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아침 집을 나서려는 찰나, 동호회 선생님으로부터 갑작스런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자택인 '北山 藝院'에서 吾如 김창욱 선생과의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셨다며 참석하길 알리셨다. 선생님께서 종종 그 학덕을 칭송하시던 오여 선생은 경남 진주 분으로 5세 전후 한학에 입문하여, 그간 수많은 경서를 섭렵하신 사십대 중반의 한학자신데, 현 진주 경상대 대학원 강의를 맡고 계신다.
저녁 여섯 시쯤 중국어 同學의 인연으로 만나, 줄곧 친하게 지내온 친구랑 백낙천의 장한가를 좋아하시던 친구 남편, 그리고 그분 친구... 넷이서 경주로 출발했다. 선생님께서 기거하시는 보문호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북군동 산등성이 北山 藝院은 멀리서 바라보면 날아갈 듯한 옥개가 박물관 전시실인양 눈길을 끄는 대저택이다.
문하생들이 20명 남짓 모여있는 지하 강의실. 하얀 모시옷을 입으신 선비 풍의 오여 선생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계획에 없던 행사라 그 주제를 미리 준비 못하심을 아쉬워하시며, 30대 때 학문에 매진하다 신장투석을 해야할 만큼 건강을 해쳐, 그 투병 경력으로 인해 나이보다 20년 많은 세월의 깊이를 더하셨다니... 그렇다면 학문적으로 한창 원숙한 단계인 60대 선비와의 만남인가.
환자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규태씨 강연에서, 거두절미한 채 본론부터 시작하는 강연 방식이 너무 깔끔하고 멋져 보여, 뒷날 흉내내다 교감 연수생들로부터 반감을 사는 시행착오 끝 '지 꼴아지대로 살아야 함'을 거듭 깨달았다고 말문을 여신다. 그 號가 어이하여 吾如인가를 그제야 짐작할 만했다.
자연스럽게 강의 주제는 '지 꼴아지대로 살기'였다. 中庸에 나오는,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에서... 이때의 性이 곧 하늘이 정해 준 '지 꼴아지'를 뜻함이니, 率性이라면 바로 지 꼴아지대로 살기로서, 이가 곧 道로 연결됨이라 하신다.
위에서 일컫는 하늘의 개념은 明心寶鑑 天命編에 나오는, 康節邵先生曰 天聽寂無音 蒼蒼何處尋 非高亦非遠 都只在人心에서... '都只在人心' (모든 것이 사람 마음속에 있을 뿐)처럼 본시 사람 마음속에 열린 상태로 자리하던 게 天이다. 허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불어나는 욕망과 비교하려는 분별심 등으로 인해 天과 人사이 통로인 道가 꽉 막혀버린다. 급기야 삶 자체도 그 빛을 잃고서... 이목님 비유처럼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못생긴 누이처럼 밉기만 한, 메마르고 어두운 현실로 다가온다고...
그 하늘 길을 막고 있는 숱한 욕망이나 비교하는 마음을 걷어내는 길 닦기 즉 修道가 더해짐에 따라, 서서히 어린 아이 삶처럼 본성이 맑아오면, 드디어 지 꼴아지대로 사는 게 거리낌없이 즐거워지는 단계가 찾아든다고 일러주신다. 욕망을 줄여가 삶이 다시 맑아지면 때론 전생의 삶과도 연결되어 세세생생 닦아온 자신의 長技가 현생에서 가속도가 붙어 발휘되기도 한다나... 본인이 잊고 있던, 어쩜 밉게만 보고 외면해 오던 자신의 진짜 꼴아지, 즉 하늘이 내린 본성 회복의 삶이 진정한 기쁨의 길이라는 가르침이셨다.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자가 달리 없으니, 선생님께서 앞줄에 앉은 내게 사인을 보내신다. 도리 없이 두어 해전 주역을 읽으며 좀은 답답했던, 이미 관심 없어진 사항이었지만 질문을 위한 질문으로 말씀 드렸더니... 오여 선생 왈,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무안해서 우물쭈물하는데... 재차 30대냐? 40대냐? 다그치시고... 뒷자리 친구 남편께서 숙녀 나이를 물으시는 건 실례가 아니냐고... 수군거린다. 뒤이은 질문...혹 천재신가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얼떨떨했지만 정신을 수습하며... 아뇨, 둔재에요... 우리 선생님께서 보기 딱하셨는지... 홍여사는 평소에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라며 공연한 말씀으로 거드시고... 뒷자리에선 포항이 알아주는 영재라는 둥 우스개도 들리고...
알고 보니 그건 주역이 그만큼 만만찮은 대상임을 유도하시려는 질문이셨다. 곧 이어 주역의 난해함과 불가해성을 밝히신다. 한평생 한 우물로 공부해 60이 넘어도 알까말까할 정도라고 하시니... 현대인의 심심풀이 대상으로는 어림없는 학문임을 노골적으로 강조하신다. 그간 해설서와 여러 해 나름대로 공부하신 분의 설명을 들어도 뭔가 핵심을 놓친 듯한 미흡함을 감출 길 없었던 게 당연했다. 천기를 누설시키는 행위를 자제하는 방편으로 얼치기에게는 아슴푸레하게 흩트려 놓은 비결서이니... 오직 학문적 도통으로 靈眼을 지닌 자에게만 보이는 것을 바람 쐬듯 손쉽게 엿보려 했던 어리석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 맞아... 주제에 주역은 무슨... 지 꼴아지대로 살아야 하는 순리는 언제 어디서나 통하나 보다.
첫댓글 내 꼬라지는 이기가, 저기가? 이것도 내 꼬라지, 저것도 내 꼬라진가? 어느 것이 내 꼬라진 줄 모르니 가야 할 길 막막하네. (천명이 깜깜하니 솔성을 못하고 솔성을 못하니 수도는 더욱 멀어지네요)
5학년 형들은 知命(知天命) 이시니 천명이 무엇인지 쫌 갈채 주이소.
난 평소 생긴대로 살자 라는 생각으로 사는데 이것하고 통하는 말인가?
내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내 꼴아지대로 살 수 있을 텐데..., 아직도 내가 미울 때가 많으니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 길은 요원할 것 같다.
솔울, 우문현답 한 번 하자. 천명은 타고난 지 목숨 온전히 다 살고 가는 것. 뇌일혈로 쓰러졌던 고등 학교 동기놈, 일전에 가고 말았다. 이 세상이 너무 더워서 지하 세계를 택했는가 보드라. 꺼이꺼이 울면서 혼백 앞에 소주 한 잔 쳐도 대답이 없더라. 못 보던 친구들 다 불러 모아 놓고, 놈만 혼자 갔더라.
나는 5학년이 되고 나서 내 자신이 자꾸만 더 낯설어지는 느낌입니다. '지 꼴아지'가 뭔지 아직 까마득합니다. 좀더 헤매면 알게 될지 막막합니다.
점입가경, 갈수록 어렵네요. 오여 선생님의 '지 꼴아지 대로 살자'라는 말씀은 저를 두고 하는 말씀 같기도 합니다. 의식의 과잉, 자기기만, 뭔가 그럴듯한 자기 포장, 이런 일이 일상화된 듯한 저를 가시처럼 찌르는 듯합니다. /吾如는 '나답게'로 해석해도 되는지요? 초임 5년(도계중3년, 포철고2년) 동안 줄곧 급훈을 '
나는 나답게, 우리는 우리답게'로 정했습니다. (솔울도 비슷하데요. '나다이 너다이 겨레다이'?) 그 이후 3년 동안 '문제교사'로 낙인 찍혀 담임을 못 맡았지만, '나답게, 우리답게'라는 말은 아직 제 삶의 과제로 남아있지요. /주역을 읽고, 살아있는 선비와 함께 '고공 담론'을 즐기시는 후이쩐님, 참 대단하십니다.
제 급훈은(언제 교훈 만들 형편이 되야 할텐데...) '나다비 울다비 아삼다비(비는 순경음 비읍,삼은 반치음에 아래아가 있음)'=나답게 우리답게 겨레답게, 나는 나답게 우리는 우리답게 겨레는 겨레답게 (자긍심,주체성,정체성)의 뜻입니다.이목과 희한하게도 같습니다. 이목이 먼저 썼으니 저는 아류입니다.
학교에서 이 급훈 쓸 무렵 교과서에 김수영의 '폭포'가 실렸죠. 어떻게 김수영의 글이 교과서에 실렸는지 의아해 하며 '폭포' 보고 울었죠( 신동엽 보고 울고 이용악 보고 울고..솔울 잘 웁니대이 남 앞에서는 헤벌럭거려도 ). 나답게 우리답게 겨레답게 살 수 없는 현실을 보고 비겁하고 옹졸하게 사는 것도 힘 들어서였죠
他道의 교사 모임에서 대체 교과서를 낼 때 기존 교과서에 대한 불만이, '무슨파'의 시는 중·고등 교과서에 연속 실리면서 김수영 같은 시인의 시는 왜 거론조차 안 되느냐 하는 것이었네. 비슷한 일에 잠시 관여할 때, 나는 '푸른 하늘을'을 먼저 생각했네. 수영의 시를 교과서에서 보게 된 건 이들의 덕도 좀 있을 걸세.
후이쩐님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비어적 어휘 사용이라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엄청 생각하게 하는 것이네요. 내 꼬라지를 숨기며 살아가는 현실에 숨가쁠 때가 많습니다. 카페에 글을 올릴 때도 그렇습니다.언제나 이에서 벗어나려나? 도를 통해야 가능하다니 영 힘들겠네요.
'道'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그 '도'라는 것이 중력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인지, 밖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온갖 부조리와 모순이 얽혀있는데, '도'라는 것은 이러한 현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지요. '지금-여기'의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김수영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의 마지막 작품 '풀'은 '현실', 또는 '자기'와의, 또는 어떤 '지향'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도달한 어떤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매우 숭고하게 보이기도 했답니다.
(저위에 부조리, 모순 운운은 '세계'와 '자아'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 모두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즉 저 자신 또한 그러한 모순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아멘.)
나답게 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자기를 선반에 얹어 놓고 살 때가 많거든요. 후이쩐님. 주역 공부 하시나요? 제겐 어려울 뿐입니다.
주역공부는 무슨? 긴 세월 백수다 보니... 누가 권해 호기심으로 잠시 들여다봤지만... 어림없는 일임이 드러났잖아요. 굳이 '도'를 들먹이지 않아도 심사가 어두워오면 나답지 않음을 깨우쳐 서둘러 그 病根을 제거하려 애쓰고, 밝아오면 그게 천명인양 믿고 싶어요.
'나는 나답게, 우리는 우리답게'... '나다비 울다비 아삼다비'...다들 정말 대단하셔요... 김수영의 '폭포'... 오래 전, 반 아이들보다 제 자신을 단근질하려 학급 게시판 모퉁이에 붙여두고, 수시로 그 앞을 오가던 그런 시간들도 있었음이 이제야 생각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