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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190602 주일오전예배/ 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달리다굼 |
성경 | 마가복음 5:21-24, 35-43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 (마가복음 5:21-24, 35-43)
21.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35.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녹취자료 |
사람은 누구든지 성공자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세상의 성공자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의 신화를 썼죠. 그때 운동장에 붙여놨던 플랜카드를 보면 꿈은 이루어진다에 열광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자랑스런 한국인들이 요즘 많이 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 추신수 또 영국 토트넘의 손흥민, 방탄소년단이라든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은 봉준호감독이 있죠. 이분들이 한국인의 자존심을 많이 세워주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멋있는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그러나 세상 사람이 가지는 모든 꿈들은 전부 창세기 3,6,11장에서 나오는 꿈들입니다. 다 나 중심이죠. 사단이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그 말처럼 내가 내 중심으로 내 노력으로 내가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 속에 빠지게 되죠.
사람은 사실 꿈이 있어야 살맛이 납니다. 꿈이 없으면 삶의 소망이 끊어지죠. 반드시 우리는 꿈을 가져야 이 꿈이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폐망하고 일본의 젊은이들이 전부 꿈을 잃어버렸어요. 그때 그들에게 불어닥친 운동이 바로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 그래서 일본이 다시금 힘을 얻고 경제대공황을 이기는 역사적인 사건들도 있죠. 우리나라가 가난한 속에 소망이 없는 우리 민족에게 박정희가 독제도 했지만 일어나서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운동을 펼친 것이 오늘 날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했죠. 이처럼 꿈이라는 것은 힘과 용기를 주는 묘약이 됩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이 희망을 심어 주는 거죠. 이 꿈이 그 혹독한 훈련의 과정들과 어려움을 뛰어넘도록 만들어줍니다. 이것 또한 꿈의 힘이죠.
그러나 이 모든 꿈의 배경은 사단이 준 꿈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인생의 모든 꿈이 다 무너지고 만 것이죠. 그때 사단이 우리들에게 가짜 꿈을 꾸도록 던져준 것이 창세기 3,6,11장인 겁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고 네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꿈을 꾸라고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키면 얼마든지 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사단이 심어준 거짓 꿈들입니다. 이 꿈을 쥐고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도 하고 부자도 되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꿈으로 세상의 성공도 하고 부자가 되고 명예를 다 가졌는데도 하나님 떠난 인간에게는 참 행복이 없어요. 성공 뒤에 수많은 영적문제들이 찾아오는 겁니다. 우울증, 공황장애, 중독 속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버니썬 사건처럼 광란의 파티를 해야 하는... 제가 만난 분 중에 돈을 3조억을 가진 분이 이었어요. 여러분 상상이 됩니까? 이분이 돈을 가지고서 정말 호화롭게 살았는데 어느날 우울증이 오는 겁니다. 자신은 한국판 빌게이츠라고 인정받을 만큼 성공을 했는데 남는 것은 행복도 평안도 없어요. 우리는 사단이 주는 꿈 자체에 그 꿈의 밑바닥 자체에는 그 꿈을 이루어도 참 행복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신자들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는데도 여전히 무슨꿈을 꾸죠? 부자꿈을 꿔서 성공꿈을 꾸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참된 꿈을 꿔야합니다. 언약의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정말 맞습니까? 오직 예수 이 안에서 나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정말 이 언약 잡을 때 오직 하나님 나라를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약속해주신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누리게 되면 우리의 눈이 열려서 세상 사람들이 틀린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보이는 겁니다. 틀린 꿈을 갖고서 세상에서 경쟁하면서 성공은 했는데 그 후에 영적문제가 찾아오면 또다시 무속에 종교에 빠지게 되고 불신자 상태 6가지가 그 인생을 지배하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새로운 꿈을 꿔야합니다. 왜 우리가 예배드리며 왜 우리가 말씀 묵상을 해야하는가? 바로 이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는 것인가? 진짜 꿈을 주시는 시간이 예배시간인 겁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뭘 주었나요? 새로운 꿈을 주셨어요. 이 꿈 하나가지고서 요셉은 완전 승리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이 꿈이 내 속에 형상화되기까지 정말 말씀 언약잡고서 정시기도, 무시기도,집 중기도로 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꿈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성취시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은 실천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사업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들도 전부 이 속에서 해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성공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참 성공자의 길을 걸어가도록 참된 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서밋으로 세워서 세상에 답을 줄 수 있는 자로 만들어주고 그 기능을 최고로 만들어주고 문화서밋으로서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진짜 꿈을 꿔야합니다. 세상의 성공은 아무리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고 하더라고 흑암세력이 꺾이지 않아요. 인생에 찾아오는 흑암과 재앙 앞에 피할길 자체가 없어요. 내 인생에 왜 이런 재앙이 찾아온 것인가? 빗겨지나가지 않는 겁니다. 오늘 예배시간에 우리는 뭘 찾아야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참된 꿈을 오늘 찾아야합니다.
1.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죠. 야이로는 회당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회당이라는 제도는 유대인 민족이 바벨론 민족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 곳에 성전이 없으니까 유대민족들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고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회당제도입니다. 회당에서는 피제사를 드릴 수는 없어요. 성전이 아니니까.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 묵상하고 기도라고 바로 이 현장이 후대를 키우는 교회현장이 되었고 바로 유대민족의 생활 공동체의 역할을 한 것이 회당입니다. 회당에서는 피제사를 드릴 수가 없어요. 성전이 아니니까요.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묵상하고 기도하는 이 현장에서 후대를 키우는 교육의 현장이요, 유대민족의 생활공동체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이 회당이 지금까지도 존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메시지에는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던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장면이 오늘 본문 속에 나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2-23절에 보면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바로 예수님이 병든 내 딸에게 손을 얹으시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의 꿈을 가지고 찾아온 겁니다. 그리고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그 여인의 손가락 끝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닿았을 때 치유되는 놀라운 증거를 봤거든요. 그렇다! 예수님이 병든 내 딸에게 손만 얹으시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거예요. 그런데 변수가 생긴 겁니다.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당신 딸이 죽었다고,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전했어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야이로의 꿈이 와르르 무너져버렸어요. 산산 조각이 났어요. 그 때 이 야이로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 보니 사람들이 떠들고 가족들은 울면서 통곡합니다. 실제로 딸이 죽은 겁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했는데 이게 안 믿어지는 겁니다. 사실 자기 딸이 죽어버렸거든요. 다시 살아나리라는 상상은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신앙고백합니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우리가 고백합니다. 입술로 예수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요, 해결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문제가 생기게 되면 안 믿어지는 거죠. 회당장 야이로는 병든 딸은 예수님이 낫게 하실 수 있어도, 죽은 딸은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안 생겼던 거죠. 왜 안 생겼을까요? 지금까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예수가 그리스도가 정말 맞습니까? 예수가 정말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찬양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내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내 문제만큼은 안 된다고, 스스로 꿈을 접는 거죠. 왜? 지금까지 안되어 왔으니까! 스스로 불신앙 속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내 자식은 변화되지 않을 거야’, ‘내 병은 낫지 않을거야’, ‘우리 가정은 경제문제 회복되지 않을거야’... 그 불신앙이 깨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가 그리스도가 정말 맞는데도 불신앙이 나를 가로 막게 될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이 퍼부어지고,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죠. 홍해를 갈라서 육지처럼 건너서 왔어요. 그리고 만나를 먹고 가면서 이 백성들이 울면서 고기를 내놓으라고 이야기 합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모세가 기가 막히는 거죠.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아니 하나님, 이 백성들을 내 자녀입니까? 내가 낳았습니까? 나보고 고기를 달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줍니까?”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마라, 내가 고기를 주어서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질리도록 먹게 만들어서 코에 냄새나게 먹도록 해 주겠다”라고 하셨어요. 모세가 깜짝 놀랐어요. “아니, 하나님, 바다에 고기를 다 잡아온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을 다 잡아봤자 일주일도 못 먹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먹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민수기 11장 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우리는 현실의 한계에 묶여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대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겁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단산된 아내의 태를 열어서 자식을 주겠다고 했는데 사라가 안 믿었어요. 하나님이 사라에게 말씀하셨어요. 여호와께 능치못할 일이 있겠느냐라고... 우리의 문제는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내 인생의 문제는 안 된다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은 나에게 주님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0장 27절 이하를 제가 성시낭독하면서 이 부분을 낭독을 했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바로 네 기도의 대상자는 누구냐? 그분이 전능자가 아니냐? 창조주가 아니냐?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합니다. 내가 믿는 내 아버지 하나님, 나를 건져 구원하시는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분 안에서 히브리서 11장 1절에 있는 것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꿈을 우리가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하시면 맞는 것이다.
2.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외는 따라 옴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외는 따라 옴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야이로 집에 가는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인데 그 가운데 3명만 데리고 예수님께서 그 부모와 함께 죽은 야이로의 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죠. 마태복음 17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도 이때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명만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지 않으셨을까요? 이것은 차별이 아니고 구별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을 차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별하셔서 선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9명의 제자는 싫어하고 3명만 사랑했다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누가? 쓰임받는 것인가? 하는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역사를 위하여서 사람을 선별하여 사용하십니다.
이삭이 두 아들을 낳았죠. 에서와 야곱인데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하셨나요? 야곱을 쓰셨어요. 야곱의 12아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셨어요. 이새의 8아들 가운데서 막내아들 다윗을 하나님은 사용하셨어요. 하나님이 나를 쓰시지 않는다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왜 나를 차별하시느냐고 항의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절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서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안쓰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점검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역사에 합당한자를 지금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역대하 16장 9절 말씀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둘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찾고계세요. 사도행전 13장 22절 말씀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가 그를 통하여서 내 뜻을 하나님 당신의 꿈을 이루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 입니까? 하나님이 그 인생을 사용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복음 누림과 전도자로 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은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합당한 그릇으로 나를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5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20절 말씀에서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러분 예배드리러 왜 오셨나요? 뭐하기 위하여서?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서. 이제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왜 영적서밋의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요? 왜 공식예배에 성공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인가요? 하나님이 쓰시기 합당하신 그릇으로 나를 다듬어 가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듬어 가는 자는 뭐 할 수 있나요? 그 자에게는 복음의 누림의 증거들이 오게 되요. 복음 증인의 증거들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못 누리면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불신자 상태 6가지는 인생가운데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서도 그 인생을 실패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이 복음 증인으로 나를 사용하시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언약의 여정을 걷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밖에 없는 그 조건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이 바로 언약의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 명의 제자는 바로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는 그 현장 속에 예수님께서 데리고 가셨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변화 받는 변화산상에도 이들을 주님이 데려가셔서 체험케하셨어요. 우리 하나님 앞에 그릇이 준비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뭐 하시겠다고요? 이와 같이 내 인생을 쓰시겠다고 그분이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서 우리는 예배의 태도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 이하를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증인의 삶을 살면서 그 가슴속에 있는 결론의 메시지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게 되었을 때에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서 정말 하나님의 뜻, 그 속에 들어가는 예배를 드려라. 그게 영적 예배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정말 분별할 수 있는 참 예배를 드려라. 하나님이 그 예배를 통해 내게 무엇을 주시겠다고요? 정말 꿈을 주셔서 언약의 여정을 걸어가도록 내 인생을 이끄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면서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거룩한 산 제사로 주님 앞에 정말 주님이 주시는 그 꿈을, 그 선하신 뜻으로 들어가는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성공자가 신앙생활에 성공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매 예배시간 마다 오전예배나 오후예배나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 시간에 정말 이 마음을 갖고서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꿈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3.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주님이 오늘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심히 떠들고 통곡하는 장면을 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떠들고 우느냐? 아이가 죽은 것이 잔다고 했더니 그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뭐 했다고요? 비웃었어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잔다고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1절에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내가 깨우러 간다고 말씀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말씀을 보면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죽음을 예수님이 뭐라고 표현했나요? 잔다고 표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말씀에서도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는 자들. 잔다는 말은 뭐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깨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깬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딸이 살아나는 것을 무엇으로 보는 것입니까?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봤을 때는 죽은 것이 아니고 뭐하는 것입니까? 자는 것입니다. 자는 것은 깨우면 되잖아요.
자,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무엇으로 보는 것입니까? 죽었다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인생의 문제를 무엇으로 보신다고요? 잔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이 없고 다 끝났다고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기로 결단하고 칼을 뽑아서 그 이삭의 가슴에 칼을 내리 꽂죠. 자, 그때를 주고서 히브리서에서 표현하기를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다고요? 이 자식을 죽여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이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을 이룰 것을 믿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을 믿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오셨나요? 주님이 말씀을 합니다. 죽지 않았다고 말씀을 합니다. 죽은 것이 아니고 잔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봤을 때는 완전히 절대불가능이지만 주님은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녀가 언제 일어났나요? 달리다굼 할 때에. 내가 네게 명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예수님의 입에서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소녀에게 생명이 들어가고 그 아이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천지만물을 무엇으로 창조하셨나요?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 하셨습니다. 소녀를 깨어나게 만드는데 예수님이 사용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오직 하나, 말씀만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서 소녀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자, 우리가 언약의 꿈을 꿔야 합니다. 꿈을 이루는 하나님의 방편이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을 믿을 때에 그 말씀을 통하여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가 가득 찼어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다귀를 보여주시며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완전히 말라 비틀어져서 죽었어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대언의 영을 넣어주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에스겔이 대신 뼈들에게 선포하게 될 때 그 뼈들이 전부 각자마다 짝을 찾게 되고 그 안에 살에 채워지고 살갗이 덮히고 생기에 명하여서 그 마른 뼈다귀가 큰 군대를 이루는 장면을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내 문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다고 죽었다고 생각을 합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합니다. 잔다고 말씀을 합니다. 내가 깨우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히브리서 4장 2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혼과 영과 심령과 골수와 마음과 생각까지 다 치유하는 증거가 어디에 있다고요? 말씀에 있다고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믿을 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지고 그 때 흑암세력이 결박 당하고, 말씀 성취를 위하여서 하늘의 천사가 동원되게 되지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약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지식이나 복음을 아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동안에 수없이 복음을 듣고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끝나진다면은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 교회는 다니지만은 찬송은 부르지만은 예배는 드리지만은 또다른 종교생활을 우리가 하게 되는 겁니다. 기록된 성경을 우리가 로고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씀이 내 마음에 믿음으로 와 닿는 그 상태를 두고서 우리는 레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말씀이 내 속에 메시지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을 듣는 중에, 그렇다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은 되겠구나 하는 그 믿음이 온 겁니다. 그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잖아요. 밤비 맞도록 수고하여 얻은 거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우리는 뭐가 와야 되는 겁니까? 설교말씀을 듣게 되졌을 때에, 강단의 메시지를 듣게 되졌을 때에 내 마음에 ‘그렇다!’ 이것이 내 마음에 와야 되는 겁니다.
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라고 강조하는 것인가? 그 말씀이 내 마음 속에 무엇으로? 메시지가 되게 만들기 위하여서.. 다른 말로 하면 레마로 믿음으로 내 속에 참된 꿈으로 오도록 우리가 뭐하라는 이야기입니까? 그것 묵상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무리 메시지를 들어도요 이것이 내 속에 레마가 되지 않는다면은, 이것이 꿈으로 내 속에 잡혀지지 않는다면은, 그것은 여전히 나와 상관이 없는 메시지로 끝나지게 되는 겁니다. 복음의 말씀이 믿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절대불가능이 절대가능으로 바뀌어지는 순간이 되는 겁니다.
바로 이 믿음이 주어지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입니다.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말씀을 드리게 되졌을 때에 이 믿음이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조카 롯을 내보낸 이후에 지난주 메시지에 나왔죠?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수풀 밑에서 뭐한 것입니까?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전혀 기도에 힘쓰게 되졌을 때에 그 말씀이 꿈으로 확신으로 아브라함에게 들어가게 되졌어요. 그때 뭐가 일어난 것입니까? 318명의 가신을 거느릴만큼 하나님이 거부가 되게 만들어 주셨어요. 요셉은 언제요? 할아버지 이삭과 아버지 야곱을 통하여 받았던 그 가난의 언약의 메시지를 담았는데.. 현실은 너무 힘들어요. 형들이 집단으로 괴롭혀요. 그 속에서 요셉은 뭐했나요? 이 언약의 말씀을.. 이것을 붙들고 기도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요셉에게 무엇을 주었나요? 곡식단이 절하며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게 되지는 이 꿈을 요셉이 가진 것이에요. 이 꿈이 얼마나 확실했던 것인지, 노예되고 감옥에 갇혀져도 이 꿈이 쇠하여지지 않아요. 이 꿈을 가지고서 승리했잖아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세상이 말하는 그런 꿈 종류들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참된 꿈, 이 꿈을 우리가 꾸어야 되는 겁니다. 99%의 신자들이 왜 실패하나요? 이 꿈을 놓쳤어요. 그리고 안되니까 세상의 꿈을 따라가게 되지는.. 이제는 우리 속에 무슨 꿈이 와야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주시는 그 꿈.. 그 꿈 따라 걸어가는 것이, 그것이 언약의 여정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그 꿈이 내 속에 믿음으로 와닿게 되졌을 때에 절대 불가능을 절대 가능으로 바꾸게 되지는 이 역사를 우리가 체험케 되질 것입니다. 이 믿음을 회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꿈은 이루어집니다. 어떤 꿈을 꾸던지 최선을 다하면 꿈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갖는 그 꿈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적인 꿈을 꿀수 있도록 주님이 저희를 권고하여 주옵소서. 야이로의 마음에는 병든 딸은 나을 수 있다는 이 믿음을 가졌지만은 죽은 딸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믿음 회복하는 이 한시간 삼아 주옵시고, 말씀이 선포 되졌을 때에 그 야이로의 딸이 살아났던 것처럼 이제 이 말씀이 나로 하여금 내 속에 정말 각인 되졌을 때에 이 말씀의 역사가 레마로 내 속에 와닿게 되졌을 때에 이 역사를 이루겠다고 저희들에게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정말 이 언약의 말씀이 내 마음에 새겨지게 되지는 참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꿈을 꿀 수 있는 예배가 되도록 시간 시간마다 주께서 저희를 권고하여 주옵소서.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정말 이 꿈을 이루는 곳에 저희 인생이 쓰임받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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