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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미나리 원문보기 글쓴이: 이희준
[68세 할머니 클라이머] “건강은 산이 준 선물입니다” | |||||
이렇게 화사한 분위기 속에서 쎄로또레등산학교 리지등반교실 제9기생들은 우정길, 취나드B, 고독의 길 세 파티로 나뉘어 졸업등반을 펼쳤다. 그중 유독 고독의 길 팀은 장년과 노년층이 주를 이루었다. 등반조 11명 가운데는 이규태 원장과 2명의 강사, 졸업생 2명도 있었다. 중년의 늦깎이 학생 6명은 대부분 첫 피치 크랙부터 몸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해 안절부절했다. 그러자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1기 졸업생이자 보조강사인 황국희씨(黃菊姬·68·사단법인 주부교실 산악회 등반대장)였다. “바위를 잘 살펴보면 홀드도 있고, 디딜 때도 있어요. 길이 있다니까.” 크랙과 침니로 반복되는 고독의 길을 따라 인수봉 정상에 올라선 것은 등반을 시작한 지 4시간쯤 지난 오후 3시경. 그런데도 황국희씨는 가벼운 몸놀림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과시했다. 황씨는 “너무 열심히 다니시는 거 아니냐?”는 후배들의 말에 헬밋을 벗으면서 “막내아들 장가가기 전까지는 다치지 말고 다녀야 한다”고 응수한다. 그러고나서도 “저 분이 올해 예순여덟”이라는 이규태 원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54세 때 자궁암 수술 이후 더욱 열심히 산에 다녀
황씨는 취나드B, 기존B, 우정길, 비둘기길, 인수길 등 인수봉에서 중급 수준의 루트는 거의 다 타봤는데, 키는 작지만 팔힘이 좋아 특히 크랙에 자신 있다고 했다. 황국희씨가 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40대 초반. 자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무력감이 생기고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살도 붙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동네 뒷산을 다녀오자 하여 따라 갔다 오면 영락없는 몸살.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산을 찾았다.
황국희씨의 산행 경력은 결코 짧지 않다. 전국주부교실중앙회 산악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는 가운데 40대 초반부터 산행해왔으니 25년 이상 해온 셈이다. 그러다 2000년 봄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당시 이규태 원장이 운영하는 한국등산문화원에 차 한 잔 마시려고 들른 게 인연이 돼 암벽등반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원장이 저를 보더니 제대로 배우면 바위를 잘 탈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혹했던 거죠. 배워보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 원장께서 바위에만 가면 엄해서 한동안 어려웠습니다. 사실 저는 스릴을 좋아하는 체질이었습니다. 100여 명에 이르는 주부산악회원들과 몰려다니다가도 험한 바위가 나타나면 다른 회원들이 우회로를 따르곤 했는데 저는 늘 넘어서곤 했으니까요. 이 원장에게 바위를 배운 뒤로는 주부 산악회원들 가운데 20여 명이 따로 빠져나와 수요일마다 산행을 하고 있답니다.” 황국희씨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다. 수지침과 뜸도 수준급이고, 서예에도 조예가 깊다. 고기도 거의 먹지 않고 보약 한 제 다려먹지 않았는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소식(小食)·등산과 함께 13년째 꾸준히 해온 뜸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
[68세 할머니 클라이머] “건강은 산이 준 선물입니다”<2> | ||||
알프스 에귀디미디를 올랐을 때 갑자기 밀려온 고소증세를 수지침으로 풀기도 하고, 두타산에서 오이 먹고 급체한 주부를 수지침으로 해결해 주는 등 수지침과 뜸에 일가견이 있는 황국희씨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서예교실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다. 추사체에 주력하는 그는 서예백일장에서 입선한 적도 있다. 요즘은 일본어까지도 배우러 다닌다. 이것 역시 등산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이규태 원장이 일본 산악인들과 친하다 보니 일본인들과 우리나라 산을 오를 적도 있고, 일본인들과 함께 일본 산을 찾을 적도 생기곤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재미가 없더군요. 그래서 일본말을 배우고 있는 겁니다.”
“제 종교는 산이랍니다”
“3년 전부터는 그렇게 등산을 싫어하던 남편도 다녀요. 그러다 보니 저희 부부는 등산 덕분에 다른 부부에 비해 건강하게 살고 있는 셈이네요. 얼음도 무척 재미있더군요. 바위보다 더 짜릿한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암벽이 저를 이렇게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바위는 어렵게 느껴지다가도 극복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성취감도 생기고요.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진답니다. 산에 다니면서도 다혈질의 성격이 고쳐지지 않았는데 바위를 탄 다음부터는 차분해졌답니다. 부처님 마음처럼 고와졌다니까요. 독실한 종교인들이 이해가 갈 정도랍니다. 그런 면에서 제 종교는 산이랍니다.” <한필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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