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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J. 바르비에의 <앙드레 세니에> 및
폴 디모프의 <앙드레 세니에의 생애와 작품>
대본 루이지 일리카
초연 189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배경 프랑스 혁명 시절 파리(2, 3, 4막)와 그 근교(1막)
<1996 뉴욕 메트 / 123분 / 한글자막>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 합창단 & 발레단 연주 / 제임스 레바인 지휘 / 니콜라스 요엘 연출
안드레아 세니에.....시인.........................................................루치아노 파바로티(테너)
마달레나 쿠와니.....쿠와니 백작의 딸........................................마리아 굴레기나(소프라노)
카를로 제라르........쿠와니 가의 하인. 뒤에 혁명정부 간부가 됨.....후안 폰스(바리톤)
쿠와니 백작부인.....마달레나의 어머니......................................유디스 크리스틴(메조소프라노)
베르시..................마달레나의 흑인 하녀..................................웬디 화이트(메조소프라노)
밀정.....................제라르의 부하............................................(테너)
루시에..................셰니에의 친구............................................하이징 푸(베이스)
슈미트..................생 라자르 감옥의 간수.................................리차드 버논(베이스)
마델롱..................눈 먼 노파.................................................스테파니 블리드(베조소프라노)
마티유..................제라르의 부하............................................폴 플리슈카(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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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내지 해설 / Richard S. Ginell / 박지은 번역>
메트로폴리탄에서 만나는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는 후대에 단 하나의 작품으로만 기억되는 여느 베리스모(농어민, 노동자들의 삶을 소재로 적나라한 현실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는 진실주의 또는 극사실주의) 오페라 작곡가와 달리 <안드레아 셰니에>와 <페도라>란 두 편으로 이름을 남겼으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다시 말해 조르다노의 대표작은 여전히 <안드레아 셰니에>로 꼽히며, 레온카발로, 마스카니, 칠레아 같이 젊은 시절 단 한 편의 베리스모 작품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이후 반 세기 여생을 히트작을 따라잡고자 바쳤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전부 무궁무진한 레퍼토리를 풀어내고도 각기 긴 수명의 히트작을 배출한 푸치니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
조르다노는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소망을 거스르며 음악을 공부했다. 1888년 이태리의 유명 출판사 에도아르도 손초뇨(Sonzogno)가 연 단막 오페라 작곡 공모에 참여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비록 우승은 마스카니의 출세작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돌아갔으나 지금까지 단 한 차례 출판도 상연된 적도 없는 조르다노의 출품작 <마리나>가 호평을 받으며 손초뇨로부터 오페라 위촉을 받는다. 하지만 돈벌이로 썼던 작품은 짧은 수명에 그치고, 더 부진했던 <말라 비타>와 차기작 <레지나 디아즈> 이후, 손초뇨는 그를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고 공공연히 비난하며 가차없이 외면한다. 친구이자 작곡가 알베르토 프랑게티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한 번 더 기회를 얻는다. 뿐만 아니라 프랑게티는 루이지 일리카가 실존 인물 안드레아 셰니에를 소재로 본인을 염두에 두고 쓴 대본을 조르다노에게 건네준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1794년 공포정치가 끝나기 불과 48시간 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사후에야 인정을 받기 시작한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이다(프랑게티는 비단 이번만 아니라 후에 나올 <토스카>를 포함해, 대성공을 거둘 일리카의 대본을 놓친 셈이다).
비록 일리카가 18세기의 실존 인물 - 혁명 재판소 의장이었던 르네 뒤마, 검사 앙투안 푸키에-탱빌, 시인 장-앙투안 루세 - 를 비롯해 실제 인명과 시대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배치했지만 셰니에의 실제 삶을 허무맹랑하게 왜곡하진 않았다. 한가지 확실히, 러브 스토리는 허구이다. 셰니에와 관련한 마달레나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셰니에의 대표작 <갇혀있는 젊은이>는 생 라자르 감옥에 새로 수감된 미모의 백작부인 플뢰리의 관심을 끌고자 쓴 것이 맞다. 쿠아니 가문 출신의 이 여인은 마달레나란 인물에 영감을 주었으리라 추측된다. 하지만 이 시는 백작부인에게 전달된 바 없고, 부인 역시 안드레아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을뿐더러 자청해서 함께 단두대에 오르지도 않았다. 제라르야말로 완전히 가상의 인물로, 흔히 베리스모 오페라의 동력으로 유효하게 작용하는 삼각관계의 한 축으로 구상되었다. 4막의 배경은 생 라자르 감옥이라 짐작되지만 실제 셰니에는 생의 마지막 밤을 그 곳에서 보내지 않았고, 사형수의 처형이 신속히 진행되던 콩시에르쥬리로 이송되었다. 더욱이 셰니에가 마지막 밤에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역사적 허구에도 불구하고 일리카는 조르다노의 격려에 힘입어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란 인물을 잘 형상화하였다. 주인공이 부르는 두개의 유명 아리아 중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보며(Un dizzurro spazio)"는 셰니에의 실존 작품 "정의를 향한 찬가(Hymme a la justice)"를 토대로 삼았다. 이 시는 사랑에 대한 송가로 시작해 빈민층에 대한 정부와 성직자의 냉대를 꼬집는다. 셰니에가 처형을 하루 앞두고 완성한 "마지막 빛 줄기(Comme un dernier rayon)"는 또 다른 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Come un bel di maggio)"의 근간을 이룬다. 여기서 일리카는 정치적 음색을 낮추되 임박해오는 죽음에 대해 반추하고 글이 지닌 힘을 신뢰한다는 작품의 핵심을 살렸다. 후회의 기색이란 추호도 없는 이상주의자이며 감성적 낭만주의자 셰니에는 비록 줄거리는 허구일지언정 오페라 내내 빛을 발한다. 제라르마저 당대 노동계급의 분노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효력을 발휘한다.
신진 작곡가 조르다노는 꼬박 2년이란 시간을 들여, 1896년 1월 27일 작품을 완성했고, 라 스칼라가 작품을 상연하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손초뇨 내부에서 반발에 부딪히자 다시 한번 베리스모 작곡가의 인맥을 동원해 마스카니에게 중재를 부탁한다. 마스카니는 전갈을 받자마자 토스카나 전차에서 황급히 내렸는데, 실로 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 후 전차가 충돌하며 탑승자 일부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한편 주역을 맡은 테너가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작곡가가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주세페 보르갈리라는, 설령 잘못된다 해도 잃을 것도 없었던 신진가수가 대신 섭외된다. 게다가 대중은 그간 일련의 실패로, 손초뇨가 연관된 그 어떤 작품에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이 1896년 3월 28일 초연이 열리자마자 첫 장에서부터 <안드레아 셰니에>는 대성공을 거둔다. 발표 시점도 그야말로 시기 적절했다. 바야흐로 베리스모는 이태리 오페라계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조르다노는 교묘히 살짝 덧입힌 지역색, 격한 감정이 흘러 넘치는 주인공의 사랑 노래, 음악극 형식의 고수 등 베리스모의 익숙한 전술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흥미로운 역사적 소재를 활용해 조르다노가 펼쳐 보인, 소위 베리스모 오페라 작곡가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뛰어났던 장중함과 균형을 들 수 있다. 조르다노는 뻔한 지점까지 몰아가기 위해 과한 감수성으로 치장하지 않을 만큼 청중을 존중했다. <셰니에>는 베리스모 오페라가 발전하고 있다는 표식이자 단순히 암울한 지방 이야기 대신 베르디의 전통을 이어 사상과 정치를 논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안드레아 셰니에> 소식은 세계 초연 뒤 약 7개월 후에야 뉴욕에 전해진다. 하지만 1921년 3월 1일에 이르러서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필라델피아 투어 중 첫 선을 보였고, 이후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며 1932년까지 매 시즌 무대에 올랐다. 베냐미노 질리는 무려 12년 동안 메트로폴리탄에서 주역을 맡았고, 미성이 돋보이는 1922년 녹음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보며",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 모두 이 때에 남겼다. 아쉽게도 뉴욕 관객은 단 한번도 카루소의 셰니에를 듣지 못했다. 본래 1921년 메트로폴리탄 초연에 서기로 예정되었으나, 병환(안타깝게도 그의 마지막)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뉴욕 초연은 1921년 3월 7일 메트에서 셰니에 역에 질리, 마달레나에 클라우디아 무치오, 제라르에 주세페 다니세, 그리고 로베르토 모란쪼니 지휘로 열렸다. 마달레나 역은 황금기를 풍미했던 로자 폰셀, 엘리자베스 레트버그, 플로렌스 이스턴으로 이어졌고, 툴리오 세라핀이 종종 지휘를 맡았다.
1932년 대공황 시절 임금 삭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질리가 메트를 떠나자 <셰니에>는 길고 긴 휴지기에 접어들었다가, 1954년 마리오 델 모나코, 진카 밀라노프, 렌드 워렌이 대표하는 새로운 보이스의 세대를 맞이해 다이아몬드 호스슈에 다시 위용을 드러낸다. 1977년까지 때때로 디노 야노플로스 연출로 상연되었고, 당시 셰니에 역에 카를로 베르곤지, 프랑코 코렐리, 플라시도 도밍고가 청중의 사랑을 받았다. 레나타 테발디, 마르티나 아로요, 에일린 퍼렐이 마달레나 역을 거쳤고, 로버트 메릴, 에토레 바스티아니니가 제라르로 분했다. 그리고 파우스토 클레바, 람베르토 가르델리, 제임스 레바인 등이 지휘단에 올랐다. 특히 레바인은 1996년 4월, 루치아노 파바로티 주역, 아프릴 미요, 후안 폰즈가 상대역을 맡은 니콜라스 요엘 연출작에서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는다. 본 DVD는 이어지는 시즌 파바로티, 폰즈가 마달레나 역 마리아 굴레기나와 함께 호흡을 맞춘 공연을 담고 있다.
조르다노에겐 <안드레아 셰니에>를 초연했던 28세가 인생의 절정기였다. 차기작 <페도라>는 발표 당시 카루소를 전면에 내세웠고, 현재까지 꾸준히 관심이 이어져오긴 하나 그후 조르다노는 단 하나의 히트작으로만 기억되는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칠레아 등 일련의 베리스모 오페라 작곡가 대열에 합류하며 급속히 대중에게 잊혀졌다. 마지막으로 1929년 <왕>을 발표하지만 이내 단념했고, 말년에 잠시 라스푸틴을 소재로 한 오페라를 구상하기도 했다.
마스카니, 칠레아와 마찬가지로 조르다노는 1900년대 중반까지 생존했으나 마스카니가 세상을 뜬 지 3년 후, 칠레아가 유명을 달리하기 2년 앞서 눈을 감으며 12음렬이 대두하던 시대, 옛 시절의 유물로 묻혀진다. 하지만 베리스모를 향한 청중의 사랑은 오늘날까지 오페라 극장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 <안드레아 셰니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과 스타 가수가 맘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특징으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 줄거리 === <내지 해설 / Avril Bardoni / 박지은 번역)
1막
1789년 한 여름 오후, 쿠아니 가문 성의 하인들이 연회 준비에 한창 분주하다. 하인 카를로 제라르가 동료와 함께 온실 정원에 놓일 푸른색 벨벳 소파를 옮기는 중이다. 홀로 남은 제라르가 흐트러진 소파의 술과 쿠션을 정돈하고 귀부인과 정인의 밀담을 떠올리며 귀족층의 사치에 대해 개탄한다. 무거운 짐을 진 제라르의 노부가 가구와 씨름하고 있다. 60년 간 쿠아니 가의 정원사로 일해온 아버지의 고난이 아들의 슬픔을 더하고, 사회 제도를 향한 증오와 원망에 불을 붙인다. 그는 불평등한 구제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신념을 되새긴다.
하지만 백작부인의 딸 마달레나 디 쿠아니가 어머니와 물라토 시녀 베르지와 나타나고, 제라르가 모든 귀족을 혐오하는 것은 아님이 드러난다. 백작부인은 준비 상태를 점검하고, 마달레나가 꿈꾸듯 황혼의 신비함을 노래할 때 제라르는 아름다운 그녀를 향한 연모를 남몰래 토로한다. 딸에게 옷을 잘 차려 입으라고 채근하는 동시에 백작부인은 계속해서 방을 살핀다. 화려한 드레스가 얼마나 불편한지 투덜대며 마달레나는 눈부신 하얀 드레스와 머리에 장미 장식을 갖추기 위해 물러간다.
손님이 하나 둘 도착하고 백작부인은 따뜻한 인사로 환대한다. 중견 소설가 플레빌, 음악가 피오리넬리, 플레빌이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이라고 소개한 안드레아 셰니에, 세 사람이 함께 등장한다. 파리에서 신부가 도착하자 대화의 주제는 정치로 옮겨가지만, 전해지는 소식은 암울함 뿐이다. 여흥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논의는 더 이상 진전이 없고 모두의 관심은 양치기 소년과 소녀가 노래하는 연출극에 쏠려있다. 백작부인이 셰니에에게 전도유망한 시인으로서 시 한 수 읊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거절하자 마달레나와 친구들은 장난스레 내기를 건다. - 마달레나가 시를 지어달라 못살게 굴 참이다. 역시 처음엔 실패하는 듯 하나, 셰니에는 마달레나를 거절하며 "사랑"이란 단어를 내뱉고 만다. 이 단어야말로 소위 반(反)낭만적이라 할 젊은 아가씨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이에 고무된 셰니에는 즉흥곡,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보며(Un di all'azzurro spazio)"를 부르며 사랑, 특히 조국을 향한 충정을 변론하고 빈민층을 향한 귀족의 무관심을 꼬집는다. 손님 모두가 화를 내지만 하인 제라르는 예외다. 오늘 밤 가난한 농부들을 집결해 시위를 계획했던 그는 바로 막 정체를 드러내려던 참이었다. 무리들이 당도하자 성난 백작부인은 즉시 제라르를 해고하지만 그는 독립과 지위에 자유에 관한 신조를 펼치고 하인 제복을 던져버린 채 앞으로 절대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 선언한다. 두려움과 당혹감에 찬 아버지를 데리고 제라르가 사라지자, 백작부인은 소파에 쓰러지고 만다. 옷을 느슨하게 풀고 약으로 정신을 차린 부인은 회중에게 사과하고 춤을 다시 추라 말한다.
2막
1794년 6월 파리, 푀양회 테라스에 위치한 카페 오토에서 셰니에가 홀로 친구 루세를 기다린다. 멀지않은 곳에 암살당한 마라를 기리는 "제단"을 "상퀼로트(급진적 혁명가, 과격하고 주로 하층민으로 구성됨)" 당원인 마티유와 친구 호라티우스 코클레스가 살피고 있다. "메르베이웨즈(과하게 멋부린 여성을 지칭)" 차림의 베르지가 서성거리는 무리에 섞여 셰니에에게 몰래 말을 건넬 기회를 엿보고 있다. 베르지는 그녀를 주시하는 말쑥한 차림의 "맵시꾼"이 실은 밀정임을 파악하곤 눈초리를 피하고자 혁명이 가져온 삶에 환호하며 지나가는 사형수 호송차를 관중과 함께 무심한 듯 따른다.
루세가 나타나 셰니에의 목숨이 위험하니 어렵사리 마련한 여권을 가지고 어서 피신하라 재촉한다. 하지만 셰니에는 지금 안위를 위해 떠나면 이제 막 시작을 예감한 운명을 거스른단 생각에 주저한다. 이어서 익명의 여인에게서 편지를 받고 있다 말한다. 루세는 냉소적으로 편지는 함정일 수 있으며 아마도 별 생각 없는 "메르베이웨즈"가 썼을 것이라 조소한다. 셰니에는 순간 상심하지만 친구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다.
두 친구는 서서 지나가는 대의원을 지켜본다. 제라르도 그 중 일원이다. 맵시꾼이 돌아와 그에게 신호를 건네는 모습에서 제라르가 한 여인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고용한 밀정임을 알 수 있다. 밀정은 여인에 대한 보다 상세한 묘사를 요구한다. 기회를 틈 탄 베르지가 재빨리 루세에게 셰니에를 기다리게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밀정이 나타나 그녀를 채가며 방해하는가 하면, 따돌리려 함에도 몰래 쫓아와 전갈을 엿듣는다. 즉, 한 여인이 셰니에를 만나고 싶어하니 마라 "제단" 앞에서 기다리라는 내용이다. 정보를 수집한 밀정이 사라지고, 베르지도 떠난다. 셰니에는 루세의 충고에 따라 무기를 구하기 위해 서두른다.
어둠이 깔리자 순찰이 돌며 가로등이 켜진다. 밀정이 돌아와 다시 몸을 숨긴다. 한 여인이 페로네 다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바로 간단한 하녀 복장의 마달레나 디 쿠아니다. 셰니에도 들어서지만 처음엔 그녀인지도 몰라보고 갑작스런 만남에 당황한다. 이에 마달레나는 옛날 어머니 성에서 그가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가로등 아래로 나와 망토를 벗는다. 셰니에와 숨어 있던 밀정 둘 다 그녀의 정체를 알아챈다. 밀정은 슬그머니 제라르에게 보고하기 위해 빠져나간다. 마달레나는 이제 세상에 홀로 남았으며 의지할 곳이라곤 셰니에 뿐이라며 보호를 요청한다. 사실 첫만남부터 강하게 끌렸던 아름다운 여인의 간청을 듣자 셰니에는 곧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이들은 앞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굳건히 위험에 맞서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곧 오랫동안 마달레나를 향한 연모로 애태워 온 제라르와 밀정이 나타나 감격에 겨운 두 사람을 방해한다. 하지만 친구의 안위를 늘 주시하던 충실한 벗 루세가 마달레나를 재빨리 피신시키고 셰니에는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제라르와 겨룬다. 이 와중에 제라르는 부상을 입고 셰니에는 달아난다. 소란을 듣고 모인 추종자들에게 제라르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한다.
3막
(이 날 오후에 열릴 예정인) 혁명 재판소의 넓은 바닥에 앉은 민중에게 마티유가 현재 유럽 열강을 상대로 전쟁 중인 조국 프랑스를 위해 헌신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별반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제라르가 단상에 올라 타고난 웅변 실력으로 성금과 현물 기부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군대에 자원할 것을 설득한다. 그의 할머니, 마들론이 이에 화답한다. 회중이 떠나고 방은 재판을 준비한다.
제라르의 밀정이 셰니에가 체포되었다고 보고하며, 이로서 마달레나를 꾀어낼 수 있다 말한다. 그는 셰니에를 하루빨리 고소하라고 권하지만, 제라르는 양심의 가책에 망설인다. 이상과 이기적 욕망이 얽힌 지극히 인간적 고뇌에 휩싸여 셰니에를 향한 거짓 고소가 비열하다 느끼지만, 제라르는 결국 본능을 따르기로 한다.
셰니에의 운명을 결정지을 기소장에 서명을 마치자마자 마달레나가 들어온다. 제라르의 마음은 알지 못한 채 예전 하인이었던 그에게 연인의 구명을 호소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마음이 상한 제라르는 하인인 시절부터 오랜 세월 숨겨왔던 그녀를 향한 어찌할 수 없는 사랑과 그녀를 찾기 위해 책략을 썼음을 인정한다. 마달레나는 연인 셰니에를 구하기 위해 제라르에게 자신을 내어주기로 한다. 이어서 성이 불타고 어머니가 자신을 구하려다 죽음을 당한 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비록 세상에 홀로 남겨졌지만, 하녀 베르지의 헌신과 지금은 셰니에의 사랑으로 간신히 삶을 지탱할 힘을 얻었노라 밝힌다. 제라르는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완연히 다른 순수한 사랑에 깊이 감명받는다. 이상을 향한 숭고한 열정을 새로이 다진 제라르는 방금 전까지 소망했던 여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셰니에의 목숨을 살려야겠다 결심한다. 이미 재판 받을 수감자 명단이 넘어간 상태로 셰니에의 이름도 올라가 있지만, 본인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를 구하겠다 다짐한다.
재판소는 자리를 잡으려는 회중으로 혼잡하다. 이어서 판사와 배심원이 들어온다. 검사 푸키에-탱빌과 의장인 뒤마가 자리를 잡는다. 셰니에를 비롯한 피고인이 들어오고 재판이 시작된다. 차례에 이르자 셰니에는 자신이 군인이자 문인이라 밝히며, 언제나 명예와 애국심을 우선시했다며 성심껏 변론을 펼친다("그렇소, 나는 군인이었소 Si, fui soldato"). 푸키에-탱빌이 증인을 요청하자 제라르가 나서 자기가 제출한 고소장이 잘못되었다 변호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반감을 키울 뿐이다. (잠시) 배심원이 자리를 비우자 제라르는 셰니에와 눈짓을 교환하며 마달레나를 가리킨다. 셰니에는 위안을 얻지만, 판결은 절망적이다. 셰니에는 사형을 언도받고 끌려나가고 마달레나는 절망적 탄식을 외치며 쓰러진다.
4막
생 라자르 감옥의 풍경이다. 처형 전날 셰니에는 영감에 사로잡혀 유명한 풍자시를 써내려 간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감옥을 찾은 오랜 벗 루세에게 들려주는 유명한 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Come un bel di di maggio)"이다. 바로 생에 고하는 시인의 작별인사라 하겠다. 낭송을 마치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마달레나와 제라르가 들어온다. 보석으로 간수를 매수해 내일 처형당할 젊은 여인 대신에 마달레나가 대신 형장으로 가겠다 청한다. 제라르는 슬피 울며 로베스피에르에게 다시 한번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떠난다. 마달레나와 셰니에가 재회한다. 최후의 날 동이 터오자, 연인은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영원을 기다리며 벅차게 이중창을 노래한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진경 글>
안드레아 셰니에
움베르토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는 베리스모 작풍을 유지하면서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의 전통을 잇고 있어 작품 곳곳에서 아름답고 뛰어난 아리아를 접할 수 있는 오페라이다. 프랑스 혁명에 연루된 앙드레 셰니에에 대한 이야기로 전체적으로 극적이고 긴박한 분위기가 마지막까지 이어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매력 있는 작품이다.
리얼리티를 위한 시인의 시 2편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시인 앙드레 셰니에(André Chénier)의 짧은 생애를 담아내고 있다. 앙드레 셰니에는 외교관이자 시인으로 프랑스 대혁명 중에 단두대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실존 인물인 셰니에는 혁명가로서 유명하지만, 프랑스 문학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기억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애에는 단 2편의 시만이 출판되었지만, 그는 프랑스 문학계에서 운문을 끝까지 이어나간 시인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오페라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셰니에의 시 2편을 직접적으로 오페라에 썼다. 이 시는 모두 유명한 아리아로 알려졌는데, 하나는 ‘즉흥시’로 알려진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Un di all'azzurro spazio)와 다른 하나는 〈단장시〉(斷腸詩)이다. 즉흥시는 셰니에가 실제로 교류가 있었던 코와니 가문의 저택에서 시를 읊는 장면에서 사용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은 〈단장시〉이다. 실제로 셰니에가 생 라자르 감옥에서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로 호송되기 몇 시간 전에 썼던 것이다. 오페라에서도 주인공 안드레아 세니에가(테너) 생 라자르 감옥에서 〈단장시〉를 노래한다. 이렇게 실제 셰니에의 시를 오페라의 대본에 녹여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살렸을 뿐만 아니라, 코와니가, 카페 오토와 생 라자르 감옥 등의 실제 배경과 장소들, 로베스피에르 등의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며 역사성을 뒷받침하면서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한 혁명가의 불멸의 사랑
코와니 백작의 성은 파티 준비로 한창이다. 하인 카를로 제라르는 준비를 하지 않고 귀족들의 파티에 대해 비판한다. 코와니의 딸 마달레나가 들어오자, 그녀를 흠모해온 제라르가 감탄한다. 손님들이 도착하고, 이들 중 파리에서 온 수도승이 왕궁의 소식을 전한다. 두려운 가운데 사람들은 전원극을 감상한다. 전원극이 끝나자 백작부인이 셰니에에게 시를 요청하지만 그는 사양한다. 마달레나는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셰니에에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올거라고 내기를 한다. 마달레나 셰니에에게 시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에 셰니에가 시는 사랑과 비슷한 것이라고 답하자 마달레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웃는다. 자신이 놀림감이 된 것에 화가 난 셰니에는 즉석에서 〈즉흥시〉를 노래한다. 셰니에의 시에 제라르가 감동을 받는다. 셰니에의 시에 분위기가 굳어지자 백작부인은 춤을 권한다. 이때 농민들이 살롱에 쳐들어온다. 제라르가 귀족들 앞에서 더 이상 귀족들의 밑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하며 나간다.
혁명이 성공한 후, 카페 오토의 테라스에 셰니에가 앉아 있다. 셰니에는 위험인물로 수배중이다. 그의 친구 루시에가 통행증을 가명으로 만들어 셰니에에게 건네지만, 그는 ‘희망’이라는 여성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제라르는 밀정에게 자신이 잊지 못하는 여성 마달레나의 인상착의를 알려준다. 마달레나의 하녀 베르시가 셰니에에게 오늘 저녁 ‘희망’이라는 여성이 찾아올 것이라고 알려주는데, 그것을 밀정이 듣는다. 거리가 어두워지고 셰니에에게 마달레나가 나타난다. 셰니에는 과거 즉흥시를 불러주었던 마달레나는 알아본다. 마달레나는 셰니에에게 보호를 청하고 셰니에는 이를 받아들인다. 이때 마달레나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제라르가 나타나 그녀를 데려가려고 한다.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이지만, 상대가 셰니에임을 알게 된 제라르가 통행증을 주면서 마달레나를 부탁한다.
혁명재판소의 재판장에서 제라르는 정열을 다해 웅변하며 사람들을 호소한다. 제라르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놓는다. 혁명 행렬이 지나가자 사람들을 이를 구경한다. 제라르는 셰니에를 체포한다면 마달레나를 유인할 수 있다는 계략을 밀정에게 전한다. 이때 신문팔이 소년이 셰니에의 체포를 알린다. 마달레나를 이 기회에 차지하라는 밀정의 부추김에도 제라르는 주저한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셰니에의 기소장을 쓰면서 제라르는 주저하며 양심의 갈등에 빠진다. 셰니에를 구하러 온 마달레나에게 제라르가 자신을 기억하느냐가 묻는다. 제라르는 마달레나를 너무 원해서 그랬다면 자신의 감정을 호소한다. 마달레나는 셰니에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가지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폭도들에 의해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와 혁명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라르는 그녀의 진심에 감동을 받지만 셰니에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사람들 앞에서 셰니에는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나 사형이 선고되었다.
감옥 안에서 셰니에는 자신을 찾아온 루시에에게 자신이 쓴 시를 들려준다. 실제 셰니에가 죽기 전에 쓴 〈단장시〉이다. 제라르가 마달레나와 함께 면회를 명령한다. 마달레나는 아이가 달린 어머니 대신 자신이 사형당하겠다고 요청한다. 감옥에서 만난 마달레나와 셰니에는 사랑이 그들이 외치는 마지막 단어가 될 것임을 말한다. 이어 그들은 단두대로 향하는 마차에 오른다.
주요 음악
1막 셰니에의 아리아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Un dì all'azzuro spazio)
〈즉흥시〉로 유명한 셰니에의 아리아이다. 마달레나와 그녀의 친구들의 내기에 화를 내며 부르는 아리아로 사랑의 정의를 즉흥적으로 표현한 명시다. 실제 셰니에의 시를 사용한 것으로 세상과 백성에게 관심 없이 향락만 일삼는 귀족들을 비난하는 장엄한 아리아이다. 셰니에의 이 시는 제라르에게 큰 감동을 주면서 제라르가 혁명에 참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시이기도 하다.
3막 제라르의 아리아 ‘조국의 적’(Nemico della patrai)
셰니에의 기소장을 쓰던 제라르는 주저하며 ‘조국의 적’을 되뇌면서 부르는 아리아이다.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바리톤 아리아 중 명곡으로 꼽히는 노래이다. 대의를 위해 일하던 제라르가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 막달레나에 대한 사랑에 흔들리는 자신의 소인배적인 감정에 자책하는 대목이다.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랑을 선택한 제라르는 셰니에의 기소장을 서기에 넘긴다.
3막 마달레나의 아리아 ‘돌아가신 어머니’(La mamma morta)
혁명으로 어머니를 잃고 고생을 한 여인의 슬픔이 절절히 드러나는 아리아이다. 제라르가 셰니에의 목숨을 담보로 그녀를 대가로 요구하자, 여기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아리아는 우울하고 슬픈 시작으로 그녀의 불행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사랑이라는 유일한 희망을 노래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마달레나의 호소력에 감동 받은 제라르는 셰니에를 구하겠다고 결심한다. 1993년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배우 톰 행크스가 연기한 변호사가 죽어가는 장면에서 이 아리아가 삽입되어서 대인기를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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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10월 26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클래식 명곡 명연주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1789년 7월 14일, 시민군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역사상 ‘인류의 삶을 가장 크게 바꿔놓은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신분제도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평등사회를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연극과 오페라가 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태어났습니다. 귀족계급에 저항하는 평민의 활력과 대혁명의 기운은 이미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1786)에서도 감지할 수 있으며,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비롯해 이 시대와 연관된 걸작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무대작품들을 감동의 크기 순으로 배열한다면 맨 앞에 나설 작품은 단연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기에 실존했던 프랑스 시인이자 외교관 앙드레 셰니에(1762-1794. 오페라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이름을 표기해 ‘안드레아’가 되었습니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작품은 어떤 다른 오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신하고 획기적인 오페라입니다. 베르디나 푸치니의 여러 오페라들은 역사상의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워 해당 역사의 밀도를 희석했지만, [안드레아 셰니에]만은 프랑스 대혁명기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직접적으로 주인공들의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기 때문이죠. 이 오페라의 1막과 2막 사이에는 5년의 세월이 놓여있습니다. 1막은 대혁명 직전의 봄이지만, 2막은 ‘혁명은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잡아먹고 있다’라는 말이 유행했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1794년, 파리).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이상으로 출발한 혁명이 ‘혁명정부와 견해가 다른’ 모든 사람을 단두대로 보내는 시민독재로 변모했던 시기입니다.
혁명과 사랑, 그리고 성장
1막은 1789년 봄, 쿠아니 백작부인의 성에서 시작됩니다. 파티 준비로 다들 분주한 가운데 바리톤 주인공인 하인 제라르는 귀족들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비난조로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60세 노인인 아버지가 무거운 의자를 나르는 것을 보고 분노한 제라르는 ‘종살이 60년입니다, 아버지 Son sessant'anni, o vecchio’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귀족들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이 파티에서 백작부인의 딸 마달레나에게 조롱당했다고 느낀 셰니에는 사랑을 유희로 아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보며 Un di all'azzuro spazio’라는 아리아로 가난한 이들이 소외당하고 죽어가는 사회현실을 강렬하게 비판합니다.
파티 손님들이 다 함께 가보트를 출 때 제라르가 이끄는 가난한 평민들이 들어오고, 화를 내는 백작부인 앞에 하인 제복을 벗어 던진 제라르는 아버지를 모시고 이 집을 떠납니다.
2막은 1794년 6월 파리의 카페 주변 광장. 열정적으로 혁명에 가담했지만 공포정치에 회의를 느끼게 된 셰니에는 마라를 암살한 왕당파 소녀를 옹호하는 시를 썼다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처형당할 위험이 있으니 빨리 파리를 떠나라고 재촉하는 친구에게 셰니에는 자신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편지를 보내는 여인을 만나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바로 마달레나였습니다.
5년 전 파티에서 셰니에를 만난 뒤 시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머니와 집과 모든 것을 잃고거리를 헤매게 된 마달레나는 더 이상 철없는 처녀가 아니었죠. 삶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끔찍한 고통과 병고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경험한 마달레나는 셰니에의 노선을 지지하고 그를 격려하는 편지를 익명으로 보내왔던 것입니다.
어둠이 내리자 드디어 마달레나가 셰니에 앞에 나타나 정체를 밝히고, 두 사람은 오래 마음속에 간직해온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때 밀정의 보고를 받은 제라르가 마달레나를 만나려고 달려왔다가 셰니에와 결투를 벌이고, 셰니에의 칼에 찔려 부상을 입게 됩니다.
3막은 혁명재판소의 풍경. 그 사이 혁명의 주역으로 성장한 제라르가 나타나, 왕정을 수호하려는 유럽 열강을 상대로 싸우는 조국 프랑스에 힘을 실어달라고 감동적인 웅변으로 민중을 설득하고, 아들과 손자를 전투에서 잃은 눈먼 노파 마들롱은 아직 10대인 막내 손자를 데리고 나와 소년병으로 나라에 바치겠다고 합니다.
제라르는 체포된 셰니에를 기소하는 기소장을 쓰다가 심적 갈등과 가책에 시달립니다. 마달레나를 차지하려는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과거에 존경했던 셰니에를 제거하려 하는 자신의 비열한 태도가 스스로를 괴롭히죠(아리아 ‘조국의 적? Nemico della patria?’). 그때 제라르 앞에 마달레나가 나타나 셰니에의 구명을 호소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La mamma morta’라는 아리아로 혁명 후의 삶을 들려주는 마달레나의 결연한 태도에 감동을 받아, 제라르는 셰니에의 구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혁명재판소는 셰니에의 자기변론(아리아 ‘그렇습니다. 나는 한때 군인이었습니다 Si, fui soldato’)과 제라르의 격정적인 변호에도 불구하고 셰니에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4막은 생 라자르 감옥. 친구 루셰가 셰니에를 면회하러 오자 셰니에는 자신이 방금 쓴 시를 들려줍니다(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Come un bel di maggio’). 제라르가 마달레나를 데려와 셰니에를 만나게 해주는데, 마달레나는 간수에게 “내일 아침 처형당할 여성 중 아이 어머니가 있느냐”고 묻고는 그녀 대신 자신이 처형당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제라르가 로베스피에르에게 셰니에의 사면을 청하러 달려간 뒤, 마달레나는 함께 처형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셰니에에게 알립니다. 두 사람이 ‘우리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La nostra morte’라는 이중창을 벅차게 노래하며 사형장으로 가는 호송마차에 함께 오를 때 막이 내립니다.
구체제와 대혁명의 절묘한 음악적 교차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는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부모의 소망을 거스르고 나폴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신인 오페라 작곡공모에 지원했다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작곡한 마스카니에게 밀려났지만,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아 오페라 의뢰를 받게 되죠. 대표작 [안드레아 셰니에](1896), [페도라](1898)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20세기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제멋대로 부인] 등을 발표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음악은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 프랑스의 봉건주의적 구체제)과 대혁명의 음악적 교차를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1막 귀족들의 파티 장면에는 전원극 음악과 가보트 등 구체제의 음악이 등장하지만, 귀족들이 춤추는 가보트의 음악은 곧 파티 분위기를 위협하는 평민들의 행진곡과 뒤섞여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죠. 그밖에도 프랑스 혁명가요 선율을 인용하거나 베리스모적인 외침과 절규를 음악으로 옮겨놓은 부분 등이 유려하고 풍요로운 선율과 대조를 이루는 다채로운 걸작입니다.
푸치니의 [라 보엠]이 초연된 해인 1896년에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안드레아 셰니에]는 선율과 화성 면에서는 [라 보엠]과, 또 내용과 구성 면에서는 4년 뒤 발표되는 푸치니의 [토스카]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그러나 감동 면에서는 [토스카]를 능가하는 걸작입니다.
오스트리아 보덴 호숫가의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브레겐츠 페스티벌 2011년 새 프로덕션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였습니다. 프랑스 혁명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속의 마라(당통, 로베스피에르와 더불어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주역의 한 사람. 목욕 중에 욕조에서 왕당파의 소녀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했다) 흉상을 거대하게 제작해 호수 위에 세우고, 마라의 목과 어깨 주변에 계단들을 설치해 출연자들이 오르내리게 만들었죠. 특히 3막 혁명재판소 장면에서 60톤이나 되는 마라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목 속에 설치한 붉은 조명의 무대가 드러나는 부분은 엄청난 스펙터클이었습니다.
추천 음반 및 DVD
셰니에-마달레나-제라르 순
[음반] 플라시도 도밍고/레나타 스코토/셰릴 밀른즈 등/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존 올디스 합창단/제임스 레바인 지휘, 1978년 녹음
DVD] 엑토르 산도발/노르마 판티니/스코트 헨드릭스 등/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브레겐츠 페스티벌 합창단/울프 쉬르머 지휘, 키스 워너 연출, 2011(한글자막)
[DVD] 호세 쿠라/마리아 굴레기나/카를로 구엘피 등/볼로냐 시립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카를로 리치 지휘, 잔 카를로 델 모나코 연출, 2006년(한글자막)
[DVD] 플라시도 도밍고/안나 토모와-신토우/조르조 잔카나로 등/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줄리어스 루델 지휘, 미하엘 함페 연출, 1985년
[네이버 지식백과]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Giordano, Andrea Chénier]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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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5월 26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조국의 적!?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안드레에 쉐니에(Andrea chénier, 안드레아 셰니에)]는 이탈리아 작곡가 죠르다노(조르다노, Umberto Giordano, 1867-1948)의 오페라이다. 주인공인 안드레아 쉐니에는 불란서(프랑스) 혁명 시대의 실제로 살았던 인물인데, 어지럽게 바뀌는 드라마의 전개에는 창작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 허구(虛構)를 통해 계급투쟁, 정치적 음모, 부정부패, 비극적인 죽음 등이 뒤섞인 이 시대의 참모습이 떠오른다. 죠르다노는 섬세한 묘사나 표현은 그리 능숙하지 않으나 격동하는 드라마를 음악으로 옮겨 듣는 이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는 재주는 같은 시대의 어느 오페라 작곡가도 따를 수 없었다. 원작은 스토리코(Ambiente Storico)의 희곡(4막)을 일리카(Luigi Illica)가 대본으로 만들었다.
계급 투쟁, 정치적 음모, 부정부패, 비극적 죽음이 뒤섞인 혁명 시대를 그린 오페라
불란서 혁명시대(1789년과 1794년)의 빠리(파리)이다. 코아니 백작 댁에서 무도회가 열리고 있다. 이 집에서 오랜 세월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유사상을 가진 아들 카를로 제라르는 귀족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있다. 연회 중에 백작의 딸인 마딸레나가 ‘사랑의 시’를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인 안드레아 쉐니에는 민중에 대한 동정을 호소하는 즉흥시를 읊는다. 그러나 그 시는 거기 모인 귀빈들의 반감을 산다. 마딸레나는 뉘우치고 곁에서 들은 제라르는 감격한다. 그 후 제라르의 안내로 가난한 농민의 무리가 나타나자 진노(震怒)한 백작부인 앞에 제라르는 하인의 제복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늙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저택을 나간다.
시간이 흘러 현명 하의 빠리는 공포정치로 바뀐다. 몰락한 마딸레나는 하녀 페르시의 집에 숨어 살고 제라르는 혁명정부의 요인이 되어 그리워하던 그녀의 거처를 찾고 있다. 감시의 눈을 피해 마딸레나는 쉐니에를 다시 만났으나 그물을 치고 있던 제라르가 등장하자 쉐니에는 제라르를 찔러 그녀를 도망치게 한다. 혁명 재판소 법정에 쉐니에가 끌려 나온다. 마딸레나는 그를 살리기 위해 제라르를 찾아 간다. 그녀는 제라르의 사랑의 고백에 놀라지만 어머니가 죽은 후 쉐니에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쉐니에에 대한 고소장을 적성한 제라르였으나 마딸레나를 향한 짝사랑을 부끄러워하며 태도를 바꾸어 쉐니에 변호에 나선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쉐니에는 ‘명예로운 죽음’을 원한다. 감옥에 수감된 쉐니에는 이 세상을 떠나는 시를 적어 친구 루시에에게 건넨다. 이때 여자 죄수로 변장한 마딸레나가 나타난다. 둘은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죽음의 호송차에 오른다. 그들을 살리려고 애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제라르는 두 사람을 실은 마차가 단두대를 향해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조국의 적'
조국의 적!?
너무 써 먹은 조작된 말이지만
역시 인민이 믿기 쉬운 수작이다.
콘스타티노플 태생?
외국인이다!
생-시르 사관학교 출신?
군인이다!
매국노다!
뒤무리에와 공범이다!
시인?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고 풍속을 문란케 하는 자다!
증오와 복수를 거듭하는 동안에 나의
순수하고 티 없으며 강한 의지를 관철했던
즐거운 나날은 지나갔다.
스스로를 거인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줄곧 하인 그대로인 채,
주인을 바꾸었을 뿐인,
폭력적인 정열에 휘둘리는 종이다.
아, 그 보다도 더 나쁘다. 학살하고 두려움에 떤다.
죽이면서 눈물을 흘린다.
혁명의 아들인 나는 무엇보다 먼저
세계를 위해 외치는 고함소리를 듣고
내 마음 속의 외침을 거기에 결부시켰다.
꿈꾸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지금은 잃어버렸는가?
얼마나 영광으로 빛났던가
내 행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악한 자, 괴로워하는 자들의 눈물을 모아,
세계를 신전(神殿)으로 삼고,
인민을 신처럼 받들어,
하나의 입맞춤과 포옹 속에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
지금 나는 이 신성한 소망을 부인하고 있다.
내 마음은 증오에 흠뻑 빠져 있지만,
나를 이렇듯 굴복시킨 것은 공교롭게도,
사랑이다!
혁명가가 귀족의 딸을 사랑하여 연적인 시인을 반혁명분자로 모는 아리아
백작 가의 하인이었던 제라르는 불란서 혁명의 이념에 공감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쟈코방(자코뱅) 당원으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그러나 남몰래 은근히 사랑하는 백작의 딸 마딸레나가 시인 안드레아 쉐니에를 사모하며 자기의 압력에 굽히지 않는 그녀에 대한 시기심(猜忌心)으로 시인을 반혁명 죄로 고발한다. 가사는 그러한 사태와 제라르의 심정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있다. 바리톤의 역량을 시험하는 유명 아리아이다.
추천할 만한 CD와 DVD
[CD] 지아난드레아 가바쩨니 지휘,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관현악단/합창단(1957) 바스티아니니(Bs) DECCA
이 오페라를 녹음할 무렵은 델 모나코와 테발디는 물론 제라르를 노래하는 바스티아니니의 가장 충실한 시기였던 만큼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목소리의 향연을 벌인다. 특히 바스티아니니가 잘못된 사랑에 괴로워하는 영혼을 노래하여 가슴을 저미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작곡가로서도 일류의 역량을 지녔던 가바쩨니(Gianandrea Gavazzeni, 가바체니)가 지휘를 맡은 것이 이 음반을 성공시킨 큰 원인이 된다. 많은 성악곡, 특히 훌륭한 합창곡을 많이 작곡한 그 답게 절묘한 성부(聲部)처리 솜씨를 보여준다. 제1막의 전원곡에서 부르는 목동의 합창 부분은 전곡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장면이며 우아하기 그지없다. 작품의 몇 가지 결점을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음색의 풍부함과 가수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취해버리고 만다.
[CD] 레바인 지휘, 런던 내셔널 휠하모니 관현악단/죤 올디스 합창단(1976) 밀른즈(Br) RCA
델 모나코와 코렐리가 1950년대와 60년대를 대표하는 쉐니에였다면 도밍고는 70년대의 적격자라고 할 수 있다. 빛나는 아름다운 목소리, 힘찬 극적 표현력, 거침없이 뿜어내는 열정과 고뇌의 표현 등 어느 모로 보나 최고의 노래를 쏟아낸다. 델 모나코는 너무 강직하고 코렐리는 지나치게 자의적(恣意的)이라는 평을 보면 쉐니에의 이상적인 모습을 도밍고의 표현에서 찾게 된다. 그리고 레바인도 그가 지휘한 오페라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녹음에 속한다. 일사불란하게 잘 다듬어 놓은 오케스트라가 혼신을 다한 그의 지휘봉 아래 찬란한 관현악의 향연으로 도밍고의 명창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스코또의 마딸레나가 부르는 정교한 노래에 제라르 역의 밀른즈가 쏟아 놓는 질투와 가책의 소용돌이, 그리고 탁월한 녹음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최고의 앙상블을 빚어낸다. 최근 소니 오페라 하우스 시리즈로 재발매 되었다.
[DVD] 넬로 산티 지휘, 빈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발레단(1981) 카뿌찔리(Br) 쉔크 연출 DG
도밍고의 아름다운 칸타빌레(cantabile=노래하듯이), 스칼라 극장에서의 유명한 노래에 못지 않은 팽팽한 목소리의 카뿌찔리(피에로 카푸칠리, Piero Cappuccilli), 가식이 없는 쉔크의 연출이 돋보인다. 극장 지휘자로서 안정감 있는 산티의 지휘 등 나무랄 데가 없다.
[DVD] 샤이 지휘, 미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5) 카뿌찔리(Br) 푸쩰리 연출
샤이(Riccardo Chailly)는 정확하고 억제된 지휘로 탄탄한 드라마를 구축하고 혁명적인 장면에서의 극성과 사랑의 장면의 서정을 무리 없이 이끌어 내고 있다. 가수진도 그러한 지휘에 호응하여 각기 충분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특히 카레라스(José Carreras)의 쉐니에는 혁명의 회오리바람 속에 사랑과 신념을 지켜 나가는 시인을 격조 높게 표현하고 그 단정한 모습 또한 일품이다. 또 백작 가의 하인이며 혁명에 동참하는 제라르 역의 카뿌찔리도 그 딸에 대한 짝사랑과 혁명 사이에 흔들리는 심리와 좌절하는 정열을 뛰어난 노래와 연기로 구현하여 설득력이 있고 백작의 딸 마딸레나 역의 마르톤(Eva Marton)의 당당한 노래가 호소력 있다. 그리고 푸쩰리(푸첼리, Lamberto Puggelli)의 연출이 백작의 성(城)에서 혁명하의 빠리, 또 혁명 재판과 감옥 등 무대를 교묘하게 바꾸어 꾸미고 있다. 제1막의 무도회 장면은 호화롭고 아름답다. 혁명 하 빠리의 시간과 장소를 바꾸어 비극이 진행되는 제2막 이후도 거대한 장치를 차례로 움직여 장면을 전환하는 등 인상 깊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국의 적!? - 조르다, [안드레아 셰니에]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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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6년 1월 6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시인 앙드레 셰니에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오페라로 환생한 프랑스 혁명의 시인
“밀러, 기도해본 적 있어?”
“물론 매일 기도하지.”
“기도 제목은?”
“글쎄, 아기의 건강과 아내의 순산, 필리스(필라델피아의 프로야구팀)의 승리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와 영화 <필라델피아>가 동행한 한 장면
에이즈로 투병 중인 변호사인 앤드루 버킷(톰 행크스, Tom Hanks, 1956~)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부당 해고됐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법정 증언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소송을 맡아준 흑인 변호사 조 밀러(덴젤 워싱턴, Denzel Washington, 1954~)와 질문 내용을 검토하던 중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밀러는 증언 내용으로 화제를 돌리려고 하지만, 정작 버킷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한 장면이다.
이 때 둘의 귓가에 나지막한 첼로 소리가 들려온다. 오디오를 통해 흐르는 음악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énier)]의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다.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의 목소리다. 영화의 카메라는 아리아의 노랫말을 설명하는 버킷에게 바짝 다가가 부감(俯瞰)으로 잡는다.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오페라에서 백작의 딸 마달레나의 집은 폭도에 의해 불탔다. 딸을 살리려던 어머니도 목숨을 잃고 만다. “목소리에 담긴 고통이 들려?” 마달레나의 아리아를 설명하는 버킷의 모습을 카메라는 좀처럼 끊지 않고 따라간다. 하지만 현악이 장조(長調)로 방향을 트는 순간, 아리아도 절망에서 환희로 표정이 바뀐다.
“계속 살 것이니, 나는 삶이요. 천국이 내 안에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며 내가 네 눈물을 모으리라. 너와 함께 걸으며 너를 도우리라. 웃고 희망을 가져라. 내가 사랑이니. 피와 진흙에 둘러싸여 있느냐? 나는 신성하다. 나는 망각이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신이로다.”
-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앙드레 셰니에, 현대의 호머를 꿈꾸던 시인
마달레나의 귓가에 들려온 신의 음성은 영화에서 버킷이 간절히 듣고자 하는 응답이기도 하다. 아리아를 듣던 버킷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온다. 노래는 끝났지만 밀러는 변론 준비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어색하게 자리를 뜬다. 하지만 백인과 흑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라는 차이를 딛고, 둘 사이에는 교감이 흐른다.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인상적인 이 장면에서 흘렀던 음악이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 1867~1948)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32세의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이 됐던 시인 앙드레 셰니에(Andrea Chénier, 1762~1794)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셰니에가 발표한 시는 단 두 편이 전부였다. 생전에 셰니에는 무명(無名) 시인이었지만, 사후에는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예술가로 재평가 받았다.
셰니에는 터키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 이스탄불)에서 프랑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 출신인 어머니의 살롱은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와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 같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 14세 연상의 다비드는 셰니에에게 예술과 그림에 대해 많은 걸 일러준 스승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셰니에도 일찍부터 다비드의 화실에 드나들었다. 다비드가 대표작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릴 때는 셰니에가 조언을 건넸다는 일화도 있다. 당초 다비드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손에 들고서 발언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지만, 셰니에가 여기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안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끝마치고 나서야 잔을 붙잡았을 거예요.”
셰니에는 어머니의 언어인 그리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16세 무렵에는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Sappho, B.C. 612?~?)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옮겨서 번역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의 문학적 관심도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에 있었다. 그에게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B.C.86~B.C.42)는 가장 위대한 로마인이요, 카토(Marcus Porcius Cato, B.C.234~B.C.149)는 위대한 장군이자 웅변가이며 철학과 문학에서 당대 최고였으며, 포키온은 도덕과 덕의 규범에서 흔들림이 없으며 행동과 우정에서 흠 잡을 곳이 없는 진실된 인간”이었던 것이다. 셰니에는 1784년 로마와 나폴리, 폼페이 등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현대의 호머’를 꿈꾸며 신고전주의 양식의 전원시와 비가를 써나갔다. “새로운 생각으로 예스런 시를 써나간다”라는 시구(詩句)가 보여주듯, 당시 그의 문학관은 무척 고전적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혁명의 격랑 속으로
하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은 그가 과거의 문학 양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혁명 발발 2년 전, 가족의 지인이 영국 대사로 임명되자 그는 대사의 비서 자격으로 런던으로 따라 나섰다. 하지만 셰니에는 “비열한 즐거움과 역겨운 허영심이 가득하다”라며 런던 생활에 넌더리를 냈고 결국 혁명 이듬해인 1790년 파리로 되돌아왔다. 혁명의 격랑에 스스로 뛰어든 셈이었다.
셰니에는 전원시 대신에 풍자시를 쓰기 시작했고, 「파리 저널」에도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온건파에 가까웠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동생 마리 조제프(1764~1811)가 루이 16세의 사형을 옹호하는 급진 공화파에 속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1792년에는 이들 형제 사이에 격렬한 지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해 2월 셰니에가 먼저 「파리 저널」을 통해 급진 공화파인 자코뱅(Jacobins)이 프랑스를 뒤흔드는 혼란의 원인이며 ‘국가 안의 국가’를 세우려는 이들을 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리 조제프는 자코뱅이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에 입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편의 지지자들이 뛰어들면서 이 논쟁은 반 년 가까이 지속됐다. 두 살 연상의 셰니에는 “존경하는 사람들과도 당파를 만들지 않았다”라고 고백했을 만큼 철저하게 무당파를 지향했다. 반면 동생 마리 조제프는 혁명 당시 입법 기관이었던 국민 공회(Convention Nationale)의 의원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어쨌든 혁명의 열기가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구체제의 상징이었던 국왕을 공개적으로 편드는 건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의 처형 소식에 낙담한 셰니에는 베르사유로 내려가 은거했지만, 수 개월 뒤에 반혁명 혐의로 공안위원회 요원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반동에서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셰니에가 체포된 이후 동생 마리 조제프는 형의 구명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카인을 죽인 아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셰니에가 체포되기 이전에 파리를 떠나라고 권유하고 베르사유에 안전 가옥을 물색해준 건 다름 아니라 마리 조제프였다. 로베스 피에르(Maximilien de Robe pierre, 1754~1794)의 반대파로 분류됐던 동생은 현실적으로 힘을 쓰기 힘든 처지였다. 이 때문에 마리 조제프는 서툴게 개입하면 오히려 형의 사형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마리 조제프는 시간이 흐르면 형의 사건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혁명의 광기는 그런 희망마저 앗아갔다.
셰니에는 옥중에서도 틈틈이 「젊은 여죄수(La Jeune Captive)」 같은 시를 썼지만, 1794년 7월 25일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시인의 최후는 낭만적으로 윤색되어 있다. 그는 단두대로 올라갈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소포클레스(Sophocles, B.C.496~B.C.406)의 비극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혹자는 동료 사형수들과 장 라신의 비극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셰니에의 처형을 지시했던 로베스 피에르도 불과 이틀 뒤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체포됐고, 다음 날인 28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무척이나 얄궂은 악연이었다.
셰니에는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1768~1848)이 1802년 『기독교의 정수』에 셰니에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의 문학적 명성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819년에는 셰니에의 미발표 원고를 묶은 시집이 처음으로 간행됐고,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 같은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조르다노의 손에 태어난 핏빛 치정극
시인을 향한 경배의 대열에 동참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였다. 이탈리아 남부 포자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난 조르다노는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폴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음악원 재학 시절인 1888년 악보 출판사가 주최하는 단막 오페라 공모전에 첫 오페라를 출품했지만 참가작 73편 가운데 6위에 머물고 말았다.
당시 우승작은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였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출판사는 후속작을 위촉했고, 이를 계기로 조르다노는 꾸준히 오페라를 발표했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페라는 작곡가 마스카니와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 1857~1919)를 필두로 하는 ‘베리스모(verismoㆍ사실주의)’의 시대였다. 낭만적 연애담이나 영웅담에 작별을 고하고 서민의 남루한 일상에서 착안한 핏빛 치정극이 오페라의 세계로 속속 편입됐다. 조르다노가 [안드레아 셰니에]를 통해 프랑스 혁명의 시인 셰니에의 삶을 극화(劇化)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은 그대로 오페라의 기본 얼개가 됐다. 마지막 4막의 무대는 실제 시인이 투옥됐던 생라자르 감옥이며, 셰니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인 로베스 피에르도 2막에서 잠시 단역으로 모습을 내비친다.
푸치니와 호흡을 맞춰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와 [라 보엠(La Boheme)] 등을 히트시킨 작가 루이지 일리카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안드레아 셰니에]는 1896년 3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그 해 11월 뉴욕과 이듬해 3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곧바로 공연될 정도로 작품의 명성은 빠르게 퍼졌다. 함부르크 공연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음악가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였다.
고결한 남성 주인공, 셰니에의 탄생
4막 형식의 이 오페라는 당시 베리스모 스타일을 반영하듯 혁명의 긴박함과 열기를 충실히 담아냈다. 음악적으로 그보다 중요한 건 낭만적이면서도 고결한 남성 주인공 셰니에의 탄생이었다. 혁명의 대의에 충실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셰니에 역을 위해 작곡가는 3곡의 아리아를 썼다. 이 가운데 두 곡은 셰니에가 생전에 썼던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셰니에가 처형되기 직전에 부르는 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Come un bel di di maggio)]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 산들바람이 입을 맞추고 햇살이 감싸 안는 가운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네. 나 역시 운율의 입맞춤과 시의 보살핌으로 내 삶의 정상에 올라가네. 각자의 운명에 따라 난 이미 죽음의 시간에 이르렀네. 내 시의 마지막 연이 끝나기 전에, 사형 집행인이 내게 삶의 종말을 고하겠지. 그러려무나. 시여, 절대적 여신이여! 당신은 시인에게 빛나는 영감과 불길을 주었으니, 내 마음에서 당신이 쏟아지는 동안에 나는 당신께 내 삶의 마지막 차가운 숨결을 드리리다.”
- 아리아 '5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처형대에 올랐던 셰니에의 마지막 시는 오페라 4막에서 티끌 한 점 없이 청명하게 빛나는 아리아로 되살아났다. [안드레아 셰니에]의 아리아는 시인 자신의 ‘백조의 노래’이기도 했던 것이다. 윤동주나 이육사와 마찬가지로, 셰니에 역시 사후에 신화가 된 경우에 속했다. 더불어 오페라는 젊은 시인의 초상을 온전하게 간직한 ‘음악의 사진첩’이자 ‘기억의 보관소’가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인 앙드레 셰니에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 오페라로 환생한 프랑스 혁명의 시인 (문학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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