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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菩提願
那由他劫常遇佛호대 終不一念生疲厭하야
其心歡喜轉更增하니 此不空見所行道로다
부처님 늘 만나기 나유타겁에
잠깐도 싫은 마음 내는 일 없고
그 마음 환희하여 더욱 증장해
공하지 않게 본 이가 행하는 길이네
*
보리원(菩提願): 보리를 구하는 원
*
나유타겁상우불(那由他劫常遇佛)호대 : 한량없는 세월을 나유타겁이라고 한다. 나유타겁 동안 항상 부처님을 만나되
종불일념생피염(終不一念生疲厭)하야: 부처님을 오랫동안 뵈었다고 해서 한순간도 피곤해 하지 않는다.
여기는 진짜 부처님을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일단 형식적으로라도 법당을 잘 꾸며야 된다. 그렇다고 막 유치하게 꾸밀 것이 아니고 비록 등상불이 있는 장소이긴 하지만 법당을 품위있게 편안하게 잘 꾸며서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고, 오래 있고 싶고, 밑에 내려가서 식사하자고 해도 ‘법당이 더 좋다’ ‘차 대접하려면 법당으로 가져오라’고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기심환희전갱증(其心歡喜轉更增)하니 : 그 마음이 환희로와서 더욱 더 신심이 난다.
차불공견소행도(此不空見所行道)로다: 이것은 헛되게 보지 않는 사람. 함부로 보지 않는 사람이 행한 바 도다.
헛되이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의미를 갖고 뜻을 갖고 보아서 신심이 나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그냥 무심히 보는 사람이 있고 하나하나 낱낱이 뜯어보고 감동하고 의미를 찾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이런 대승경전을 많이 공부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불공견의 안목을 갖고자 함이다.
(5) 成熟衆生願
盡於無量無邊劫토록 觀察一切衆生界호대
未曾見有一衆生하니 此堅固士所行道로다
한량없고 끝없는 겁 다할 때까지
일체의 중생세계 관찰하지만
한 중생 있는 줄로 보지 않나니
견고한 사람들이 행하는 길이네
*
성숙중생원(成熟衆生願): 중생을 성숙시키는 원
*
진어무량무변겁(盡於無量無邊劫)토록 : 무량무변겁이 다하도록
관찰일체중생계(觀察一切衆生界)호대: 일체 중생세계를 관찰하되
미증견유일중생(未曾見有一衆生)하니 : 한 중생도 중생이라고 일찍이 본 바가 없다.
그럼 무엇으로 보느냐.
중생을 중생으로 그대로 보는 것은 상견(相見)이다.
불교에서는 세가지 종류로 분류하기를 좋아하는데 보는 견해도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도관(中道觀)이라고 하는 삼관으로 배대하기도 한다.
일체를 공한 것으로 보아서 중생을 공한 것으로 보고 부처님도 공하게 보는 것이 공관이다.
중도관, 진제관(眞諦觀)은 일체 중생을 전부 부처로 보는 것이다.
여기도 일찍이 한 중생도 있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모두 다 부처로 본다는 말이다.
*
금강경에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실무중생득멸도자(實無衆生得滅度者), 이와같이 무량하고 무수하고 무변한 중생들을 제도하되 실로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적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왜냐하면 본래 부처이기 때문이다.
본래 부처인데 누가 누굴 제도하겠는가. 이미 멸도 되어 있는 완벽한 존재인 까닭에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다.
차견고사소행도(此堅固士所行道)로다: 이것은 뜻이 견고한 보살이 행한 바 도다.
선비 사(士)자는 보살이라는 뜻이다. 중생을 중생으로 보지 않고, 부처로 보는 것은 얼마나 그 뜻이 견고하고 훌륭한가. 그런 사람이 행한 바 도다.
13, 第九善法行
修習無邊福智藏하고 普作淸凉功德池하야
利益一切諸群生하니 彼第一人行此道로다
法界所有諸品類가 普遍虛空無數量이어든
了彼皆依言說住하니 此師子吼所行道로다
能於一一三昧中에 普入無數諸三昧하야
悉至法門幽奧處하니 此論月者行斯道로다
忍力勤修到彼岸호대 能忍最勝寂滅法하야
其心平等不動搖하니 此無邊智所行道로다
於一世界一坐處에 其身不動恒寂然호대
而於一切普現身하나니 彼無邊身行此道로다
無量無邊諸國土를 悉令共入一塵中하야
普得包容無障礙하니 彼無邊思行此道로다
그지없는 복과 지혜 닦아 익혀서
서늘한 공덕못을 널리 만들고
일체의 중생들께 이익 주나니
첫째가는 사람이 이 길 행하네
온 법계에 여러 종류 많은 중생들
허공에 두루 가득 한량없는데
모두 말을 의지해 있는 줄 아니
사자후 하는 이가 행하는 길이네
하나하나 삼매의 어디서든지
수없는 모든 삼매 두루 들어가
법문의 깊은 곳에 다 이르나니
달을 의논하는 이가 이 길 행하네
부지런히 인욕(忍辱)닦고 저 언덕 가서
가장 수승한 적멸법 능히 참으며
그 마음 평등하여 동요 않나니
지혜로운 이가 행하는 길이라네
한 세계에 한 자리 앉아 있으면
그 몸이 고요하여 동(動)하지 않지만
온갖 곳에 몸을 두루 나타내나니
그지없는 몸 가진 이가 이 길 행하네
한량없고 그지없는 모든 국토가
한 티끌 속에다가 모두 넣되
두루 다 포용하여 장애 없나니
그지없이 생각하는 이 이 길 행하네
*
제구선법행(第九善法行): 제 9 선법행을 말하다
*
선법행을 게송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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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무변복지장(修習無邊福智藏)하고 : 가없는 복과 지혜의 장을 수습하고
보작청량공덕지(普作淸凉功德池)하야: 아주 시원하고 청량한 공덕의 못을 널리 지어서
이익일체제군생(利益一切諸群生)하니 : 일체 모든 중생들을 이익케 하니
피제일인행차도(彼第一人行此道)로다: 그것은 제일가는 사람이 이 도를 행했더라.
무량무변한 복과 지혜를 닦고 또 시원한 공덕의 못을 지어서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한다. 결국 불교가 이것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제일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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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소유제품류(法界所有諸品類)가 : 법계에 있는 모든 품류(品類)들이
보변허공무수량(普遍虛空無數量)이어든: 허공에 무량무변하다. 살펴보면 인간을 위시해서 많고 많은 중생들이 무량무변하다. 금강경에서는 이것을 구류중생(九類衆生)이라고 표현한다. 별의별 중생들 별의별 생명체가 무량무변하다. 그런 것들이
요피개의언설주(了彼皆依言說住)하니: 전부가 언설에 의지해서 머물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표현에 의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는가,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많고 많은 품류들, 구류중생이 있다고 하는데 인간만 하더라도 이 지구상에 70억 인구라고 한다. 인간보다 수천 수 만배가 많은 다른 생명체들, 많은 품류들을 전부 우리가 조사하고 이름을 붙이고 설명을 통해서 안다.
차사자후소행도(此師子吼所行道)로다 :이것은 사자후의 소행도다. 사자후는 무엇인가.
설법을 잘하는 사람이다. 부처님이 그렇게 설법하고 설명을 했기 때문에 설명을 의지해서 법계의 품류들을 안다. 그러니까 사자후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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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어일일삼매중(能於一一三昧中)에 : 능히 낱낱 삼매가운데서
보입무수제삼매(普入無數諸三昧)하야: 널리 무수 무수한 모든 삼매에 널리 들어가서
실지법문유오처(悉至法門幽奧處)하니 : 법문의 깊고 깊은 곳에 모두가 다 이르니
차논월자행사도(此論月者行斯道)로다: 이론의 달인 보살의 행한 바 도다. 다른 것들이 깜빡이는 작은 별들이라면 이 십행보살은 마치 달과 같은 이론을 가진 이다. 논월자라는 표현이 근사하다. 이론의 달인 사람. 이론의 달, 그야말로 별들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뚜렷하게 밝게 빛나는 보살이 행한 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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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근수도피안(忍力勤修到彼岸)호대 : 인력으로 부지런히 닦아서 피안에 이르되. 여기 인력(忍力)은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는 아니하나 분명하게 있는 진리, 존재의 본성이다.
진리를 두고 참을 인(忍)자를 쓰는 이유가 있다. 이 참을 인자에 대한 설명이 어디에도 없어서 내가 전에는 몰랐는데 유마경 소초(維摩經 疏抄)에 환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동을 하였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이 글자에 대해서 확연히 의심이 풀렸다.
우리가 아플 때 그 아프고 불편한 것을 참고 가만히 있으면 불편한지 아픈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프고 불편한 것은 너무 확실하다.
진리는 그런 것이다. 우리 눈에 안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눈에 안보여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있다. 진리를 참을 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함축적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 확실하게 있고, 너무 확실하게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것이 진리다. 그런 의미로 인(忍)이라고 했다.
능인최승적멸법(能忍最勝寂滅法)하야: 능히 가장 수승한 적멸법을 깨달아서, 이럴 때 인(忍)자는 깨닫다로 해석하면 좋다.
기심평등부동요(其心平等不動搖)하니 :그 마음이 평등해서 동요치 아니하니. 이치는 너무나도 깊이 깨달아서 환하게 알고 있지만 마음은 평등해서 동요하지 않는다.
차무변지소행도(此無邊智所行道)로다: 이것은 가없는 지혜를 가진 자가 행한 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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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일세계일좌처(於一世界一坐處)에 : 한 세계에 한 번 앉은 그곳에
기신부동항적연(其身不動恒寂然)호대: 그 몸이 움직이지 않고 항상 고요하다. 한 세계 한 자리에 앉아서 그 몸이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다. 한 세계 한 곳에 앉은 그곳에서
이어일체보현신(而於一切普現身)하나니 : 일체처에 널리 몸을 나타내니
피무변신행차도(彼無邊身行此道)로다: 이것은 가없는 몸의 보살이 이 도를 행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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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무변제국토(無量無邊諸國土)를 : 한량없고 가이없는 모든 국토를
실령공입일진중(悉令共入一塵中)하야 : 다 하여금 같이 한 먼지 속에 들어가서, 일미진중 함시방의 이치가 또 나온다.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가고 한 터럭 끝 안에 무량무수 모든 부처님이 다 있는 이치다.
보득포용무장애(普得包容無障礙)하니: 널리 다 포용해서 장애가 없으니, 무량무변 모든 국토를 한 먼지 속에 다 포용해서 장애가 없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그대로다. 작은 먼지속에 넓은 것이 들어갔으면 비좁고 뒤섞이고 엉망이 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고 장애가 없다. 그대로 좁거나 뒤바뀌거나 혼란한 것이 없다.
피무변사행차도(彼無邊思行此道)로다: 저 가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도를 행했도다.
이치가 그렇게 존재하고, 그 이치를 깨달은 그 사람의 깊은 사고를 통해서 우리도 또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 피무변사(彼無邊思)가 이 도를 행했다고 하였다.
14, 第十眞實行
(1) 十力
了達是處及非處하며 於諸力處普能入하야
成就如來最上力하니 彼第一力所行道로다
過去未來現在世에 無量無邊諸業報를
恒以智慧悉了知하니 此達解者所行道로다
了達世間時非時하야 如應調伏諸衆生호대
悉順其宜而不失하니 此善了者所行道로다
옳은 곳과 그른 곳을 분명히 알고
모든 힘에 골고루 능히 들어가
여래의 최상력을 성취하나니
제일 힘 가진 이가 행하는 길이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의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업보를
언제나 지혜로써 죄다 아나니
통달하여 아는 이가 행하는 길이네
온 세간의 제때거나 제때 아니나
조복할 중생들을 분명히 통달하여
적당함을 따라서 잃지 않나니
이것을 잘 아는 이 행하시는 길이네
*
제십진실행(第十眞實行): 제 10 진실행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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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십행보살들의 덕을 표현하고 찬탄하는 내용들이 나왔는데 이제 마지막 행은 진실행이다. 여기는 늘 자주 나왔던 십력 중에 세 가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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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력(十力): 열 가지의 힘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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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달시처급비처(了達是處及非處)하며 : 시처와 비처를 안다. 부처님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용어 중에 가장 많이 표현하는 것이 십력이다.
그 가운데도 한가지만 기억하자면 시처비처지(是處非處智) 옳은 것과 옳지 않는 것을 아는 지혜다. 앉을 자리, 설자리를 아는 지혜, 자기가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시처비처지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것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십력 가운데 첫째 조항이 되는 시처비처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지만, 승려는 승려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행하는 것이 전부 이 말 속에 다 포함된다. 불교는 한가지 이치 속에 한량없는 설명이 가능하다. 설명 뿐만 아니라 그런 이치가 다 포함되어 있다.
어제력처보능입(於諸力處普能入)하야: 그것을 통해서 다른 아홉가지 힘에 다 능히 들어가서
성취여래최상력(成就如來最上力)하니: 여래의 가장 높은 힘을 성취하니
피제일력소행도(彼第一力所行道)로다 : 제일의 힘을 가진 사람이 행한 바 도다.
십행중에 제10 진실행인데 바로 부처님의 일이다. 십행의 보살이라고 해서 부처님의 경지와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꼭 칼로 자르는 듯이 차별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전부 원융하게 설명되어지고 있다. 화엄경은 그렇게 이해하면 소화가 된다.
*
과거미래현재세(過去未來現在世)에 : 중생의 과거 미래 현재세의
무량무변제업보(無量無邊諸業報)를: 한량없는 업보를 아는 지혜, 이것도 열가지 힘 가운데 중요한 한가지다. 과거 미래 현재세의 무량무변의 모든 업보.
내가 이 법회를 촬영하는 청년의 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우환이다. 가까이 하지 마라.”라는 말을 했다. 총각에게는 처녀가 우환이라고 하고 또 처녀에게는 총각이 우환이라고 서로 상대되게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도 무슨 업이 잠재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어떤 상황을 만나면 나도 모르는 업이 툭 튀어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 심지어 자신이 위험천만이고 시한폭탄이다. 한사람만으로도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인데 또 낯선 사람의 업까지도 하나 더해서 두 개의 시한폭탄이 같이 산다는 것은 용기도 좋은 일이다.
어째 그런 큰 도박을 하는지, 나는 자신이 없다.
한 인간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랄 업이 튀어 나오는 것은 여러분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다 경험한 일일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만나면 무슨 업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이왕 사귀려면은 그동안 화엄경 공부한 것을 가지고 눈 캄캄해지지 않도록 우환이 안되도록 관계를 잘 소화하라고 말해주었다.
이번에도 스님들 중에 어떤 팀이 일본 여행을 갔다와서 나에게 여행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간단하게 두 사람을 딱 집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결론은 점잖은 사람인데 같이 여행을 못가겠다는 이야기였다.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는 표현도 했다.
평소엔 점잖은데 어떤 상황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본인에게서 업이 튀어나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처님의 열가지 지혜의 힘 속에는 그것을 다 아는 힘이 있다.
항이지혜실료지(恒以智慧悉了知)하니 : 항상 지혜로써 다 그것을 깨달아서 아니
차달해자소행도(此達解者所行道)로다 : 이것은 통달해서 아는 사람의 행한 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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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달세간시비시(了達世間時非時)하야 : 때와 때 아닌 것, 세상사의 때와 때 아닌 것을 알아서
여응조복제중생(如應調伏諸衆生)호대: 모든 중생들을 거기에 딱 알맞게 조복하되. 여응하는 것은 응할 바에 따라서 알맞게 응하는 것이다.
실순기의이부실(悉順其宜而不失)하니 :다 그 편의를 따라서 잃지 아니하니
차선료자소행도(此善了者所行道)로다: 이것은 잘 요달한 사람이 행한 바 도다.
(2) 辯才無窮
善守身語及意業하야 恒令依法而修行호대
離諸取着降衆魔하니 此智心者所行道로다
於諸法中得善巧하고 能入眞如平等處하야
辯才宣說無有窮하니 此佛行者所行道로다
陀羅尼門已圓滿하고 善能安住無碍藏하야
於諸法界悉通達하니 此深入者所行道로다
몸과 말과 마음을 잘 지키어서
언제나 법에 따라 행을 닦으며
모든 집착 여의고 마군을 항복 받으니
슬기로운 사람이 행하는 길이네
모든 법 가운데서 공교함 얻고
진여(眞如)의 평등한 데 능히 들어가
변재로 연설함이 다하잖나니
부처님 행 닦는 이가 행하는 길이네
다라니 여러 문을 원만하였고
걸림 없는 장(藏) 속에 편히 머물러
모든 법계 모두 다 통달하나니
깊이 들어간 이가 행하는 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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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무궁(辯才無窮): 삼세 모든 부처님의 둘이 없는 말을 얻다
*
선수신어급의업(善守身語及意業)하야 :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삼업(三業)을 잘 지켜서
항령의법이수행(恒令依法而修行)호대 :항상 법을 의지해서 수행하되,
한마디로 아주 단순하게 불교 수행을 표현하자면 신구의 삼업 단속을 잘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는 것도 신구의 삼업을 참회하는 것이지 별 것 아니다. 신구의 삼업을 잘지켜서 법에 의지해서 다 수행하되
이제취착항중마(離諸取着降衆魔)하니 : 모든 취착을 떠나서 온갖 마구니를 항복받을지니.
뭐든지 사단이 나는 것은 취하고 집착하는 데서부터 생긴다.
모든 취착을 떠나서 온갖 마구니를 항복받는다고 했는데 마구니는 무엇인가? 신구의 삼업으로 어떤 경계에 봉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업이 마구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취하고 집착하는 것이 마구니다. 그것을 항복 잘 받으면 된다.
봉행불교상섭심(奉行佛敎常攝心)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가 불교를 받든다고 하는 것, 불교를 수행한다, 불교를 공부한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마음 단속을 잘하는 일이다. 신구의 삼업이 전부 마음에 달렸으니까 삼업을 잘 지키는 것이 마음 단속 잘하는 일이다.
차지심자소행도(此智心者所行道)로다: 이것은 지혜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행한 바 도다.
*
어제법중득선교(於諸法中得善巧)하고: 모든 법 가운데서 익숙함, 능숙함을 얻어서, 법에 대해서는 선교를 얻고
능입진여평등처(能入眞如平等處)하야 :능히 진여의 평등한 곳에 들어간다.
우리는 겉으로는 차별한 면이 있으면서도 진여는 평등하다. 법이라고 하는 차별된 현상에서는 선교를 얻어서 익숙하게 잘 분별하는 능숙함을 얻고, 진여의 평등한 면에도 잘 들어가야 한다. 결국 차별과 평등을 잘 통달하는 것이다.
변재선설무유궁(辯才宣說無有窮)하니 : 변재로 잘 설명해서 끝없이 다함이 없게 하니
차불행자소행도(此佛行者所行道)로다: 이것은 부처님처럼 행하는 사람이 행한 바 도다. 부처님이 설법 잘 하고 처신 잘 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차별과 평등을 잘 아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차별이고 그 내용은 평등이다. 평등도 잘알아야 되고 차별도 잘 알아야 된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 있어서 차별과 평등을 잘 알고 거기에 알맞게 처신하면 완벽하다.
그래서 이것은 부처님처럼 행하는 자의 소행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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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문이원만(陀羅尼門已圓滿)하고: 다라니문이 원만하다. 다라니문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총지문이다. 기억해서 가지는 것이 이미 원만하고
선능안주무애장(善能安住無碍藏)하야: 잘 능히 걸림없는 장에 안주해서
어제법계실통달(於諸法界悉通達)하니 : 저 모든 법계에 다 통달하니
차심입자소행도(此深入者所行道)로다: 이것은 그러한 이치에 깊이 들어간 사람들이 행한 바 도다.
(3) 同佛善根
三世所有一切佛로 悉與等心同智慧하야
一性一相無有殊하니 此無碍種所行道로다
已抉一切愚癡膜하고 深入廣大智慧海하야
普施衆生淸淨眼하니 此有目者所行道로다
已具一切諸導師의 平等神通無二行하야
獲於如來自在力하니 此善修者所行道로다
遍遊一切諸世間하며 普雨無邊妙法雨하야
悉令於義得決了하니 此法雲者所行道로다
能於佛智及解脫에 深生淨信永不退하야
以信而生智慧根하니 此善學者所行道로다
能於一念悉了知 一切衆生無有餘하야
了彼衆生心自性하니 達無性者所行道로다
삼세에 나 계시는 모든 부처님
모두 다 맘도 같고 지혜도 같아
한 성품 한 모양이 다름없나니
걸림 없는 종성의 행하는 길이네
일체의 어리석은 막(膜)을 긁었고
광대한 지혜 바다 깊이 들어가
중생에게 청정한 눈 보시하나니
지혜눈 있는 이가 행하는 길이네
일체의 모든 도사(導師) 구족했으며
평등한 신통으로 두 행이 없고
여래의 자재한 힘 얻으셨으니
이것은 잘 닦은 이가 행하는 길이네
온 시방 모든 세계 두루 다니며
그지없이 묘한 법비 널리 내리어
이치에서 결정함을 얻게 하나니
이것은 법구름이 행하는 길이네
부처님의 지혜와 모든 해탈에
깨끗한 신심 내어 퇴전치 않고
신심으로 지혜뿌리 내리는 것이니
이것은 잘 배운 이가 행하는 길이네
한생각에 일체 중생 능히 다 알고
한 중생도 남기지 아니하면서
저 중생의 마음 성품 분명히 아니
무성(無性)을 통달한 이가 행하는 길이네
*
동불선근(同佛善根): 부처님의 선근(善根)과 같다
*
삼세소유일체불(三世所有一切佛)로 : 과거 현재 미래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
실여등심동지혜(悉與等心同智慧)하야: 모두 다 더불어 같은 마음으로 지혜를 같이 해서
일성일상무유수(一性一相無有殊)하니: 한 성품이요, 또 하나의 모양으로써 다른 바가 없으니
차무애종소행도(此無碍種所行道)로다: 무애종의 소행도다.
왜 다른 것이 없겠는가. 경계는 같을 리가 없다. 경계는 언제나 차별하다. 그렇지만 스스로 걸림이 없는 마음 상태가 되면 그것이 다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에서 동등하게 볼 때, 걸림이 없는 것이고 또한 평등한 것이다. 경계가 어떠하냐 하는 것은 그렇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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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결일체우치막(已抉一切愚癡膜)하고 : 이미 일체 우치의 막을 걷어내고. 결은 도려낸다, 긁어낸다고 하는 결(抉)자다.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은 눈을 가린 막과 같다. 눈에 막이 있으니 어둡고 침침하고 안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음을 어둠에다 비유를 한다.
어둠에 있으면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 어리석음이 있으면 옳은지 그른지 옳고 그른 것 앉을 자리, 설자리, 때와 때 아닌 것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
눈에 막이 낀 것과 같다.
심입광대지혜해(深入廣大智慧海)하야: 깊이 광대한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서. 왜냐 어리석음의 막을 다 도려내듯이 긁어냈으니까 광대한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서
보시중생청정안(普施衆生淸淨眼)하니: 중생들에게 청정한 눈을 널리 베푸니
차유목자소행도(此有目者所行道)로다: 이것은 지혜의 눈이 있는 사람, 밝은 눈이 있는 사람이 행한 바 도다.
글도 아름답고 뜻도 깊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혜의 안목이 제일 우선이다. 지혜의 안목이 있어야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는 것이지 경계가 어떻다, 물질의 상태가 어떻다 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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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일체제도사(已具一切諸導師)의 : 이미 일체 모든 도사의
평등신통무이행(平等神通無二行)하야: 평등한 신통과 둘 없는 행을 이미 갖추어서.
불이행, 무이행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차별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절에 들어갈 때 불이문이 있다.
일체법은 둘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차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을 전부 하나로 보는 것이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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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에서도 클라이막스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유마거사와 부처님의 제자들과의 불이법문에 대한 논의가 유마경의 절정을 이룬다.
어느날 유마거사가 병이 들었는데 ‘부처님께서 내가 병이 들었는지 뻔히 아시면서 왜 제자들을 시켜서 문병을 안오시나’하고 유마거사가 생각하니까 부처님이 그것을 아시고 목건련, 사리불, 수보리, 가섭, 아난 등등 내노라 하는 소위 10대 제자를 문병보내려고 하였다. 공식적으로 10대 제자라고는 경전에 표현되지 않았지만, 부처님이 이 제자들에게 문병가기를 권하는데 열 명의 상수 제자가 차례로 나와서 ‘나는 유마거사에게 병문안 못갑니다.’라고 부처님께 말씀을 드렸다.
이유도 여러 가지다.
‘왜냐하면 그 거사는 지혜가 아주 뛰어나시고 내가 옜날에 좌선을 하고 있다가 그 거사에게 아주 오지게 깨졌습니다.’
‘나는 과거에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그 거사가 지나가다가 내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게 무슨 설법이냐 하면서 나를 아주 오지게 박살을 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언제 걸식을 하러 갔다가 마침 거사를 만났는데 그 거사가 걸식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 걸식이냐 하면서 사정없이 나를 비판을 하고 바른 걸식은 이런 것이다 하고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디서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거사가 지나가다가 내 좌선하는 모습을 보고 여보시오. 좌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 앉아있는 것이 좌선인 줄 아느냐. 하면서 정말 그야말로 폭포수 같이 흐르는 설법으로 나를 박살냈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을 그야말로 낱낱이 박살을 내는 장면이 유마경에 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문병을 못가고, ‘니가 가라. 나는 그 사람 만나면 또 혼날 것 같아서 겁이 나서 못가겠다.’하고 서로 미루었다.
결국 마지막에 부처님이 문수보살을 시켜 문병을 가게 한다.
문수보살도 좀 떨리지만, 최종지명자가 되어서 하는 수 없이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가게 되었다. 문수보살이 나머지 모든 제자들과 수많은 보살들을 전부 대동하고 인솔해서 병문안을 갔다. 그 유명한 거사와 부처님 제자들과 훌륭한 보살들과 함께 병문을 가서 고작 ‘견딜만합니까. 약이라도 좀 자십니까. 언제쯤 낫는 답디까?’ 이런 소리를 하려고 모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문병간 자리에서 한 판 법담이 오고 가는데 그 주제가 불이법문이다.
여기 무이행이라고 했는데 무(無)이나 불(不)이나 같은 뜻이다.
사찰마다 불이문(不二門)이 있는 것도 불이라는 낱말 하나가 불교의 궁극적 이치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세상은 전부 둘이고 차별이고 불평등이다.
그런데 그 근본자리는 평등이다.
평등 속에 평등을 바탕으로 한 차별이 있고 차별 속에 평등이 있다.
그래서 문수보살과 함께 간 삼십 몇 명이 나와서 불이법문을 한다.
최후에 문수보살이 아주 훌륭한 불이법문을 하는데 천하의 문수보살도 불이법문을 가지고 유마거사에게 깨진다.
문수보살이 “우리는 다 불이법문을 이야기 했고, 마지막으로 나도 했습니다. 비로소 거사의 차례입니다. 거사님께서 불이의 이치, 둘이 아닌 도리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 하세요.” 라고 하니까 유마거사는 말없이 딱 앉아있는 것이다.
이것을 두구비야(杜口毘耶)라고 한다. 비야리성에서 입을 막았다. 말없이 유마거사가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말을 안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야구를 보다가 욕하는 대목이 딱 한 장면 있다. 천하에 수억씩 받는 프로선수가 타자석에 서서는 헛방망이도 한 번 못 휘두르고 삼진 아웃을 당할 때다.
‘그럴라면 우리집 공양주 데려다 거기 세워놓지 왜 니가 거기 서 있느냐.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것은 누구나 다 한다 말이다. 프로가 되어서 헛방망이라도 한 번 휘두르고 나와야지. 왜 그렇게 가만히 서있다가 나오느냐.’고 혼자 막 욕을 한다.
아무튼 유마거사는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그 도리가 최고의 불이법문 소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서 이후로 온갖 조사 온갖 훌륭한 선지식이 찬탄 찬탄 찬탄을 그냥 쏟아놓는다.
문수보살의 불이법문에 대해서는 한마디 가타부타도 없다.
오로지 유마거사의 말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으로써 불이의 소식을 보였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만 무수한 선지식들이 찬사를 보낸다. 거기에 대해서 게송을 짓고 논문을 짓고 법문을 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2천 여년의 세월을 찬탄해 온다.
그것이 여기 무이행이라고 하는 것, 불이행의 그 소식이다.
오늘 많은 설법가운데 차별과 평등이 나왔는데 이 불이나 무이는 평등을 뜻한다.
획어여래자재력(獲於如來自在力)하니 : 여래의 자재력을 얻으니
차선수자소행도(此善修者所行道)로다: 잘 수행한 사람의 행한 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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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유일체제세간(遍遊一切諸世間)하며 : 일체 모든 세간에 두루두루 노닐며
보우무변묘법우(普雨無邊妙法雨)하야: 가없는 미묘한 법의 비를 널리 비내려서
실령어의득결요(悉令於義得決了)하니 : 다 이치로 하여금 깨달아 앎을 얻게 하니
차법운자소행도(此法雲者所行道)로다 : 이것은 법의 구름을 가진 사람이 행한 바 도다.
일체세간을 우리가 돌아다니는 것은 좋은데, 불자가 왜 돌아다니느냐?
미묘한 법의 소리, 진리의 가르침을 비 내리려고, 진리의 가르침을 펴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무슨 바늘 나눠주면서 인연 맺자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법의 비를 내리게 하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치에 대해서 다 깨달아 알게 하니 이것은 법운자가 행하는 바 도다.
여기 내가 별 두 개를 쳐놓았다. 그 다음 밑에는 별을 세 개 친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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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어불지급해탈(能於佛智及解脫)에 : 능히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와 해탈에 대해서
심생정신영불퇴(深生淨信永不退)하야: 깊이 청정한 믿음을 내어서 영원히 퇴전하지 아니한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해탈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깨끗한 믿음을 낸다.
신심같이 좋은 것이 없다. 오늘 화엄경 강설집 현수품 두 번째 권이 나왔는데, 현수품에는 신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신이생지혜근(以信而生智慧根)하니 : 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탄생시킨다. 믿음에서 지혜가 자란다.
차선학자소행도(此善學者所行道)로다 : 이것은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행한 바 도다. 내가 이 구절을 읽다가 별을 세 개 쳤다.
부처님의 지혜, 깨달음의 지혜와 해탈 그것은 청정한 믿음을 깊이 내서 영원히 물러서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
불자들은 흔히 공부를 조금 하다가 재미없다고 하는데, 이 공부는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심으로 하는 것이다. 신심은 재미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것 말고는 마음에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으면서 가슴으로부터 뜨거운 신심이 고동치면 그것은 누구도 못말리는 것이다.
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내게 하니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이 도를 행한다. 선학자(善學者),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참 좋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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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어일념실료지(能於一念悉了知) :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일체중생무유여(一切衆生無有餘)하야: 한 생각에 다 알아서
요피중생심자성(了彼衆生心自性)하니 : 저 중생들의 마음 자성을 아니
달무성자소행도(達無性者所行道)로다: 성품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통달한 사람이 행한 바 도다. 이 구절도 좋은 이치, 깊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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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파트燈...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_()()()_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 확실하게 있고, 너무 확실하게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것이 진리다. 그런 의미로 인(忍)이라고 했다.
..._()()()_
忍力勤修到彼岸...忍力은 存在의 本性..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 확실하게 있고,
너무 확실하게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진리..
혜명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_()__()__()_
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