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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山>편집실은 창간 40주년을 맞아 한국의 대표 산악인 40인을 선정, 발표합니다. <월간山>이 창간되던 해인 1969년은 한국산악회의 히말라야 원정 대비 훈련대원들의 이른바 10동지 조난사고가 있은 해입니다. 연초에 사고가 발생했고 그해 5월 <월간山>의 전신인 <등산> 창간호가 나왔습니다. 그 후 어느덧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 산악계는 질적·양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산악인의 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에서 지금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만큼 많이 늘었습니다. 한국등산지원센터(이사장 최홍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매 주말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의 수가 무려 8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 중 한국 산악계를 대표한다고 할 만한 산악인 그룹을 선정해보는 일은 나름 한국 산악계가 위치한 자리와 모양새를 대강이나마 알아보는 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선정위원은 한국의 산악계와 산악인들 동향에 특히 밝은 것으로 평해지는 분들로 위촉했습니다. 이 14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라면 대부분 산악인들이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정위원 중에는 한국 대표 산악인에 포함된 이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고 나면 선정위원으로서 역할을 할 사람이 너무 제한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정위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선정위원들 면면이 아니라 ‘과연 산악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의미 규정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사업가, 의사, 변호사, 판사, 승려, 목사, 산악인-이들에 대해 호감도 조사를 한다면 어떤 부류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을까요. 아마도 ‘산악인’이 수위에 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산악인에 대한 높은 호감도 때문인지 요즈음은 도보 산행이 취미인 분들 가운데에도 산악인을 자칭하는 이가 많습니다. 한편 넓은 의미의 산악인이라 할 때 최상위 그룹에 두어야 할 분은 77에베레스트 원정대장이자 뛰어난 산악 저술·평론가인 김영도 선생 같은 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산악인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한국 산악계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창(窓)으로서 의미가 흐려지지 않을까 저어되었습니다. 때문에 본지는 ‘추락의 위험이 상존하는,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긴장을 유발하는 대상지에 오르는 등반 행위를 열성적·정기적으로 하거나 해온 사람’으로 대상자를 한정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및 해외 거봉·거벽 등반 등을 통해 한국 산악사 발전에 기여한 정도, 현재 활동 여부를 떠나 그간의 업적, 한국 등반사상 크고도 고무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 꾸준하고 깊이 있게 알피니즘을 추구해왔는가 여부 등에 초점을 맞추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한편 스포츠클라이밍은 다른 분야로 보아 제외했습니다. 결국 본지가 이번에 선정한 ‘대표 산악인 그룹’은 ‘등반가로서의 산악인’에 한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준에 의해 과거 대한산악연맹 회장으로서 대산련을 대한체육회에 가맹시켜 한국 산악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김상현 대산련 전 회장 같은 분도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지는 선정위원들께 위와 같은 의미 규정에 부합하는 산악인 중 임의로 40인을 선별케 하는 한편 후보군으로 40여 명의 리스트와 등반 약력을 정리해 제공, 참고하도록 했습니다. 위원 각각이 한국 최고의 등반가로 여겨지는 인물 40명의 명단을 제출했고 이것을 집계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 순으로 40명을 선정했습니다.
그 후 선정위원회를 열어 ‘이 사람이야말로 40인 중에 포함돼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대해 역설하고, 그 설명을 들은 뒤 일부 명단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한 뒤 재집계하기로 했습니다. 김영도 선생은 선정위원회의 위원장 자격으로 기꺼이 선정 작업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최종 집계를 낸 결과가 이번에 밝힌 39명입니다.
40명이 아니라 39명으로 하고 1명의 자리를 남긴 것은, 한두 표 차로 39위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 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단 한두 표의 차는 관점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39인의 명단에 속하지 않았어도 선정된 산악인 39인에 진배없는 뛰어난 산악인이 꽤 많다는 뜻의 간접적 표현으로서 40명 중 한 명의 자리는 비워 두었습니다. 다만 위에 설정한 바의 의미로 산악인을 한정한다면 선정위원 수를 배로 늘린다 해도 결과는 비슷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9명 대표 산악인의 분포를 보면 고산 등반가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선정위원들은 아무래도 고산 등반이 눈사태, 산소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 위험하고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엄홍길·지현옥·박영석·고상돈·장봉완·오은선·김재수·한왕용·김창선·허영호·고미영·구은수·이현조·김홍빈·오희준·강연룡·박무택·김미곤·홍성택·나관주·강성규·김영미·모상현씨가 고산 등반 위주의 산악인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김세준·박정헌·김창호·유학재·정승권·유한규·왕준호씨 등은 고산등반 중에도 벽등반을 주로 추구해온 산악인들입니다. 남선우씨는 등반 자체의 성과와 더불어 산악운동을 널리 전파한 일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정광식씨는 산악서적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진 아이거 북벽 등반기 <영광의 북벽>의 저자입니다. 이 책으로써 등반의 깊이나 가치를 널리 알렸다는 데 선정위원들은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허긍렬씨는 아예 유럽 알프스의 샤모니에 거주하며 연이어 활발한 등반을 펼치고 있기에 다수의 낙점을 받았습니다. 주영·김용기·이명희씨 등은 히말라야 고봉 등반 경력은 거의 없지만 대암벽 등반 등을 활발히 한 것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39명 중 여성은 고 지현옥씨를 비롯해 오은선·고미영·김영미·이명희씨까지 5명입니다. 원로 산악인 중엔 고 김정태씨가 유일하게 선정되었습니다. 금강산 집선봉 등반 등 해방 전후로 활발한 등반활동을 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등반을 비롯해 산악 평론·문학·행정·환경 등으로 산악 활동을 분류하고 각각 대표적 산악인을 선정해보는 작업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부문별로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문제부터가 매우 까다로울 것입니다. 또한 선정 대상자가 매우 소수입니다. 예컨대 산악평론가라 할 만한 산악인이 김영도 선생을 비롯해 몇 사람이나 될까요. 그러므로 등반 이 외에 타 분야의 공헌자들은 대한산악연맹이 매년 시상하고 있는 산악상으로 이미 거의 다 밝혀졌다고 여겨집니다.
선정위원 명단(가나다순)
김영도 선정위원장. 한국등산연구소 창립. 77에베레스트 원정대장. 한국의 대표적 산악 저술가.
김창호 한국의 대표적 고산거벽 등반가로 30~50대 산악인 동향에 매우 밝음. 시립대 OB.
박정헌 삼천포산악회. 촐라체 등 등반. <촐라체> 저술 등 세계 및 한국 산악계 동향에 밝음.
배경미 한국여성산악회 회장, 대산련 학술정보이사. 산악계와 여성 산악인 동향에 밝음.
안중국 <월간山> 편집장. <월간山> 기자로 25년 근무. 산악계 전반에 대해 밝음.
엄홍길 거봉산악회·한국 최초의 8,000m 14좌 완등자.
유학재 한국산악회 등반기술위원장. 산비둘기 산악회. 세계적 난제였던 가셔브룸4봉 서벽 초등.
유한규 악우회. 대산련 기획위원장. 바인타브락 초등 등 선구적
등반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알피니즘의 역사> 저술.
이의재 대한산악연맹 사무국장으로 산악계 동향에 밝음.
장봉완 서울시산악연맹 부회장. 해외 원정대 대장 경험 다수.
정승권 정승권등산학교 교장. 한국 알피니즘의 선봉에 서온 산악인.
정호진 꾸준히 등반을 해온 산악인이자 대한산악연맹 대상 심사위원을 여러 해 동안 역임. 산악인 동향에 밝음.
조형규 경남산악계의 지도자.
한왕용 8,000m 14좌 완등자.
한필석 <월간山> 차장. 한국의 해외 원정사와 산악인 동향에 밝은 전문가로 20년 경력.
(8,000m 14좌 완등자로 5월 20일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오른 박영석씨는 원정 중이라 참석하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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