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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구 교수는 이날 학문적 연구 성과에 대한 국가폭력의 강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사회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부정하는 자기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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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대신문 |
최근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으로 필화사건에
휘말린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보수진영의 색깔공세에
정면 대응하고 나섰다.
강 교수는 14일 저녁 한양대 인문관 멀티미디어실에서
민주노동당 한양대 학생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국전쟁과 북핵위기' 주제 강연회에서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민족의 비극이 커졌다며 전쟁피해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흡수통일한 독일만 통일이고 베트남과
예멘은 아직도 분단되어 있다는 말이냐"며 "하나로 합치면
통일이지 내가 하면 통일이 되고 다른 사람이 하면
통일이 안 된다는 것은 억지일 뿐 논리와 현실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식 통일은 부정하고
자본주의식만이 통일이라는 것은 가치논쟁이지
사실논쟁이 될 수 없다는 것.
지난 7월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해 논쟁이 되고 있는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칼럼과 관련, 그는
"세계사적인 탈냉전과 민족사적인 통일시대를 맞아
1989년부터 냉전성역 허물기를 학문의 정체성으로 삼아
꾸준히 전개한 학문연구 결과물의 일부"라고 소개하고
"냉전성역이 무너짐으로써 그간 누리고 있던 권력의 토대가
침해를 받게된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상황이 됐다"고
개탄했다.
냉전성역에 대해 강 교수는 "과거 60년 동안 지속된
냉전분단체제로 생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과 금기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냉전성역에 갇혀
북의 것은 무조건 악마로 규정해 적대시하고 남이나 미국의 것은 천사로 설정하여 이에 대한 일체의
다른 평가나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는 냉전성역의 대부분은 냉전반공이데올로기라는 맹목적 믿음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실이나 역사적 사료, 논리적 추론, 보편적인 공약성(co-measurability) 등의 과학적 지식 기반이 없는
허구라는 점"이라며 "북도 아마 남이나 미국의 것을 냉전성역으로 규정한 예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따라서 그는 "상대를 악마로 보는 냉전성역을 허물지 않고는 진정한 남북 화해와 통일은 불가능하다"면서
"비록 상식 이하의 곤욕을 치른다 하더라도 지식인의 책무로서 냉전성역허물기라는
통일사회과학의 과제를 결코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석희열기자
강 교수는 이날 강연회에서도 6·25전쟁의 성격과 관련하여 자신의 평소 신념인 통일전쟁론을 역설했다.
6·25전쟁은 북이 주장하는 민족해방·조국해방·계급해방전쟁이나 남이 규정하고 있는 침략전쟁이 아닌
민족 내부에서 일어난 통일전쟁(내전)이라는 것.
그는 "남북 지도부가 전쟁을 처음 진행하면서 통일을 지향했지만 1951년 휴전회담 시작과 함께
6·25가 분단 고착화전쟁으로 굳어졌다"고 주장했다. 또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서
6·25를 별개의 주권국가 사이의 전면적 군사행위인 침략전쟁이 아닌 평화파괴로 규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강 교수는 "국제법적으로 내전인 집안싸움에 제3자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강하게 비판한 뒤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일본의 메이지유신, 베트남전쟁에서
보듯 내전에서는 침략의 개념이 성립될 수 없고 특정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6·25전쟁 사상자가 400만 명은 안 되고 1만 명은 괜찮은 것이냐'는 일부 진보진영의 비판에 대해
"그렇다면 몇 십만 명이 희생된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느냐"며 "6·25전쟁 이전에도
해마다 몇 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던 현실을 생각하여 전쟁과 관련한 도덕 회계장부를
만들어 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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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유] 강정구 교수 변명의 논리, 그 세가지 오류
조화유ㆍ재미저술가
입력 : 2005.08.16 14:02 38' / 수정 : 2005.08.16 21:36 55'
▲ 조화유 재미저술가(왼쪽), 강정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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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61세ㆍ동국대 사회학과)는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로
인해 야기된 최근의 논란과 시위 등에 대해 변명성 주장을 반복하면서
"최소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이렇게 반(反)이성적 대응을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주장에 대해 이성적 대응"을 한번 해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 현대사를 연구한 학자를 자부하고 있는 강교수는
38선의 생성과정과 6.25전쟁 발생 과정을 소상히 알고있는 것 같지 않다.
지면 관계로 상세한 설명을 할수 없는게 유감이지만, 필자가 아는 38선 생성 과정은 이렇다.
소련은 1945년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불과 1주일 전이었다.
히틀러 군대와 싸우느라고 기진맥진한 소련은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에 뛰어들기를 꺼려하고 있다가 이틀 전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지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참전한 것이다.
물론 소련은 그해 2월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양해하에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를 차지하고
중국의 부동항 다이렌과 뤼순을 장기간 사용하게 된것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참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8월9일 나가사키에 또 원폭이 투하되자 일본은 항복을 결심했고 만주에 있던 일본 관동군은
거의 저항을 포기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은 파죽지세로 만주와 한반도로 밀고
내려왔고
미국은 당황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한반도를 함께 해방시킨다는 막연한 약속이 있었지만
소련이 너무 급속도로 한반도에 진입하자 미국은 제동을 걸었다.
8월11일 새벽 미 국방부 4E 886호실에서 작전국 정책과 소속 딘 러스크 (후에 국무장관)
육군 대령과 찰스 본스틸 대령은 한반도에 적당한 선을 그어 소련의 급속한 남진을 저지하라는
상부 명령을 받고 지도를 꺼냈다.
두 대령은 처음엔 북위 40도선을 고려했으나 너무 북쪽이라
소련측이 거부할 것 같아 한반도 중심를 관통하는 38도선을 택했다.
수도 서울과 일본군의 미군포로 수용소가 38도선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38선은 적당하게 보였다.
미국은 즉각 소련에게 38도선까지만 내려오라고 권고했고 소련은 이를 수락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은 종전 직후 일반명령 1호로 38도선의 존재를 선포했다.
그런데 강교수는 문제가 된 그의 글에서 "맥아더는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였다!"고 말함으로써
마치 미국이 이유 없이 38선을 긋고 한반도를 분단시키기나 한 것처럼 흥분했다.
미국이 그때 38선을 긋지 않았으면 소련은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고 자기네 위성국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 소련은 이미 동유럽 각국을 위성국가로 만들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의 요충 한반도를 위성화하려는 욕심도 분명히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38선을 그어서 우리 나라를 분단시킨게 아니라 38선을 그었기 때문에
남한만은 적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러나 체제야 어떻든 무조건 한반도 통일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것 같은 강교수 입장에서는
그때 미국이 38선 그은 것을 매우 원통하게 생각할 것이며,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은 미국이 38선을 그어 한반도 전체의 적화를 막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으로 필자는 믿고 있다.
둘째, 강교수는 6.25전쟁을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벌인 내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 현대사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대학교수로서는 좀 무식한 소리다. 왜냐하면
6.25는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모택동) 3자가 합의해서 시작한 국제전이었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소련의 비밀외교문서가 많이 공개되었다.
이 문서들을 직접 보고온 미국의 캐스린 웨더스비 교수에 의하면, 김일성은 6.25 전쟁
1년 3개월 전부터 남침을 하락해 달라고 소련 수상 스탈린에게 졸랐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의 참전과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대를 우려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다.
그래도 김일성은 미국 참전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일단 남침을 시작하면 몇 주 내로 남반부를
완전 점령하겠다고 장담하면서 계속 남침 허락을 졸랐다.
마지못해 스탈린은 1950년 초 남침을 승인하고 무기와 군사고문단을 북한으로 보냈다.
6월25일 새벽에 38선을 넘어온 약 9만의 북한군 앞에는 130여대의 T-34형 소련제 탱크가
달렸고,
그날 낮부터는 소련제 Yak 전투기들도 하늘을 날았다.
그때 대한민국 군대는 단 한 대의 탱크도 없었고 비행기는 소형 정찰기
10대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이런데도 강교수는 6.25 전쟁이 내전이고 집안 싸움이라고 한다. 천만에다.
이것은 한반도 전체를 자기 독재체제 하에 지배하려는 김일성의 야욕과 한반도를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들려는 스탈린의 야심이 일으킨 국제전이었다.
셋째, 강교수는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서 "1만명 정도의 희생으로 끝날 전쟁이 확대되어
4백만명이 죽었다. 그러므로 맥아더와 미국은 우리의 은인이 아니라 원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교수에게 묻는다. 김일성이 외세를 등에 업고 섣불리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1만명도 죽지 않았을 건 아닌가?
또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으면 최소한 2백만명은 덜 죽고 한반도는
민주체제로 통일되었을 것 아닌가?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반도는 1950년에 적화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강교수는 공산주의도 좋으니 그때 통일이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김일성의 통일 실패가 원통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99%는 공산주의 독재하에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강교수가 떳떳하게 "나는 공산주의자다"라고 선언하면 그의 발언을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겠지만, 그가 공산주의자임을 부인하면서 계속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강교수의 "이성적인 대응"을 기대한다.
■필자 소개
단편 ‘다대포에서 생긴 일’한국비평문학회 선정 '2003년의 문제소설'로 MBC TV가 드라마로 만듦).
중편소설 ‘전쟁과 사랑’ 등 소설 다수 발표. 생활영어 교재 ‘이것이 미국영어다’ 전10권은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번역 출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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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6·25는 통일전쟁, 미국은 생명 앗아간 원수"
입력 : 2005.07.27 18:09 41' / 수정 : 2005.07.27 21:12 37'
지난 2001년 ‘만경대 방명록 사건’으로 논란을 빚었던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인터넷 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6·25전쟁은 후삼국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모두 삼한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을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집안싸움인 이 통일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이내 끝났을 테고, 물론 우리가 실제 겪었던 그런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약 400만명 대부분에게는 미국이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일 것”이라며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이내 끝났을 것이고 사상자는 아무리 많아야 남북한 합쳐 1만명 미만일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약 3백99만명이 더 많이 죽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이어 “원수를 은인으로 보는 이런 역사왜곡, 곧 대미 보은론은 이제 탈냉전 통일시대를
맞아 완전히 폐기돼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동상 철거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맥아더에 대해선 “남의 집안싸움인 통일내전 사흘만인 27일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미국정부에 개입을 요구하고, 곧바로 소사 등에 폭격을 감행한
전쟁광이었다”며 “맥아더 동상도 함께 역사 속으로 던져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맥아더는 완전히 식민지총독 부임과 같은 서슬 퍼런 모습으로 점령군의 면모를
한껏 발휘했다”며
“이런 맥아더와 북쪽을 점령한 소련군 사령관 치스챠코프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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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법처리되면 UN에 대한민국 기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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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미디어오늘 인터뷰서 ´6.25 불법침략전쟁 아니다´ 자신비난 진중권엔"미친게 틀림없다"좌충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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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북한 지도부의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동국대 교수 강정구씨는 4일 “내가 사법처리 된다면 나는 UN총회에 대한민국 정부를 기소하겠다”는 황당한 엄포를 놨다.
강씨는 이날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UN이 정한 불법침략전쟁은 국가끼리의 전쟁으로 한정한다. 하지만 6·25는 분명 사변이나 동란 등의 표현으로만 봐도 내란으로 규정돼 왔다”며 이 같이 말했다. ‘6·25전쟁은 북한의 통일전쟁’이라는 자신의 주장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1950년 10월 7일 발행된 UN총회보 376호도 이를 전하고 있다”며 “자료에 바탕해서 사실 논쟁을 이어가야 하는데 언론에서 이념 논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언론도 걸고 넘어갔다.
1946년 미군정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77%의 사람들이 공산·사회주의를 원했다고 말한 것과 관련, 강씨는 “동아일보는 당시 여론조사에서 나온 ‘77%의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원했다’는 말이 새로 나온 이야기인 것처럼 보도해 나에게 색깔을 씌우고 있다”며 “학자들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자료인데 내가 마치 엄청난 자료로 폭로를 한 것 같이 기사가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창피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지난 98년 쓴 논문을 통해서도 ‘앞으로 세상은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며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글들을 썼는지 정확히 알고 나를 취재하는 기자들을 별로 본 적이 없다”고 기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는 “우리나라의 언론인 등 지식인들은 항상 도망갈 곳을 마련하고 글을 쓴다. 이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보신술"이라고 지식인을 싸잡아 공격하면서 "나는 20년 이상 북한·통일·냉전을 주제로 연구했고 지금은 그 내용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내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자신을 “위험한 사람, 조갑제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한 진보논객 진중권씨에 대해 “미친 것이 틀림없다”고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당시(SBS라디오프로그램 ‘진중권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 작가와는 맥아더 동상과 6자회담, 제네바 합의문에 대해 골고루 이야기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진씨가 한국전쟁과 김일성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기 시작해 전혀 다른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다”며 “사회자로서 자격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폄훼했다.
그는 이어 “내가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말한 데 대해 ‘지금도 통일을 위해서는 전쟁을 하자는 소리냐’고 반박하는 것을 보면 미친 것이 틀림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또한 보수·진보진영 모두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보수진영이 나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진보진영의 경우 그들은 ‘진보적 반민족주의자’인 반면 나는 ‘진보적 민족주의자’라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좌충우돌´했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생각하는 게 달라도 각각 제대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며 “이번 서울대 토론회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자료는 이미 예전부터 사용된 자료로 이를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색깔론 포장을 한 기사였기에 더욱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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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 6일 전남대 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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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북한이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말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6일 전남대에서 `국가보안법과 학문의 자유'를 주제로 강연한다.
5일 전남대에 따르면 대학 인문학연구원이 6일과 11일, 18일 오후 7시 전남대 인문대학 교수회의실에서 인문학이야기 강좌를 연다.
이번 인문학이야기의 주제는 `국가보안법과 학문의 자유'로 강 교수를 비롯해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동국대 홍윤기 교수가 연사로 나선다.
특히 지난 7월 인터넷 매체 칼럼에서 "6ㆍ25 전쟁은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이 삼한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을 했듯이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
"이라고 주장해 보수단체에 의해 고발돼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강 교수의 강연 내용이 주목된다.
`냉전 성역 허물기야말로 나의 학문적 좌표이자 정체성'이라고 밝혀온 강 교수는 이날 `국가보안법과 냉전 성역 허물기'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좌파 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국가보안법, 지식인의 세계를 겨눈 올가미', 진보 학자인 홍윤기 교수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국가철학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각각 강연한다.
전남대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꿈꿔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진지하게 성찰해 봄직한 법"이라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이슈 메이커들을 연사로 초청한 만큼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남현호 기자 hyunho@yna.co.kr">hyunho@yna.co.kr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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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조선,중앙, 한겨레, 세계일보, 오마이뉴스, 재미기고가 조하유씨등의 글을
올렸습니다
PS)
나라의 기강이 정말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아예 이땅에 공산주의를 합법적으로
인정해주어야 될 것 같은 사회 분위기입니다
그토록 저주하는 미국에서 본인 , 부인, 아들둘 모두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대한민국 국군에서
적응못할바에는 카츄사에 아들을 보내는 것이 낮다고 하는 이분들의 사고방식 나와 내자식은
미국의 혜택을 받으면서,,,,,,, 언론을 통해서는 반미의 극치의 보여주는 이분?
남들 다 대한민국 국군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데 강정구 아들만 대한민국 국군에 적응 못해서
카츄사로 보냅니까 묻고 싶네요
대한민국을 UN에 제소 하겠다,
6,25 남침은 통일전쟁이었다,
진보진영은 반민족주의자다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체제로 통일 되었어야된다 (공산주의)등등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미국의 노예로 표현하는등
이런학자가 아직도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대한민국 정체성에 우려를 표하며
일부신문은 보안법 위반 여부로 경찰조사를 받는 강정구 교수가 앞으로 있을 특정대학의
강의 날짜, 강의주제와내용, 참여교수 까지 알려주면서 광고하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최소한 조사가 끝날때까지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언론이 자중해야되는 것 아닌지?
다시 p.s
다양한 이론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정말 잘사는 나라이긴 하지만 아직 정체성확립에 시기상조인 때라면 위험한 논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 다 같이 그 분야에서 많이 연구 한 사람들인데 훨씬 못미치는 나로서 왈가왈부 하긴 좀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그 당시에 얽혀있던 비하인드스토리가 나타나겠지요..좌편우편에 기울기보다 서로의 주장들을 충분히 들어보고 세계사적과 역사적 분별시각으로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수의 민생들이 몇명의 리더에게 항상 이용당하고 끌려다녔으므로. 통치라는 미명하에. 이제는 서서히 다수의 민생들이 무명을 벗고 흔들림없이 냉철히 판단하여야만 좌,우, 정치, 언론들이 우리 민생의 침묵이 암묵적 동조가 아님을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만세!
우리국민 만세!
서해대 케어사회복지과 만세! | | | |
첫댓글 새가 날 수 있는 이유는 양 날개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역사적 상황을 보면 참으로 힘겨운 부분이 많습니다. 좌우 극단적 대립에 이데올로기로 인해 생명에 대한 귀중함까지 버려야 했습니다. 본질적인 목적을 두고 좌우의 대립이 아닌 소통이 절실한 시점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