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에세이
일제강점기 문학에서의 항일과 친일
백수인
우리는 근대 역사에서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은 치욕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선인들의 노력은 위대했다. 1919년 3월 1일에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외친 ‘대한독립선언’과 상해 ‘임시정부’의 수립은 우리 민족의 자존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제 금년으로 그 독립선언의 100주년을 맞게 되었다.
일제 때의 사회적 정황은 독립군이나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에 적극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나라를 되찾는데 목숨을 바치는 분들이 있었는가 하면,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하면서 우리 민족을 폭압으로 다스리는데 앞장서서 활동한 반민족 친일 분자들도 많았다. 해방 후 우리는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과 부역, 즉 항일과 친일의 역사적 행위에 대해 분명히 그 가치를 가렸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해방 후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과 그 뒤를 이은 군사독재가 의도적으로 일제 청산을 하지 않은 데에 있다.
문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제에 철저히 항거하여 항일정신으로 활동한 문인이 있었는가 하면,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적극 가담하여 작품을 도구로 이를 부추기고 혹세무민한 작가도 많았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는 한동안 후세들에게 이를 제대로 밝혀 교육하지 않았다. 항일문학의 가치와 친일문학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이루지 않았던 까닭이다.
거대한 힘에 굴종하고 순응하는 일은 자존심이나 양심을 포기하면 비교적 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힘에 저항하는 일은 그 방식이 어떤 것이든 갖은 고통과 자칫 고귀한 목숨까지 담보해야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야를 좁혀 시문학 분야에 한정하여 살피더라도 지금까지 항일시인으로 알려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문학계의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를 지향하지 않았고, 활발하지도 못했던 까닭도 있다. 지금이라도 항일시의 영역을 당시의 ‘시가’에까지 확대한다면 항일무장투쟁시기의 독립군가 및 재외 망명인사들의 항일시도 이 범주에 넣어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임화, 박세영, 권환 등 카프 시인들의 작품도 항일정신의 관점에서 논의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상훈, 김광섭 등의 항일운동과 시 정신도 이러한 관점에서 챙겨보고 점검해야 할 과제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항일시인으로 손꼽는 시인은 한용운, 심훈, 이상화, 김소월, 김영랑, 윤동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현대문학의 발자취에서 중요한 가치로 다루어졌던 많은 작가들이 친일문학인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방 후 친일을 청산하지 않고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행해온 우리의 문학교육은 친일문학인들의 친일 행적은 될 수 있는 대로 감추고 다른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교육해 왔기 때문이다.
1966년 발간한 임종국의 『친일문학론』(평화출판사)은 친일 문제 연구의 단서를 연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는 문학은 물론 각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친일 관계 논문들이 여기에서 시사점을 얻었으며 이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2009년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도 그 정신사적 원류를 『친일문학론』에서 찾고 있다.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이 아니었다면 ‘친일’이라는 오욕의 영역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채 온전한 성역으로 남아있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2002년 8월 14일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계간 《실천문학》,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회장 김희선)은 문학 분야 친일 인물 42명에 대한 명단을 공동 발표했다. 분야 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시 분야에는 김동환(23편) 김상용(3편) 김안서(6편) 김종한(22편) 김해강(3편) 노천명(14편) 모윤숙(12편) 서정주(10편) 이찬(8편) 임학수(8편) 주요한(43편) 최남선(7편) 등 12명이다. 소설, 수필, 희곡 분야에는 김동인(9편) 김소운(3편) 박영호(10편) 박태원(3편) 송영(7편) 유진오(8편) 유치진(12편) 이광수(103편) 이무영(6편) 이서구(4편) 이석훈(19편) 장혁주(8편) 정비석(9편) 정인택(13편) 조용만(8편) 채만식(13편) 최정희(14편) 함대훈(11편) 함세덕(6편) 등 19명이다. 평론 분야에는 곽종원(6편) 김기진(17편) 김문집(3편) 김용제(25편) 박영희(18편) 백철(14편) 이헌구(4편) 정인섭(11편) 조연현(6편) 최재서(26편) 홍효민(5편) 등 11명이다. 괄호 속의 숫자는 친일로 간주되는 작품의 숫자이다.
항일시를 써서 일제에 저항했던 시인 중, 한용운, 이육사, 심훈, 이상화, 윤동주 등의 생애를 보면 모두가 일제강점기 시절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는 등 어렵사리 생활하다가 해방의 기쁨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이승을 떠났다. 그러나 일제에 부역하고 친일했던 시인 중 김상용, 모윤숙, 서정주, 주요한 등의 생애를 보면 일제에 이어 해방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화를 누리고 정권의 보위 아래 문화 권력을 가지고 활동했고, 육체적으로도 비교적 장수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고, 시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고귀한 가치를 갖는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여기에서 항일시, 친일시로 나누어 그 작품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감상할 수는 없지만 오늘 날의 시점에서 항일시와 친일시 각각 한 편씩을 소개하여 음미해 보고자 한다. 각 시 텍스트가 독자에게 주는 자장과 파장의 거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전문
한용운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역사주의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한용운의 텍스트에 공통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님’에 대한 해석은 중의적이다. 이 작품에서의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부재 혹은 상실은 자아에게는 ‘땅’의 부재로 이어지고,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부재와 상실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추수’, ‘저녁거리’가 없고, 여기에 기인하여 ‘인격’까지 상실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집’과 ‘민적’의 상실은 ‘인권’과 ‘정조’의 강탈을 가져오기도 한다. ‘당신’으로 치환되어 표현된 조국의 상실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인간적 모욕과 상실을 주고 있는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한 명편이다.
역사가야 붓을 버려라.
네 붓이 너무 무질렀다.
역사가야 책을 던져라.
네 책이 너무 낡았다.
새 붓을 예비하여라.
새 책을 펼쳐 놓아라.
새 먹을 갈아서
새로운 시대의
첫 페이지를 적어라.
이천하고 육백 또 일 년
섣달은 초여드레
이날 미명에
태평양의 물결이 끓었느니라.
역사가야
이렇게 쓰려느냐.
아니다 아니다.
이날 하루에
폭려미국(暴戾米國)의 태평양함대가
순식간에 반신불수가 되니라.
이날에
루즈벨트는 간을 얼리고
처칠이 담을 떨어뜨리니라.
이날에
말레이 반도와 루송에
불비가 나리니라.
이렇게
그대는 첫 페이지를 쓰려느냐.
아니다 아니다.
이날에
영미의 세대가 끝나고
아세아의 세대가 시작되니라.
오직 이렇게 그대는 써라.
역사가야.
이날에
침략의 악몽이 막을 내리고
공영의 여명이 터오니라.
오직 이렇게
그대는 써라.
역사가야.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에
명기하라.
12월 8일
아세아의 붉은 태양이
세계를 비추려 떠오른 날을
폭탄의 세례와
프로펠러의 선율 속에
새로운 시대의 탄생곡을
분명히 파악하여라.
그대
역사가야.
-주요한, <명기하라 12월 8일> 전문
이 시는 《신시대(新時代)》 1942년 1월호에 발표한 것이다. 12월 8일은 일제가 싱가포르를 함락한 날이다. 역사가에게 이 날을 새 역사의 시작으로 명기하라는 내용이다. “이날에 / 영미의 세대가 끝나고 / 아세아의 세대가 시작되니라. / 오직 이렇게 그대는 써라.”는 것이다. ‘아세아의 세대’란 ‘대공아공영 대일본제국의 시대’, ‘천황의 새 시대’가 이날에 시작되었다고 명기하라는 것이다. “이천하고 육백 또 일 년 / 섣달은 초여드레”는 일본력 황기 2601년 12월 8일을 말한다.
올해는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하게 하는 사건들이 많았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도 중요하지만, 문학의 영역에서도 깊이 사유하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항일문학, 항일시에 해당하는 영역을 좀 더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발굴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독립군과 조선의용대 등에서 창작하여 불렀던 시가를 발굴하고, 카프에 가담하여 활동했던 좌파 시인들의 항일정신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해방 후의 좌우 활동에 구애되지 않고 일제에 항거한 문인들의 민족정신을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동안 친일에 관대했던 문학교육에 대해 철저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친일 작품은 되도록 은폐하고 다른 면만을 부각시켜 교육했던 지난날의 교육을 되돌아보고 문학정신에 대한 올바른 문학사적 가치와 역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교육을 확립해야 한다.
ㅡ『우리詩』 2019년 9월호
첫댓글 도서관에서 친일 명단을 찾아보고 경악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인사들이 친일이었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일제의철저함과, 연약하고 기회주의적이며 사대주의적인 우리 민족의 습성에 또한 경악하기도 했습니다.
문인들은 잠수함의 토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상황이 되어 30여년을 산다면 나 또한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목욕탕에서 잠시 잠수를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