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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트럼프왕과 기사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Merlin
첫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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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스도]는 이 기회를 통해 [너희]들에게 직접 말한다.
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내가 '예수'로 알려졌을 때 주었던 가르침에 가해진
그릇된 해석을 바로잡기 위해서 왔다.
이것은 영적 감수성이 예민하여 지난 40년 동안 나의 말을 받아들이
고 그에 의거하여 행동할 만큼 헌신적이었던 한 사람을 통해 전해지
고 있다.
[이 편지는 진실이다]
이것은 세상 모든 종교의 교리를 초월한다.
이 [편지]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
이것은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찾고 있고, 살아가기 위한 나날의 몸부림을 직면할 힘,
고난과 질병과 절망을 이겨낼 힘을 간구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나날의 삶 속에서
더 큰 영적 각성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주는 영감이다.
너희는 이 편지가 내가 팔레스타인 땅에 있을 때 걸었던 그 길에 발을 들일 준비가 된 이들을 위한
[마스터 코스]라고 할지도 모른다.
너희는 위의 말이 정말인지를 의심할 수도 있다. 이 페이지들을 읽고 존재에 관해,
그리고 인격의 기원에 관해 내가 알려주는 사실들 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너희는 이 진실이 오직
가장 높은 근원으로부터 온 것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한 페이지씩 읽고 나서 그것을 내려놓고
명상을 해야 한다. 그 의미는 차츰차츰 너희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이 페이지들은
너희의 의식과 나의 초월적 의식 사이의 연결고리이므로,
인간의 믿음에 세뇌되기 전의 아주 어린 아기처럼 관념과 믿음과 선입견에 물들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이 편지에 다가오라.
너희의 소란스럽지 않은 마음, 간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진정한 보물, 가장 높은 지식의 보물로 채워줄 것이니, 그것을 흡수하면
그것이 너희 나날의 짐을 덜어주고 '가장 밝은 빛의 푸른 초장으로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
그 밝은 초장은 풍요와 기쁨과 환희와 모든 필요의 충족을 뜻한다. 너희는 현재의 인간의 이해
너머에 존재하는 온갖 것으로써 넘치게 축복받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편지를 나의 자비와 사랑과 함께 온 세상의 백성에게 보낸다. 너희가 그것을 읽을 때
너희도 자비와 사랑을 느낄 것이고, 존재와의 일상적 투쟁은 결코 너희를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존재의 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꾸준히 실천하기만 하면
너희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경험할 필요가 없다.
[이 편지 배후의 목적]
이것은 다음 2천 년 동안 인류가 [새로운 의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세상에 널리 깨달음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다. 이 편지들은 장차 인류의 영적 진화를 위한 씨앗이다.
잘 주지하라:
너희 개인과 지구 전체의 삶에 정신적, 물질적 진화를 가져오고 인류를 갈수록 더 조화로워지는
행복한 상태로 데려다주는 것은 인간 의식'의 영적 진화이다.
이것이 믿기 어렵거든 지난 2천 년을 돌아보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했던
그 이후로 어떤 일들이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보라. 내가 유대인들에게 끊임없이 형제애를 설파한
이래로 그것을 향한 점진적인 진화의 흐름이 있었다.
내가 땅 위를 걷던 때에는 너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인도주의적 민간단체들이 없었다.
야망과 탐욕과 자기만족이 정상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세세생생 선지자들로부터 이웃을 제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타이름을 받아온 유대인들 사이에 조차도 형제애는 거의 없었다.
형제애의 힘을 기르자 인류의 삶은 더 쾌적하고 편안해졌다. 상호 배려, 예의 친절, 그리고 병원,
어린이 복지, 노인 우대, 인권운동,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기타의 여러 기관들 등이 형태를
갖춤으로써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에게 형제애와 이웃에 대한 자비를
촉구하며 했던 말들을 진실히 가슴에 간직했던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이 같은 영적 배려와 형제애는 목사들이 나의 말을 새로워진 성심으로 열성적으로 설교하고,
진지하고 성실한 신도들이 반겨 받아들였던 19세기에 와서 엄청난 추진력을 얻었다. 당시에는
목회자와 신도들이 모든 대륙, 온 세계에 널리 퍼져나갔다. 안식일은 실질적인 휴일로 받아들여졌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사상이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묵상을 통해 고양되었다. 일상적 의무와
일을 떠난 그 같은 범세계적 휴식은 곧, 24시간 동안 고스란히 신의 창조적 권능을 향해
'의식적 사고'가 고양됨으로써 인간의 삶을 누벼 밑받침해줄 정규적이고도 강력한
'인간 의식/신성 의식'이 형성되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의 기도와 염원은 신의 권능을 인간의 의식과 경험 속으로 끌어왔고, 그것은 곧바로 인류 생활 모든 측면의 성장과 확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마음을 통해 '에고' 창조 통로가 아닌 영적 창조 통로로 신의 권능을
끌어오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하여 '대중 의식'의 확산은 영감을 받아 깨달은 사람들의 '영적 의식'이 만들어낸 '선한' 결과뿐만 아니라 '에고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사악한 '결과도 가져왔다.
[잘 주지하라. 이러한 이유로]........나는 너희에게 존재의 매우 중요한 사실을.....
분명히 설명해주려고 왔다. 주의하여 잘 읽어보라.
그것은 이렇다:
*너희 개개인의 의식이야말로 너희의 삶과 개인적 경험 속으로 오는 모든 것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너희에게 선이나 악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너희 개개인 의식이다.
*너희는 전생/전생들을 통해 강력히 각인된, 그러나 감춰져 있는 트라우마/감정의 기억들을
잠재의식 속에서 살려내고, 그것이 너희의 현재 의식을 분출시키고 채색한다.
*너희의 마음과 가슴이 끊임없이 우주적 [사랑]의 법칙에 반하여 움직이면서 흠잡고
손가락질하기만 좋아하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고통이 덜어지기를 비는 너희의 열렬하고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길게는 거의 도움 되지 않는다.
존재의 우주적 법칙은 [오로지] '의식의 작용'과만 관계한다. ................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고 예외 없다 ............... 그것은 '신이 내리는 상도, 벌도 [아니다]
되풀이 한다: 그것은 [신이 내리는 벌]이 아니다. ㅡ 그것은 하전荷電 입자들을 끌어당기고
자화하여 뭉치게 해서 눈에 보이는 견고한 형체와 경험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하는, '원인이 되는
의식의 요소(Causative Factor of Consciousness)와 관계가 있다.
[잘 주지하라.] 때로 사람들은 강력한 기도 속에서 모든 창조물의 속과 그 배후에 존재하는
[신성한 실재]와의 접촉을 이뤄내고, 그러면 그것은 응답하고, 이내 그것의 작용이 그 개인이나
국가의 삶에 요구되었던 개선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건 기적이다!"하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개인이나 국가의 [평소의] 의식 상태가 그들의 경험 속에서
다시 본색을 드러내어 그들의 건강이나 사건들에 이전과 다름없는 부정적 결과를 거듭 만들어낸다.
너희의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너희 삶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은 조건 없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정신적 능력이 영적 발전을 앞서버렸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창조의 기원을 우연의 산물로 치부하는 것으로 그것을 설명해냈다고 생각했다.
그 직접적인 결과는, 사람들이 도덕을 내팽개치고 자아의 의지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신의 [본성]인 [조건없는 사랑]에 정면으로 반하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적 에고-의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함으로써 세상을 위협하는 새로운 힘을 풀어놓았다. 인간의 의식이 신성의
유입을 차단한 것이다.
[잘 주지하라]: 점입가경인 몇몇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상상은 백 년 전만 해도 한 지역에 머물렀을
것이 이제는 전 세계에 배포되는 소설과 영화 속에서 미화되는 [정신적 전염병]이 되어, 범람하는 성문화, 폭력, 그리고 타락으로 표출되는 닮은 꼴의 범 지구적 '인류 의식'을 만들어낸다.
이 [정신적 전염병]은 먼저 에고 중심적인 생활방식과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기계들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또 심각한 건강장애, 기후변화, 흉작, 환경파괴, 생물의 멸종, 그리고 인간의 대량학살을 빚어낸다.
정신적 전염병은 인격 속에서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행동, 마약 복용, 극악무도한 비행,
조직폭력과 성폭행 등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결국 유흥산업과 독점 매체에 의해
생각과 행위의 도착과 악의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들의 목적은 에고 중심적인 대중의 관심을
확보하는 것이다.
너희의 TV와 영화 스크린은 인간의 행동지침을 가르치는 새로운 성경이 되었다.
백 년 전에는 인류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던 인간의 비극이 유행처럼 번졌고 사람들은
길 다니기조차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다. 집들은 방책 같은 높은 담 뒤에 숨어 있고
가정과 사회의 문제가 공개토론회의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인간의 비극이라는 대하소설은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너희의 땅을 활보하며 순진무구한 마음들 속에 야수의 살기를 심어놓는 [짐승]이다.
**그것은 이 땅 위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의 그리스도의 지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실천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 지혜는 너희가 진정으로 바라는 그런 삶을 일궈내기 시작할 수 있도록
참다운[생명의 길]로 돌아갈 방법을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이므로 많은 영적인 마음들이 그 낌새를 느끼고 있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영적 눈이 먼 ㅡ 현재로는 ㅡ 이들에 의해 배척당하고 있다.
/////이 말들은 너희를 위협하거나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너희의 신문과 TV 화면을 채우고 있는 끔찍한 공포의 근원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
**나로 하여금 다양한 의식 층을 지나 악행에 물든 인간세계까지 내려와서 너희 현생에 일어날
그 결말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오로지 만백성을 향한 나의 사랑뿐이다.
[잘 주지하라 ㅡ 중요하다]
인간의 소중한 자기방어기제인 면역체계를 공격하고, 생식능력까지도 표적으로 삼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한가?
이 바이러스는 ㅡ (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각성된 의식]에 의해 ㅡ 저지되지 않고
퍼지도록 방치되면 부주의한 사람들을 전멸시킬 것이다. 영적 빛이 밝혀진 이 들 만이 이것과
여타 존재의 함정들을 피해 갈 것이다.
깨어나라! 깨달으라! 너희 자신의 강한 '의식의 추동력'은 곧 생명의 추동력이다.
그것은 고도로 창조적인 전자기적 추동력이다!
그것이 악의적이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고 살인적인 성질의 것일 때, 그것은 악의적이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고 살인적인[의식]의 하전 입자를 방출하고, 그것은 대기 중에서 악의적인
바이러스의 형체를 취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간다.
병든 마음에서 나고 자란 그것은 결국 물질세계의 형체를 껴입는다.
이것은 교회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벌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마음을 지닌 모든 이들이 창조의 존재의 [진실]을 분명히 깨닫기 위해서는 그런 '유아적인' 상상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화급한 문제이다.
[출처] 그리스도의 편지 [ 첫 번째 편지 ]|작성자 자목련 소 정
두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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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지는 읽기보다는 숙고해야 한다)
나는 [ 그리스도 ]다.
나는 [신성한 창조 의식]의 가장 높은 영역들로부터 역사하지만, 나의 영향력은 너희의 세상을 에워싼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태양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이나 너희의 세계로부터 '의식'상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부른다면 나는 너희를 돕기에 필요한 만큼 너희 가까이에 있다.
이[편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이 가르침이 자신의 생계나 종교를 위협할 것이므로 편지의 존재를 탄압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편지]는 반대로부터 오히려 힘을 얻을 것이다.
이 [편지]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영혼은 [진실], 곧 존재의 [실상實相]이 세상의 종교들 너머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번영하여 마침내는 세상을 자기파멸로부터 구해낼 사람들이다.
이제 지난번 [편지]에서 멈춘 부분에서부터 나의 '자서전'을 이어가겠다.
내가 가르치는 자와 병 고치는 자로서 공적인 삶에 발을 딛게 된 나의 자전적 이력의 일부를 너희에게 이야기하는 목적은 나의 청년 시절의 태도와 행동, 내가 영성을 얻은 인간의 경지에 이르게 된 정황을 너희 앞에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한 것이다.
내가 지상에 있을 때의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마음속에 떠올려서, 나의 가르침이 유대교 교리와 전통의식에 세뇌된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으켰을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같은 내면의 갈등이 복음서 기록자들이 내가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애썼던 모든 것을 정확히 기록하지 못하게 한 핵심적인 원인이다.
복음서에는 기록자들이 어느 쪽 용어를 썼든 간에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묘사하는 나의 우화들이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말씀 그 자체에 가닿으려고 애쓰거나, 말속의 상징과 비유를 탐구하거나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의 영적 의미를 밝혀내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전했던 가르침의 진정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동안 너희는 나의 광야 체험과 과학적 사실에 관한 각자의 지식에 비추어 내가 당시에 가르치고자 했던 것을 마침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나는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대, 새 천년의 벽두에 벌어지는 또 한 번의 시도는 성공해야만 할 절체절명의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할 특권을 누리게 된 이 지고의 영적 지식과 통찰이야말로 다음 시대가 기초를 다지고 발전해갈 토대이기 때문이다.
나나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르치는 자는 존재의 진실을 추구하는 일에, 지상으로 내려와 언어의 감옥 속에 갇힌 지상의 사람들에게 형상 지어지지 않은 상태의 [우주의 창조 차원] 에 있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일에, 정신적, 감정적으로 지극히 섬세하게 온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안 된다.) 이런 영감 넘치는 스승들이 아니었으면 지상의 인간들은 이 행성 너머에 있는 모든 것 ㅡ 미래의 영적 진화를 촉진하기 위해 접촉되고 개인적으로 경험되어 흡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 ㅡ 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이 되었다. 작금의 성경은 그 목적을 다했다.
온갖 그릇된 해석으로 점철된 현재의 신약성서는 영적 진화를 훼방하는 걸림돌이다. 이제는
비전적(秘傳的)인 인식과 이해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내가 인간의 몸으로 다시 내려와서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내가 봉사하는 다른
차원계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감수성 있는 한 영혼을 훈련시켜 나의 말을 받아 적게 하였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방법이다. 너희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류는 모두 지워졌다. 이것은 확신해도 좋다.
다음 페이지들에서 이야기할 사건들과 치유의 기사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중요하지 않다.
단지 너희가 '예수'라는 인물을, 지상에 '천국'을 세우는 창건 멤버가 되고자 하고, 될 준비가 된
모든 인간이 마침내는 성취할 수 있는 경지의 한 '본보기'로 여기기를 바란다.
너희 현 세계의 사람들이 너희가 말하듯이 현대적'지식과 학문'으로 세련되어 박학다식하고 현대적인 매너와 새로운 사교 방식에 능통하다고 해도, 그 옛날의 사람들도 근본적인 너희 자신과 똑같았다.
그들도 너희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끌어당김-밀어냄 욕망-혐오라는 쌍둥이 추동력]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고 지배받았다.
그들도 사랑하고 미워하고 비판하고 저주하고 헐뜯고 험담하고, 사회의 꼭대기에 오르려는 야망을 품고, 인생에 실패한 사람을 경멸하고,남몰래 바람을 피우고,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을 비웃었다.
너희가 내가 지상에 살았던 때로 들어가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 나의 의식은 '예수'라는 '인격'과 내가 겪었던 사건들과 감정들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너희 지상의 존재 차원으로 하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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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야를 떠나 나의 고향마을 나자렛으로 가는 길로 발을 옮겼을 때 나는 아직도 기운이 충천했고, 광야에서 그토록 영광스럽게 내게 계시된 지식으로 기쁨에 차 있었다. 나는 내 생각을 오로지 내가 터득한 모든 것에만 집중시켰고 내 생각이 이전의 부정적인 형태의 생각들로 빠져나가면 재빨리'아버지' 에게로 돌아가서 그것을 극복할 영감과 각오를 얻었다. 이렇게 나는 끊임없이 깨어 있는 의식과 이해의 빛으로 돌아왔다.
더럽고 남루한 행색을 한 채 환희에 차 있는 나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눈을 흘겼다. 그들은 내가 술에 취해서 좋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또 어떤 사람들은 혐오의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과거처럼 화를 내는 것으로 반응하는 대신, 내가 그들은 상상도 못할 지식과 계시로 축복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나는 그들의 내면의 눈도 나와 같이 열리기를 기도하고 축복하면서 평화롭게 집으로 가는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래도 불쌍한 몰골을 보고 가엽게 여겨,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빵과 심지어는 포도주까지 가져다주며 무사히 집으로 가도록 돌봐주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다. 밤이 되면 또 늘 누군가가 잘 곳을 제공해주었다. '아버지 생명'은 실로 나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고,필요할 때마다 보호해주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나는 광야에서 겪은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느꼈다.
마침내 나는 고향마을인 나자렛에 당도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나의 더러운 행색과 너덜너덜해진 옷을 손가락질하면서 내놓고 비웃었다.
내게 던져진 말들 중에는'너절한 게으름뱅이'가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어머니가 사는 집 문 앞에 당도했다. 여위어서 뼈만 앙상하고 눈과 볼은 움푹
들어가고 얼굴은 시커멓게 타고 입술은 햇볕에 트고 수염은 길게 자라서 헝클어져 있는 나의 꼴을
어머니가 보시면 이웃사람들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내 옷! 그녀가 내 옷 꼬락서니를 본다면 격노하리라. 내 옷은 사막 먼지에 색깔이 다 바래고 찢겨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어머니의 분노의 뜨거운 열기를 견뎌낼 준비를 단단히 했다. 문을 두드리자
누이가 나왔다. 그녀는 겁에 질려서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는 내 눈앞에서 문을 꽝 닫아버렸다. 그녀가 집 뒤로 달려가면서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엄마 빨리 와 봐요. 문 앞에 더러운 노인이 와 있어요."
나는 어머니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문으로 오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연 그녀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 못 박힌 들이 서 있었다. 나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흝어보더니 이 무섭고 불쾌한 생물이 정말 그녀의 고집쟁이 아들 예수인 것을 깨닫고는 더욱 겁에 질렸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어머니에게 고통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절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즉시 표정을 바꾸면서 나를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서둘러라," 그녀는 겁에 질린 내 누이에게 말했다. "여러 말 말고 얼른 물을 데워라. 네 오빠가
굶주렸다. 오빠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는 상관없다. 그는 우리 식구니까. 오빠를 돌봐줘야만 해."
그녀는 부드럽게 내가 옷 벗는 것을 도와주었고 큰 물동이 앞에 몸을 구부리게 하여 몸을 씻겨주었다.
그녀는 내 머리와 수염을 씻어 깎아주고 몸과 입술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아무도 침묵을 깨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보여주는 사랑을 음미하면서 좀 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접근법으로 나의 감사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도록 도와준 후 나를 앉히고 빵과 꿀과 우유로 소박한 식사를 하게 했다.
그녀는 나의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마지못한 듯 포도주를 주기는 했지만, 나의 충격적인 몰골의 원인은 다름 아닌 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후 그녀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몇 시간을 자고 나서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밝았다.
이제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 나눌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메시아인 것은 맞지만 유대인들이 상상하는 그런 종류의 메시아는 아니란 것을 말해주려고 말이다. 나는 사람들을 그들의 '죄악'의 나쁜 결과로부터 구해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건강과 풍요와, 필요의 충족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정확히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그녀는 금방 흥분하면서 기뻐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이웃사람들에게로 달려가서 자신의 아들이 정말로 메시아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광야에서 단식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ㅡ 그가 이제는 얼마나 멋지게 말하는지를 그들이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러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내가 계시 받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내가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보복하는 '하나님'을 믿는 정통 유대교의 신앙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말은 그녀를 겁주고 흥분하게 했다. 그녀는 소리쳤다."그럼 여호와는 어떻게 세상을 다스려서 우리를 그가 보낸 선지자들의 말에 착하게 귀 기울이게 만들 수 있니? 우리를 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네가 이젠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모세의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그들만의 일에 왈가왈부할 만큼 위대해졌다는 거냐? 넌 우리 집안을 아직도 더 부끄럽게 만들 작정이냐?"
그녀는 화가 나서 울면서 말했다. "넌 하나도 바뀌지 않았구나. 말하는 것만 바뀌었어. 넌 내게 슬픔밖에는 가져다주지 않는구나.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아이를 메시아가 되리라고 믿었단 말이냐? 너의 그 이상한 생각으로는 사람들을 이전보다 더 큰 고통으로 이끌 수밖에 없을 거다."
나의 남동생들이 어머니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나를 집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나는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자진해서 고분고분 나가겠다고 했다.
내 어머니의 반응이 이러하다면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에 다른 모든 사람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나의 모든 생각과 경험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절대적인 휴식과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복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유대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해 영감을 통해 인도를 얻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 생명'이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것임을, 그리고 어딘가에서 적당한 보금자리를 찾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어머니는 나의 외견상 '잘난 척하는 태도'에 노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쇠약해진 상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느낌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표방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ㅡ 항거적인 태도, 유대교에 대한 경멸, 권위에 대한 저항, 나의 자아 의지와 자만심 등등.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사랑했고, 내가 결국은 스스로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까 봐 가슴 깊이 두려워했다.
어머니는 내 동생들에게 시끄러운 논쟁을 그치라고 타이르고는 나에게 말했다. "나아질 때까지 여기 있어도 된다. 어쩌면 네가 여기 있는 동안에 내가 널 정신 차리도록 타일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말할 수 있지만, 만일 네가 거리로 나가서 나에게 한 것과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넌 결국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될 거다. 착한 사람들도 너에게 침을 뱉고 썩은 쓰레기를 던질 거야. 넌 집안의 망신 거리야."
그래서 나는 그녀의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감사를 표하고 따뜻하게 입을 맞춰드렸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집안에 남아 머물렀다. 그녀의 노여움 아래에는 나에 대한 깊은 염려가 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잘 먹이고 훌륭한 새 옷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내가 멀쩡하게 보이도록 만들려고 애써준 어머니에게 감사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다니려면 최소한 받아들여질 만큼은 멀쩡한 차림새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집안에 먹을 것이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내 '아버지'의 힘을 끌어와서 말없이 그것을 채워놓았다.
어머니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녀가 내가 그 모든 나쁜 버릇에다 이젠 도둑질까지 배웠는지를 슬픈 마음으로 의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내가 갓 구운 빵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고서, 내가 그것을 사러 집을 나간 적도 없고 화덕도 그날은 사용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의아한 눈빛으로 오랫동안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도, 그리고 내 말의 진위에 대해서도 다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광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불도 피우지 않고, 밀가루도, 이스트도 없이 어떻게 빵을 구울 수 있었을까?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정말 메시아일까?'
그러다가 동생이 칼에 손을 다쳤다. 그 자리가 곪자 그는 큰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내가 그 위에 손을 대고 말없이 기도를 하도록 허락했다. 그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보아하니 손안으로 '권능'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통증이 사라졌어," 그가 짧게 말했다. 걸어가는 그의 표정은 퉁명스러웠다. 통증에서 해방되긴 했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가 기분 좋아하지는 않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질투를 감지했다.
누이동생은 손을 데었고 또 다른 남동생은 두통을 호소했다. 나는 둘을 다 낫게 해줄 수 있었다.
남동생들과 누이동생은 나의 '마법'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나를 화나게 만들면 내가 그들에게 어떤'악'을 행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집안 분위기가 팽팽해져서 집안의 평화를 열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슬퍼졌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행동이 변한 것을 보고 위안을 얻었다. 나는 더 조용해졌고 이전처럼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눈에 띄게 잘 다스렸으며, 참을성 없는 성질과 기운을 잘 억제했고 더 이상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나는 배려심이 더 깊어졌고 주부인 그녀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였으며 부서진 가구를 수리하고 산 너머 농장으로 걸어가서 필요한 과일과 채소를 구해왔다.
나는 부드럽고 자애롭게, 어머니가 받아 마땅한 사랑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용기를 내어 내게 물었다: "넌 아직도 여호와가 한갓 신화라고 생각하니?"
"욥은 여호와가 숨을 거둬 가면 모든 육신이 다 한꺼번에 스러지리라고 했어요. 그것이 내가 믿고 또 본 '여호와'예요.
"여호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가 잘라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만든[그것]을 보았어요. "내가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그것]은 [완벽 한 사랑,]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완벽한 [사랑]이기 때문이에요."나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것]은 [그것의 ]모든 창조물 속에서,창조물을 통해서, 그리고 창조물을 위해서 역사합니다. 어머니가 집안에서 필요로 했던 것들을 가져오고, 동생들을 금방 낫게 한 것도 내 안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그녀가 내가 한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죄'는 어떻게 되는 거니?" 그녀가 물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은'죄'는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지금처럼 행동하도록 타고났어요.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과 느낌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아버지'의 보호로부터 떼어놓고 병과 불행을 가져다주니까요. '자아'를 극복할 방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거예요."
어머니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녀는 내가 한 말을 깊이 새겨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더 이상은 화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내 말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고, 그것이 그녀의 익숙하고 안전한 세계를 뒤집어놓게 될 것임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말을 듣지 않으면 무서운 벌로써 위협하는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녀는 길을 잃은 것처럼 헤맬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남들의 악행을 저지하는 일이 전적으로 인간의 손에만 맡겨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를 걱정할 것이다. 왕과 총독들조차도 사악한 짓을 저질렀다. 죄짓는 자들을 벌하고 다스릴 여호와가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기력을 회복해가는 동안, 나는 경전을 열심히 읽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자신 있게 대할 수 있게 되도록 말이다. 또한 메시아에 대해서 써진 것들도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선지자들이 이야기한 '그'가 바로 나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사람들을 불행과 병과 가난으로부터 구출 ㅡ 구원 ㅡ 해내고, 심지어는 천국과 '아버지'의 실상에 관한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건강과 번영을 되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해주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어느 안식일 날 나자렛의 회당에 가서 회중들에게 설교를 하기로 했다.
풍습대로 나는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이사야61:1)를 읽도록 성경을 넘겨받았다. 나는 메시아가 와서 모든 형태의 구속으로부터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리라는 예언 대목을 골랐다.
"주의 성령이 내 위에 내렸나니,
그가 나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도록
기름 부어주셨기 때문이라
그는 속박당한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리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주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도록 나를 보내셨도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 앉아 말했다: "오늘 너희는 이 예언이 내게서 이루어진 것을 보았다."
사람들의 표정에 충격과 경악이 떠올랐지만 나는 '아버지'가 해야 할 말을 일러줄 것임을 알고
계속 말했다. 말은 술술 쏟아져 나왔다.
나는 광야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기가 커서 성인이 되는 동안 전혀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정신적인 가죽끈과 쇠사슬로 옭아매어 내면의 암흑 속에다 가두고 눈멀게 하여 신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것을 보았음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럼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정복자의 억압과 노예생활과 궁핍과 질병에 노출시킨 것 임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하나님]은 [빛]이기 때문이다. 또한 [빛]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질료다". 그리고[빛]은 [사랑]이고, 사랑이 인간이 즐길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내가 말을 마치자 회당 안에는 완전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회중이 뭔가 기이하고 강력한 것을 경험했으며, 사고의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되어서 그 초월적인 평온의 순간이 깨트려지길 원치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그들 사이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네가 누구인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예수라는 인물로서 마을 사람들이 아는 집안 출신임을 확신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마치 권세 있는 사람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는 이 종교적인 사람들에 대한 나의 구태의연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들이 과거에 나를 경멸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거부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옛날의 도전적인 태도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서 그들을 분노에 떨게 만들어놓았다. 인간적인 반응으로써 재앙을 자초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큰 재앙이 될 뻔했다.
장로들의 사주를 받은 젊은 사내 하나가 나에게로 달려오더니 나를 끌고 가장 높은 절벽 끝으로 데려가서는 나를 던져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아버지'께 구원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의 마음이 혼미해져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린 채 서로를 마주 보고만 서 있었다.
나는 그 틈에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그들은 내가 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이 경험에 완전히 놀란 나는 겨우 어머니에게 전언을 보내어 내가 즉시 나자렛을 떠나 갈릴리 바닷가의 우아한 마을인 가버나움으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거기서 옛 지인을 만날 생각을 했지만 직관적으로는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 와서 읍내에 이를 즈음'아버지'께서 잠 잘 곳을 찾아 길을 일러주시기를 빌었다. 나는 돈이 없었지만 구걸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길을 걷는데 중년의 한 여인이 팔에 무거운 광주리를 안은 채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슬퍼 보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불러 세워서 어디로 가면 잠 잘 곳을 찾을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하기를, 보통 때 같았으면 재워주겠지만 지금은 집에 몹시 아픈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이 죽으면 애도해줄 '문상객'들이 벌써 모여들어 있어서 그들을 먹일 것을 사러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의 가슴은 그녀의 말에 슬퍼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나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로 곧장 인도된 것이다.
나는 동정을 표하면서 그녀의 광주리를 집까지 들어다 주겠노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사람일지를 의심하면서 나를 잠시 살펴보더니 나의 용모와 태도와 품행에 만족한 듯했다. 가는 길에 나는 어쩌면 내가 아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의원이신가요?"그녀가 물었다.
나는 의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어쨌든 그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돌로 크게 잘 지어서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짐작케 하는 그녀의 집에 이르자 그녀는 나를 남편에게로 데려가서 말했다. "이분이 우리 아들을 봐줄 수 있다고 하네요."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미리암이라는 이 여인은 나를 끌고 가며 그가 고뇌에 지친 데다 매우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딸부자인 우리 집의 외동아들이어서 그는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병을 주신 것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미리암은 눈물을 흘렸다. 그가 이렇게 하나님께 반항한다면 우리의 앞날에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얼마나 쌓일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걱정 말아요. 당신의 아들은 곧 다시 좋아질 테니까요."
그녀는 의심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아이가 누운 방으로 안내했다. 우울한 표정에 말 많은'복 비는 이들'로 가득 찬 방은 덥고 숨 막혔다. 나는 어머니에게 방에서 사람들을 내보내라고 했지만 방문객들은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고 싶어 했지만 미리암이 남편을 불러 말을 하게 하자 그제야 마지못한 듯이 떠났다. 그들이 옆방에서 아이의 아버지와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이 사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거냐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보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아들은 죽은 듯이 창백했고 열이 높았다. 어머니는 아이가 창자에 힘이 없어서 음식을 못 넘긴다고 했다. 그는 여러 날 이런 상태로 지내서 살이 많이 빠졌고, 의사는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죽을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아버지'[생명]이 내 손을 타고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갈 것임을 알고, 말없이 가슴 깊은 감사를 올리면서 말이다. 치유는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었다. 나는 손에서 지극히 높은 열과 찌릿찌릿한 진동을 느꼈고, 권능이 그의 약한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감사의 기쁨에 압도됐다. '아버지 생명'이 풀려나와 그 자연스러운 치유의 역사를 행할 때,
그것은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궁금해하면서 서로 손을 붙잡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유심히 지켜봤다. 창백하던 아이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 그들은 놀람과 기쁨에 소리쳤다.
시간이 좀 지나자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전 이제 괜찮아요.
배가 고파요. 뭐 좀 먹고 싶어요."
어머니는 행복감에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를 꼭 껴안았다. 하지만 동시에 염려하고 있었다.
"아들아 음식을 줄 수는 없단다. 의사 선생님께서 화내실 거야."
그녀는 아이에게 물 밖에는 아무것도 주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이는 나았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줘도 됩니다. 그는 소화해낼 거예요.
그의 아버지 제데키야는 너무나 놀라서 환희와 감사에 넘쳤다. 사랑하는 아이를 껴안은 다음 그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려 내 손을 따뜻이 감싸 잡았다. 그는 나의 어깨를 계속 다독였지만 고개를 젓기만 했다.
눈물이 양 볼을 적시고 있어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침착을 되찾자 그는 거실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거의 죽어가던 내 아들이 완전히 되살아났소!"
그의 말은 왁자지껄한 환호와 흥분과 불신과 의문과 웃음과 축하에 휩싸였다. 거기에 아이의 어머니도 온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서 있었다. 그 이후에는 잠 잘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제데키야가 놀란 '문상객'들에게 아들이 나았다고 말할 때,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문간에 나타나서 음식을 더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자 '복 비는 이'들은 나를 에워싸고 서로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아버지 집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는 이제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고 했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 대답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식탁에 음식과 포도주가 차려지고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나자 제데키야가 자리 잡고 앉아서 첫 번째 질문을 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은 제사장도, 의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습니다. 치유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만 옵니다.
당신은 낯선 분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놀라서 웅성거렸다.
"제 아들에게 찾아온 이 병, 이것은 제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인가요?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의 외동아들을 빼앗아가려고 할 만큼 무거운 죄를 지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이 말을 듣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데키야, 당신은 내가 가장 대답하고 싶어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존재를 부여하십니다. 그는 인간이 화가 나서 다른 사람이 아끼는 것을 빼앗아가는 것과 같은 식으로 우리에게서 생명과 존재를 빼앗아가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이나 하는 행동이지 하나님의 행동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왕이 왕좌에 앉아 지배하듯이 하늘의 어딘가에 있는 왕좌에 앉아 계시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방식이고 인간의 믿음이지, 진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인간의 마음이 생각하거나 꿈꿀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까마득히 초월해 있습니다. 나만이 '우리를 존재 속으로 데려온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랍비들이 가르치는 그런 종류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나는 [그것]이 '완벽한 사랑'임을 보았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차라리'아버지'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마치 인간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입히고 가정이라는 보금자리에서 보호받게 하기 위해 일하듯이, 살아 있는 모든 것 안에서 역사하여 그들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 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한 사내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어떤 종류든 간에 개체적인 어떤 '존재'가 모든 곳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기는 우리가 볼 수는 없어도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이 매우 실질적인 것이고 우리의 존재에 배우 중요한 것임을 알고, 의심치 않습니다. 만일 공기가 없다면, 그래서 숨을 쉴 수가 없다면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람이라 부르는 공기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뭇잎을 건드려 흔들고 하늘을 가로질러 구름을 떠밀고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기가 우리 주변과 하늘 높이에 있고, 그것이 강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 중 어느 것이 더 실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인가요?"
어떤 이들은 그것이 몸이라고 했다. 몸이 없으면 지상에 머물 수가 없고 일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서 알려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대답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없이는 몸에 기운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먹고 마시고 잠자고 움직이고 계획하고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마음이 만들어내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그 생각들이 우리의 삶 속에 모종의 행동을 일으켜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뇌를 통해서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육에서 난 뇌가 생각과 느낌과 아이디어와 계획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이젠 당신들도 이것이 '아버지'가 만물의 내부에 임재한 방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겠지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내부에서 [그것]의 위대한 역사를 해내고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 배후에 있는 지휘감독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커가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이 기적처럼 다른 물질로 바뀌어서 그들에게 영양을 공급하여 자라게 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우리로서는 알지고 못하고 상상조차 못합니다. 설사 안다고 해도 무엇이 모든 종(種)의 살아 있는 몸속에서 그토록 중요한 생명 작용이 일어나게끔 부추기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할 겁니다.
각 종들의 신체가 저마다 얼마나 놀랍게 형성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지, 그들이 먹는 종류의 음식이 뼈와 피와 살을 불려주는 양분으로 얼마나 분명히 변환되는지를 보세요."
"이제 당신이 이런 것들을 말해주니까 그게 정말 놀랍다는 걸 깨닫겠네요. "한 청년이 외쳤다. "맞아요! 그래요!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몸이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커져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도 몸의 발달에 맞춰 성숙해가서 처녀와 총각들이 부모가 되려고 짝을 찾아 헤매지요. 그러면 수태라는 위대한 일이 일어나고, 자궁 속에서 씨앗이 자라서 온전한 아이가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가 여성의 몸속에서 이 모든 질서 정연하고도 꾸준한 성장이 일어나게 하는 걸까요? 머리와 몸통과 사지가 올바로 자라나도록 관리하는 계획, 모든 여성에게, 그리고 모든 종에게 여일 한 그런 계획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출산이 시작될 정확한 순간은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 걸까요? 생각해보세요 그게 어머니일까요?
아니, 그것은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녀는 단지 그녀의 짝이 자기에게로 와서 씨앗을 심어 그녀의 것과 하나가 되게 한 순간부터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보는 목격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멀리서 이 모든 일을 할까요? 그분의 생각이 모든 남녀들에게 가닿아서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날지를 정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은 '창조적 마음의 권능,' 모든 살아 있는 것들 내부의 '지성적이고 사랑 넘치는 생명'에 의해 이뤄집니다. 우리는 새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간에 그 새끼에 대한 어미 아비들의 사랑을 목격합니다. 이 사랑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안의 '아버지'의'창조적 마음의 권능' ㅡ 완벽한 사랑 ㅡ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살아서 숨 쉬고 먹고 자고 자식을 낳고 늙어 죽어서 좀 더 행복한 곳으로 건너가는 것은 식물과 나무와 새와 동물과 인간 자신 속에서 '아버지'가 그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아버지'의 역사(役事)입니다. 내가 오늘 밤 이야기한 모든 것의 진실성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죽어가던 아이가 짧은 시간에 다시 생명을 온전히 되찾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ㅡ 그를 치유한 것이 나였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병든 몸을 고쳐서 다시 완전히 건강하게 되돌려놓기 위해 전력으로 그 몸속에 들어온 것은 만물 속에 살아 있는 '아버지'이신 [생명]입니다. 그것이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은, 그럴 것임을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 안에는 만족해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빛, 새로운 관심, 그리고 새삼스러운 친절의 표정까지 비쳤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토록 비통한 고난에 시달립니까?" 미리암이 질문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날 때, [생명]이 씨앗 안에 형체를 취할 때, [그것(생명. 역주)은 세상의 다른 모든 개인들로부터 [그것]을 떼어놓는, 인간성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싱글로, 독신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고 홀로 서는 자신만의 인격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 [그것]은 자신의 세속적 (earthly) 본성 속의 두 가지 강력한 추동력에 복종하여 지배받습니다. ㅡ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단단히 붙들고, 원하지 않는 것은 거부하고 밀쳐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인간 내면의 이 두 가지 원초적 추동력이 그가 일평생 행하는 모든 일의 근저에 깔려 있어서, 그것이 인간이 자초하는 문제에 전적인 원인을 제공합니다. '아버지'는 인간의 내면에 살아 있지만, [그것](아버지-역주)]은 그 안에 인간성과 관련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저주하지 않고'잘못'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죄'라 부르고 행하는 모든 것을 오직 이 세상의 것일 뿐이며,
이 세상 속에서만 벌해집니다. ㅡ 여러분도 알다시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지상의 존재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아버지'로부터 [생명]과 [마음]을 얻어오므로 , 인간도 자신의 생각과 말로 행동을 통해 창조합니다.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유사한 형태를 띠고 그에게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로부터 내리는 벌은 없습니다. ㅡ 인류에게 오는 모든 불행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계 속
[출처] 그리스도의 편지 [ 두 번째 편지 1 ]|작성자 자목련 소 정
사람들은 이것이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지만 이전에 배운 것보다 더 그럴듯하다고 쑥덕거렸다.
몇몇 사람이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졸랐다.
'내 말 하건대, 여러분은 내 안에서 [생명]이 치유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를 따라오면
여러분은 행복을 찾기 위해 가야만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나의 말속에서 여러분은 지금껏 다른 누구도 밝힌 적 없는 존재의 [진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메시아'는 태초로부터 감추어져온 창조의 비밀을 공표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내 진실로 말하노니, 여러분은 나에게서 바로 그 비밀을 들을 것입니다. 그것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뜻을 이해하고 그 진실을 행하고 그 법칙을 지키면 여러분은 새로워져서 하늘나라에 들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사람들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흥분된 목소리로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하지만
제데키야가 일어나서 이제 식구들이 잘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아들에게도 잠이 필요했고 그의 아내와 딸들도 너무나 울어서 지쳐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내가 부두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아픈 이들을 나에게 데려오기로 했다. 이리하여 나는
나의 사역에 착수할 수 있었고, 모든 일이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신속히 주선되었다.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말을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치유는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참임을 보여주었고, 나의 가르침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그들에게 치유를 가져다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앞으로 벌어질 멋진 일들에 대한 기대에 벅찬 기쁨을 느꼈다.
아침을 먹은 다음 나는 제데키야와 함께 마을의 부둣가를 향해 출발했다. 나의 가슴은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달아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이 인사를 건네면서,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전해줄 '복음'이 있노라고 말해줬다.
선창에 이르자 남녀와 아이들이 땅바닥에 앉아 나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애원하듯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들은 매우 아파 보였는데 일부는 불구자였고 많은 이들이 상처에 온몸이 뒤덮여 있었다.
그들의 가엾은 처지에 내 가슴은 여전히 아팠지만, 한편으로 이제 나는 기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와는 정반대였다. '아버지'는 그 자신이 온통 치유' 온통 건강, 온통 기운이었다. 나는 그것을 집에서도, 지난밤에도 입증했다. 이제 내 주위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진실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사실에 나는 의기가 양양 해졌다.
한 늙고 슬픈 표정의 얼굴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주름살 투성이의 그녀는 야위고 허리가 꼬부라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로 가서 옆에 무릎을 꿇고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즉시'아버지의 권능'이 내 손을 통해 그녀의 머리를 지나 들어가서 온몸을 생명력으로 진동시키며 사지에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놀라서 내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워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그들의 반응을 침묵시켰다. 그녀의 사지가 서서히 풀려서 뻗쳐지면서 바로잡혔다. 기운이 돌아오는 기쁨에 그녀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나는 그녀가 일어나도록 부축해줬고, 그녀는 혼자서 자랑스럽게 일어섰다. 그녀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는 울기 시작하더니 그다음에는 웃고 춤을 추면서 사람들에게 외쳤다: "찬양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그러자 둘러선 사람들도 따라서 외쳤다.
"찬양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그들은 자신이 목격한 일에 깊이 감동받았다.
나를 향해 몰려드는 인파가 너무나 많아서 제데키야가 그들을 제지하여 나섰다. 그는 다른 열성 있는 구경꾼들의 도움을 받아 질서를 잡아서 내가 가장 급한 사람부터 돌봐줄 수 있도록 아픈 이들을 나를 향해 한 줄로 세웠다.
마침내 나는 피로를 느꼈고 나의 집주인은 나를 자기 집으로 다시 데려가 식사를 하게 했다. 그는 시간이 모자라서 내가 고쳐주지 못한 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는 다음날에 내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사람들에게 다짐을 해주었다.
저녁시간은 잔치와도 같았다. ㅡ 할 이야기도 많았고 축하할 일도 많았고 가르칠 것도 많았고 배울 것도 많았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복음이라는 사실에 다들 동의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광야에서 '본'것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이어졌다. 멀리 방방곡곡으로부터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 제데키야와 그의 다른 친구들이 사람들의 무리를 안내하여 내가 치유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왔다. 사람들은 즐겁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인간을 불행에 얽매어놓은 '가죽끈과 쇠사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밀려와서 나는 곧 믿고 의지할 만한 나의 조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데키야는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가죽 사업을 하러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제자들'을 택하는 일에 관해 기도를 하려고 산으로 올라갔다. 누구를 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인도를 받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가버나움으로 돌아왔다. 나의 설교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던 몇몇 사내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바닷가로 가고 싶은 기분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과연 고기잡이 그물을 버리고 나를 따를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 시몬과 안드레아와 야고보와 요한을 불렀을 때 그들은 즉시 왔고, 나의 치유와 가르침을 돕게 된 것을 기뻐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일을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합류했다.
나는 언제든지 다시 와도 좋다는 제데키야의 따뜻한 약속을 뒤로하고 그의 집을 떠났다.
마을과 읍성들을 필요한 대로 돌아다니면서 가르치고 치유하는 나의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출발하기 전에 나는 나를 기꺼이 돕겠다고 한 청년들을 모이게 했다. 그들은 나의 가르침을 경청할 것이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들에 어리둥절해할 것이었다. 광야에서 나에게 계시된 모든 것에 대한 배경 설명을 먼저 해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전에는 매우 게으르게 살아왔지만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깊은 연민을 느껴왔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랍비들이 가르치는 '하나님'에 내가 등을 돌린 것도 그 같은 연민 때문이었다. 내가 죄를 벌하는 여호와를 전적으로 거부한다고 말했을 때.,그들의 얼굴에 의심과 충격의 표정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죄 없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 '선하신'하나님을 운운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나의 의문을 꽤 길게 설명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그들의 표정이 서서히 펴졌다.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표정이 수용으로부터 온전한 동의로 바뀌는 것이 보일 때까지 나의 예전의 의심과 분노를 설파했다. 나는 내가 그들 안에서 이전에는 말로 표현할 용기를 내본 적 없는 의심과 의문을 일깨워 놓았음을 알아차렸다.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랍비들의 가르침에 대한 자신들의 은밀한 저항감이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삶을 허비하고 있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깨닫게 된 때가 내게 있었던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나 자신의 변화를 갈망하여,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으로서 세례 요한에게 가보아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세례를 받는 동안에, 그리고 광야에서 보낸 6주일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실재'를 보여준 깊은 계시와 깨달음을 얻는 동안 나의 이전의 생각과 신념과 태도와 자만심과 반항심들이 서서히 의식 속에서 깨끗이 지워져간 과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버지'의 본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 '신성한 본성'에는 '신성한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나는 그릇된 사고와 행동으로 자기 안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차단한 것도 인간 자신이며, 먼저 회개하고 그다음에 정신적, 감정적 찌꺼기를 청소 함으로써 '아버지'를 온전히 만나게 해줄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 또한 인간 자신밖에 없음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본성이 그 사람의 마음과 가슴과 몸과 영혼과 그의 삶의 환경과 경험 속으로 온전히 풀려나올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사람은 '아버지'가 다스리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또한 그의 의식 속에도 천국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존재 배후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반응을 보았다. 모든 의심은 사라지고 이제는 이해와 기쁨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청년들은 열의에 찬 신봉자가 되어 외쳤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복음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이후에도, 내가 말한 것이 과연 진실인지를 다시 의아해하게 되는 때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그토록 깊이 각인되어 있는'여호와'의 이미지를 제거할 준비가 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때로 그들은 저희들끼리, 이런 놀라운 주장을 하는 이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를 궁금해했다. 그들이 따르기로 한 사람이 사실은 사탄의 하수인이었다면 어쩌겠는가? 그들에게는 여호와의 징벌이 내릴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ㅡ 숙련된 기술로 이름을 떨치면서 열심히 일하는 건전한 청년이었던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와 수입을 잃게 될 것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가족이 분노하여 그들을 배척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대가로 무엇을 받을까?
나는 그들이'복음'을 전하는 나의 일을 도와주는 데 대해 그 어떤 세속적인 보상도 약속할 수 없다는 점을 말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음식과 잠자리는 마련될 것이고 사람들이 잘 맞이해주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단지'아버지'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충족시켜주고 건강을 줄 것이라는 진실만을 약속할 수 있었다. 나는 또 그들이'아버지'를 향하고, 가는 길의 발걸음마다'아버지'를 신뢰하면 이전에는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느껴질 만큼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아'의 요구를 제쳐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려 들게 될 만큼 천국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치유를 목격할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믿음을 키워주어서 여행의 불편을 견뎌낼 용기를 줄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사역에 착수하게 된 경위였다.
나는 청년들을 우리가 방문할 마을에 먼저 보냈다. 그들은 마을에 가서 사람들에게'천국의 복음'을 들으러 모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놀라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 했지만 제자들은 '예수가 도착하면' 그 모든 것을 듣게 될 것이고 아픈 이들을 치유해줄 터이니 친구들과 이웃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만 부추겼다. 많은 이들이 흥분하여 뛰어가서 그 '좋은 소식'을 알렸고 곧 많은 무리가 모였다.
죄지은 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징벌과 저주가 있으리라는 엄포로 위협하는 종교적 훈계에 그토록 깊이, 격렬히 반항했던 내가 이제는 이 군중들을 만나러 기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나날을 환히 밝혀줄 '복음'을 들려줄 것이었고, 병을 치유하여 그들의 삶을 더 기쁘게 만들어 줄 것이었다.
이전에는 사람들 사이를 이기적인 마음과 빈손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선의와, 때로 그들이 주는 것들을 감사의 마음도 거의 없이 넙죽넙죽 받기만 했던 내가, 이제는 내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삶의 질을 드높일 행동을 취할 준비가 되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생명을 넘치게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이 페이지를 읽고 있는 너희가 당시의 내 입장과 느낌을, 광야에서의 깨달음 이후의 내 의식 상태를, 그리고 내가 '예수'로서 사람들에게 보여준 외적 인격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추측이 난무하여, 나는 이제 그 진실을 너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성장했을 때 체격이 좋았고 매부리코의 강인한 인상에 지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남의 흉내를 잘 내고 잘 웃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자신의 세속적인 재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광야로 들어가던 당시 나의 표정이나 태도는 평소보다 '반쪽'이 되었다고 할 만한 상태였다.
나는 제 모습을 돌아보면서 저항감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나의 지성마저도 악용되고 있어서 늘 종교에 대한 논쟁과 다툼에 끼어들어 경박한 논박만 벌이곤 했다. 나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어울려 다니던 남녀들은 나를 좋아했지만 물론 존경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나자렛의 회당에서 그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나를 알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어머니가 나의 건강이 회복되도록 돌봐주는 동안에, 나는 광야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을 강력하게 활용했다. 이것이 내가 되게끔 되어 있었던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나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창조와 존재 자체의 비밀에 관한 지고의 지식을 지닌 유일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나 말고는 '아버지'를 '본' 자가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인간이 그처럼 온 가슴으로 믿어온 모든 것이 그릇된 것임을 ㅡ 참이 아님을 알았다.
나는 내가 이 사명을 위해 '아버지'에 의해 특별히 설계되고 만들어졌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전할 말이 잘 전달되고 영원히 잊히지 않게끔, 풍부한 신체적 에너지와 말의 기운과 의미심장한 우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은사를 받았다.
게다가 나는 내 이웃들과의 오랜 사귐을 통해 그들의 가장 열렬한 소망과 가장 필사적인 두려움을 알고 있었고, 무엇이 그들을 웃게 만들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거만한 부자들을 조롱하게 만드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한 그토록 많은 젊은이와 늙은이들이 얼마나 깊은 고통을 말없이 용감하게 견뎌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나는 바리새인들의 언어폭력을 두려워하며 ㅡ 혹은 견뎌내며 ㅡ 살아온, 그리고 로마의 세법에 굴종하며 살아온 백성들을 알고, 깊은 연민을 경험했다. 입술과 손과 무릎으로는 받들지 않을 수 없지만 닫힌 문 뒤에서는 경멸하는 이방인 정복자들에 의해 그들 유대인의 자존심이 어떻게 멍들었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백성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알고 있었다. 나도 전에는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그들과 같은 분개를 느꼈다. 결핍과 곤궁 속에서 그들과 같은 불안을 겪었고 로마에 지배받는 백성의 무력감을 느꼈다.
이제 나는 그런 어떤 고난도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존재의 실재, 우주적'신'의 실재를 아는 나는 유대 정권의 어리석음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존재의 진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적으로 그릇된 짓으로써 백성들에게 무거운 삶의 짐을 지우고 있었다. 그 상황은 나를 깊이 분노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신성한 행동 ㅡ [진실]을 향한 내 열망에 의해 추동되는, 이웃 인간들을 향한 나의 연민에 의해 추동되는 행동 ㅡ 의 정화된 도구가 되도록 완벽히 만들어지고 연마되어왔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 나날의 삶 속에서 정확히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한다는 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고, 그리하여 내가 그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내 사역에 착수하던 때부터 진즉,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 ㅡ 알려진 유대 세계를 아래위로, 안팎으로 뒤집어놓는 것 ㅡ 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회피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가슴과 내 존재를 관통하여 흐르는 '아버지'의 [사랑]으로써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이야말로 [베풂(Giving)] ㅡ 눈에 보이는 만물 속으로 그 자신을 주고, 가시적 존재와 성장과 보호와 양육과 치유를 주고, 눈에 보이게 만들어진 모든 창조물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ㅡ 의 본질이므로.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ㅡ 세상에게 ㅡ 주는 '아버지'의 구원의 선물임을 알았다.
그들이 수백 년 동안 가정하고 가르쳐온 것, 즉 분노하는 하느님이 '죄인'에게 내리는 징벌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그릇된 사고 ㅡ 그들의 불행과 궁핍과 병과 비참한 삶을 창조해낸 그릇된 생각들 ㅡ 로써 똑같은 실수를 날마다 반복하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내는 것 말이다.
나는 인간을 너무나 깊이 사랑했으므로 유대교 제사장들의 배척을 무릅쓰고 가르치고 치유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광야에서 진실로 '보았고' 온 가슴으로 알았고 내 능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해서 나눠주고자 했던 것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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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십자가형 배후의 진실이며
너희가 들은 나머지 모든 것은
성전에서 올리는 유대교의 번제 관습에 연루시켜
사람들이 지어낸 억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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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가 존재의 법칙에 대한 무지에서 헤어나
환희와 풍요와 천국의 완벽한 온전함으로 가는
진정한 생명의 길을 찾는 것을 돕도록
'아버지'로부터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이것이 내가 마음과 가슴속에 품었던 인식과 열망과 의도와 목표와 생각이었다. 이것이 지상의 '예수'라는 인물과 그 머릿속에 감춰진 나의 영적 의식 위에 입혀진, 지상의 생각과 감정의 틀이었다.
나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내가 온전히 믿었던 것 ㅡ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창조해내고 있는 그들 자신의 눈먼 생각과 느낌으로부터의 영원한 구원 ㅡ 을 전해주기 위한 3년의 여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위와 같은 생각과 느낌 속으로 흘러든 나의 영적 의식이었다. 나에게 주어지고 이해된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들 또한 과거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천국으로 가는 생명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임을 나는 진정으로 믿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내 생명도 기꺼이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의 사역에 대해 유대교 스승들이 가한 그릇된 해석 때문에 나의 진정한 메시지는 왜곡되어 인정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편지의 목적은, 내가 팔레스타인의 대중에게 실제로 말했던 진실을 이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말을 경청했던 이들 사이에서 결실을 맺고, 내 제자들의 마음속에 오랜 각인을 남겼던 한 특별한 날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것은 나에게도 특별히 의미 깊은 날이었다,
나는 밀려드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잠시 짬을 내어, 내 안의 '아버지'와 더 깊고 강한 연결을 맺음으로써 나의 영적 에너지를 충전시키기 위해 기도와 명상을 하러 산으로 갔다. 군중 속에서 바쁘게 일할 때는 내 의식 속에서 이 연결감이 급속히 떨어져서, 나는 금방 진이 빠져버리곤 했다. 그 지역에 머무는 동안 내가 이용했던 동굴에 도착하자 나는 바위 밑에 감춰뒀던 짚 요를 꺼내어 깔고 그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드는 대신 나는 이내 '신성한 생명,'곧 '아버지'가 내 안에서 흘러드는 것을 느꼈고, 내 몸이 모든 존재의 창조적 근원인 권능으로 충전되자 피로감은 사라져버렸다.
의식 속에서 나는 황금색 빛 속으로 올려졌고, 그 속을 상승하는 중에 그 빛은 갑자기 지순한 흰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의식 속에서 나는 내가 이제 인간의 마음이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하고 우주적이고 무한한 차원인 평형상태(Equilibrium)의 문턱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빛]을 관찰할 뿐,[빛]에 속하지 않았고,
내 안에 그[빛]이 강력히 있지도 않았다.
이야말로 공(空)의 차원인 '하나님,'
무형상의 우주적 평형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그것]은 나와 소통했고
그 이글거리는 [사랑]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그것]은 만유를 다스리는 '창조하고-완성하고-치유하는-작용'
[사랑]임이
내 안에 다시금 각인되었다.
물이 흘러들어서 호수를 채우듯이, 결핍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결국은 충족이 있게 될 것임을 나는 알았다.
불행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필요를 느끼는 모든 생명 속으로 움직여 들어가 충만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성장이 없는 곳에는 성장을 부추기는 환경이 생겨날 것임을 나는 알았다.
좌절감이 있는 곳에는 성공과 자기 확신을 향해 가도록 박차를 가하는 도전과제가 주어질 것임을
나는 알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아버지'에 의해 끊임없이 촉발되는 이[사랑의 역사(役事)가 그것을 받는 편에서는 '[사랑]의 선물'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무감각한 아둔함과 좌절감과,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 생길 수가 없다는 믿음 속에 깊이 빠져 있어서 자신의 신념과 기분 외에는 삶 속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창조해낸 지옥에 뿌리를 든든히 박고 남아 있는 것이다.
누구를 동정하여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연민의 가슴과 그들의 무지를 치유해줄 [진실]을 전해주겠노라는 결심뿐이었다.
인간이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존재와 존재의 우주적 법칙에 대한 무지를 깨우쳐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은 이러하기 때문이다.
낱낱의 영혼이 모두 [우주]의 품 안에 안겨 있고,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삶으로 들어오는 [우주의 입력신호와 에너지]의 강도는 전적으로 각 개인의 수용성에 달려 있다.
나는 사람들이 시급히 들어야 할 말은 내가 막 들었던 그것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바로 그들 존재의 바탕인 [사랑]의 의도와 목적과 잠재력을 '보고' 온전히 깨달아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의 불신으로 인해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를'고통을 초래하는 골칫거리'로만 여겨 제쳐두고는 좌절 속에 영원히 널브러져 있었다.
이제 나는 내가 사람들을 일깨워 자신을 계발하고 활짝 꽃피워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도록 보내어졌음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지만, 깨어나서 주어진 것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이 고양된 상태가 밤새도록 이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침에는 전에 없이 생기를 느끼며 일어났다.
나는'아버지'의 실상을 어느 때보다도 확실히 보았고, 그날은 군중에게로 나아가서 내가 보았던 것의 권능과 생명을 전해줄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동굴에서 내려오다가 나는 가파른 벼랑이 건너다보이는 너른 바위에 당도했다. 거기에 앉으니 그날 우리가 방문할 읍성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그'완성시키는 작용' ㅡ 그 '온전해지게 하는'추동력' ㅡ '아버지' ㅡ 이 나를 관통하여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일상의 번뇌 속에 파묻혀버리기 전에 얼른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의 인간적인 의식 속에서는 그것도 그 권능과 힘을 잃고 말 것이었다.
잠시 후에 제자들이 나와 합류했다. 읍내에 들어서자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고, 모여드는 무리를 마을 뒤편의 비탈진 공터로 인도했다.
그들 가운데 있는 큰 바위에 서서 나는 말을 시작했다.
나는 열정과 기쁨, 열망과 고대와 확신, 이 모든 것이 내가 하는 말속으로 절로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여러분은 심히 주눅 들고 지쳐 있습니다. 늙어갈수록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배는 종종 주려 있고, 옷은 곳곳이 해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분을 화나게 만들어서, 이 고생과 마음의 짐은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의 존재에 관한 진실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은 그와는 사뭇 다르게 의도되었습니다. 자신의 느낌 그 너머를 볼 수만 있다면 ㅡ 여러분 안에 있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고양시킬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 상태가 실로 어떠한지를 '보고,' 알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풍요와 보호와 건강과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아버지'는 여러분 내면의 풍성한 [생명]과 [사랑] 이어서 건강과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고 믿기보다는 '선 과 악'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나날을 살면서, 그것을 더 믿고 기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작 여러분이 자신의 삶과 몸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 가장 두려워하는 '선악'의 경험입니다. '선악'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아버지이신[사랑]'을 믿기만 하면'아버지'께서 주려고 쌓아놓으신 모든 것을 [구름처럼 덮어]가려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나날을 심판하는 한편으로 지난날 경험했던 것을 내일도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어제의 병고와 불행이 미래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기억과, 과거가 다시금 다시금 돌아와 여러분을 짐 지우고 상처 입혀야만 한다는 변할 줄 모르는 믿음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몸을 고치거나 삶을 향상시키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치유해야만 합니다!
태양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말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치유할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의 믿음을 '아버지'의 진정한 의도에 조율시킬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의 육신과 삶을 지배하고 있는 그릇된 믿음들은 햇빛 속의 안개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상황과 환경은 즉시 모든 창조물 배후의 신성한 의도대로 돌아올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 모든 종류의 결핍에는 언제나 그것을 종식시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의 필요에 따라 바구니를 채워줄 것이 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픈 이가 내게로 와서, 내가 그들에게 손을 얹어줄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그 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 사람이 나을까 낫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을까요? '아버지'께서 잠자고 있거나 멀리 있어서 내 말을 듣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나에게 이런 불신의 생각이 있었다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병을 고치려고 나에게 오면 나는 이내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아버지'이신 권능이 내가 청하는 순간 치유해주려고 내 안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의 뜻'은 병이 아니라 건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뜻'이 병든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병든 사람의 몸에서 병에 대한 믿음을 제거하고 '아버지의 뜻'인 건강이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고 있는 것을 [알면], 병이라는 현상 ㅡ 겉모습 ㅡ 도 '아버지 건강'이라는 실제로 바뀌어 몸이 다시금 온전해집니다.
병은 아픈 부위에 일어난 생기의 저하 ㅡ [생명]의 감소 ㅡ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신체의 진정한 의도와 계획에 '아버지 생명'을 되찾아주기만 하면 온몸이 제 기능을 회복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백성에게 질병과 역병과 기아와 파괴의 징벌을 내린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은 죄에 진노한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 자신이 징벌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징벌이란 선을 가장한 악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 여러분께 말하노니, 악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두 편 ㅡ 선과 악 ㅡ 일 수가 있습니까?
오로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만 선과 악을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서만 그것을 생각하고 느낍니다. 그런 생각과 느낌들은 여러분 안에 있는, 여러분이 그렇게 믿기만 한다면 모든 좋은 것을 가져다 주는'아버지'인 참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병을 가져오는 것은 선과 악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 그리고 여러분 가슴속의 선과 악입니다.
사실은, 여러분은 천국에 살고 있고, 천국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버지'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징벌을 믿고, 성전에서 제물을 바쳐야만 구원받는다고 믿고, 질병과 궁핍과 불행을 상속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써 스스로 원치 않는 바로 그것을 창조해냅니다.
기죽어서 주저앉아 있지 말고, 기뻐하고 반가워하십시오. 그리고 가난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은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벌받고 버려지기는커녕 진실로 축복받았음을 아십시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아버지'를 잊지 않고 그것(아버지-역주)을 믿고 그것 안에서 살기만 하면 그것의 권능 속에서 풍요롭습니다.
배가 부르면 몸이 안락의 맛을 알고 마음이 편해져서 당장 '아버지'께서 나서서 필요를 충족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자신의 생각과 손으로 자신의 필요를 쉽게 충족시키고 있다고 믿으므로 그런 여러분이 '하나님'을 거론할 때는 오직 다른 이들에게서 들은 말밖에 하지 못합니다. ㅡ 자신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재산 속에 파묻히고 옭매여서 꼼짝달싹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 안의 '아버지'의 권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잠만 깨면 자기 일에 바쁩니다. 그들은 재산을 불릴 생각을 하고,'자아'를 부풀릴 생각을 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짐 지울 명령을 내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육신에 매인 마음과 가슴에서 일어나는 자기만의 한정된 인간적 사고로써 한정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가진 것 없는 이들만큼이나 병들고 불행한 삶을 경험합니다. 그들은 [생명의 근원]인 자기 안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므로 자신이 반밖에 살아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또 자신의 삶에 일어난 좋은 일들이 모두 자신이 만들어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임을 '보지 못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세도를 떨치는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여 마음을 놓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육신의 만족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신을 직접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천 년 전의 성자들이 한 말을 성경에서 읽고, 그것이 의미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사람들에게 되뇌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어서 사람들에게 인상을 심어줄까 하는 기대에 파묻힌 안락한 삶의 감옥에 갇혀 있는 그들의 작은 마음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들은 그 옛날 선지자들이 한 말들을 있게 한 계시적 영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또한 그 말들이 시대가 변한 지금에 와서 정말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어떤지도 알지 못합니다.
부자와 종교 지도자들은 세도를 누리면서, 전통과 관습 속에서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지리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일탈도 그들의 신념의 바탕을, 따라서 그들의 삶을 흔들어놓을 것이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권능이 흘러들어오지 못하도록 정신적 방어벽을 칩니다. 세상에 위안이 없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병들고 그들 나름의 불행을 맛봅니다.
삶에서 가진 것 없는 여러분이나 모든 것을 가진 이들이나 서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이나 모두가 똑같이 병들고, 원수지고 외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강이든 행복이든 좋은 이웃이든 자신이 택한 삶에서의 성취이든, 종교 지도자나 부자가 감히 바랄 수 있는 것보다 휠씬 크게 얻을 수 있는 여러분의 가능성은 엄청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여러분은 그러한 기회와 능력과 영감은 모두가 여러분 안에 계신'아버지'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찬장에는 먹을 음식이, 옷장에는 입을 옷이 충분하도록, 아이들이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도록 여러분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러분 안의'아버지'께 빌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하기만 하면,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풍성히 창조하여 공급해주는 것이 '아버지의 본성'임을 믿고 알기만 ㅡ 그리고 늘 기억하기만 ㅡ하면 그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위해 해주실 것입니다.
자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여러분이 일부러 빼앗지 않듯이, '아버지'도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어떤 것도 일부러 빼앗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난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이'아버지'의 본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여러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돕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신성한 기회를 즉석에서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슬퍼할 때 그 슬픔을 '아버지'께서 아신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여러분이 그것을 보고 믿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아버지'께로 향하여 여러분 내면의 '아버지이신 사랑'이 하는 일을 보기만 한다면, 그 슬픔은 이내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상도 못했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굶주리고 목마를 때, 여러분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필요가 '아버지'께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비탄하기를 그치고 ㅡ 얻을 것을 믿고 ㅡ '아버지'께 기도하여 구하기만 하면 그 필요는 곧 충족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떻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으려면 먼저 성전에 가서 '아버지'의 살아 있는 창조물을 먼저 제물로 바쳐 자신의 죗값을 갚아야만 한다고 믿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삶을 즐기도록 창조되었듯이, 여러분이 태우는 생명들도 삶을 즐기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로 하나의 축복으로서 창조되었고, 이 땅 위에서 살도록 축복받았습니다. 이것이 창조계 속에 드러나 있는'아버지이신 사랑'의 본성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믿는 것'이 곧 여러분이 얻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성전에서 산 제물을 바치는 유대교의 신앙이 불행밖에는 가져올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징벌을 믿는다면 여러분이 얻게 되는 것도 곧 징벌입니다. 죽임과 파괴가 하나님께 이르는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면 여러분이 경험할 것도 그것 ㅡ죽임과 파괴입니다.
굶주리고 목마르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생각과 불안과 절망감에 빠져 있다면, 바뀌길 바라는 바로 그 상황을 여러분 스스로 창조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나쁜 일을 스스로 자신에게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을 향하여, 그리고 내면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굶주리고 목마르다면 여러분은 더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반드시 백 배 이상으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핍박받고 약탈당했을 때, 여러분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믿음으로 가만히 기다리며 자신이 구출되는 것을 지켜볼 때 여러분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등에 연루되었을 때 여러분은 복받은 것이니, 그럼에도 여러분은 이웃을 돌보고 평화를 일궈낼 수 있습니다. 가슴속에 '아버지'이신 사랑을 지니고 있으니, 여러분은 진실로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심히 그릇된 짓을 당했을 때, 여러분은 복받은 것이니, 그럼에도 정의의 심판이나 복수의 수단을 구하지 않고 용서와 자비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인 사랑에 바로 일치시켜, 고난을 당했을 때도 화를 면할 것입니다.
가장 복받은 이는 가슴이 순수한 이들이니, 그런 이들은 가슴에서 모든 노여움과 미움과 원한과 몰인정과 시기와 강퍅함을 없애어'가시화된 사랑'으로서 세상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라 불리는 실재를 알게 될 것이고, 그 실재는 곧 그들 안에 계신 '아버지'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위대한 진실을 깨닫도록, 내가 어찌하면 도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천국,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내가 어찌하면 도울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쳐다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믿음을 확실히 보강해줄 '아버지'의 역사를 볼 곳은 그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주의를 상상과 꿈속에서 본 것으로 돌려서, 존재하지도 않는 여호와를 스스로 지어내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러왔습니다. 저 위, 하늘에서는 어디서도'아버지'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특별한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주변의 모든 곳에, 모든 것 속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밀, 풀, 꽃, 나무, 새, 그리고 살아 있는 것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살펴보십시오. 거기서 여러분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아버지'의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역사를 목격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완벽하게 다스리고 계시는 곳은 거기입니다. 거기에는 완벽한 법칙과 질서와 성장과 발전이 있고, 그리하여 결국에는 인간과 짐승과 새들을 모두 축복하는 결실이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밭을 간 후에 씨를 뿌리고 그 위에 흙을 덮어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연장을 챙겨 들고 집으로 갑니다. 그는 비만 충분히 내려주면 그와 자식들을 먹여 살릴 양식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흡족해합니다. 잠자고 깨고 하는 여러 날 동안 그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지만, 다시 밭에 나가보면 새싹이 흙을 뚫고 올라온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나중에 와서 보면 줄기와 잎이 자란 것을 발견하고 또 나중에 와서 보면 열매가 달리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곡식이 살찌고 누렇게 익어서 드디어 수확할 때가 된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성장은 그의 도움이 없이 일어났습니다. 밀알은 그가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과정을 통해 자랐습니다. 이것이 마법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아버지,'곧 권능, 곧 사랑 넘치는 지성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우주에 가득하여 만물을 통해 호흡하고, 펼쳐지는 역사(役事) 속에 영의 숨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것은 [우주의 지성적 생명]인 '아버지'의 작용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 여러분은 좋은 기분을 느낍니다. 행복하고 기쁜 느낌을 느낍니다. 한 여인이 많은 돈을 잃어버려서 아이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막막해하는 기분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까? 여인은 울면서 집안을 먼지 한 톨 안 보이게 샅샅이 쓸다가, 문득 한 어두운 구석에서 귀한 은전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그녀의 눈물은 금방 말라버리고,웃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생기를 되찾아 너무나 기뻐하면서 집을 뛰쳐나가 이웃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엽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가 이제는 결국 부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 하나님 나라를 발견할 때도 이와 같습니다. 눈물과 두려움과 굶주림과 아픔 대신에 여러분은 천국의 평화와 기쁨과 풍요와 건강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다시는 그 어떤 결핍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은 또 진주를 파는 아주 부유한 상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진주를 무색하게 만들 특별한 진주를 평생 동안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흠집이 하나도 없고 완벽하여 다른 상인들이 모두 그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정말로 그런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답고, 다른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고 쌓아뒀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진주를 샀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꿈꿔왔던 어떤 것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가치있게 여겼던 모든 것 ㅡ 호화로운 집, 보물들, 풍부한 음식과 마실 것, 살아온 방식, 이 모든 것을 그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을 가지기 위해 기꺼이 포기한 것입니다. 그 보물이란, 그를 천국으로 데려다주는 지식입니다. 거기서는 행복이란, 바깥세상의 온갖 걱정거리가 건드리지 못하는 어떤 마음 상태입니다.
'천국'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심을 온전히 깨달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 ㅡ 곧, 눈에 보이는 만물의 안과 그 배후에 있는 실재는 '아버지'이며 그것은 아름답고 완벽하여서 아름답고 조화롭고 건강하고 풍요롭지 않은 모든 것은 인간의 그릇된 생각이 만들어낸 것임을 느끼고 이해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내가 고통에 시달리는 여러분을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 아파했는지 아십니까? 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는다면 더 이상은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은 따르기가 어렵다는 점을 미리 경고해둬야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 '자신을'다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왜 '자신을' 다뤄야만 할까요? 왜냐하면 바로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지키고 차지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여러분의 모든 이기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그런 것들을 왜 걱정해야 합니까? 벌이 없다는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악을 보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왜 자신의 행동에 신경을 써야 합니까?
여기에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했듯이, 여러분은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로부터 얻어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생각하고 사랑하는 능력도 '아버지'로부터 얻어옵니다. '아버지 지성'이 창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의식도 창조적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과 가슴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의 계획을 실제로 형상화해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마음속에서 어떤 종류의 삶을 계획해내고 있습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을 화나게 하거나 해코지하면 여러분은 어떻게든 앙갚음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눈이 뽑히면 원수의 눈도 뽑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벌로서 마땅히 죽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강도질을 한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고 여러분의 아내를 훔친 사람은 아내와 함께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악행에 대해서는 대가를 받아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고, 여러분은 거기에 앙갚음을 해야 한다고 배웠으므로 여러분의 삶은 싸움의 연속입니다. 집에서는 남편들과 아내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그리고 밖에서는 이웃들과 공인들과 나라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는 여러분 삶 속의 이런 싸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이 싸움으로부터 일어나는 여러분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아십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싸움을 멈추기 전에는 말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싸움을 멈추고 가족과 이웃과 고용주와 공인들과 다른 나라들과 평화롭게 살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만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가 여러분의 마음과 가슴과 몸과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만 여러분은 '아버지'에 의해 여러분 내면에서 ㅡ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ㅡ 일어나고 있는
[사랑의 역사]를 알아차리고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뿌린 대로 거둔다'는 위대한 법칙]을 명심하십시오.
딸기 덩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탱자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잡초에서 밀을 수확할 수가 없습니다. 이 비유를 잘 생각해보고 이해하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은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ㅡ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의 평생 동안, 아니 영원토록 말입니다.
그러니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십시오.
그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말을 바꾸십시오.
그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행동을 바꾸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여러분의 모든 경험 ㅡ 질병과 궁핍과 불행과 절망을 만들어냅니다.
한 사내가 나에게 소리쳤다: "선생님, 이웃이 스스로 우리를 평화롭게 놔두지 않을 때는 그 이웃과 어떻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웃이 당신에게 와서 좀 떨어진 곳에 볼일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 혼자 가기 싫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 그걸 그만두고 가자고 한다면 가기 싫지요. 난 바쁘니 다른 사람에게 가자고 하라고 할 겁니다."
"그러면 이웃은 기분이 어떻겠습니까?"내가 물었다.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몰라요."
"나중에 당신이 그에게 무엇을 부탁한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사내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사내가 말했다. "욕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가보라고 하겠지요."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분이 바른 답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나는 처음에 말한 사내를 가리키며 미소를 보냈다.
한 여인이 사람들의 웃음소리 너머로 외쳤다:"그는 만나는 사람들한테 이웃사람이 정말 이기적이고 형편없다고 떠벌리며 다닐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를 해치고 싶을지도 모르지요."
그 말에 사람들이 옳다며 떠들어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는 전에 이웃이 멀지도 않은 곳에 가자고 했을 때 자기가 거절했던 사실은 잊어버렸을 겁니다. 그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바로 자신의 삶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겁니다. 함께 가자는 이웃의 청을 거절했을 때 그는 이 법칙의 작용을 촉발시켰고, 이제 그는 이웃의 그 같은 태도와 반응을 수확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상황에 대해 화를 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께 충고하노니,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께 와서 어딜 함께 가자고 하든,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 자신에게 그런 부탁거리가 생겼을 때는 이웃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부탁에 그가 어떻게 반응해주면 좋겠습니까?"
군중들 사이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졌고, 나는 그들이 나의 말을 이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이웃이 십 리를 함께 가달라고 한다면 기꺼이 편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십 리도 함께 가줄 각오를 하십시오.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할 때,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단단히 긴장시킵니다. 여러분이 몸과 마음을 단단히 조이면 '아버지'도 단단히 조여져서 여러분 안에서 [사랑의 역사]를 행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조임으로부터 병이 생겨납니다."
"또 여러분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춥고 불쌍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옷을 벗어달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를 노려보고 지나치지 마십시오. "일부 사람들이 웃었다. 그들은 자신이 그렇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여러분은 옷을 벗어주십시오. 그가 정말 추워한다면 외투까지 벗어주십시오. 그리고 기쁘게 가던 길을 가십시오."
"기쁘게요?"한목소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친구. ㅡ 기쁘게요! 첫째로는 당신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옷과 외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다음엔 이제 당신에게는 옷과 외투가 없어서 곧 당신 안의 '아버지'께서 모종의 놀라운 방식으로 옷과 외투를 돌려주실 것임을 깨닫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에게 옷과 외투를 주고 걸어가면서 '내가 왜 그랬지? 난 바보야. 이젠 내가 대신 춥게 생겼잖아. 나는 걸칠 것도 없으면서 그에게 옷을 다 줘버렸다고 사람들이 날 조롱할 텐데. 게다가 집에 가면 마누라가 뭐라고 할까?' 이렇게 중얼거린다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면서 남에게 옷을 벗어주고는 자신이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를 후회하는 사내의 모습을 상상하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그들이 실제로 종종 남을 돕느라고 자신을 헐벗게 만들고서는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헤픔을 후회하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그들의 주의를 모으기 위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제가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생각과 말로 행동이 미래의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낸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낯선 사람에게 옷과 외투를 벗어준 다음엔 무엇을 [뿌려서 거두고] 싶습니까? 여러분이 준 것이 여러분에게 돌아오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오래도록 옷이 없이 살고 싶습니까? 옷을 벗어준 것에 대해 줄곧 화를 내고 있으면 일어날 일이 바로 그것이니까 말입니다. 여러분의 그런 말과 행동은 옷과 외투를 벗어줌으로써 스스로 야기한 궁핍한 상태를 바위처럼 단단히 굳어지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명심하십시오. 먼저 이웃이 여러분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베푸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과 가슴에 평화와 만족이 있게 될 것이고, 그러면'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가슴속에서 그[사랑의 역사]를 행하실 수 있게 됩니다. 주고 또 넉넉히 주십시오. 그리고 없는 사람에게 베풀 것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십시오. 행복한 가슴으로 주십시오. 여러분 삶의 결핍된 곳에는 '아버지'께서 여러분 안에서 ㅡ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ㅡ 그[사랑의 역사]를 넉넉히 베푸실 것임을 알고, 믿는 가운데 주십시오.
무거운 가슴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무거운 가슴을 계속 안고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주십시오. 여러분 삶 속의 모든 것이 기쁨과 영적 통찰만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 사내가 대꾸했다: "그건 인간의 천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미래를 걱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옷은 비싸고 양식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산다는 건 끝없는 몸부림이라고요."
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대답했다. 그가 무리의 대부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대변한 것일 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내일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게 될 것임을 명백히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내일이면 일거리가 생길지, 아니면 다른 멋진 일이 일어날지를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릅니다. ㅡ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멋진 직업이나 다른 놀라운 기회가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 아주 확실하게 다지고 있습니다. ㅡ 왜냐하면 여러분은 자신의 미래의 상황과 환경을 스스로 창조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내가 흥분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내가 방금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웃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앞줄의 붉은 외투를 걸친 이분이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말해보세요."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아주 젊은 청년 마가Mark가 외쳤다: "저는 알아요. 그는 양식과 옷을 사려면 몸부림을 치며 고생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당신은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바로 그것을 얻게 되리라고 했고요.
"정확합니다. "내가 말했다. "넌 참 영리한 아이구나. 잘 이해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나이가 좀 들고 부모님이 보내주실 때 내 제자가 되면 좋겠구나."
어떤 사람들은 웃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내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걱정하는 것으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어려운 일을 겪었다고 해서 그것을 왜
불평하고 비탄합니까? 불평하고 있으면 기분이 더 나아집니까? 울고 있으면 운이 더 좋아집니까?
내일을 걱정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내일이 오기도 전부터 내일을 짐스럽고 피곤한 날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걱정이 여태껏 여러분을 도와준 일이 뭐가 있습니까? 키가 작다고
걱정한다고 해서 키가 커지던가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다 마음을 두고 있지 마십시요. 받게 되리라는 완벽한 믿음으로써,
여러분 안에 있는 '아버지'를 향해 요청할 때 여러분 것이 될 것들에다 마음을 두고 계십시오.
ㅡ 내 여러분께 한 치도 주저 없이 말하노니, 받게 될 것입니다. 요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버지'께 들릴지, 아니면 '아버지'께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주고 싶어 하실지를 의심한다면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주는 방식이지, 여러분의 필요를 차고 넘치게 충족시켜주시는 '아버지'의 방식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선물을 쏟아주십니다. 여러분이 맑은 마음과 가슴을 지니고만 있다면, '아버지'께 순간순간 도움을 구하여 늘 의지하기만 한다면, 그는 풍족한 양식과 옷과 집과 친구를 선물로 주십니다.
기도는 했는데 받지 못한다면 한 순간이라도 그것이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든지,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위해서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여러분 안에서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물어봐야만 합니다.
성전으로 기도하거나 제물을 바치러 가던 길에 누군가와 말다툼을 했던 생각이 난다면, 돌아가서 그 사람과 화해하십시오. 그러고 나면 기도 중에'아버지'께서 다가가도 여러분은 맑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고 여러분의 기도는 '아버지'에게 들리고 '아버지'도 응답하여 여러분 존재의 고요와 평화 속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 창조물을 돌봐주신다는 것을 아직도 못 믿겠거든, 들판에 활짝 핀 꽃들을 둘러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들을 설계하는 데에, 그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투입된 놀라운 생각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보는 그 꽃잎의 색깔들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솔로몬 왕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자신은 그토록 아름다운 옷을 입어보지 못했습니다. 꽃들이 벌을 불러들이는 방법을 살펴보십시오. 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여러분에게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다음 철의 씨앗이 맺히도록 돕는 방식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 주변의 세계가 그토록 놀라운 방식으로 계획되고 설계되고 보살핌을 받을진대, 여러분은 왜'아버지'를 신뢰하고 믿지 못합니까?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ㅡ 이 살아 있는 식물들과 나무들은 인간과는 달리, 자신이 헐벗고 굶주린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불평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께서 그들 안에서 하는 일을 헛수고로 만들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궁핍이 ㅡ 그리고 병이 ㅡ 날마다 끊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의 불평과 비방과 보복심과 서로에 대한 공격과 부족에 대한 끊임없는 불평불만입니다.
나는 병이 있는 분들에게 치유를 준비시키기 위해서 이 모든 말을 해드렸습니다. 치유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온 가슴으로 믿지 않으면 치유받을 수가 없습니다. 몸의 병은 나쁜 성정, 원한, 분노, 증오 같은 마음의 병에서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아버지 사랑'이 모든 건강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사랑'에 반하는 모든 생각과 느낌이 병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악함과 병이 마음에서 비롯되듯이, 여러분의 선함도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만큼 이웃도 돌보십시오.
다투었을 때 이웃을 축복하십시오. 그가 여러분에게 모질게 굴 때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심지어 그가 여러분에게 등을 돌릴지라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항상 그를 도우십시오. 왜냐하면 그럴 때 여러분은 마음과 생각 속에 선을 쌓고 있는 것이고,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여러분 안의 완전한 사랑이신 '아버지'와 조화되고 동조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만 '아버지'께서 여러분 안에서 온전한 [사랑의 역사]를 행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말을 끝내자 사람들은 내게로 와서 자신의 병을 보여주었고, 각자의 믿음에 따라 치유되었다.
계 속
[출처] 그리스도의 편지 [ 두 번째 편지 2 ]|작성자 자목련 소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