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운동의 옛 친구, 후배들에게 드리는 글
1.
이번 봉수교회의 진정성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의 옛 후배들이 올린 답글을 읽어보았다. 그 분들이 실명으로 글을 올렸기 때문에 내가 답변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을 했다. 옛날에야 까마득한(?) 후배였지만 지금은 함께 늙어가는 중진 목회자들이기에 그 분들의 문제 제기에 내가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유재무 목사님은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젊은 날의 서 목사와 그가 주장하고 가르친 생각에 비하여 지금은 많이 달라졌고 그래서 실망이며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나는 옛날 20대일 때와 생각이 같지 않다. 그때에는 나는 열렬한 민중신학 지지자였고 동시에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주의를 포기한 지 오래고 나의 정체성도 구태여 말하자면 주님께 열심히 매달리며 사는 복음주의자다.
유재무 목사님이나 김성복 목사님의 문제 제기에 조목조목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두 분의 목사님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칼 운동에 속해 있는 나의 옛 동료들이 대부분 나에게 서 목사가 이제는 한기총에 속해서 보수 세력의 대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좀더 포괄적으로 요즈음의 쟁점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또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나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차제에 옛 동료들, 옛 친구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심경으로 이 글을 쓴다.
2.
최성규 목사님이 내게 한기총 인권위원장직을 제의했을 때 나는 두 가지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첫째는 한기총이 위치 설정을 '중도' 내지는 '중도우'로 해서 보수적인 교회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교회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한기총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최 목사님께서 이 두 가지 주문에 전부 동의하셨기 때문에 나는 목사님의 제안을 수락했다.
한기총 인권위원장으로서 나는 지금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수의 편에 섰기 때문에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적이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난 7~8년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집행위원장으로, 또 공동대표로 북한동포돕기 운동에 앞장서온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북 돕기를 하면서 북한인권 문제 제기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그리고 작년 가을, 62명의 탈북자들이 강제송환되는 것을 보고 나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진보 진영은 북한인권에 관심이 없고 보수 진영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보수 진영과 함께 일을 하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한기총으로 간 것도 한기총이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적인 기독교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보수 진영은 독재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한 과거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 그랬던 보수 진영이 지금에 와서는 진보 진영 못지않은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왜 그런가? 바로 북한인권 문제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당연히 진보 진영이 다루어야 했던 이슈였는데 진보 진영이 이를 외면했다. 그 바람에 이 일은 보수 진영의 과제가 되었고 보수 진영이 이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회적 명분과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지금 진보 진영은 끊임없이 쇠퇴하고 있다. 내가 볼 때 그 이유는 딱 세 가지다. 하나는 북한인권 문제에 침묵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 시기를 거쳐 오면서 진보 진영이 기득권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관심을 끄고 살았었다. 그렇지만 모처럼 옛 동료들, 후배들에게 글을 쓰게 된 마당이라면 평소에 갖고 있었던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나는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는 성경 말씀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안병무 박사께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구절을 본문으로 택해 설교를 하시면서 어떤 체제나 이념도, 안식일법조차도 인간을 억압할 때에는 이에 결연히 저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젊은이들은 안병무 박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유신체제와 싸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임을 굳게 확신했었다. 만일 지금 안병무 박사가 살아 계시다면 우리에게 무슨 설교를 하실까? 나는 굳게 믿는다. 박정희 정권보다 백 배는 더 독재인 김정일 수령 독재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고 설교하셨을 거다. 극악한 김정일 체제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기독교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둘째는 민주화운동의 전통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 미국이 국익을 이유로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당시의 젊은이들은 이를 맹렬히 비판하며 반미운동을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유엔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계속 기권함으로써 김정일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노무현 정부는 지난날의 미국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과거에 미국이 민주화운동을 저버리고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던 것처럼 지금 한국 정부는 억눌린 북한 주민을 저버리고 김정일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이 일은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노무현 정권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배반한 행위이고 나아가 북한 주민을 배신한 행위다.
또 한 가지를 더 말해야 한다. 지난날 박정희 대통령이 개발 독재의 불가피성을 말하면서 한국식 민주주의를 제안했을 때 우리는 이를 결연히 반대했다. 그때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고 빵과 자유를 동시에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 정부는 북한 주민에게 빵이 시급하다며 빵만으로 살라고 한다. 남한 사람은 빵과 자유가 같이 필요하지만 북한 사람은 빵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태도는 우리가 북한 주민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태도다.
셋째는 에큐메니칼 신학 때문에 그렇다. 에큐메니칼 신학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것을 인식론적 특권이라고도 말하고 한때는 이를 민중신학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소외된 민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세상을 가장 바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북한 문제나 남북관계는 누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북한체제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을 받는 탈북 동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때에야 북한체제가 가장 바르게 이해된다. 남·북의 평화실현도 정부 간 평화가 아니라 탈북자를 위시한 민중들이 누릴 수 있는 평화여야 한다. 한국에 온 7천 명의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인권 개선 없이는 어떠한 남북관계 진전도 무의미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한 대가로 얻어진 남북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일 수 없다. 그것은 거짓 평화일 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민중신학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당연히 탈북자의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을 왜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외면하고 있는가?
넷째로 남북의 상황을 보아도 그러하다. 나는 한국 정부가 북한 붕괴를 원치 않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 정부의 최대의 과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북한 정부 당국과 대화하고 화해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대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북한 붕괴를 획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점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NCC나 한기총 같은 공교회도 북한 붕괴를 획책하는 입장을 가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북한 붕괴를 원치 않는다면 북한의 인권 문제를 말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인권 문제가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이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어 협력 관계만 증진시키는 것은 진정한 남북관계의 개선이 아니다. 협력관계의 증진과 더불어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어야 그것이 진정한 개선이다. 그리고 인권은 떠들어야만 개선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철칙이다.
물론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원칙적으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야당은 훨씬 더 강경하게 말하는 대신 협상당사자인 여당은 마지못해 말한다는 표정으로 훨씬 유연하게 말하면 된다. 그리고 NCC는 한국 정부보다는 훨씬 더 분명하게 북한인권 문제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기총'은 이번 12월 10일 저녁에 광화문에서 '북한인권을위한촛불기도회'를 개최하여 수 십만 명이 모이도록 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기총'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촉구하는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기총'은 먼저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을 것이다. 99마리의 양을 산에 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교회라면 그래야 한다. 그리고는 인권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살기 위해 필수적임을 강조할 것이다.
빵과 인권, 이 두 가지는 결코 선택 사항이 될 수 없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지만 동시에 빵 없이도 살 수 없다. 그래서 '한기총'은 북에 빵만 주려고 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도 반대하고, 인권이 없으면 빵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극우적 입장에도 반대한다. 힘들더라도 빵과 인권을 함께 말해야 한다.
'한기총'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은 인도적 지원과 남북대화를 하면 어떠냐는 소위 역할분담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략적 역할 분담은 교회의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NCC와 한기총 사이의 역할 분담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NCC 내에도, 한기총 내에도 두 가지 입장이 다 있을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그룹들이 나와야 한다.
3.
이제는 봉수교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기독교사회책임' 세미나에서 봉수교회의 진정성 문제에 대한 의견 발표 이후 한국교회 내에 봉수교회에 대한 논란이 크다. 나는 교회가 이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논란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토론이 바르게 되어야 교회에 보탬이 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말을 하고 싶다.
첫째로 내가 봉수교회의 진정성 문제를 제기한 것은 남북교회 간 대화와 협력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직하고 진실한 남북교회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지난 7~8년 동안 북한을 왕래하면서 북한과 진실한 대화를 하려고 매우 애썼던 사람이다. 지금은 더 이상 북한을 갈 수 없게 되었지만 진실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진정으로 북한 붕괴를 획책하는 사람이었다면 봉수교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 나는 사람들이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여름 김형식 교수의 증언에 의해 봉수교회에 대한 그동안의 의심이 사실로 판명되고, 봉수교회 예배 참석자는 전부 당에 의해 결정이 되고, 당의 명령에 따라 매주일 봉수교회에 출근하고, 기독교와 아무런 상관없이 오로지 식량 배급과 의복 배급 때문에 당의 허락을 기다리는 예배 참석 대기자가 6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사실을 다 알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변함없이 북한교회와의 교류를 계속해야 하는가? 나도 이 사실을 안 후 어찌할 것인가를 놓고 오랜 시간 번민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봉수교회가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그안에는 온갖 거짓이 가득 찬 회칠한 무덤임을 알게 되었다면 누군가는 이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한 만남이 시작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다 알고도 그냥 덮어버리면, 지하교회 교인들은 발각 즉시 정치범수용소로 가고, 신천역사박물관의 反기독교 선전도 변함없이 계속된다면, 북한의 신앙의 자유는 계속 억압당하고 있는 데도, 실종된 김동식 목사의 생사 확인 문제조차 제기하지 못하면서 지난 17년 동안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이들 가짜 목사들과 교류해야 한다면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남북교회 교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유재무 목사님이 댓글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알 만한 서 목사가 재 뿌린다"는 야속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옳다. 나는 내가 '알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재를 뿌려야 한다면 바로 나 같은 사람이 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심으로 남북대화를 원했지만 지난 8년 동안 6번이나 북한을 왕래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진심을 말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고 북측 인사들도 판에 박힌 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안내원 중 딱 한사람이 모기소리로 "할 말은 많지만 말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이 아마 내가 유일하게 들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남북교회 간 대화도 마찬가지다. 진실된 대화는 전혀 불가능하다. 실종된 김동식 목사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가? 제기한들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있는가? 절대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 '재를 뿌려' 판을 뒤엎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근본적인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셋째로 봉수교회만이 아니라 한국교회도 가짜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모든 지상의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다.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 교회답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항상 10%는 너무도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다 죄인들의 공동체인 만큼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다.
그러나 죄가 많은 교회와 가짜 교회는 엄연히 구분된다. 이것을 애써 구분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려는 태도다. 또 탄압 받는 교회들, 이를테면 일제시대의 한국교회, 히틀러 치하의 제국교회, 중국의 삼자교회 등도 부족한 점이 많은 교회들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압 받는 교회는 가짜 교회가 아니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만이 노동당의 지시로 교회로 꾸며진 가짜 교회다.
가짜 교회가 안 되려면 누구든 예배에 참석하기 원하는 사람은 다 참석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 안에서 진실된 친교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그런데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는 지난 17년간 교회로 위장되어 존재해왔고 진짜 교인은 절대로 그 교회에 나올 수 없는 가짜 교회였다. 이런 교회는 세계에서 평양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진정한 기독교적 친교와 복음 전파가 가능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봉수교회가 가짜 교회지만 그곳에서도 진짜 기독교인이 나올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봉수교회는 진짜 기독교인이 나오는 것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게 되어 있다. 구조적으로 가짜 교회이기 때문에 진짜 기독교인은 배겨낼 수 없게 된다.
넷째로 이만열 교수님은 북한에 대한 지원과 북한 비판의 전략적인 역할 분담을 제안하셨는데 나는 이 역할분담론에 동의한다. 나는 누군가는 "이제부터 봉수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봉수교회에 참석하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을 하는 '총대'를 내가 메게 되었다.
이번 11월에 예장통합 측 총회 대표단이 봉수교회 재건축을 위한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 틀림없이 나의 문제 제기가 그분들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 점이 매우 송구스럽다. 그렇지만 교단 대표들은 나의 진심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분들은 평양에 가서 국내에서 봉수교회의 진정성 논란이 있음을 알리고 봉수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되지 못한다면 건물만 크게 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교회가 되지 않으면 건축비 모금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걱정도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몇 가지를 얻어내야 한다. 첫째는 김동식 목사의 생사 확인이다. 조목조목 증거를 가지고 따져야 한다. 둘째는 봉수교회에 가서 예배가 끝난 후에 교인들과 함께 사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셋째는 봉수교회에 가서 며칠간 전 교인을 대상으로 사경회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교회는 근본에 있어 하나다. 남한교회 따로 있고 북한교회 따로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신 목사님들이 봉수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신천역사박물관의 反기독교선전을 중지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다섯째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북한교회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 목소리로 이런 주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한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뿐더러 봉수교회도 절대로 진짜 교회로 발전시킬 수 없다. 특별히 이번에 북한을 방문하는 통합 측 대표들이 이런 일을 해주셔야 한다.
봉수교회 안에서 위에서 언급한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계속해서 봉수교회는 가짜라고 소리 지를 생각이다. 그러면 다른 분들은 봉수교회를 조금이라도 진짜 교회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 북에 가서 애정을 가지고 설득하기도 하고 눈을 부릅뜨고 압박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역할 분담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고 국내에서는 나를 보고 남북대화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난하고 북에 가서는 가짜 목사들에게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온다면, 그분들이야말로 지금의 가짜 교회를 영속화시키고 진정한 남북교회 관계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