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74)
무산 사또
아들이 없어 원통해하던 ‘마 첨지’
고백호를 데릴사위로 들이는데…
마 첨지는 천석을 추수하는 끝없는 들판만 가진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의 요소요소마다 점포를 가지고 세를 거둬들이는 게 곳간의 나락더미보다 많은 회령 최고의 부자다.
마 첨지가 가장 원통한 건 슬하에 딸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첩을 수없이 얻고 씨받이도 들여놓았지만 백약이 무효, 마 첨지는 마침내 데릴사위를 얻어 아들을 삼겠다고 작정했다. 서당을 찾아가 훈장님에게 부탁을 했다.
훈장이 추천한 데릴사윗감은 고백호다. 열아홉살 고백호는 재주 있는 양반 집안의 둘째 아들로, 집안이 망해서 서당 다닐 형편도 못돼 책을 불사르고 저잣거리에 얼쩡거리며 파락호로 살고 있었다.
마 첨지가 저잣거리에 가서 고백호를 직접 만났다. 우람한 덩치에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고백호를 보고 마 첨지는 흡족해했다. 훈장의 주선으로 고백호와 마 첨지의 무남독녀 녹주는 회령 고을이 떠들썩하게 혼례를 올렸다. 녹주는 새신랑이 마음에 쏙 들었다. 멀쩡한 허우대에 머리도 좋다니 금상첨화. 고백호도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허벅지를 꼬집었다. 세 살 연상의 새색시는 살짝 곰보에 볼품이 없지만, 그게 문젠가. 첫날밤부터 고백호는 녹주를 녹초로 만들었다.
고백호는 알고 있었다. 마 첨지가 원하는 것과 새색시 녹주가 원하는 것을. 마 첨지는 고백호3가 공부를 다시 시작해 급제하기를 원했고, 새색시 녹주는 자나 깨나 고백호 품에 안기기를 원했다.
고백호는 서당에 나가 훈장의 특별 지도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예전에 공부하던 때와는 달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새색시 비위를 맞추느라 기생들한테 배운 방사(房事) 기술을 써먹는 일들이 머릿속에 꽉 차서 글공부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새색시 녹주에게 남자는 새신랑 고백호가 처음이 아니다. 동네 건달과도 놀아봤고 옆집 머슴이나 자기 집 집사하고도 일을 치러봤지만, 허우대에서도 물건의 크기에서도 방사기술에서도 고백호는 월등했다. 고백호가 과거를 보러가기 전날 밤에도 새색시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나귀 등에 오를 때 다리가 휘청거려 넘어질 뻔했다. 낙방하고 몇달 있다 치른 알성시도 낙방했다.
낙방이 거듭될수록 이를 꽉 깨물어야 되는데 신부만 꽉 껴안았다. 무남독녀 녹주의 채근에 마 첨지는 돈 궤짝을 싣고 평양감사 찾아가기를 몇차례, 마침내 고백호는 옆 고을 무산 사또로 발령받았다.
고백호는 살판이 났다. 꿈에 그리던 사또가 된 것보다는 집안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게 더 신났다. 또 하나 고백호를 들뜨게 한 것은 슬슬 바람피울 기회다. 무산의 파리떼들이 신관 사또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은 홍 진사였다.
주색잡기에 능하고 사또의 가려운 곳을 번개처럼 알아차렸다. 홍 진사는 이방을 하인 부리듯 했다. 이방을 시켜 돈을 긁어모으고 무산 특산물을 챙겨 바리바리 무산령을 넘어 회령의 마 첨지에게 보냈다. 멀리 떨어진 장인이지만 확실한 차단막을 쳐 놓았다. 홍 진사가 뜻한 바는 사또의 장인을 안심시키는 것보다는 기실 사또 부인에게 점수를 따는 일이다. 사또 부인 녹주를 보면 형수님이라 불렀다.
하루는 이방이 평양감사로부터 온 서찰을 들고 새벽에 사또의 내실로 들어왔다. 벌거벗은 상체를 일으켜 세워 서찰을 읽어 본 사또는 오만상을 지었다. 속치마만 입고 사또를 껴안고 있던 녹주가,
“무슨 일이요?”
“초나흘까지 평양으로 오라는 전갈이요.”
질펀하게 일을 치러 몸과 마음이 나긋나긋한 녹주가 서둘러야 된다며 보름 동안 출장에 갈아입을 옷 보따리를 챙겼다. 관내 시찰차 사나흘 동헌을 비운 일은 있지만 보름 출장은 처음이다. 사또가 말을 타기 전에 녹주의 손을 잡고 애틋한 눈빛을 보냈다.
“부인 다녀오리다.”
“몸조심하시고 잘 다녀오십시오.”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녹주의 두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마부가 말고삐를 잡고 동헌을 떠났다. 두어 식경 말을 몰아 측성령 꼭대기에 다다르자 솔밭 속에서 말을 탄 홍 진사와 새파란 기생 둘이 나타났다. 평복으로 갈아입은 사또는 엽전을 듬뿍 쥐어주며 마부를 돌려보냈다.
어린 기생 하나씩 끌어안고 말에 오른 사또와 홍 진사는 옆 고을 애란온천으로 향했다. 진달래가 온산을 덮은 화창한 봄날 말 두필에 네사람을 태운 일행은 까르르 키득거리며 고개를 넘었다.
그날 밤, 동헌의 녹주는 한바탕 일을 치른 후 발가벗은 채 이방의 넓은 품에 안겨 또다시 양물을 만지작거렸다.
“마님, 사또 나으리 어디 간 줄 아세요?”
녹주가 빳빳해진 이방의 양물을 힘껏 쥐며,
“어린 기생 옥문에 방아 찧고 있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