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발전기
손훈영
깜깜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블랙아웃. 오래도록 대규모 정전사태였지요. 스스로는 빛을 찾을 한 점 의욕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삶에는 삶에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 본능적 의지에 마음을 기댄 채 더듬더듬 벽을 더듬기 시작했지요. 보이지 않는 벽에 대고 손이 아프도록 단어와 문장들을 켜댔습니다. 활자로 된 부싯돌로 마침내 작은 불씨 하나 일으켰지요. 탁! 한 줄기 불꽃이 일고 사위가 어슴푸레 밝아졌습니다.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쓰는 의미가 점점 더 현실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데서 좀 더 명확한 목표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요. 명확한 목표는 자칫 지치기 십상인 쓰는 일에 활력을 돋우어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목표일까요. 평생을 관통할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자가발전’. 프로젝트의 목표는 ‘죽는 날까지 살아있기’입니다.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에너지는 아마 열정이 아닐까요. 열정이라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 발전기는 천연무공해산입니다. 그을음이나 소음 같은 타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어떤 것도 발생시키지 않지요.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트북을 두드릴 수 있는 열 개의 손가락과 두 개의 눈, 그것뿐이지요. 두 개의 눈과 열 개의 손가락이 합심하면 발전기는 무리 없이 돌아갑니다. 그 때 그 때마다 생성되는 에너지의 질이 고르지는 못해도 그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대부분 그만그만한 에너지가 방출되고 이따금 고성능 에너지가 생성되기도 하는데 하, 그럴 때 그 횡재하는 기분이라니요! 고성능 에너지가 내장한 힘은 한 달 내내 생성된 무난한 에너지 열배의 위력을 지닙니다. 어쩌면 자가발전의 핵심 목표는 이 일등급 에너지 생산에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것은 단순히 힘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을 제공해 주곤 합니다.
왜 신은 이리도 잔인할까요. 그냥 마냥 신나게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면 좋으련만 살아 있음의 반대급부로 슬픔이나 아픔, 고통 같은 것을 세트로 붙여주니 말입니다. 한 손으로 병을 준 뒤 다른 한 손에 감추고 있는 약을 찾으라고 하는 신이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신은 쉽게 답을 주지 않습니다. 아마 그 답은 우리가 평생을 통해 찾아 헤매야 하는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 있어야겠지요. 그러니 신에 대한 원망은 그만 접어 두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 잘 살아 갈 방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시 발전기 이야기로 돌아오네요. 우리들이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그 중 자가 발전기를 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발전기가 생산해내는 그 날 그 날의 에너지는 일상을 챙겨 갈 힘이 되어 주고 이따금 생성되는 고성능 에너지는 기적을 선사해줍니다. 잠시나마 머리 위 바윗돌이 들려지는 기적 말입니다. 살아 봤으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무게에 짓눌리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리도 무겁던 존재의 무게 따위를 그것만큼 손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은 없더군요. 가끔은 머리 위 바윗돌이 들어 올려 져 불현 듯 홀연해지는 순간이 있어야 갑갑하던 숨구멍이 틔인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느껴봤을 것입니다. 무거움이 사악 사라지고 살아있음의 기쁨만이 차오르는 황홀한 순간. 그 순간은 가히 세례식에 가깝습니다. 정신의 세례식이지요. 이 세상 바뀐 것 아무것도 없지만 내가 바뀌는 순간입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의식이 명료해지며 열정이 점화되는 것 말입니다. 뜨겁게 점화된 열정은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 갈 의욕을 정비해주지요.
귀 좀 이리 가까이. 누군가에게 아주 비밀스럽고 중요한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귓속에 대고 직접 불어넣곤 하잖아요. 지금 제 마음이 딱 그렇습니다. 그러니 귀 좀. 아, 뭐냐고요? 변죽 그만 울리라고요? 그래요. 자가발전기만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타임머신 역할이랄까요. 과거는 이미 과거로 고정되어버려 우리가 어찌 할 수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시커멓게 타버린 한탄과 눈물로 얼룩진 후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자가 발전기를 돌려보십시오. 발전기의 핵심 나사에 성찰이라는 윤활유 몇 방울 흘려보십시오. 뭘 쓴다는 것은 살아 온 날을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주지 않습디까. 어떤 사람에 대한 생각, 감정, 어떤 순간을 문장으로 표현하면 그게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고 정리되면서 객관적으로 다가오더군요. 면밀히 분석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힘만이 과거에 개입해 그 과거를 재정비하게 해줍니다. 발전기가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과거는 분석되고 이해되고 마침내 과거로부터 해방되지요. 황량한 좌절에 파릇한 새순이 돋고 질척하던 후회에 뽀송한 햇살이 들이치기 시작합니다. 어찌 할 수 없던 지난 시간이 어찌 할 수 있어 지더군요. 구속이던 지난 시간이 그만 자유로 바뀌더군요. 해방되는 것만큼 잃어버린 시간에게 이기는 방법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해방됨으로써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어집니다. 지나간 시간이 우리를 붙들고 있을 때 우리는 한 발도 내디딜 수가 없지요. 과거로부터 해방될 때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풋풋한 새시간입니다. 푸른 시간 속에서만 우리들의 목숨은 영속적이지 않을까요. 상처로 기워진 누더기 같은 우리 삶에 이런 새뜻한 처방책이 숨어 있었다니. 헌 시간을 세척해 새 시간으로 만들어 내는 발전기. 이보다 더 멋진 발전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 그러니, 이제 저는 속도를 조금 더 높여 보렵니다.
당신은 당신의 어둠 속에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61년 대구 출생
2012 제11회 동서커피문학상 수필부문 동상 <포옹>
2015 주변인과 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금상 <그 여자의 자서전>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이중주>
2016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비를 타다>
2016 계간 수필세계 봄호 신인상 <나의 삼손 외 3편>
첫댓글 저는 낡은 발전기를 돌리니 삐거덕 소리가 납니다. 칠 기름도 말라 물을 탈 수도 없어 그냥 저냥 시나브로 돌려봅니다. 자가발전이 잘 안되어 오늘은 손선생님의 글로 충전합니다. 소재의 무궁함을 잘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권후근님,
집필생활은 어떠신지.
<탈모>는 잘 읽어 보았습니다.
작가 타이틀 붙일 가능성 농후한 분이시니^6^
부디 많이 쓰십시요.
남는 시간 활용하지 마시고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매일 쓰는 시간을 정해 놓으십시요.
내 안의 기적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손훈영 감사합니다. 아직 집필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은 시간을 못 가지고 있습니다. 5월에는 결혼식에 불려다닌다고 홍교수님 얼굴도 한번 못 뵈었습니다. 수면시간을 단축해서라도 손선생님 조언을 실천토록 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자가 발전기 글쓰기,
참으로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드네요ㆍ
손샘,
마음이 가벼워진 것같아 기분 좋습니다!
옥례샘, 방가.
출간 준비로 마음이 바쁘시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옥례샘의 그 날을.
응원합니다.
손선생님!
지나간 시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던 어제였습니다.
이제 자가 발전기를 가동할 때인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지난번 집중토론 때 얼굴 뵙고 나니
훨씬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용광로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의 시간이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