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일어나는 남녀상열지사, 대부분 고만고만하다. 적당히 좋아하면서 머릿속으론 현실적인 계산을 하느라 바쁘고, 밀당(밀고 당기기)하다 인연이 되면 결혼하는 거고, 아니면 말고. 그러는 와중에 다들 연애전문가가 된다. 하지만 사랑을 이해한다는 게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인가?
가끔 예술가들의 별난 사랑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 동안 달달 외우고 실전에서 써먹었던 연애심리며 밀당 기술이 전부가 아닌 것 같아 어리둥절해진다. ‘세상에 이런 만남도 있구나!’
사진작가 김중만 씨는 2009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신상옥 감독의 전 부인이었던 배우 오수미 씨와의 결혼과 결별 등 굴곡 많은 인생사를 고백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그런 그가 지난 봄 MBC '황금어장-굿바이 무릎팍도사'에 영상으로 출연해 "무릎팍도사는 나누고 싶었던 걸 나눌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곧바로 그에게 이메일을 날렸다. “일생 동안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했으니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그 얘기를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그로부터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서울 청담동 그의 작업실은 정글처럼 나무가 많았고,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소품들과 재잘거리는 구관조 소리, 졸졸 흐르는 물소리까지, 아프리카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Q. 우여곡절이 많으셨어요. 평범하지 않아서 가슴에만 묻어둔 이야기가 많으실 것 같은데요.
김중만 작가(이하 김). 네. 그건 제 아내, 네오엄마를 존중해주는 것이고, 보호해주는 게 제 입장이라고 생각하니까…저한테 날라오는 초대장이 일년에 100장 정도 되는데, 거의 나가지 않아요. 나를 풀어헤치고 세속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그러니까 사교활동을 전혀 하지 않죠. 술도 혼자 마시고. 저는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했어요. 세 명의 여인을 거쳤고, 그래도 아직도 사랑이 좋고 목마르고 애타고 하는 그런 생각, 그런 느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Q. 고(故) 오수미씨와의 결혼은 보통사람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어요. 당시 신상옥 감독의 아내였던 그는 남편이 납북되자 그와 낳은 두 아이를 혼자 맡아 키우고 있었죠. 어떻게 만나셨나요?
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서울에 전시하러 왔었는데, 조선호텔 패션쇼 장에서 만났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여자였어요.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나는 사진작가인데 작품을 찍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죠. 38년 동안 사진을 하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겠다고 한 적은 아주 드물어요. 다섯 명 정도 밖에 안 되죠. 제가 세 번 결혼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세 번 모두 첫눈에 반한 여자들과 결혼했어요. 당시 저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을 때였고, 수미 씨도 신상옥 감독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이 있었어요. 프랑스인 부인은 오수미씨 때문에 한국에 왔다가 헤어지자고 하고 돌아갔죠. 그렇게 첫 부인과 이혼하고 수미 씨와 결혼했어요.
Q.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나은 아이들을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김. 전 승리와 상균이를 친 자식으로 생각하고 키웠고, 애들도 저를 아빠라 부르며 친부처럼 따랐어요. 지금도 만나고 있고요. 솔직히 말하면 신상옥 씨가 탈북해서도 자기 아이들에게 거의 신경 쓰지 않았어요. 물론 재정적으로도. 아이들에겐 제가 늘 아빠에요. 오히려 최근에 최은희 선생께서 아들 상균에게 오수미씨 묘지에 방문하라고 비행기표를 보낸 게 놀랍고 고마운 일이죠.
Q. 오수미씨와는 왜 파경을 맞았나요?
김. 수미 씨와 저는 제가 영문도 모른 채 해외로 추방을 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지,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게 아니었어요. 이후 그 사람이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고. 슬픈 사랑으로 기억해요.
Q. 두 번째 부인이었던 오수미씨와 이혼한 후 1988년 당대 톱모델 이인혜 씨와 결혼해 아들 네오를 얻으셨어요.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텐데요.
김. 그게 이인혜씨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일 거예요. 그런 걸 다 받아줄 수 있는 포용력과 진정성. 그것도 사랑이죠. 예술가의 삶이란 사실은 행복함과는 거리가 있어요. 행복한 예술가를 보면 인류사를 볼 땐 피카소가 유일하게 7명의 부인들에게 모든 것을 행복하게 해주고 작품을 남기고 간 유일한 예술가이고. 그 외엔 아무도 없었어요. 그만큼 예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저의 아내도 그렇고 쉽지 않죠. 그러니까 다 갖는 거는 그건 정말 이상이죠. 좀더 진솔하게 얘기하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아요. 그런데 그걸 동행해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항상 뭐라고 할까, 나의 에고이즘과 이기심으로 인해 주는 상처가 나에겐 큰 슬픔으로 돌아오는 건 사실이에요.
Q. 가족사가 복잡한데, 가족들 간에 갈등은 없나요?
김. 프랑스에 있던 큰 아들 에니가 6개월 전 서울에 왔어요. 사진작가인데 홍대 앞에서 살죠. 막내 네오도 사진을 공부하면서 홍대 앞에 살고 있고. 딸 승리는 사진작가와 결혼했고, 상균이는 미국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어요. 엄마들이 다른데도 넷이서 너무 친해요. 첫 번째 부인은 천사 같은 여자예요. 38년째 장애인학교에서 정박아들을 돌보고 있고요. 우린 친구 같아요. 작년 여름 서울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해인사랑, 주산지, 철원 등을 여행했죠. 30년 전, 오수미씨 일로 한국에 왔다가 헤어지자고 하고 돌아 갔었는데…. 현재 부인도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걸 다 이해해줬고요. 대체적으로 제가 인복이 많은 사람인 거 같아요. 아이들도 그렇고.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단지 정직한 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Q. 사람마다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의가 다르죠.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정의는 뭔가요?
김. 저는 통증이에요.
Q. 왜죠?
김. 지독한 사랑을 원하니까. 그냥 평범하고 그냥 얼버무리는 그런 사랑은 관심 없으니까. 다 주고 다 받는 사랑. 사랑은 끝이 없는 거죠. 내가 왜 이 세상을 살고 또 나름 열심히 사진작업을 하는 건 사랑이 지탱을 해 주기 때문에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건 항상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이죠. 때로는 무너질 때도 있고,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이 끊임 없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나무에 가지를 치고…많이 생각하면서 사랑을 보게 돼요. 아쉬운 게 있다면 나는 정말 사진에 미쳐서 사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되어가고 있고, 상대방을 충분히 배려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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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인케이스 |
Q. 사랑이 작품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겠죠? 선생님 작품은 열정적이고 에로틱한데요. 마음 속에 간직한 사랑의 모습인가요?
김. 당연히 있죠. 거꾸로 작품이 사랑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고. 그게 끊임없이 순환이 되고 있죠.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주제는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찍는 거예요. 그 대상이 사람이든 나무 한 그루가 되었든, 사람들 눈에는 그냥 평범하고 고통스러운 건데,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해요. 아름답다는 건 외형도 중요하지만 내면이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