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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토리의 산행방 원문보기 글쓴이: 도토리
보길도 여행 및 산행기 |
1. 여행 및 산행일시 : 2009년 6월 20, 21일(토, 일요일) |
날씨 : 흐림 및 가끔 비(6/20일 저녁) |
2. 산 행 및 여행지 : 보길도 적자봉(433m) 및 땅끝 |
3. 참석자 : 한마음친목산악회 회원 47명 |
4. 여행 및 산행 일정 |
제 1일차 : 울산출발>순천경유>완도 화흥포항>노화도 동천항>보길도 윤선도 |
유적지>곡수당, 낙서재>송시열 글씐바위>예송리 낙원팬션 도착 |
해변산책 및 상록수림(보물 제40호) |
제 2일차 : 산행(코스) 예송리버스정류장>큰길재>수리봉>격자봉>누룩바위> |
뽀래기재>백련사지>보옥리 종점 |
여행 청별항>보길대교>산양항>땅끝 갈두항>땅끝탑>땅끝전망대> |
모노레일>땅끝조각공원>울산도착 |
5. 여행 및 산행기(제 1일차) |
08:20분 울산 신복로타리 출발 |
장마철로 토, 일요일에 많은 비가 내린다고하여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
비는 내리지 않고 아침부터 잔뜩 하늘이 찌푸려 있고 후덥지근한 날씨다. |
신복로타리에서 버스에 올라 남해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순천에서 내린후 2번국도를 |
따라 벌교, 보성을 지나고 강진에서 목포방향을 버리고 해남, 완도 방향으로 접어든다. |
13:19분 완도/해남 갈림길 |
다시 완도와 해남이 갈라지는 길에 도착하니 시간은 13:19분을 지나고 있는데 |
14:00시 배를 타려면 시간이 임박하여 모두들 조바심이 나서 안절부절인데, |
'늦으면 다음배로 가면 되지~' 하면서도 화흥포항에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해 보라고 |
권하였고, 사무국장이 그곳으로 전화를 한 결과 무조건 '시간내에 도착하면 탈 수 |
있다'는 말만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면서 불친절을 이야기한다. |
관광지로의 요건중에 친절이 가장 큰 힘인 것을... |
예전에는 고자세로 일관했던 공무원들도 요즈음엔 상당히 친절해 졌는데~ |
이런 곳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조금더 친절하게 안내를 해줘 관광객이 다시 찾을 수 |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
이번엔 내비게이션이 가르키는 빠른길로 진입을 하였는데 마주오는 덤프트럭 기사가 |
말하기를 그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공사중이라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되돌아 |
나오고 우여곡절 끝에 시간이 늦지 않고 화흥포항에 도착한다. |
13:45분 완도 화흥포항 도착 |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배를 승선할때 경찰의 통제도 전혀 없었고 승선하는데 |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
배를 탈때 신분증과 이름을 적고 탈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
(사무국장이 일괄 명단을 제출한 것인가??) |
△ 보길도까지 데려다 줄 '청해진카페리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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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시 화흥포항 출항 |
화흥포항을 출항하자 이내 육지가 멀어지고 진행 방향에 수평선이 있었는지 기억도 |
없이 곧바로 점점이 보이는 무수한 섬들이 다가오고 노화도 앞쪽에 위치한 횡간도의 |
사자바위가 위용을 드러내어 우리를 맞이 하는데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사자바위에 |
올라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그곳의 멋진 경치가 눈앞에 아른거려 계속 셔터를 눌러 본다. |
△ 노화도로 가는 길에 다가온 횡간도와 사자바위 △ 동천항 도착전에 보이는 섬사이의 양식장 - 아마 전복 양식장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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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분 노화도 동천항 도착 |
탓는가 싶더니만 "청해진 카페리3호"는 벌써 노화도의 동천항에 도착한다. |
말이 항구지 그냥 조그마한 어촌이다. |
그곳을 출발한 버스는 농로길 같은 도로를 지나가는데 이곳에도 저수지와 논밭이 있고 |
특이한 것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논에 벼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보길대교를 지나 우회전 그리고 좌회전하여 윤선도 유적지에 도착한다. |
15:07분 윤선도 유적지 도착 |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물가에 개연꽃이 한창 피어나고 동대와 서대라는 |
무대가 있고 그 중앙에 세연정이란 정자가 위치해 좌,우로 연못을 거느리고 있는데 |
그 선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모두들 이곳 세연정의 인공미와 자연미의 조화에 매료된 듯하다. |
이곳에 세워진 안내판을 읽어보니 윤선도의 행적에 대해서 도움이 될 것 같아 |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
보길도 윤선도 원림(圓林) |
윤선도(1587~1671년)는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해남, 자는 약이 |
호는 고산(孤山)이다. |
소산은 한성부서윤 등 여러 관직을 지내다 정쟁에 휘말려 파직되어 낙향 해남에서 |
지내다 병자호란 때인 1637년 왕(인조)을 돕기위해 식솔을 거느리고 강화로 향하던중 |
삼전도의 치욕<1637년 1월말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인조가 항복을 하고 명나라를 |
멀리하고 청나라와 군신의 관계를 맺은 치욕적인 사건> 소식을 듣고 이에 통분하여 |
세상을 멀리하고자 뱃머리를 탐라로 돌려 향해도중 보길도를 지나다 수려한 경치에 |
이끌려 황원포에 배를 정박 보길도에 머물게 되었다. |
이때 고산의 나이 51세로 이후 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7차례 보길도를 왕래 13년간 |
보길도에 머물면서 국문학자에 길이 남을 어부사시사(漁夫四詩詞) 40수와 32편의 |
한시를 창작하였으며 격자봉 아래에 낙서재와 무민당을 짓고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
학문에 몰두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세상의 근심을 잊었다. |
고산의 5대손 윤위(1725~56년)의 보길도지에 의하면 무용동 일대에 주 생활공간인 |
낙서재와 무민당 외에 소은병, 동천석실, 곡수당, 낭음계, 세연정 등 25채의 건물과 |
정자 연못이 있으며 곡수당은 고산의 휴식장소로 초당, 석가산, 평대, 인지, 다리, 화계, |
월하탄이 있으며 그 옆 서재에는 고산의 아들들과 제자들이 기거하였다. |
동천석실은 낙서재 건너편 험한 바위산 경승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독서와 사색의 |
장소로 고산은 이곳을 부용동 제일승경으로 여겼다한다. |
세연정 지역은 10,000여 ㎡ 넓이의 계원으로 부용동 입구(현재위치)에 있으며 크게 |
연못과 계담, 판석재방,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 등이 있고 동백나무, 대나무, |
소나무 등이 울창하게 우거져 아름답다. |
고산선생은 이곳에서 악공들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동대, 서대에서 춤을 추게 |
하거나 동자가 배를 타고 어부사시사를 노래부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낚시도 |
즐거며 유유자적 풍유를 즐겼던 곳이다.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를 행하던 낭음계, |
용이 승천하는 승용대 등 자연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고, 최대 별서조원의 |
아름다운 조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
*삼전도의 치욕에 대해서는 안내판에 없어 별도로 옮겨 적었다 |
또한 그곳 안내판에는 세연정(洗然亭)의 '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이라고 적혀 있었다. |
위에 글로 추정해 봤을때 과연 '윤선도란 인물에 대해 역사가들이 보는 견해는 |
어떨까'란 생각을 해 본다. |
아마 낙향할때 많은 재물을 배에 실어왔을 것이고 그것으로 이곳에 이런 건물을 짓고 |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문학적인 면에서 많은 것을 남겼지만, 다른면으로 봤을때 |
아쉬움이 남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마침 그곳에서 함께 안내판을 보시던 나이 지긋하신 분도 보길도로 봤을때 윤선도의 |
역할을 이야기하면서 서슴없이 욕설섞인 언어를 토해낸다. |
현세나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은 청렴함이 몸에 베어나야 |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
그래도 문학적인 면에서는 출중한 인물이었음에 그분의 어부사시사 40수 중 |
春夏秋冬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를 한편씩 옮겨본다.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
春(어촌의 평화로운 봄경치) |
우는 거시 벅구기가 푸른 거시 버들숩가/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것이 버들숲인가 |
이어라 이어라/ 노저어라 노저어라 |
漁村 두어 집이 냇 속의 나락들락/ 어촌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하는구나 |
至?悤(지국총) 至?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
말가한 기픈 소희 온갇 고기 뛰노나다/ 맑고 깊은 바다에는 온갖 고기가 뛰논다 |
夏(안분지족하는 어부의 소박한 삶) |
년닙히 밥 싸 두고 반찬으랑 장만 마라/ 연잎에 밥을 싸두고 반찬일랑 장만하지 마라 |
닫 들어라 닫 들어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
靑蒻笠(청약립)은 써 있노라, 綠蓑衣(녹사의) 가져오냐 |
/ 삿갓은 써 있노라 도롱이는 가져오느냐 |
至?悤(지국총) 至?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
무심한 白鷗(백구)는 내 좃는가 제 좆는가 |
/ 무심한 갈매기는 내가 저를 쫓는가, 제가 나를 쫓는가 |
秋(가을 강에서 유유자적하는 어부의 삶) |
物外(물외)예 조한 일이 漁夫生涯(어부생애) 아니러냐 |
/ 속세를 벗어나 깨끗한 일로 소일함이 어부의 생활이 아니더냐 |
배 떠라 배 떠라/ 배 띄워라 배 뛰워라 |
漁翁(어옹)을 ?디마라, 그림마다 그렷더라 |
/ 고기잡는 늙은이라 비웃지 마라, 그림마저 그려져 있더라 |
至?悤(지국총) 至?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
四時興(사시흥)이 한가지나 秋江(추강)이 ?듬이라 |
/ 사계절의 흥취가 마찬가지로 비슷하나 그 중에서도 가을 바다의 경치가 으뜸이라 |
冬(눈내린 어촌의 겨울경치 예찬) |
간밤의 눈갠 後(후)의 景物(경물)이 달?고야/ 간밤에 눈이 갠 후에 경치가 달라졌구나 |
이어라 이어라/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
앞희는 萬頃琉璃(만경유리) 뒤희는 千疊玉山(천첩옥산) |
/앞에는 맑고 넓은 바다, 뒤에는 천겹 옥으로 수놓은 듯한 산 |
至?悤(지국총) 至?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人間(인간)이 아니로다 |
/ 신선의 세계인가, 부처의 세계인가, 속세는 아니로다 |
△ 정면에서 본 세연정의 풍광 △ 아름다운 세연정안의 연못 △ 뒤에서 본 세연정의 아릉다운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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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분 곡수당, 낙서재 |
세연정을 나와 조금을 더 올라가 저수지 둑이 보이는 마을 어귀에 차를 주차시키고 |
곡수당과 낙서재를 둘러보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가 시작한다. |
다행히 많은 량은 아니었지만~ |
지금 새로 개축 공사중으로 주위가 어수선하였다. |
맞은편 산중턱에 동천석실로 보이는 바위사이의 건물이 보였건만 그곳 가기를 |
포기하고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씐바위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
△ 곡수당의 모습으로 새로 중수한 듯~ △ 한창 복원공사중인 낙서재 △ 줌으로 당겨 봤는데 이곳이 동천석실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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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5분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 |
글씐 바위는 보길도의 동쪽 끝단에 위치해 있으며 아름다운 경치가 있고 |
자갈밭으로 된 통리해수욕장과 중리해수욕장을 지나서 막다른 곳 주차장에 |
도착하고 얼마를 걸어가니 글씐바위 안내판이 있고 한참을 들어갔는데 어~ 글씐 바위는 어디에 있나? |
한참을 찾아 봤지만 보이지 않아 다시 되돌아 나오니 바위에 조그마한 글씨로 쓰여져 |
있는 '글씐바위' 보인다. 우리모두 그것의 크기를 크게만 생각하다 보니 놓치고 지나쳐 |
버렸던 것이다. |
그곳에는 탁본을 뜬 흔적이 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글자 판독이 쉽지 않다. |
그내용은 그곳 안내판을 통해 옮겨 본다. |
宋時烈 巖刻詩文(송시열 암각시문) |
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 83세 늙은 이몸이 |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한마디 말이 어째 큰 죄가 되어 |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
貂?舊恩在(초구구은재)/ 초구에 옛 효종의 은혜 서려 있어 |
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
송시열은 이곳에 글을 남기고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한달도 못하고 다시 국문을 받기 |
위해 한양으로 압송도중 정읍땅에서 사약을 받고 한많은 세상을 마감하였단다. |
위에 시에서 보듯이 효종을 그리는 싯귀가 보인다. 효종과 현종 두임금을 모시고 |
숙종때 경종의 세자책봉을 논할때 아직 시기상조라는 글을 올린 죄(위에 한마디 말에 |
해당 될 듯)로 제주도로 유배길에 올랐음을 말해 준다. |
위의 싯귀의 구절들도 가슴에 와 닿았지만 그곳 위쪽의 흙하나 보이지 않는 바위틈에 |
자라난 소나무의 꿋꿋함에 노(老)신하의 충정이 묻어 나는 것 같아 감탄사가 절로 터져 |
나왔으며 송시열 선생의 분신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
△ 송시열의 글씐바위로 탁본을 뜬 흔적으로 검게 먹칠이 되어 있었다. △ 글씐바위 좌측 위쪽에 위치하여 꿋꿋이 자라고 있는 소나무 △ 벼랑끝에 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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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분 예송리 낙원팬션(숙소) 도착 해변 산책 및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 관람 |
예송리에 위치한 낙원팬션(방이 총 10개로 전체를 빌렸었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
자갈이 파도에 따라 쓸려 다니는 것이 멋진 화음으로 다가오는 예송리 해변을 거닐고 |
천연기념물 40호인 그곳의 아름다운 상록수림을 바라보니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
각종 종류의 식물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만하다. |
저녁은 회와 전복 그리고 매운탕으로 멋지게 한상을 해 치운다. |
다시 바닷가로 내려와 "조개껍질 묶어 그대의 목에 걸면~ " 등 생음악이 몇고개 넘어갈 |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그곳의 아름다운 |
밤과 파도의 선율이 아쉬웠던지 다시 버스에 올라 음악을 틀고 흥을 돋우려고 했지만 |
주인장의 만류로 여흥을 중단하고 숙소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
그리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숙소 마당과 발코니에서 삼삼오오 밤늦도록 이야기꽃이 |
피어나고 모처럼 들어보는 생음악으로 노랫소리가 이어진다. |
나는 슬며시 자리를 일어나 숙소로 들어가 피곤한 몸을 눕혔지만 얼마있지 않아 |
잠에서 깨어났고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
천지개벽이라도 할 듯한 코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아침이 밝기를 |
기다린다. |
△ 예송리 해수욕장의 풍광 △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예송리 상록수림' △ 우리가 머물렀던 낙원팬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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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행 및 산행기(제 2일차) |
05:00분 기상후 아침산책(예송리 마을 및 해변) |
어차피 잠도 오질 않고 일어나 안개 자욱한 해변과 예송리 마을을 돌아보며 오늘 |
가야할 산행지 초입을 답사해 둔다. |
당초 산행 초입으로 예정되어 있던 예송리 교회 좌측옆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
가봤는데 교회옆 코스는 풀섶에 아침이슬이 너무 많아 진행하기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예송리 코스도 사전 답사를 해본다. |
예송리 교회까지는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하며 어차피 마을길을 걸어서 가야 |
하므로 예송리 정류장에서 가는 길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
결론은 그리 멀지 않고 시간이 짧으므로 예송리 정류장에서 가는 코스를 택하자고 |
산대장에게 건의를 한다. |
07:00시 조식 |
전복죽으로 아침을 먹는데 죽의 량도 많이 주었지만 내용물인 전복의 량도 크게 썰어 |
넣었는데 제법 많이 들어 있다. |
맛있는 아침을 먹은 뒤 산행을 위해 체조를 하고~~ |
07:58분 예송리 주차장에서 산행 시작(수리봉 1.9Km, 보옥리 6.0Km) |
예송리 버스 정류장 가기전 개울가에 휘어져 있는 멋진 나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
들어가니 수리봉 1.9Km, 보옥리 6.0Km라는 산행 초입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
입구 도로쪽에 표지판이 없고 조금 들어간 지점에 안내판이 있어 처음 산행하는 |
분들은 초입 찾기가 쉽지 않으니 주의가 필요할 듯 하다. |
계속 윗쪽으로 진행하면 우마차로처럼 보이는 길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진입을 하면 |
다시 지도와 함께 현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
우마차로가 좁아지면서 밤새내린 비로 인해 풀잎이 젖어 있어 바지자락이 젖어 온다. |
조금을 지나니 수로처럼 보이는 길에 돌을 깔아 놓은 제법 넓은 등산로 이어진다. |
△ 큰길에서 휘어진 나무가 있는 곳으로 진입하면 산행 초입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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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분 수리봉 1.4Km/ 예송리 0.5Km |
그렇지 않아도 해무(海霧)로 어두운데 빼곡한 상록수림이 터널을 형성하고 있어 |
깜깜한 밤중같은 기분이 드는길을 올라가는데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방울이 연신 |
훌러 내린다. |
가는길에 "다도 01-02"라는 119구조 표지판이 보이는데 다도해 국립공원 지역임을 |
알 수 있다. |
08:21분 큰길재 |
큰길재는 현위치를 알리는 표지판만이 있는데 이곳은 보길면 소재지에서 능선을 통해 |
올라오는 길과 부용동에서 올라오는 길이 마주치는 지점이다. |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올라가는데 계속되는 나무 터널에 전망도 없고 |
지겨웠지만 '콩란'이라는 조그마한 란이 바위와 나뭇가지 등에 매달려 특유의 푸르고 |
이쁘장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슬 방울 맺힌 그의 모습이 황홀할 지경이다. |
화창한 날씨라면 멋진 조망을 보여줄 전망바위에 도착하고 전혀 보이지 않는 아래를 |
바라보며 '저기가 제주도, 여기가 추자도'라는 등 헛소리를 지껄여 본다. |
△ 큰길재에서~ △ 콩란(일명 콩짜게란)에 달린 이슬방울 △ 이런 보석을 사랑하는 와이프 목에 걸어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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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7분 수리봉(406m) 격자봉 0.9Km/ 예송리 1.9Km/ 예송교회 1.0Km |
이곳은 예송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지점 예송교회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 있는 |
지점으로 수리봉이란 표석은 없고 안내판 아랫쪽에 매직으로 적어 놓은 것이 |
전부였고 그 옆에 초라하게 쌓아둔 돌탑2기가 있는데 밀려드는 일행을 피해 뒷편으로 |
넘어가려다가 돌탑을 넘어뜨리는 사고를 치고 만다. |
마침 아랫쪽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 등쪽을 덮쳐 버렸다. |
아주머니 정말 죄송하고 고의가 아니니 용서해 주이소~~!! |
돌탑에는 삐죽이 내밀고 있는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는데 막 피어나려는 붉은색 |
꽃망울이 이슬을 머금고 있다. |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이란 가사가 있는데 진짜 붉게 피어날까하고 |
여러곳을 확인하여 보았더니 제주도에서 서식한다고 하는 분이 있었고~ |
일제에 대항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표현했다는 설~~ |
더 신빙성 있는 것은 햇볕과 관련이 있다는데~~~ |
꽃망울을 보면 처음엔 붉은색이나 피면서 분홍색으로~ 그리고 다시 탈색하여 |
흰색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것도 같고 다시한번 관찰해 봐야겠다. |
내가 어릴때 즐겨 부르던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 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
조금 구슬픈 가사이긴 하지만 내가 실제로 찔레꽃을 따먹으면서 불렀던 노래였다. |
△ 수리봉 정상에서~ △ 수리봉 정상 돌탑에 피어나고 있는 빨간? 찔레꽃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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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분 격자봉 0.5Km, 뽀래기재 2.1Km/ 수리봉 0.4Km |
점점 더 두꺼운 운무속으로 산행이 이어지는데 상록수림 지대에 왠 낙엽이 수북이 |
쌓여 가을과 여름이 함께 공존한다는 이상 야릇한 느낌이 이곳을 지나면서 부터 계속 이어진다. |
09:34분 격자봉(403m) 뽀래기재 1.6Km/ 수리봉 0.9Km, 예송리 2.8Km |
정상에는 아마 준,희 님이 달아둔 듯한 "적자봉(격자봉) 430M"라는 표지판이 나무에 |
매달려 있고 "소안 11 1998년 재설"이라는 삼각점이 선명하게 설치되어 있다. |
그리고 이정표에는 적자봉을 격자봉으로 바꿔 적어 두었고~ |
운무속이라 조망은 어떤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단지 정상에 왔었음만 기억하고 |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산행을 이어간다. |
누룩바위 도착전 작은 누룩바위인지 한길정도 되는 적고 아담한 자연석탑을 만나게 |
되고 그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 본다. |
△ 격자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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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1분 누룩바위 |
누룩을 포개놓은 것 같다고 누룩바위? |
제법 큰 바위가 자리잡고 있고 틈새가 바위둘을 갈라놓고 있었으며 운무에 가려져 |
'위에 오르면 조망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기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는데 |
기암괴석이 몇군데 더 확인이 된다. |
△ 누룩바위 앞에서~ △ 누룩바위 지난 지점의 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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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시 뽀래기재 1.0Km/ 격자봉 0.6Km/ 부용동 1.2Km |
누룩바위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부용동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는 지점이다. |
10:05분 뽀래기재 0.8Km |
10:10분 뽀래기재 0.5Km/ 예송리 3.9Km, 격자봉 1.1Km |
이곳을 지나서도 '콩란'의 모습이 계속 보였고 비행접시 모양의 멋진 바위가 있는데 |
위에서 보면 거북처럼 앞에서 보면 날렵하게 금방이라도 비상할 것 같은 비행접시 |
형상의 바위가 있다. |
△ 산행장면 △ 비행접시인가 아니면 거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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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분 뽀래기재 |
뽀래기재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보옥리로 내려가는 길과 |
망월봉을 통해 망끝전망대로 하산하는 길 그리고 부용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지점이다. |
그곳에서 잠시 휴식하면서 남은 간식을 나눠 먹는다. |
이곳부터는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보옥리로 내려가는 길은 넓고 잘 다듬어져 있어 |
상당히 좋은 등산로이다. |
△ 보옥리로의 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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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53분 보옥리 1.1Km, 백련사지 0.57Km/ 뽀래기재 0.5Km |
얼마를 내려 왔을까? 뒤쪽에서 사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급히 뒤돌아 뛰어 올라간다. |
운동화를 신고 오신 아주머니 한분이 미끄러져 앞으로 넘어지셨는데 눈위가 조금 |
찢어져 있었다. 간단히 응급처치에 필요한 비상약을 끄집어 내어 치료를 도와준후 |
다시 내려간다. |
내려오는 길이 낙엽이 많이 쌓여 있고 어제 내린 비로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어서 |
미끄러운 길인데 운동화와 운동신경 부족(당사자의 말) 때문에 넘어졌단다. |
되새기고 싶지 않은 산행중 사고지만 가벼운 산행일지라도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
기본에 충실하여 안전한 산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몇자 적어 봤다. |
11:03분 백련사지 0.07Km/ 보옥리 0.6Km/ 뽀래기재 1.0Km |
11:05분 백련사지 |
말그대로 절터만 있고 앞쪽 바위에는 누룩바위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그 우측으로 |
작은 돌이 큰 바위를 받쳐둔 형상이 기암이 눈길을 끈다. |
절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뒤를 돌아보니 무성한 잡초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
일깨워주고 있다. |
△ 백련사지의 누룩바위? △ 백련사지의 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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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분 백련사지 0.07Km/ 보옥리 0.6Km/ 뽀래기재 1.0Km |
다시 왔던길을 내려와 먼저간 일행들을 따라 허겁지겁 내려오니 두줄기씩 뻗은 |
고사리과의 특이한 풀잎들이 눈길을 끌었고 조금뒤 우측편 뒷산에 미륵불처럼 |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 보옥리에 내려선다. |
이곳 보옥리도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두었고 |
이곳저곳에서 삶의 여유가 묻어나 보인다. |
아마 전복 양식을 하면서 수입이 있다보니 생긴 여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
△ 고사리과의 식물인 듯 보이는데 잎이 두갈래로 갈라져 특이한 식물이었다 - 마눌과 둘이서~ △ 마을 도착전 올려다 보이는 거대한 미륵바위? △ 집은 평범한 집이지만 조경을 한 것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 감탄하면서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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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분 보옥리 주차장 도착 산행 종료 |
보옥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집에가서 먹을 갈치 속젖 등을 사서 차에 오르고 당초 |
뽀족산을 등산하기로 했던 것을 접는다. |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망에 올라갈 마음을 모두 잊어 버린 듯하다. |
나오는 길에 망끝전망대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끝전망대도 그냥 지나친다. |
12:00시경 보길도 면소재지가 있는 청별항에서 중식 |
보옥리 면소재지가 있는 청별항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맛있는 점심으로 보길도의 |
여행을 마무리한다. |
13:06분 보길대교 |
나오는 길에 보길대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어보고~~ |
△ 보길대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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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7분 산양항 도착 |
산양항에 도착하여 경북 봉화에서 오신 분들과 어울려 몇 년간 사귄 친구처럼 |
즉석에서 벌어진 흥겨움에 빠져들고~ |
△ 땅끝마을까지 태워줄 장보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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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시 산양항 출항 |
배에 올라서도 봉화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시끌벅적하였고~ |
선상에서 계속적으로 피어나는 海霧(해무)를 바라보며 신선이 된 느낌을 만낀해 본다. |
처음에는 바다에서 뭉게뭉게 피어나 섬들을 공중으로 부양하는 듯 하다가 구름층이 |
위로 올라 섬의 아랫부분만 보여주니 마치 목성의 띠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얀 눈꽃이 |
섬을 덮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
사진으로 남겨 보았지만 다시 보니 그날의 장관은 보이질 않는다. |
아무리 발전된 사진기술이라 하더라도 실물만 하겠는가? |
△ 지나가는 배 뒷편으로 해무에 쌓인 섬이 신비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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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분 땅끝(갈두항)도착 |
잠시후 땅끝에 도착한다고 방송이 있었지만 해무로 인해 보이지 않으니 선착장이 |
코앞에 다가와서야 땅끝에 도착 했음을 알 수 있었다. |
배에서 내리자 보이는 암수바위가 있고 일출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조그마한 |
섬(바위)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더욱 멋진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
그리고 모노레일을 타지 않고 땅끝전망대를 향하여 나아간다. |
조금을 올라가면 모노레일 승차장이 있고 우리는 승강장 좌측편 산책로를 따라 가는데 |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
땅끝 유래 - 그곳 안내판 설명 |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
땅끝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
이루니, 역사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
할 수 있는 곳이다. |
△ 암,수 바위 뒤로 정자가 보인다. △ 섬사이의 틈새로 떠오르는 태양이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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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분 땅끝탑 |
선수(船首) 모양의 전망대가 있고 그 뒤로 땅끝탑이 자리잡고 있다. |
일전에 왔을때(아마 4~5년 전인 듯)는 없던 곳인데 새로 설치되었고 지금 보수 공사 |
중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각종 자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
그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빨리 버스로 내려오라고 국장에게 연락이 온다. |
우리도 앞서간 일행이 있어 따라 왔건만 앞서간 분들은 모노레일 주차장까지만 갔다가 |
내려간 모양으로 우리 일행만 남아 있는가 보다. |
땅끝탑에서 땅끝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는 길은 엄청 가파른 계단길로 비지땀을 |
흘리면서 오르다가 땅끝전망대 주차장으로 차를 올라오도록 이야기 하였으나 |
버스가 올라 올 수 없으니 우리한테 내려오라고 재촉을 한다. |
△ 땅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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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분 땅끝전망대 |
땅끝전망대는 해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비싼? 요금을 주고 올라가 볼 필요도 |
없고 곧바로 모노레일 탑승장으로 향한다. |
10분뒤 도착 내려가는 시간은 6분정도 소요 된단다. |
△ 땅끝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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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분 모노레일 탑승 |
얼마를 기다리니 조그마하면서 이쁜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모노레일이 두량이 |
도착하는데 한번에 40명이 탈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작아 보인다. |
모노레일에 오르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올라오느라 흘린땀은 깨끗이 씻어준다. |
모노레일의 특징중 하나가 하부 레일의 경사가 각기 달라도 향상 수평을 유지하여 |
승객들의 쏠림을 방지하여 주는 장치가 있는 것이 특이했다. |
경사도에 따라 차가 기울어질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으니~~ |
내려오는 길에 왠 철쭉이 피어 아랫쪽으로 내려다 보였고 원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
선로 주위의 경치만으로도 행복하다. |
△ 모노레일 차량의 모습 - 40명 정원이라는데 조금 작죠? △ 내려오면서 본 레일과 아랫쪽으로 철쭉이 한창 피어나 세월을 되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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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분 모노레일 주차장 |
주차장에 도착하고 내려오는 길에 때이른 코스모스(개량종인 듯 꽃잎이 상당히 |
컸다)가 만발하였다. 진짜 철?모르는 놈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
우리가 도착하자 이내 버스가 출발을 한다. |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당연히 땅끝전망대를 돌아보는 수순이 있었기에 |
함께하지 못함은 미안하지만 이해하여 주시리라 믿는다. |
16:10분 땅끝조각공원 |
땅끝마을에서 돌아 오는길에 위치한 땅끝조각공원에 들려서 잠시 구경을 한 뒤 울산을 |
향해 버스는 길을 재촉한다. |
오늘 길에 휴식도 갖고 진영휴게소에서 때늦은 저녁을 비빕밤 한그릇씩을 비벼서 |
배부르게 먹고나니 금방 울산에 도착한다. |
△ 조각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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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분경 울산 신복로타리 도착 |
12시가 넘어야 도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하였고 1박 2일간의 |
만남에 대한 헤어짐을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
짙은 해무(海霧)로 인해 조망이 좋지 않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당초 일기예보는 |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하였는데 장마비가 피해간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이었지 않나 |
생각된다. |
모든분들 뒷바라지 한다고 고생한 집행부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 |
또다른 1박 2일을 꿈꾸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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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토리의 산행방 원문보기 글쓴이: 도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