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가? p.18
행복한 사람은 내세를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인들은 ‘내세가 없다면 지금 제멋대로 살다가 가면 될 것’이라며 ‘내세가 없다는 주장’을 공격하는데,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리 주장하는 사람이나 그리할 일이다.
내세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금 그리하고 사는가? 함부로 살고 있는가? 내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서로 수천 년 동안 끔찍한 전쟁을 벌여온 이유는 무엇인가? 각자 서로 다른 내세를 믿어서 상대방의 내세를 믿지 않기 때문인가?
세상의 범죄를 억제하는 것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현세의 법률ㆍ관습ㆍ문화ㆍ양심(良心-착한 마음-good heart)이다. 세상의 전쟁을 억제하는 것은 힘의 우열과 손익계산과 보복의 위험이다.
내세는 죽은 다음에 올 일이요 신의 응징은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니, 둘 다 더디고 기약 없는 일이다. 그래서 참지를 못하고 스스로 응징하고자 전쟁을 일으킨다.
응징이나 보복 이외에 종교인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현세의 국제정치적인 구도(構圖)나 개인의 세속적인 철학과 이익 추구 때문이었으며, 내세에 대한 믿음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인들이 전쟁을 더 즐겼다는 증거도 있다.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였다.
유럽 기독교인들은 일말(一抹)의 良心(양심)의 가책(呵責)도 없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들고 남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잔인(殘忍)하게 학살(虐殺)했다. 그들은 이들의 창조를 하나님의 실수(失手)라고까지 믿었다.
내세(來世)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탐욕(貪慾), 특히 집단적(集團的) 탐욕 앞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지금 유럽이 역사상 최장기간, 근 70년간의 평화를 누리는 것은 내세에 대한 믿음 덕이 아니다. 유럽공동체(EU)라는, 종교가 멸시해 온 ‘돈’이 엮은 ‘경제적 결속’이 낳은 평화이다. 결코 내세에 대한 믿음이 낳은 평화가 아니다. 현재 유럽인 중 무신론자 비율은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역사적으로, 종교 인구수와 평화는 반비례한다.
내세를,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2천 년 동안 자기들끼리 수없이 전쟁을 벌여온 이유는 무엇인가? 유대교에 뿌리를 둔 같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ㆍ이슬람교ㆍ유대교가 서로 죽이겠다고 지상을 전쟁으로 어지럽혔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중세의 유럽 기독교가 이슬람교를 상대로 벌인 200년에 걸친 8차례의 십자군 전쟁과, 20세기에 이슬람교도와 유대인들이 벌인 4차례 중동전쟁이다.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을 응징하기 위해서 중동 산유국들이 일으킨 OIL 파동(波動)으로, 수천 년 묵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허리띠 졸라매고 일하던 대한민국은, 하마터면 부도(不渡)가 날 뻔했다.
같은 알라를 믿는 이슬람교 국가인 이란과 이라크는 8년 동안 화학무기까지 동원하여 형제 모슬렘들을 살육하며 죽기 살기로 전쟁을 벌였다. 같은 이슬람교이지만, 한쪽 집권 세력은 시아파이고 다른 쪽은 수니파다. 지난 70년간 가장 전쟁을 많이 벌인 국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국가인 미국이다. 베트남전과 두 차례의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일으켰다.
내세(來世)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生命)과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視角)이다.
출처 : 강병균 교수 역저.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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