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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1일(수) 화순 동복/북/이서면 옹성산 산행안내 - 시산제
♣ 버스 탑승 장소 및 시각 :
* 상무지구 세정아울렛 건너(07:30) - 금호지구 마재마을(07:35) - 풍암지구 빅마트 앞(07:45) -
백운동 동아병원 옆(08:00) - 농성동 건강관리협회(경유) - 농성(역)광장(경유) -
신세계 건너 교원공제조합 앞(08:10) - 운암동 광주문예회관 후문(08:20)
♣ 산행코스:
* 신성마을(안성저수지) -주차장-능선삼거리-철옹산성- 옹성산-백련암-할머니집-신성마을(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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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군 동복/북/이서면 옹성산(572.8m) 산행개요
◆ 전남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 북면 다곡리, 이서면 장학리일대에 위치한 옹성산(572.8m)은 항아리를 엎어놓은 듯한 바위가 여러개 있어 옹성산이라 하였다.
백아산 능선에서 뻗어왔지만 그 산세는 백아산을 닮지 않았다. 백아산의 날카로운 바위무리에 비한다면 모래와 자갈이 오랜 세월 퇴적작용을 거치면서 형성된 퇴적암이 솟아 오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까닭에 바위질은 단단하지 않고 손으로 떼면 떨어져 내린다.
등산을 하다보면 모후산이 앞쪽에 버티고 있고, 뒤쪽으론 옹성산의 부드러움과는 다른 뾰족함을 자랑하는 백아산이 우뚝하다. 안성저수지가 있어 산으로만 가득한 풍경을 근사하게 다듬어 준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들어오는 길이 다 보인다.
이 곳에는 산성이 있는데 철옹산성이라 부른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 방비하기 위해 쌓았다고 전하며, 장성의 입암산성, 담양의 금성산성과 함께 전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임진왜란시에는 이 고을 현감을 지내고 진주성에서 순국한 황진장군이 군사를 훈련시킨 곳이라 하며, 동학(東學)이 활발한 때에는 오계련이 이곳을 증축하였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몽촌토성보다 두배가량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옹성산 산행은 안성리 저수지 부근에서 시작한다. 마을의 끝자락을 지나 군부대 옆으로 난 길을 계속 따라가면 안성저수지 옆에 초입이 나온다. 군부대 앞에서 우회전해 농로를 타고 가다 저수지 중간에 위치한 붉은 페인트의 '등산로'란 표지판이 단번에 초입임을 알게 해준다. 철옹산성터로 이어진 초입은 제법 오르막이 급하다.
등산로 옆으로 무덤이 이어지다 점점 경사가 심해지고 비탈길을 30여m 올라서면 야트막한 능선 위에 닿는다. 능선길은 '克己(극기)' 라고 쓴 페인트 글씨가 인상적인 암봉 밑으로 이어진다. 이 암봉은 독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다는 독아지봉이며 유격훈련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등산로는 안부에서 유격장이 있는 오른편 능선이 아니고, 계곡으로 한 차례 내려선 후 계곡을 따라 예전 월봉마을이 있었다는 마을 터로 올라야 한다.
( 안내판보다 약간 오른쪽으로 비껴서 산행을 시작한다. 잠깐 오르면 '정복'이라고 쓴 통나무가 매달려 있는 세 갈래 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엔 '산행/하강'이라고 써 있고, 왼편엔 '줄타기'라고 되어 있는데 오른 편을 택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옹암이 버티고 선다. 모래와 자갈이 오랜 세월 동안 인고해 가며 퇴적한 자취가 그대로 드러난다. 센 힘을 주어 쥐면 부스러질 것 같은 재질이다. 일명 '바구리봉'이라고 한다. 옹암은 옹기와 같은 바위라는 뜻이고, 바구리같다는 데서 바구리봉은 나왔으리라.
유격장답게 암벽에 큼지막하게 ‘克己(극기)’라는 글씨가 써 있고, 중턱에 밧줄을 묶는 철기둥들을 박아 두었다. 옆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고 암벽을 탈 수도 있다. 나무 한 그루 달라붙지 않은 옹암을 오직 한 가닥의 밧줄에 의지하여 오르는 맛은 뭐라 형언하기 어렵다.
★ 산행을 돕기위해 인테넷에서 옹성산 산행기가 있어 가져와 소개합니다 :
<감탄사 절로 터지는 옹성산 : 2003년 03월 18일 (화) 최연종>
야트막한 산 곳곳에는 빼어난 볼거리가 숨어 있어 가볼수록 운치 있는 산이다. 옹성산 산행은 화순군 동복면 군부대쪽에서 가는 길과 북면 독재를 넘어 오는 길이 있다. 동복 군부대를 지나 안성 저수지에서 등산로를 따라 왼쪽 길로 내려서면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나온다.
가파른 길을 타고 오르면 옛 월봉마을터. 50여년 전만 해도 이 곳에서 10여 세대가 살았다고 한다. 연자방아는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데 산 중턱에 민가가 있었다는 게 놀랍다.
정상 가까이에는 누더기 양철지붕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둥지를 틀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홀로 살고 있었다. 장윤례(95) 할머니다. 말귀를 다 알아들으실 정도로 정정했다. “산에서 살 팔자라 명대로 살려고 여기서 산다”는 할머니는 자신을 '옹성산 호랑이 함씨'라고 소개한 뒤 산에 오르는 사람들과 “오시냐, 가시냐 이런 저런 얘기 나누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집 뒤로 난 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가다 보면 커다란 바위에 두 개의 문이 달린 암벽을 만난다. 코뿔소를 닮은 쌍문바위다. 오색으로 물들여 놓은 듯한 바위를 규목나무 한 그루가 감싸 안으며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석공이 독아지 바위를 빚은 뒤 이 곳 바위에 두 개의 문을 달아 놓았나 보다. 바위 뒤쪽에서 문 사이로 보이는 가을 풍경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쌍문바위만 보고 가도 옹성산에 오른 품삯을 건진다고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 싶다.
쌍문 바위 주변에는 위로 솟아 있다는 선바위와 쌍문바위 흉내라도 내듯 좌우에 문을 달다만 암벽이 눈길을 끈다. 암벽 위에는 수십명이 앉을 수 있다는 마당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암벽 앞에 있는 반반한 터는 옛 옹성암 절터다. 공터 아래에서부터 높이 쌓아 올린 축대와 암벽사이에 있는 약수터가 암자의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다시 정상을 향해 300여 미터를 오르면 옹성산 정상(572m). 비록 주변을 가린 잡목들로 답답한 감은 있지만 동복호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옹성산의 운해(雲海)는 또 다른 볼거리다. 1년 중 10월에 보는 운해를 가장 으뜸으로 친다. 기온이 서늘해야 운해가 가장 깨끗해 보이기 때문이다. 옹성산 운해를 보기 위해 매년 9월말이면 할머니 집에서 묵곤 했다는 향토사학자 문제선(동복면 독상리)씨. “독아지 바위에 올라 발 아래로 하얗게 깔리는 운해를 보고 있으면 옹성산이 마치 구름에 떠있는 것 같습니다”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철옹산성(전남도 기념물 제195호)을 만난다. 산성 북벽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10여개의 단으로 촘촘히 쌓았으며 높이만도 4m에 이른다. 성 입구에는 산성의 본부로 들어가는 성문의 돌기둥인 문설주가 있다. 그 위는 병사들이 보초를 섰던 파수대(초소)다. 철옹산성은 암벽을 주로 이용했고 전체길이는 5km나 이를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지금은 100여 미터가 원형대로 보존된 상태.
주변엔 깎아지른 듯한 옹암과 쌍두봉이 버티고 있고 뒤쪽으로 철벽같은 자연암벽을 이용한 산성이 있으니 말 그대로 철옹산성이다. 그러고 보면 옹성산은 산 전체가 천혜의 요새인 셈이다. 철옹산성은 옹성산성이라고도 부른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았으며 담양의 금성산성, 장성의 입암산성과 함께 전남 3대 산성의 하나.
산성 북벽이 끝나는 곳에는 길고 크다고 해서 부르는 장대(長臺)바위가 있다. 확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눈 앞에는 독아지 바위가 우뚝 서있고 멀리서 모후산이 옹성산을 굽어보고 있다. 장대바위 뒤쪽에 있는 암벽을 타고 돌아가면 아담한 옹달샘이 나온다. 용이 살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소(龍沼). 깊이가 2m에 이르는데 사계절 내내 항상 맑은 물이 가득 차있어 신기하다.
옹성산에는 해방 전까지 높은 사람들이 오가는 꽤 넓은 도로가 있다. 요즘 국도에 해당하는 중요한 길이다. 이 길은 동복에서 높은 벼슬을 한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었고 동복 오 부자의 전답을 소작했던 북면 사람들이 소작료를 바치러 오가는 눈물겨운 길이기도 했다. 숱한 사연과 역사가 담긴 길이다. 이 길을 역사 유물로 보존하면 어떨까? 이 길에서 가마를 타 볼 수 있다면 즐길거리도 되면서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옹성산까지 승용차로 가는 길은 광주에서 국도 제22호선(벌교가는 길)을 타고 화순구암까지 와서, 다시 국도 제15호선(순천가는 길)을 타고 구암삼거리 - 동복 - 신성리에 이른다. 군부대 유격장이 있는 뒷편이 옹성산이므로 신성마을에 차를 두고 등산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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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관광지 ★
적벽, 백아산휴양림, 화순온천, 이서 은행나무, 오지호화백 생가 및 기념관, 한천농악전수관, 물염정, 가수리 짐대와 벅수, 백아산관광목장 등이 있다.
옹성산 인근의 가수리마을에는 진또배기, 진대, 솟대라고 불리는 민속문화재가 있다. 가수리 2리에 위치한 이 솟대는 마을의 화재를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긴 장대 위에 오리(또는 기러기)를 올려놓았다.
또한 화순면 인근에 근대 서양화가의 대가인 오지호 화백의 생가가 있다. 옛 집과 흙담벽이 인상적인데 최근에는 이 생가 입구에 오지호 화백의 박물관을 조성 중이다.
또한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에는 화순의 명물인 물염적벽과 물염정이 있다. 물염정은 적벽을 보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 곳이다.
▲ 화순 철옹산성[和順 鐵瓮山城]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 북면 다곡리, 이서면 장학리·보산리 일대의 옹성산에 있는 산성.
2001년 12월 13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철옹산성은 해발 572.9m인 옹성산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산성의 전체길이는 5,400m 정도이다. 성벽은 해발 275∼550m 일대에 분포하고 축조방식은 협축법과 편축법을 사용하였고, 대부분 석재와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철옹산성은 동복면과 북면을 경계짓는 지리적 요충지인 독재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유사시에 즉시 입성하여 방어나 역습 등의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지형에 있는 전형적인 산성이다. 내부에 계곡을 포함하여 수량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을 뿐 아니라 외부의 노출도 방지해 줄 수 있는 구조로 유사시 상당수의 군사와 주민들이 농성할 수 있었던 곳이다.
동쪽 성벽은 능선과 암벽을 이용하였는데, 동북쪽 건물지 앞부분과 동문이 있는 곳이 가장 잘 남아 있다. 나머지 부분은 2개의 암봉을 이용하여 암벽 자체가 자연 성벽이 되도록 하였다.
남쪽 성벽은 능선과 절벽을 이용하여 가공한 자연석으로 9∼10단으로 쌓았는데 거의 수직으로 축조하였다. 남문지 동쪽에는 거대한 암봉이 있어 천혜의 성벽이 되며, 남문지 서쪽으로는 능선 경사면을 깎아내고 편축하거나 협축하였는데 능선의 굴곡을 따라 성벽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다.
서쪽 성벽은 옹성산 정상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자연지형을 이용하였는데, 이곳은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어 특별한 성벽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 북벽으로 이어지는 서북쪽 모서리에는 석축 성벽 일부가 잘 남아 있다.
북쪽 성벽은 예성산 정상부의 평탄한 면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사면을 가파르게 깎아내고 10∼15단의 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높이가 3m 정도이고 폭이 좁은 편이다. 옹성산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편축으로 이어지다가 잘록한 허리가 형성되어 있고, 거기서부터 다시 동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협축으로 축조하였다. 북벽 중간의 허리부분에서는 사방이 잘 내려다보이는데 망루로 보이는 시설물이 남아 있다.
동북쪽 암봉 사이의 작은 계곡을 따라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계곡을 차단하는 성벽이 있다. 이 차단벽은 동북쪽 암봉 사이의 계곡을 막은 1차적 방어시설로 높이 2m 정도인데 6∼7단으로 축조하였다.
성 안에는 문지(門址) 시설이 남아 있다. 동문지는 동북쪽 암봉과 동남쪽 암봉을 연결하는 성벽의 중간으로서 해발 350m 지점이고, 남문지는 남벽과 동남쪽 암봉 사이에 있는데 해발 340m 지점이다. 그 밖에 건물지 세 곳이 있는데 동북쪽 건물지의 중앙에 우물이 있다. 건물지 주변에서는 회청색 경질 기와편과 회청색 경질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 화순적벽 [化順赤壁]
전라남도 화순군 창랑천 주위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경승지(景勝地).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 화순적벽은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 약 7km에 걸쳐 발달한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의 경관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복댐 상류에 있는 노루목 적벽과 물염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이 있다.
노루목 적벽은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수려한 자연경관과 웅장함, 그리고 위락 공간으로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중이던 명유(名儒)인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하며, 그뒤 많은 풍류(風流) 시인묵객들이 이곳에 들러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물염적벽은 규모나 풍치면에서 노루목 적벽에 미치지 못하지만 건너편 언덕 위에 송정순이 건립한 물염정이 있어 위락공간으로 이름이 높다. 보산적벽은 노루목에서 서쪽으로 약 600m 거리에 있는 보산리의 북쪽 계류가에 형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작으나 수량이 풍부하였다. 창랑적벽은 창랑리에 있는데, 높이 약 40m에 길이가 100m 가량 이어진 절벽군으로 웅장한 느낌을 준다.
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적벽은 동복댐 보호구역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1996년 12월에 개설된 임로(林路)로 한결 쉽게 찾을 수 있다. 적벽 앞에는 망미정, 보안사지 석탑, 망향정 등이 있다.
▲ 물염적벽 [勿染赤壁]
<물염정 전경>
전남 화순군 이서면(二西面)에 있는 명승지. 화순 북동쪽 14 km, 동복(同福) 북쪽 5 km 지점에 있는 옹성산(瓮城山)의 서쪽 절벽이 동복천 물염(勿染)에서 물에 비치는 경치를 말한다. 옹성산 서쪽 기슭은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절리(節理)를 이룬데다가, 물염에서 내려오는 푸른 물이 영신천(靈神川)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류하는 곳에 비치는 수백 m의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또한 북쪽 백아산(白鵝山:804 m)에서 발원하는 동복천은 굽이마다 물염연(勿染淵) ·창랑연(滄浪淵) ·재벽연(再碧淵) ·고소연(姑蘇淵) ·봉황연(鳳凰淵) ·별학연(別鶴淵) 등 경승지를 이루었으나,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수몰(水沒)되었다.
▲ 오지호 [吳之湖, 1905.12.24~1982.12.25, 한국의 서양화가 ]
↑ 오지호가옥 / 광주시 동구 지산동. 광주기념물 제6호. 서양화의 대가 모후산인 오지호의 집이다. 이 집은 오지호가 광주에 정착한 이후 1982년까지 작품에 전념하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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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수상 : 국민훈장 모란장(1973), 예술원상(1977), 금관문화훈장(2002)
*주요저서 :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미와 회화의 과학》
*주요작품 : 《나부(裸婦)》(1928) 《아내의 상》(1936) 《사과밭》(1937)
본관 동복(同福). 본명 점수(占壽). 전라남도 화순 출생. 1931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직후, 서울에서 김주경(金周經) 등이 주동이 된 녹향회(綠鄕會) 동인전에 참가, 사실적 자연주의 수법의 유화를 발표하였다. 그 후 1935년부터 10년간 개성 송도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밝고 투명한 색채와 가득한 빛살, 경쾌한 붓놀림의 인상주의 화법으로 한국의 자연미와 풍정미 표현에 주력하였다.
특히 1938년에 자비로 출판한 《오지호 ·김주경 2인화집》은 1930년대 중반 당시 국내의 양화계에서는 새로운 회화방식이던 서구의 인상주의를 확실히 수용하였음을 보여준다. 1949년부터는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호남지역 양화계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68년부터 다년간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6년 국전운영위원에 추대되었다. 1977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으며, 2002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74년 유럽 각지의 문화계와 1980년 아프리카의 미술계를 시찰하였다. 대표작으로 《나부(裸婦)》(1928) 《아내의 상》(1936) 《사과밭》(1937) 《선운사 설경》(1979) 등이 있다. 저서로 원색판 《오지호작품집》과, 미술평론집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미학원론으로 《미와 회화의 과학》 등이 있다.
▲ 오지호기념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있는 화가 오지호의 기념관.
한국 미술계의 거장인 오지호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1998년 4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개관하였다. 본래 1992년 광주광역시립미술관 2층에 설치하여 운영해오다가 오지호 화백의 고향인 현 위치로 이전하여 건립된 것이다. 오지호 화백의 작품과 유품, 저서, 가족들의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겨울풍경》·《조선소풍경》\·《함부르크의 풍경》·《추경》 등이 잘 알려진 작품이다.
오지호 화백은 인상주의 화풍을 개척한 화가로 그림 외에도 미술이론에 밝았으며,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등 국어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후에는 국전심사위원과 예술원회원 등을 역임하였다. 오지호 화백이 작품을 구상하던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257번지의 초가집은 광주광역시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광주광역시에서는 1991년부터 매년 10월 국내 순수미술 발전에 기여한 사람을 대상으로 오지호미술상을 수여하고 있다.
▲ 모후산 [母後山, 919m]
< 모후산 정상의 모습 , 2002년 12월27일 산행 때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과 순천시 송광면의 경계에 있는 산. 팔각원당형의 해련지탑(보물 1116)이 있다. 모후산(母後山)의 높이는 919m로 광주전남에서 지리산반야봉, 백운산, 무등산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일명 나복산·모호산이라고도 불린다. 섬진7지맥의 한 봉우리이다.
모후산 봉우리는 백아산의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동복천을 앞에 두고 멈춰 선 곳이다. 주암댐의 담수와 더불어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둘려 있다. 멀리 무등산·조계산·백아산과 득량만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무등산과 순천시 조계산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항상 맑은 계곡물이 흘러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좋은 반응을 보인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이곳까지 피난 왔다.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여 남짓 머물렀다고 한다. 그후 원래 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 이는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서하당 김성원은 이곳의 동복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김성원은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하여 나복산을 모호산(母護山)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모호촌이라 하였다 한다.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에 6·25전쟁 당시 빨치산 전라남도 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지금도 당시에 파놓은 참호가 발견된다. 산막골에는 8·15광복 전까지 15호 가량 거주하였으나 모두 소각당해 폐촌이 되었고, 빨치산의 본거지라 하여 유마사의 사찰건물은 모두 소각되었다가, 지금은 송광사의 말사로 비구승이 주지로 있는데, 대웅전 등을 다시 짓고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후산 산행 제1코스는 중국 당(唐)의 유마운이 창건한 유마사에서 시작한다. 산막골을 거쳐, 용문재를 지나 오른쪽 능선을 타면, 상봉에 이른다. 이곳에는 큰 묘와 헬기장이 있다. 상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가면 집게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의 집게봉에 다다르며, 뱀골로 가면 유마사로 내려오게 된다. 산행시간은 4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모후산 제2코스는 유마사에서 출발하여 뱀골과 집게봉을 경유하여 상봉에 이른다. 유치재를 넘어 유천마을로 하산하면 된다. 산행시간은 5시간 정도 소요된다.
교통편은 화순-순천간 22번 국도를 이용하여 유천리 마을 입구에서 4km 정도 가면 된다.
또는 화순-벌교간 15번 국도로 24km쯤 가다 남계리 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4km 정도 가면 유마사가 나온다.
< 화순 모후산과 주변관광지 >
주변 관광지에 유마사·화순 물염적벽·주암댐·고인돌공원·영롱대·백민미술관·오지호화백 생가 및 기념미술관·한천농악전수관·임대정·사평폭포·사평휴양림·조계산도립공원 등이 있다. 매년 2월 중순이면 고로쇠를 채취하며, 특산품에 등복청·삼베·복천어·다슬기탕·기정떡·고로쇠나무 등이 있다.
▲ 백아산 [白鵝山, 810m]
< 백아산 정상의 모습 >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있는 산. 높이는 810m이다. 석회석으로 된 산봉우리가 마치 흰 거위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 백아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 북쪽으로 무등산(1,187m)이, 남쪽으로 모후산(919m)이 있다. 날카로운 바위가 많고 산세가 험하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순탄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 중턱에는 화순 아천산 천연동굴이 있다. 석회암 동굴이며, 약 2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아산 산행은 원리와 수리에서 각각 시작할 수 있다. 원리에서 오르는 코스는 상여바위, 절터바위, 마당바위를 거쳐 15m 높이의 폭포가 있는 용촌부락에서 금성부락으로 하산한다. 상여바위와 절터바위는 매우 험한 암봉이므로 암벽 등반 경험이 없는 등산객은 암봉 아래로 산행하며,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수리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백아산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한다. 1996년에 조성된 자연휴양림에는 야영장, 취사장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산막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남릉에 오르며 남릉 아래쪽에는 백학정(白鶴亭)이라는 전망대가 있는데, 노치리 계곡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하산은 철불봉을 넘어 마당바위, 절터바위를 지나 원리로 또는 백학정에서 급한 경사길을 따라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간다. 다른 하산 길은 정상에서 천불봉과 비학봉을 거쳐 아산목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있다.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2시간 30분 정도, 아산목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화순군 북면 옥리에는 1982년 발견하여 휴양지로 조성한 금호화순온천이 있다.
첫댓글 옹성산, 모후산, 백아산 그리고 동복호(적벽,물염정)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셨나요 광주에서 1시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산행지가 있다는 사실... 멀리 가야만 좋은 산행지가 있나요 가까우니까 아무 때나 갈 수 있으니까 하고 소외시키시나요 허나 이렇게 자세히 소개해줘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소개받는 양.....무심히...... 너무 많이 알면 다치니까
어릴적 화순에서 자랐지만 이렇게 멋있는곳이 주변에 있다는 것도 잘 몰랐네여... 이번 산행하면서는 어릴적을 회상해보는 것도 괞찬을 것 같아여.. 많은 자료 감사히 잘보고 있음다..
언제나 다 가볼까요.행복한 고민이네요. 가까이 있으니까 쉬엄쉬엄 가볼랍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옹성산 시산제가 끝나면 반드시 한산사 방향의 동복호 절경지를 꼭 경유하시기 바랍니다. 대개들 옹성암터에서 내려와버리는데 그러면 맛이 떨어져요. 좋은시산제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