과 4.5세대 KF-X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형 전투기는 라팔이나 슈퍼호넷 등 해외 전투기에 비해 획득단가가 낮고 시간당 운용유지비도 낮아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수명주기비용을 비교하면 신규 형상 연구개발이 개조개발보다 경제적”이라고 이 단장은 강조했다.
현재 국과연이 전망하고 있는 KF-X의 수명주기비용은 약 23조원. 개발비 약 6조원과 양산비 약 8조원, 그리고 운용유지비 약 9조원 등 개발에서 운용, 도태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약 23조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9년 건국대가 연구한 결과인 약 19조원과 비교해 약 4조원이 늘었지만, 직구매시 들어가는 약 28조원에 비해서는 약 5조원이이 절감된 비용이다.
이 가운데 개발비 약 6조원을 놓고 국방연구원은 의견을 달리 하고 있다. 국방연구원의 노장갑 박사는 이날 정책토론회에서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은 대규모의 투자비가 소요되는 사업으로 신뢰할 만한 개발비와 양산비용 추정이 중요하다”며 “레이더 및 미사일 개발비를 제외하고도 기체개발에 1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주장했다. 특히 “1990년대 T-50 훈련기 개발비용 2조원을 2020년 기준 인플레이션만 고려하더라도 4.5조원을 초과할 것으로 본다”면서 “여기에 각종 센서와 미사일 등 무장 장착, 실무장 발사 시험비행 비용 등 미 반영된 부분을 반영하면 개발비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능력도 의견 팽팽
개발능력도 찬반주장이 팽팽하다. 일단 국과연은 개발능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근거는 기술성숙도(Technology Readiness Level, TRL). 특히 TRL은 해당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로 기본원리를 이해하는 TRL 1에서 완전한 개발이 가능한 TRL 9까지 구분한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TRL 6 이상을 체계개발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국과연은 체계개발 진입이 가능한 기술을 89% 확보해 국내 연구개발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단장은 “432개 세부기술 분류 중 TRL 6 이상이 384개(89%), 5 이하가 48개로 평가돼 국내 연구개발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레이더 등 핵심기술에 대해서는 “이미 9000억원을 투입해 AESA 레이더 개발기술을 확보했고, 일부 소프트웨어 기술은 국제협력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무장과 관련해서도 “이미 개발된 현무 등 정밀유도무기 개발로 핵심기술을 확보했고, 선행핵심연구를 통해 항공기 장착과 발사의 기본연구를 완료했다”고 이 단장은 말했다. 하지만 국방연구원의 노장갑 박사는 “AESA 레이더 등 각종 임무장비 개발과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등의 개발은 전투기 기체개발 이상으로 어려운 분야”라고 강조하면서 “국내 기술수준, 전력화시기, 가용 국방예산 등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대신 “향후 개발을 추진하더라도 중장기 과제로 별도 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며 “한국형 전투기 개발과 병행해 추진할 경우 개발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KF-X 개발이 향후 민간항공부문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일본이 1차 납품처(Tier 1)로서 전 세계 항공부품 물량 중 상당량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1차 납품처로서 역량을 검증 받으려면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수분야로 진출하려면 군수분야가 뒷받침 돼야 한다”며 “KF-X 개발이 민수분야 진출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항공업계는 KF-X 개발이 향후 민간항공부문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출, 가능성 vs 현실성
기술 및 산업 파급효과로 국과연은 6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대열 단장은 국산화율 40~100% 기준으로, 생산성 효과 약 14조~17조원, 부가가치 효과 약 5조~6조원 등 산업파급효과가 약 19조~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약 4만~9만명의 고용효과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 단장은 “기술파급효과가 방위산업부문에서 약 17.7조원, 민간산업부문에서 약 13.5조원, 그리고 항공우주산업부문에서 약 9.5조원 등 약 40.7조원으로 추정된다”며 국내개발에 따른 기술 및 산업 파급효과를 강조했다.
국과연의 시장분석에 따르면 수출도 전망된다. 이 단장은 오는 2025~2040년간 F-22, F-35, PAKFA 등 하이급 전투기는 900대 이상, F/A-18E/F, 유로파이터 등 미디엄급 전투기는 3390대 이상, 그리고 J-10, JF-17 등 로우급 전투기는 900대 이상이 필요하다는 전망치를 내놨다. 그리고 이 시장분석 결과에 따라 양산단가를 대당 6천~9천만 달러로 할 경우 208~676대를 수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영국 SDI(Strategic Defence Intelligence)와 미국 제인스(Jane's)의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국방연구원은 회의적이라는 입장이다. 국방연구원의 이주형 박사는 “국내개발된 KF-X의 수출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제하면서 그 이유로 자체개발 임무장비와 무장이 현재 없다는 점과 설령 미국산 임무장비와 무장을 장착하려고 해도 미국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꼽았다. 같은 국방연구원의 노장갑 박사도 “전투기는 자동차 등 민수상품과는 달리 사용자가 국가”라며 “상호 군사동맹 관계 등 국제정치적 관계 하에서 수출거래가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실적으로 해외수출을 통한 수요창출이 어렵다면 고비용 투자가 요구되는 신규 플랫폼 개발보다 개조개발 방안과 같은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가능한 빨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전투기 개발은 안보와 직결된 만큼 경제성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 USAF
이와 관련해 경제성과 수출전망 등에 대해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 관계자는 “공군이 운용유지비를 강조한 것처럼 항공기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경제성”이라면서 “수출을 통한 수요창출을 경제성의 큰 부분으로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투기 개발은 안보와 직결된 만큼 경제성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지금까지 전투기를 개발한 국가들을 보더라도 여전히 운용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수출은 개발에 따른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군, 국내 개발 지지
개발방식에 대한 논쟁이 팽팽한 가운데 공군은 국내개발 방식을 지지하고 나섰다. 공군은 지난 1월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직구매 항공기와 국내개발 항공기를 모두 운용해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국내개발 항공기를 운용할 때의 장점이 현격하게 크다’면서 국내개발방식을 지지했다. 공군 전력기획참모부 차장인 송택환 준장도 지난 1월 28일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더는 논쟁을 중단하고 (보라매 사업을) 국내개발로 당장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공군이 항공기 도입사업에 대해 이례적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그것도 중립적인 입장이 아닌 국내개발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군이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며 “공군이 이번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상황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