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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가을이 깊어 가고 있구나.
친구야! 하나님이 한 인간에게 쏟은 사랑과 계획이 너무 놀랍고 귀하기에 네게 얘길하려고 이 편지를 쓴단다.
자 지금부터 나와 함께 시간속 여행을 떠나보자 준비됐니?
이 여행은 아무것도 필요 없어 돈 극정도 물론 할 필요 없고 마음의 준비만 하면 돼.
하나 둘 셋
아직 화약 냄새가 묻어 있는 경남 고성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그는 태어났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는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여기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돼.
그의 아버지는 소작농을 하면서 늘 생활고에 시달려 대 식구 먹여 살리느라 전전긍긍하셨지
그래도 새 생명의 탄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주관하시니 귀하고 소중했지
하지만 그의 운명을 바꿔 놓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어.
그가 돌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그의 고모가 그를 엎다가 뒤로 떨어트리는 바람에 놀라 경기가 들었는데 어른들에게 말을 못 한게 불행은 시작 되었지
온몸이 불등이 같이 달아오르고 젖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울기만 하기를 며칠 급기아는 눈동자까지 뒤집히는 날에야 어머니는 손을 씃는데 이미 때는 늦은 후라 이 병원 저 병원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지
울며불며 살릴 길을 찾아다니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또 다른 병원으로 인도하셨지 그기서도 NO라고 하면 그의 어머니는 더 이상 희망없이 한 생명을 보내야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쏟는 놀라운 사랑과 계획을 어떻게 다 알겠니
그 의사는 주사를 놔주고 약을 지어 주면서 “이것 먹여서 잘 자면 산거고 안자고 계속 울면 조용히 준비하세요.”다음날 그는 회생했고 어머니는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가 보이고 의사는 “이대로 두면 장차 육신이 올치 않을 터이니 한약을 한제 먹이도록 하세요.”
집으로 와서 가족들에게 얘기를 했는데 시부모의 불호령만 맞고 말았지
그 후 몇 년이 지났고 그들의 시구들은 대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의 몸은 장애가 나타나 말은 물론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의 가정은 하루도 불화가 없는 날이 없었지 그의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다른 여자까지 얻어 삶림을 차리게 되자 그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밑바닥을 허덕였지
친구야 네가 봐도 어때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면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악수난이 거듭 되는 것이란다.
우리 주님은 몇 번을 그와 그 가정에 주님을 알도록 주의 종 현신애권사님과 박실례권사님의 손길로 통하여 주님은 그와 그의 가정을 부르시고 찾으셨지만 그때마다 외면하고 안 믿었지
마치 예수님 당시 수많은 무리가 모여서 주님의 그 말씀과 능력으로 병고침 받고 기쁘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자비와 긍휼을 인정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처럼 그와 그 가정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근심과 탄식속에 사춘기로 접어들게 되자 조금씩 더 그의 의식은 자아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쌓이게 되었지
하루도 그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독과 슬픔속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면서 그나마 왼발이 조금 움직일 수 있어 발로 그의 어머니가 하는 부업을 도왔던 것이 발가락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앞정 만드는데 못을 꼽는 일 건빵봉투 접는 일 그의 어머니가 하는 일이라면 작지만 앉아서 발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작은 것이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도 여전히 민생고는 밑바닥을 면기 어려웠지만 그는 그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데 삶의 의미를 조금 찾게 되어 한 때는 기쁨으로 지낼 수 있었지
친구야 사람에게는 의식주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고 꿈을 가꿔 갈 수 없다면 그것보다 답답하고 절망적인 게 없단다
그는 한동안 자기도 일을 하고 가족에게 작은 보탬이 된다는 생각은 잠깐이었고 그것이 끝이 없는 절망을 해처 나갈 실마리로 잡기에는 너무도 작은 것이기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 또 다시 괴로움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엎친데 겹친 격으로 그가 열일곱의 늦겨울이 봄의 입김과 실갱이를 벌리고 있던 어느 날 그날도 여전히 아침부터 그의 앞집 현주네 아버지는 현주의 두 손을 잡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지.
그는 현주네가 이사 온지 며칠 안돼 현주네 아버지는 출근하기 전에 30분 정도 아홉 살짜리 딸아이가 뇌성마비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딸애를 매일 아침마다 골목을 한 바퀴 돌고는 회사로 갔지.
그 엄마 말에 의하면 벌서 2년째 그렇게 해왔더니 너무 좋아지고 있다고 자랑처럼 늘어놓으면서 자기 아이는 낳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동그란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가 봄 햇살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지.
그 당시 그는 혼자 잃어서기는 커녕 밥 한술 제대로 못 떠먹는 신세였고 열일곱이 되도록 그는 아버지의 눈길한번 제대로 못 받고 살았는데 ‘세상에는 저런 부모가 다 있구나.’
그의 맘 한구석은 너무 부러웠고 또 한 편에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미운 마음이 북받첬지.
장애자식을 둔 부모는 다 그를 대하는 아버지처럼 무관심하고 자식에 대한 애착이 없는 줄 알았던 그에게는 무척 큰 충격이었지 어쩌면 저른 부모가 다 있을까
처절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가슴에서 북 받치는 서러움과 분한 맘이 너무도 크게 차 있어 견딜 수 없었지
아는 것이 병이라 했든가 차라리 몰랐으면 아직도 그의 부모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의 상상은 한발 더 낳아가 세상에는 앞집 아저씨보다 훨씬 낳은 부모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더 부모의 대한 원망이 크저만 갔지.
하루는 앞집 아주머니가 그의 엄마와 얘기하던 중에 대신동 가면 유명한 의원이 있는데 내일 자기 딸을 되리고 가는데 같이 가보자고 말을 했지.
그의 어머니는 돈 걱정을 하면서도 그의 병이 낮게만 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냐는 말을 남기면서 그의 등을 어러 만져 주셨지.
아버지가 어머니 마음 반만 하였어도 그의 몸이 많이 좋아젔을 텐데
그래도 내일 의원한테 가게 된다는 부푼 기대감 때문에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지
그가 낳으면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할까 신도 사달라고 신고 저 넓은 들판을 뛰어 다녀볼까 아니면 다른 아이들과 책가방 매고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여름 방학이면 잠자리채 매미채 들고 다니면서 곤충 채집도 해야지 이런 저런 생각에 신이 났지
어둡기만 하던 마음속에 한줄기 새벽빛이 드리워지고 있었지.
먼동이 트면 그는 비상의 나래를 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샜고 그의 어머니는 아침부터 분주히 오가며 식구를 챙겨 주고 나서 그에게 새 옷도 갈아 입펴서 그를 엎고 앞집으로 달려가서 아주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ㅇㅇ아 네가 낳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하겠노.” “어서 나오이소 뭐하요?”
그의 마음보다 어머니가 더 조바심을 내셨지
봄 햇살에 피어난 아지랑이가 그들의 발길을 재촉하는 듯 손짓하고 있었지.
차창가로 봄꽃들이 하나 둘씩 피어 그들의 길을 환호하고 있을 때 일행은 골목으로 접어들어 이층 양옥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지.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의원 앞에서 차래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을 때 그들의 차래가 돌아왔고 그들은 심판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숨죽이며 진찰이 끝나도록 기다리며 의원의 입에서 나올 한마디 말을 기대하고 있었지.
“잘 왔습니다만 아주머니 딸은 나이가 어려 신경과 건육이 아직 굳지 않아 치료가 가능한데 아주머니 아들은 너무 오래 되어 치료를 해도 별 효과를 못 보겠네요.”
그의 어머니와 그는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귀를 의심하며 한 번 더 말해 달라 했지만 대답은 같았어.
어머니 등에 엎여 나오는 길이 무덤으로 가는 길보다 더 괴롭고 힘들었고 사형선고 보다 더 견디기 힘든 말이었지
그의 어머니 역시 그를 엎은 다리가 힘이 풀려 걷지를 못하고 몇 발자국 가다 쉬고 앞집 아주머니가 붙잡아 잃어켜 또 몇 발자국 걷다 주저 않고 말았지.
“엄마 나는 어떻해 엄마 나는 어떻해........”절망적인 절규의 눈물을 쏟으며 몸부림 처봤지만 달라질건 없고 오히려 슬픔만 더할 뿐
평생 자신의 손으로 숟가락질 한번 못하고 자기 발로 화장실 한번 못가고 나무토막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절망을 느끼게 했지
살아 있음에 아름답고 살아 있어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의미가 되는 그런 순간을 단 한번이라도 마지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거침돌로 생을 맡처야 하다니.
어머니와 그는 집으로 돌아와 울고 또 울어도 막막한 그의 앞날은 길이 보이지 않았어.
언젠가 병원에서 내 병을 치료 받으면 낳을 수 있다는 기대는 막연하나마 희망의 빛이었는데 이제는 그 빛마저 사라져 버렸고 열일곱의 나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좌절만이 그의 몫으로 남아 무겁게 했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밥도 먹지 않고 끝없이 밀려오는 절망과 힘겨운 싸움은 더 이상 삶에 대해 구차스럽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길은 오직 외길뿐이라는 걸 알고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어떻게 쉽게 그리고 신속에게 죽을 수 있을까 하는데 온 신경을 쏟았지.
그 외길은 오히려 그에게 평화로웠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의 짐을 벗어 놓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지
친구야 참 답답하지 않니?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진작 알고 깨달았다면 그처럼 엄청난 수렁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그는 결국 죽는 길이야 말로 그에게 가장 정직 길이라고 생각했고 온 가족을 위해 최고의 선물이라고 믿었지
날마다 죽을 연구를 해나가기를 며칠이 지나고 또 몇 주가 지나도 더욱 확실해 오는 건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았지
그리고 죽는 방법을 연구하고 찾았지만 몸이 불편하여 밖에도 못나가고 돈도 없어 약을 산다는 건 엄두도 못 냈고 목을 매는 일도 혼자 아무리 기를 쓰도 높은 곳에 끊을 묵을 수가 없었지 또 하나 방법은 동맥을 끈는 일인데 손을 쓸 수 없으니 그것마저 안 되는 일.
죽는 것도 중층 장애인에게는 마음대로 못하는 일임을 그는 알게 되자 더 절망과 좌절속에 나날을 보내면서 마른 나뭇잎 새처럼 맘이 매말라 갔지
허성 세월은 한없이 계속될 것 같은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 왔어
하나님이 주검까지 막으신 그 사랑 정말 그 사랑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결사 주검을 굳치고 이번에는 가장 쉬운 방법을 찾았지
그것은 생명을 놓고 하나님과 힘 겨누기라도 하듯 야곱이 약보강가에서 사투를 벌리듯이 야곱은 살려고 하나님과 사투를 벌렸지만 그는 죽으려고 사투를 벌렸지
하나님은 어떻게 하던 살리려고 애를 쓰셨고 그는 틈만 있으면 생명의 끈을 끊기 위해 연구를 하던 어느 여름날 그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
한 형제에게 미수가루가 먹고 싶다고 물 안탄 가루를 한숫갈을 입에 넣어 달래서 입에 머금고는 방으로 가서 이윽고 숨을 들이마심과 동시에 입속에 있던 가루가 호홉기를 막는 순간 기침과 발버둥을 치면서 고통과 답답함을 느끼며 ‘아 이것이 죽는 것이구나 이제는 죽었구나.’ 온몸은 본능적인 몸부림에 소동이 벌리고 있을 때 형제들이 달려와 등도 두드리고 물도 마셔주는 바람에 다시 살아나게 되었지
그는 형제들을 원망하며 왜 살아나게 했냐고 앙탈을 부리며 하염없이 울었지
그렇게 하면 할수록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갔고 우울 층도 생겨 하루 종일 말한마디 안하고 생활한게 수 계월 사람은 너무 오래 혼자 고민에 빼지게 되면 정신까지 망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게 되었고 혼자 웃기도 잘하게 되었지
그렇게 그의 삶은 날이 갈수록 해어날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 갖지
형은 그가 웃는 의미도 모르고 “네가 뭐가 좋아 웃냐. 울어도 시원찮을 놈이”구박을 주곤 동생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가 왜 웃고 있는지 자기들 생활에 열중할 뿐, 동생에게는 관심이 없었어.
날마다 그른 생활이 반복 되는 가운데 그는 또 다른 의식 속에는 막연하나마 뭔가를 갈구하며 삶의 의미를 느껴 보고 싶어서 18살에 혼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거지
형제들이 책 잃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다 나가고 나면 그책을 혼자 보면서 좀전에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여 내 책에 글자와 맞추어 가며 한글을 배워나갖지 역시 놀라는 건 어머니였지 누가 가르처 줘서 안 것도 아니라 더욱 감격해 하시는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떤 모양으로 서던 맘 아픈 건 어쩔 수 없었지
바로 이런 것이 어머니 마음이고 하나님의 맘이 아니겠니
한때는 가족들 간에 관심꺼리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그를 위해 돕는 가족은 없었고 오히려 그의 할머니는 그가 책을 보거나 발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달려와 책도 빼앗고 때리기도 하면서 “니가 공부해서 뭐할래 어디 쓰먹을래 판사가 될래 대통령이 될래 쓸때없이 하지마라”
그는 그른 핍박을 받으며 맘속에는 이것마저 못한다면 더 큰 절망의 늪에서 ㅐ어나지 못할 것같은 어쩌면 그가 글을 배우는 것은 생명을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생각했지
손으로는 연필을 잡을 수없어 외발 엄지와 금지 사이에 연필을 끼워 쓰봤지만 처음에는 무슨 글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양이 안났지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고 단 몇 달 만에 한글을 다 배우게 되었고 그 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책을 보고 한문도 조금씩 배워 나갔지
그는 또 혼자 운동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손가락 하나 펴기부터 시작하여 무릎 관절 펴기 운동도 쉬지 않고 해 나갔지 20여년을 마른 막대기같이 굳어진 관절을 치료한번 없이 편다는 것은 그야말로 짤라내는 고통만큼이나 힘들었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든가 날마다 삶과 주검이 그의 마음속에 ㅅ거로 자리다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든 어느 날 이웃 아주머니가 그의 집에 놀로 와서 얘기하는 가운데 자기 딸아이가 위암말기였는데 기도원에 신유의 은사를 받은 권사님의 기도 받고 낳았다며 그를 그곳에 되려가서 안수 기도한번 받도록 해 보라고 그 어머니한테 전도했더니 그의 어머니는 이제는 안된다고 하다가 계속적인 권유에 못 이겨 반신반의로 그를 되리고 간곳은 실래채육관 뒤편에 있는 수도산 기도원이었지
그곳에는 세상의학으로는 가망이 없는 많은 환자들이 그 당시에 암, 백혈병, 나병, 간질, 뇌막염, 패병 하여간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 환자들이 운집하여 주님이 치유해 주실 날을 소망하고 있는 사람들뿐이었지
거기서 그는 1년을 기거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고 나아가는 사람을 보았고 믿음이 부족하여 죽어 나가는 사람도 보면서 베드로의 말씀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지
그리고 그는 어느 날 안수 기도를 받는 순간 하염없는 회계의 눈물을 쏟게 되었고 주님앞에 잘못을 낱낱이 고백하고 나서 그의 맘속에는 너무 큰 평화를 찾게 되었고 신앙생활도 아주 뜨겁게 하는 가운데 성령 체험하고 난 뒤 그의 몸은 날로 날로 좋아지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지
평생 자기 손으로 숟가락질 한번 못할 줄 알았는데 23살에 어설프게나마 자기 손으로 밥을 먹게 되자 너무도 기쁨이 충만해서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좋아 젔다고, 세상 의학으로는 도저히 안된다 하던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23년만에 숟가락질도 하게 되었다라고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소망이 넘치는 삶인지 주님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누군가 붙잡아 줘도 일어서기 어려워하던 그의 다리가 어느새 힘을 얻어 아무것도 안잡고 화장실을 다녀올 정도로 좋아진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이보다 더 보람찬 생활이 어디 있으며 그것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였고 집에 가족들은 그를 집으로 돌아오라고 성화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지 왜냐면 돈도 들고 아침저녁으로 집에서 밥을 날러주는 그의 어머니가 힘들다며 집으로 돌아오라고 졸룯는 바람에 결국은 모든 것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교회로 나가도록 해 달라고 가족들한테 간절히 부탁하여 허락 받고 기도원에서 1년간의 생활을 마감하고 집에서 가까운 교회로 연락해서 신방을 한번 와줄 것을 요청했다.
그 당시 그의 집 사정은 그의 아버지가 정년퇴직하여 장갑기계를 몇 대를 놓고 가내공업을 하면서 온 식구가 그 일에 매달려 일을 했다
그는 그 일을 시작하는 날부터 밤일은 그가 자청하여 맡고 일을 하게 되었지
기계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서도 간단한 조작만 아버지에게 배워 난생처음 야간작업을 하고 나오는 아침에 그의 아버지는 작은 집에서 돌아와 그가 일 해 놓은 것을 보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에게 “잠자게 해줘라 불쌍한 내 자식 나는 지한태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데 사람 안줄 알았는데..........”
그는 그때만큼 보람 있고 기쁜 날이 없었지 왜냐하면 이제야 비로소 한 식구로 인정 받았던거지 정로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지 늘 무섭게 느껴지던 아버지 아버지 모습만 봐도 급에 질려 언제 무슨 화가 돌아 와 그를 괴롭게 할지 항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던 그 아버지가 이제 두려움이 아니라 부자지간의 회복이 시작된 것이지
이것도 하나님이 회복의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니고 뭐겠니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교회에서 신방을 왔고 예배와 상담을 하고 나서 교회 나올 방법이 없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그는 또 하번 좌절을 맛보았지
하지만 그 좌절은 예전처럼 절망은 아니었어 이미 그 마음속에 믿음이 생겼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를 이대로 내버려 두진 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
역시나 하나님은 이미 준비 해 놓으신 사람이 있었지
주일 아침에 누군가 나를 찾아 왔다는 말에 그는 놀랐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를 만나려 찾아 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일상적이나 그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지
대문으로 들어 온 사람은 30대 쭘 되 보이는 여자였고 그 여인은 일주일간 새벽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를 도우라는 주님의 계시를 거절할 수 없어 왔다고 했지
그때부터 그 여인(유춘봉집사님)과 매주 교회를 나가게 되어 얼마나 기쁨 넘치는 생활이었는지 밤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공부를 하면서 문학의 꿈을 가꾸어 가고 있었지
그의 아버지는 낮에 일을 하고 밤에는 작은집에 가셨기 떼문에 야간작업은 그의 몫으로 밤에는 그가 작업을 해야만 했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하다가 교회를 수요일과 주일을 나가게 되는 바람에 주 3일은 어머니가 밤샘작업을 하셨지
왜냐면 그는 수요일 예배하고 다음날 새벽예배까지 드리면서 철야기도를 하고 왔고 토요일날 교회가서 주일 하루 금식하면서 주일을 지키고 월요일 아침에 집에 돌아와 밥을 먹으면 밥맛이 너무 맛있고 배탈도 나지 않았지
그렇게 몇 계월을 즐겁고 살아 있어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며 지나오는 동안 가족들은 그가 교회 다니니 일이 안된다며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했고 그 무렵 교회안에서도 이상한 소문이 떠돌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 집사님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지
참으로 황당한 일 이었어 사단의 간교는 너무도 교활했지 그 당시 이혼여란 색깔을 달리 보는 사회풍토가 문제였지
결국 그 집사님이 떠나고 나서는 교회를 못 다니게 되었고 날이 갈수록 그렇게 뜨겁던 신앙이 점차 식어 나중에는 그가 언제 예수를 믿었든가 할 정도로 맘에 평화는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괴로움과 슬픔만 가득함을 견디지 못해 술을 마시고 방탕한 생활이 시작된 것이지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장래를 생각하게 되자 부모는 평생 함께 하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그의 장래를 걱정하셨고 그 또한 뭔가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울 것을 불을 보듯 뻔한 일었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든가 한문을 많이 알아 놓은 터라 가족들은 그를 철학을 배워서 사주, 관상 궁합을 봐주면서 밥벌이나 하라고 권유를 했고 그는 그렇게 마음을 굳치고 아버지 하는 일을 도우며 틈틈이 3년을 공부하여 손님도 받아 용돈을 벌기도 했었지
그러나 그의 맘속에는 사람들의 운명이라는 게 글자 몇자 풀어 한사람의 일생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인생을 너무 무가치하게 보여 회의감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는 인생을 더 깊이 알고 싶고 근원적인 인생이 무엇인가 그것을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더 강했지
돈을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게 오는 사람들을 올은 도를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그는 손님을 대할 때 마다 더 크게 그의 맘속을 자리잡게 되었지
참 교만하고 오만한 생각이지
그는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하게 되었지
절에 들어가서 도를 딱겠다는 말에 그 가족들은 놀라움과 동시에 대책을 마련하기 급급하게 되었고 결국 그의 결심대로 일은 착착 진행되어 가던 그 찰라 10,26사태가 터지고 전 세계적으로 오일 파동이 불어 기업들이 불항을 격게 되고 그 여파가 그의 가정에도 몰아닥쳐 가내공업에 타격을 잎혀 빚만 지고 장갑공장을 문 닫게 되었지
결국 하나님이 그를 다른 길로 못가도록 치신 것인데 그는 전혀 알지 못했어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존재는 없었으니까
장갑공장이 문을 닫게 되자 다시 그의 가족들은 먹고 살기가 막막했고 게다가 빚까지 지고 보니 그의 꿈은 뒷전으로 밀려 났고 생계유지하기에 혈안이 되어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로 세월을 보내고 그의 큰 형은 날품팔이로 나섰고 그의 어머니와 형수는 밭에 나가 일당을 받고 일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처 나갔지만 그는 아무것도 가족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고 조카들 공부나 가르치는 정도 밖에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
그에게는 기도원 시절 말고는 그 나이되도록 문박 출입을 해 본적이 없어 친구도 없이 지내다가 가끔 기도원 생활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보면 그곳에서 보호자들, 봉사자들과 함께 지내며 같이 눈물도 흘리고 아픔도 나누며 하던 그 순간이 그에게는 너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었을 뿐 그 외는 친구라는 개념을 모르고 살았어.
TV도 귀하던 시절 라디오가 그의 유일한 친구였고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으면서 정보도 얻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그렇게 외롭고 힘겨운 생활을 일기로, 삼문으로, 시로 쓰던 중에 방송을 듣고 있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편지를 받아 방송해 주는 프로에 그도 우연한 계기로 보내게 되는 기회가 되어 수기를 보냈는데 그것이 방송에 나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경려 편지를 받게 되어 그에게는 신나는 일이었지
하루 일과 중에 편지 쓰는 일이 생겨 즐거웠고 누군가 그에게 관심 갔고 있다는 것이 행복했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소리없는 대화를 나누기를 수 계월이 지났을 무렵 그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어.
첫사랑이 시작된 거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난히 서울에 홍현녕자매는 그에게 이성의 눈을 뜨게 했지
그는 완전 백지상태를 간직하고 이성에 대한 만남이나 지식이 전혀없이 살아온 터라 그는 자매와 펜팔을 통하여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막연했던 그리움이 환 자매를 통하여 뭔가를 느끼면서 그의 맘속에 애절한 사랑이 봄날 새움처럼 하나 둘 식 피어났지
너무나 순백한 사랑이었기에 그만큼의 아픔도 컫지 자매는 여름휴가를 받아 그를 만나기 위해 대구 땅을 처음으로 왔고 그렇게 사랑이 짙어 가면서 그의 맘속에는 자신에 참혹한 현실이 너무 큰 아픔의 시련이 되어 그를 괴롭혔지
날마다 울고 또 울어도 그로서는 현실을 타게하며 나갈 방법이 없었지
그렇게 1년여 시간이 흘렀고 결국은 자매는 떠나버렸고 그는 너무 순고한 맘에 벋은 상처를 입고 아침이면 햇살을 봐도 괴롭고 마당에 화사하게 핀 꽃잎을 봐도 눈물이 쏟아지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싫어 몸부림 쳤지
그리고 그는 속세에서는 그가 설 곳이 없다고 판단하고 절에 들어가기를 더 원했지
이미 그때는 봉사단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지
그의 친구들도 절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이 팽배했지
그는 절에 갈 준비를 하면서 어느 절이 좋은지 그가 있을만한 곳이 있는지 여행 겸 현지답사도 다녀보고 주지스님과 면담을 하니 그가 기거하려면 1천만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집에 와서 가족회의를 한 결과 돈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
그 당시 1천만원 마련한다는 것은 상류층 집에서나 만져보는 큰 돈이었기에 그의 집처럼 가난한 집은 천문학적인 큰 돈이었지
그렇게 전전긍긍 하면서 절에 들어 갈 날만을 기다리며 봉사활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있었지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나이 32살에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고야 말았지
그해 초봄 봉사단채에서 년중 행사로 시설방문이 있었지
날씨는 매서워 나뭇가지에는 새움 트기전이어서 중층 장애인들이 몇 명은 먼저 시설로 가서 선명학교 교무실에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와 관심을 보이며 얘기를 걸어와 회원장애인들은 답변을 서로 미루다가 결국 그가 답변을 하게 되었고 일행이 오기까지 얘기는 계속 되었고 일행이 와서 자유재활원 사무실로 가서야 그분이 누구인지 알았지
강영신 원장님이 그날 당직 근무를 서고 계셨지
3-40명의 회원들과 인사와 봉사하면서 주의사항을 듣고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은 허트저 생활관으로 가고 그도 함께 나오고 있었지
강원장님은 그를 불러 다시 얘기 좀 하자고 하여 혼자 남아 단독 면담을 나눈 것이 그분께 인상 깊게 남았지
그후 며칠이 지난 아침에 전화가 왔다기에 친구이겠지 하고 받았는데 강원장님이었지
그날 얘기 나눈 것이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며 그의 집으로 한번 방문을 하고 싶다고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인생행로는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지
결국 하나님 당신이 한번 선택한 자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신 분이라는 사실이야
강원장님이 다녀간 이후 그와 가족들은 몇 번의 회의 끝에 그가 어느 길로 선탠하든 최종 결정은 그로 하게했지
그는 10여일 고민하다가 돈 마련하는 일도 쉬지 않고 원장님은 그에게 타자를 배우고 다른 것도 배워 일을 하도록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가셨기에 희망을 가젔지
자유재활원 입소
부모형제 곁을 떠나기 잔날 어머니는 짐을 챙겨주시면서 절박한 심정을 눈물로 토로하며 “내 불쌍한 자석 이제 떠나면 언제 에미 품으로 돌아올래.” 눈물을 글성이며 이부자리 한 채와 옷가지 싸주는 어머니를 보면서 성공해 오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그 역시 집 떠나는 것이 두려웠지
다음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기대 반 두렵고 불안한 마음 반으로 재활원으로 향하여 갔지
꿈과 기대를 갔고 간 것과는 달리 현실은 너무도 참혹했지
한방에 열명의 정신지체 아이들과 선생님 한분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는 첫날 저녁을 여러 가지 걱정도 하고 집 생각도 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하다가 새벽이 다 되서야 설 잠이 들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듯 하여 눈떠보니 여기 저기 설사 똥과 오줌이 있는 듯 보여 얼른 일어나 불을 켜보니 가관이 아니었지
아이들은 가다가 변을 밟아 미끄르지는 것을 보면서 지내들 끼리 웃고 난리굿을 아침부터 한바탕 벌어지고 선생님은 그를 보면서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그는 속으로는 너무 참담하여 눈물 밖에 나지 않았지만 “괜찬아요 앞으로 이런 생활이 계속 될 것 같은데요 뭐.”
소란한 아침을 보내고 사무실로 불려 가서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실장님과 면담하고 나와 일과를 짜면서 생각하니 참으로 어두운 골목을 들어 섯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리고 그는 이곳에 와서 다시 교회 나가게 되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를 당신의 품으로 부르시기 위해 이곳으로 보내셨음을 깨달게 되었지
하맡으면 영원히 하나님을 부인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가 하나님을 만난 것은 너무나 극적이었고 그의 인생행로를 완전히 바꿔 놓았지
그 사랑이 너무 감격하여 그는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고 그동안 8년간의 공백이 너무나 아쉬워서 울었던 기억도 있었지
하루일과는 힘겹도록 빡빡하게 짜여져 숨 돌릴 틈이 없었지
보육사 선생님을 보조하여 열명의 아이들을 관리 하면서 오전에는 직업 보도실에서 타자를 배우면서 왼발가락 하나로 타자기 자판을 치는 연습은 정말 뼈를 깍는 인내와 각고의 노력이 요구되었지 오후에는 물리치료 보행시간 직업보도 시간으로 꽉 짜여져 개인시간은 허용이 안되었지
밤에는 피곤에 지처 책도 못보고 잠들 때가 만았지
식사라고 가져 온 것은 집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나빴어 밥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나고 김치라는 것은 소금에 저린 배추에 고춧가루 뿌린 것이 고작이었고 국은 멀건 소금물에 시레기 푹 쌂은 게 다였지
그는 한달을 그런 식사에 적응을 못해 반도 못 먹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것도 더 먹지 못해 혈안이었지 그는 그곳에 온 것을 후회도 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왠지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마음, 여기서 이것 하나 못 이겨 극복을 못한다면 다른 것도 극복 못한다는거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그 스스로 포기한다면 또 다시 옛날 생활로 돌아 갈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사랑에 배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었지
또 자신에게도 지금은 견디기 모든 것이 힘들고 눈물나는 생활이지만 이곳에는 막연하나마 미래가 있고 또 한편은 하나님을 되찾았다는 기쁨도 크나큰 위로가 되었고 보육사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도 많이 받게 되어 재활원에서 스타라는 별명이 붙어 그것 때문에 오해와 질투를 사기도 했지
그럭저럭 한달이 지나고 그는 어느 정도 재활원 생활에 적응되고 여유가 생기자 여기 온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되어 사무실로 가서 실장님과 상담을 하면서 그는 여기 온 것은 목적이 있어 왔고 원장님도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겠다고 하셔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말을 했더니 실장님은 도와주겠다고 하셨어
그는 여기 온 것은 먹고 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꿈을 가꾸는 공부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공헌하는 일도 하고자 들어오게 되었으니 열명의 아이들 틈에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으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의향이 없는지 물었지
며칠 뒤에 실장님은 그를 자기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실장님은 시설 형편상 혼자 방 하나를 내 줄 수 없고 그가 몸은 불편하지만 의식과 도량을 가춘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네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방을 쓰면서 공부도 하고 아이들도 지도하면서 선생님과 부모의 역할을 담당해 보라는 것이었지
그는 너무 기쁘 하늘을 나를 것같은 기분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지
이곳에 오기 전에 집에서는 조차들의 공부 가르처 본적은 있었지만 그 자신도 가누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채임지는 일이 가슴 벅찬 일이기도 했고 두려움도 컸지
사회생활이라고는 전혀 해 본적 없이 서른두해 동안 한거f가고는 때때로 어릿광이나 부려왔을 뿐,
정작 부모의 역할이 뭔지 그 위치가 어떤 것인지 몰랐던 그로서는 기대와 의욕보다 더 크게 와닿은 것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앞섰지.
준비 안된 부모 졸지에 생긴 네명의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그를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지.
내손으로 키우지 않아 성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그 아이들은 어느새 사춘기를 격고 있었어.
하루가멀다하고 문제를 잃어키는 아이들 틈에 적응하기에도 바쁜 일과 속에서 그가 모든 일에 솔선수범 하여 이끌지 않으면 그들을 품을 수 없음을 알았지
경험없이 아이들의 기질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라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에 도모지 끝이 보이지 않는 신경전, 다들 서로 다른 방에서 굶림하던 아집을 가지고 한방에 가족으로 모였는데 어찌 불효파음이 없으랴 만은 그를 너무 괴롭게 하고 지치게 만들었지
지금까지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에 길드려진 아이들이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몸에 배이지 않아 타인에 대해 인정을 못하고 오직 자기중심이적인 아이들이었자
하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깨끗했어
그런 면이 있어 그는 그들에게 희망을 가졌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도 가르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이 됬으니 가족구성에 필요성, 어른에 대하는 예절을 가르처 주기도 하면서 함께 청소며 빨래도 하며 한식구라는 것을 그들 마음속에 깊이 심어 주는 것이 소중하다고 판단했지.
처음에는 그가 나이는 많았지만 그들보다 몸집도 외소하고 장애도 심하고 해서 그를 많이 무시하고 네가 뭔데 하는 식으로 그의 말에 잘 따라주지 않았지
그들은 또 예전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컷기 때문에 반항심도 많아서 자기 맘에 안내키면 역동작이 발생했지
그런 것들이 이해는 됬지만 그를 너무 힘들게 했고 지치게 했어
힘들고 마음이 괴로울 때면 눈물 쏟으며 한참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내맘을 어러 만저 주시는 것을 느꼈고 위로와 평안을 채워 주신 그 힘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하곤 했지
만약 그때 주님의 힘이 아니었으면 그는 아마 그 생활을 포기했을 꺼야.
아뭍든 그 생활은 반복되었고 반복되는 생활속에 한가지 결론을 얻었다면 그에게 맡겨진 이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서도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고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지.
모난 사고 이유없는 반항심 누군가 바로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들을 그의 품에 안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다가서야 했고 실례를 쌓아야 했지.
기회가 나는 대로 얘기도 해 주고 모든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갔지.
어느 날인가 그는 아이들의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행동에서 감지했어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그들이 안고 있는 맘의 상처를 해결해 주지 않고는 그 맘을 완전히 돌려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르렇지.
그렇다고 소홀하게 다룰 문제는 아니었지.
우슨 애들 몰래 사무실에 가서 아이들이 여기 들어오게 된 경위와 부모의 소재파악을 물어 보니 자세히 얘기를 듣고 결국 부모문제는 연락이 안 오면 소재 파악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더 마음이 아파했지.
‘하나님 당신은 제게 무슨 힘이 있다고 이 아이들을 맡기셨나요.’
그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면서 또 한번 좌절을 경험해야 했지
연단과 시련은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될 줄 알았는데 그의 인생은 아침을 마지하기란 그렇게 오기 실었을까
재활원 생활이 너무도 비참하고 힘든 생활은 끝이 안보였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생활이 계속되야 하는지 기약없는 내일만이 있을 뿐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집에서 했던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지
한달에 용돈 1천원도 없이 살아야 했고 먹을 것은 식사 외에 원에서 안주면 아무것도 없어 나중에는 냄새나는 밥도 다른 아이들처럼 한술 더 줬으면 하여 사무실에 총무님한테 편지를 썻다가 식당 아줌마들에게 욕을 얻어먹는 일도 있었고 한겨울에 더운 물이 아침저녁으로 한시간씩밖에 나오지 않아 250여명의 원생들이 쓰기에는 너무 부족해서 그와 방식구들은 찬물 신세를 면치 못했지
빨래를 할 때도 차가운 세면바닥에 앉아 발로 찬물에 빨래를 다 빨고 나면 엉덩이와 발은 얼어 감각이 없었고 목욕도 찬물로 하고 나면 얼마나 떨며 지내야 했는지
하루는 그가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돌아 와보니 식사시간이 지나 점심 저녁을 먹지 못한 탓에 배가 몹시 고팠는데 그당시 라면 하나에 80-90원 했지만 그것 사 먹을 돈이 없어 얼마나 울었는지 하지만 그 배 고품 보다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집에서 30여년을 닦아온 인생길은 완전히 사라지고 30년이 넘어 최저 밑바닥에서 다시해야 하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건 너무도 큰 괴로움이었지
그려나 그것은 지난날에 주님을 잊고 살았던 잘못의 벌이기도 하고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는 연단이었음을 그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지
그 모진 연단 속에서 묵묵히 믿음을 지키며 삼년을 견디고 나니 하나님은 그때부터 축복을 주시기 시작하셨지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그것 사 볼 돈이 없다고 실장님한테 말을 했더니 후원자를 붙처주어서 책도 매월 두 세권씩 선물을 받아 보게 되고 간식이며 생필품도 사다 주는 한국조페공사 자유회원들이 너무 감사했고 그의 소문을 듣고 하나 둘 봉사자들도 모여 들어 그와 그의 방식구들을 도와주는 손길들이 많았지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의 축복을 더 소중히 가꿔 나갔지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선명학교 선생님이 그에게 장애인 체전에 한2번 나가보지 않겠냐고 하기에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결심을 하고 선생님을 찾아가 선수로 한 번 나가겠다고 도와 달라고 했지 그는 새로운 도전과 극복을 하게 되었고 결극 예선을 통과하고 선수가 되어 전국 장애인체전에 참가하는 영광을 우리 주님은 허락하셨지
그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었고 인생에 의미를 한층 더 느껴보는 순간이었지
선수가 된다는 것은 옛날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일로 인해 영광 받으기를 작정을 하셨고 육상선수가 되어 그 넓은 운동장을 휠체어로 달려서 입상하는 순간 그는 믿기지 않았지
또 보호작업장이 생겨 원생들이 벽돌을 찍어내고 그는 그기서 사무를 보면서 월 5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었지
참으로 그것은 너무 소중했고 의미 있는 물질이었지
하나님의 축복은 더디 오는 것 같지만 가장 적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또한 넘치지 않게 주심을 오히려 그것이 가장 감사한 조건이 되는 것을 그는 체험하게 되었지
그는 그기서 멈추지 않고 주경야독하면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사무실에서 책도 보고 글도 쓰 가고 있던 어느 날 신문사 기자가 와서 그의 생활하는 것을 취재하여 신문에 나간 것이 그의 이름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고 37살이 되면서 전혀 생가하지 안았던 시집도 내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도 놀랍고 감격스러웠지
학교 문앞도 가보지 못한 그가 책을 낼줄을 누가 예상을 했을까
시집을 내면서 그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꺼리가 되고 하나님은 더 큰 일을 그에게 맡기셨지
그를 이렇게 들어 쓰시고 싶어 그 모진 고통을 다 격게 하여 오직 당신의 이름이 그의 삶속에서 나타내고자 하였구나
사회활동을 한참 하면서 한국장애인 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 : 한마음추진위원회 문예부장 : 곰두리 봉사단 문화부장직의 명예도 따르게 하셨고 그 스스로도 학생 봉사단을을 조직하여 활동을 하던 중에 한국밀알선교단 김광식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지
그분을 만남으로 주님의 또 다른 길도 열어 주셨지
그 자신도 장애인이면서 장애인 선교에 대해 그리 심각한 고민을 해 보지 않고 살았던 것이 사실이었지
목사님을 몇 번 접하면서 장애인 선교에 비전을 갖게 되었고 사무실 구하는 일, 밀알보 만드는 일 크고 작은 일 가리지 않고 함께 하면서 목사님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배우고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고 너무나도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도 했지
그른 가운데도 시련은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한 뒤 마음 아파하고 있을 즘 하나님은 그에게 위로의 선물을 주셨지
아무도 그른 일이 생길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 크고 비밀한 계획이 하나님은 이미 준비해 뒀던 거지
그의 인생 역경을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제의가 들어 왔을 때 그는 꿈같은 일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찌 과연 그의 인생이 영화화할 만큼 위대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지
지금까지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그가 한 일이라고는 살아남기 위한 어설푼 몸부림 친 것 밖에는 없는데 뭘 내새운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에 몇 번을 거절해 봤지만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이 뜻이 계셔 기회를 주셨는데 고집피지 말라는 얘기에 결국 허락하게 되었지
그로 인해 캐나다 밀알선교단 해외지부에서 김광식목사님을 통하여 초청 추천을 해달라는 재의를 받고 그를 추천하여 난생 처음으로 외국에서 간증도 하고 여행을 돈 한푼 안들이고 다녀온 것은 그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추억이고 두고두고 감사의 제목이지
그리고 그는 시인이면서도 여직 등단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여망으로 남아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 마음의 소원도 아시고 응답해 주신 사랑을 친구야 너는 해아릴 수 있겠니
초등학교 입학도 못했던 아물한 어린 시절 그가 시인이 되리라고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가 43살에 월간 문하게계에 등단소식을 듣는 날 더 이상의 기쁨이 없었지
그때 그 감격은 어디다 비길 수 있겠니
그의 환경이나 여건이나 몸 상태를 보면 너무 무능해 보이고 처음 보는 사람이면 저 몸으로 무엇을 할수 있을까 라는 의문부터 갖게 만들지만 그 영혼속에 주님의 권력이 있기에 가능한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를 원하셨던 거지
그 이후 그는 자신의 극복을 위한 삶보다 더 넓은 극복을 마음속에 품고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며 재활원에서 나갈려고 새벽 기고를 2년간을 하면서 어느 날 강영신 이사장님을 찾아뵈는 자리에서 그의 일자리를 부탁하게 되었는데 안된다는 말 대신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겨 주셨지
그리고 그는 두세번의 편지를 이사장님께 보냈고 가을바람에 국화향이 날리는 9월에 그는 월 60만원이라는 월급을 받고 일을 하게 되었지 그는 낮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밤에는 복지관에서 인터넷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려고 신청해 놓고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운 나날이었지 이제 집만 얻으면 자립할수 있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7계월을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은 또 다른 길을 예비하고 계셨지
밀알선교단에서 형제 그릅홈을 위한 준비회의를 하기로 날을 잡아 놓고 있는 동안 재활원에서는 감사가 나와서 그의 일자리를 놓고 문제가 됐지
보호작업장 직원 티오가 정원이 넘는다는 이유고 또 하나는 자격이 안된다는 이유였지
강원장님은 그래도 그가 하겠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을 하도록 해주겠다며 위로를 했지 하지만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알았고 3년 전에도 삼석형제와 함께 밀알 형제 그룹홈에 들어갈려고 했다가 다른 사정으로 못 들어가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의 길을 직접 인도 하시는 듯 자연스럽게 재활원의 일을 처리하게 하셨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날 15년의 재활원 생활을 돌아보며 정들었던 방을 비우고 새 복음자리를 향하여 밀알선교단 차에 몸을 싷고 나오는데 재활원 식구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모습을 보면서 15년의 세월이 영상이 되어 뇌리속에서 돌아갔지
밀알의 집에서 여장을 풀고 목사님과 간사님들의 따뜻한 사랑속에 믿음의 한 식구가 된 정우와 인석이 육신의 혈연보다 더 짙은 주님의 혈연으로 맺으진 가족들 목사님과 사모님까지 자상한 보살핌이 있어 그는 그룹홈에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이동열 간사님과 여러 간사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속에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꾸려가면서 예전에는 어림도 없었던 일들을 자유롭게 하며 누리며 외출나가 데이트도 하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마음대로 보면서 마음에는 새로운 비전을 품고 장애인 선교사역자로 나가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에게 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 그의 과정을 똑 같이 걷고 있는 이 땅에 많은 장애인들에게 그가 받은 사랑의 약속이 저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이 편지를 쓴다
지금 그는 검정고시를 해서 만학의 꿈을 펼치고 있지
이것 또한 그가 밀알에 왔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지
오늘은 신천공원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아래 유유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며 미래를 향하여 한걸음씩 내 딛고 있는 모습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멀지 않아 싹을 티우고 푸른 초원을 이루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편지를 맺는다
친구 너도 이 사랑 느껴보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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