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 언어생활자들이 사랑한 말들의 세계 – 노지양×홍한별, 동녘, 2022.
<<번역가들의 우정이 이렇게 글로 아름답게 빛을 발하다>>
1. 2022년에 한겨레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보고 샀다. 그때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근래에 공공도서관에서 추천 도서로 떠서 다시 읽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영어책을 번역하다가 생기는 많은 고민들과 사연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주로 어떻게 하면 더 원저작의 뜻을 제대로 살리면서 매끄러운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아주 미묘한 번역 글의 차이가 독자들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편하게 하기도 하고 애먹이기도 한다. 그래서 번역가가 아주 세심하고 꼼꼼하게 번역하는 과정과 자세를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번역의 사례들을 보면 번역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원저자와 번역가와 독자가 대면하거나 대화를 하지도 않고 텍스트만을 통해서 서로의 공감을 이루어낸다고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기도 하다. 인간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책은 책을 읽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주는 특별하고 은밀한 기쁨과 보람에 이야기한다. “원문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스산함, 슬픔, 따뜻함, 고요함, 충격을 조심스럽게 내 언어로 어루만져 이루어내는” 번역 일을 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믿음과 우정을 드러내며 이런 책을 낸다고 하는 것은 영어와 글쓰기 수준이 비슷하고 의기투합해야만 되는 일인데 이 두 사람은 죽이 참 잘 맞는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들의 우정이 부러웠다.
번역하는 것과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두명의 가수들이 노래를 튜엣으로 부르는 것은 봤어도 (꼭 번역가가 아니더라도) 작가들이 자기의 솔직한 감정과 고민들을 주고 받으면서 이렇게 의미있는 책을 함께 만들어내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그런 면에서도 이 책은 정말 귀중하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2. 번역가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직업이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해도 되고 그리고 다른 사무실을 얻어 작업할 수도 있고. 자유업이기에 생겨나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코로나19때 학교에 안 가는 자녀들 점심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나온다. (다 지난 시절 이야기지만) 그때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아주 애를 먹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을 관리해야 하는 면에서 자기와의 싸움이 될 것 같다.
두 저자들은 각자 번역책을 100권 정도로 많이 냈다는데 검색해 보니 책을 좀 읽는다고 하는 나도 그중에 딱 한 권, 근래에 홍한별 번역가가 번역한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만을 읽었다. 그 정도로 책은 엄청 많이 쏟아져 나오고 흥행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3. 번역가는 영어와 한글을 매개하는 직업이다. 매개하고 나서 번역자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안 되는 작업자이고 글 안에 숨어있는 사람이다. “끝없이 노력하지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인간”이다. 그러한 번역작업은 영어만 잘해서는 안되고 국어도 잘해야 하는데, 물론 독서량도 많아야 하고 기본적으로 언어감각을 타고 나야 되는 것이겠지.
“이 자리에는 무슨 단어가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딱 들어맞는 단어가 떠 올랐을 때의 짜릿함, 도무지 한국어로 옮겨지지 않을 듯한 문장을 두고 끙끙대다가 키를 발견하고 스스로 암호를 풀 때와 같은 상쾌함, 운 좋게 비슷한 소리가 나는 단어가 포개졌을 때 뜻하지 않게 생기는 리듬, 다른 색과 무늬의 천을 서로 대보며 잘 어울리는 천을 찾았을 때처럼 단어들 사이의 어울림과 간섭을 탐구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런 느낌은 번역자만이 알겠지.
하기야 독자들은 외국 번역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번역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간혹 잘 안 읽히면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또한 아주 간혹 잘 읽히면 번역이 잘 되었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들은 많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4. 내가 번역과 번역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문학적 재질이 없어 대학의 학과를 선택할 때 문학계열은 처음부터 배제했었다. 그렇지만 나중에 어쩌다가 번역에 의욕이 좀 생겼었다. 문학책이 아니라,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 법학-사회과학 책들. 나중에 의욕은 사라졌지만 번역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서 아쉬었다.
두 저자는 지금부터 20년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2000년 전후의 이야기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그때는 전문번역가가 귀했다. 문학책뿐만 아니라 독일 법학-사회과학 책은 교수들이 주로 번역했지만 (이 책에도 나오듯이, 그런 책은 어쩌면 아르바이트생을 시켜서 번역한 것일 수도 있다.) 대체로 번역이라는 영역은 생소했다. 그때 저자들은 번역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도 그런데 그 전(前)시대에는 번역의 장르는 더 황량했다. 그러다가 통번역대학원이 생기면서 번역에 불이 붙었다. 이 책에는 저자들이 번역 강의를 했다는 얘기만 나오고 어디서 했다는 얘기는 안 나오는데 아마도 통번역대학원이겠지.
5. 번역작업은 기본적으로 책과 글을 사랑해야겠지만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먹고살 수 있는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번역가는 프리랜서이고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사람인데, 일의 보람-재미도 돈(수입)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 책에도 계속해서 번역작업으로 얻는 소득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고 언급되는데 번역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출판업계가 전체가 그렇다. 작가 번역자 편집자 인쇄업자 출판업자도 그렇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 인구가 점차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번역료를 높게 받도자 하는 것은 개인적인 욕심인가, 모국어 인구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번역가의 운명인가?” 하고 저자들은 한탄한다. 하기야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다 보면 누구도 한번 보지 않은 책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나의 번역이 그 책을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고 “절대적 수입이 내 일이나 나의 가치를 정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이 충만했다. 어느 직업이든 이런 자긍심은 필수겠다.
6. 그런데 책 제목에서 ‘어긋난다’고 했는데 뭐가 어긋나지? 영어 원문과 번역가의 번역이 모두 “적절히 어울리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번역가가 가끔 의역을 하여 “아름답게 어긋난 생태로 남기려”는 용기에 대해서 언급한다. 번역자의 섬세한 고뇌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갑-을’ 관계에 있는 번역자와 편집자의 밀고 땡기는 상황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한다. 이것은 서로 좋은 번역을 위한 과정이지만 편집자의 의도에 맞추어야 하는 아무래도 을의 처지인 번역가의 처지에 동정이 간다.
하기야 이처럼 명망 있는 번역가들을 섭외하는 출판사는 그래도 나름 명망 있는 출판사일 것이다. 예전에는 번역은 물론 편집도 제본도 엉터리인 책들이 많았다.
6. 두 작가가 번역 일을 계속하고, 이런 친근하고 부담 없고 재미있는 글을 쓰면서, 우리 출판계와 문학계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