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심각한 목소리로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선생님은 요즘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며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별 일 없다고 말씀 드렸더니 편지 한 통을 주시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무슨 얘기든 하러 오라고 하셨다.
아빠의 편지.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집에 무슨 일이 있어 아빠가 학교로 편지를 보냈나보다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 생일 즈음이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이제는 어른이 될 막내에게 공부하기 힘들지 라며 따뜻한 이야기들을 써 주셨다. 그리고 그 이 후에 또 한 번 아빠의 편지를 받았다. 결혼식 전 날. 잘 살라고. 품 안에 있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예쁘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이런 얘기를 하면 우리 아빠가 무지 자상하고 딸 바보여서 딸 바라기를 하신 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는 스포츠와 뉴스만 보시고 자신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서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전형적인 부산남자였고 나는 딸만 넷인 딸 부잣집에 막내딸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한데, 대학교 1학년 학교 축제, 과에서 주점 하게 되서 밤에 늦을 거라고 했더니 아빠가 같이 가 주셨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학교가 있었는데 아빠랑 동동주 한 잔 하고 집까지 걸어 왔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깜깜한 밤 방파제 길을 걸으면서 별을 보고 파도소리를 들었던 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일 아침 아빠랑 광안리 바닷가 조깅을 했었다. 하루는 조깅을 하다가 아빠가 캐치볼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시는 걸 보고 내가 아빠한테 아들 노릇 해 드려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우리가족은 여름휴가를 주로 산으로 다녔었는데 언니들이 모두 주저앉고 더 이상 안 간다고 해도 나는 꼭 아빠가 가는 산 정상을 함께 밟았다. 그 시절 아마도 난 아빠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아빠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 늘 건강하고 내 곁에 오래오래 머물 거라 생각했던 아빠가 큰 수술을 받으셔야 하고 수술 후에는 예전 같은 생활을 못 하실 거라 생각하니 맘이 너무 아프다. 작년에 호스피스 봉사자교육을 받았었다. 교육과정 중에 유서를 쓰기도 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숨결이 바람 될 때’ ‘인생수업’ 등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랬던 나지만 아빠의 암 진단은 준비되지 않은 채 당하는 사고같이 느껴진다. 아빠한테 받은 것이 너무도 많은데 해 드린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 우리 집에 이틀 밤 이상을 주무신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닷새 주무신 게 암 진단을 받고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준비 하고 검사 받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수술을 결정하기로 했을 때 엄마는 아빠가 말년에 막내 얼굴 많이 볼 라고 아픈가 보다 하셨다.
12월에 진단을 받고 1월에만 3번 서울에 올라오셨다. 오실 때마다 여주, 수원, 파주로 나들이를 다녔다. 아빠는 단 한 번의 근심도 후회의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것들을 궁금해 하시고 맛있는 음식에 감사하고 잘 주무시고 많이 웃으셨다. 나한테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 주셨고 손자들한테는 격려와 사랑을 듬뿍 주셨다.
어떻게 저렇게 덤덤하실 수 있을까 궁금했다. 괜찮은 척 연기하시는 걸까? 처음 얼마간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빠가 나한테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뭘 잘 못해서 이런 병이 들었을까 라며 과거에 메이지도 않고, 수술 후에 나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를 걱정하며 미래에 저당 잡히시지도 않으신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충실히 본인의 느낌에 집중하신다. 많이 웃으시고 농담을 던지신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착하고 공부 잘 하고 건강한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당연한 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몰랐다. 고통 없이 숨을 쉬고 아무 거나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 것이 크게 감사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질 못했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순간순간 잊어버리면서 살았다.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큰 아이 방에서 들리는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도 친구들과 놀다가 오겠다는 작은 아이의 문자 메시지 하나도 출장 중에 내 생각이 나서 전화 한다는 남편의 전화 목소리도 저녁에 뭐 먹을지를 고민하는 나의 작은 일상도 그 어느 것에도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지금 누리는 모든 당연한 것들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걸 아빠가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의 삶으로. 쑥스러워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 못하는 딸이었는데 이제는 아빠가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첫댓글 동의해요. 저도 갑작스레 아파보니까.... 이런 생각했어요. 모든 안좋은 일은 나만 피해가는 것 같고, 내가 누리던 모든것이 당연한것처럼 오만했었지요. 나에게 없거나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오고, 욕심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참 감사할것이 많은데. 글 읽으며 울컥하네요. 새삼 일상이 너무도 감사함을 다시 느끼며, 귀한 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