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최근 정보공개청구로 대구서구선거관리위원회(아래 대구선관위)로부터 받은 대선 개표영상을 살펴본 결과, 한 심사집계부의 투표지 확인 심사 절차가 생략됐음이 드러났다. 심사집계부의 한 개표사무원이 계수기로 몇 매인지 센 투표지 뭉치를 확인도 하지 않고 시종일관 바구니에 넣는 장면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공직선거 개표관리 매뉴얼에 의하면 개표는 "개함부→ 투표지분류기 운영부→ 심사집계부→ 검열위원석→ 위원장"의 순서로 진행된다. 심사집계부는 투표지분류기 운영부가 후보자별로 분류해 넘겨준 투표지에 무효표나 혼표(다른 후보자 표가 섞인 것)가 섞여 있는지를 "전량 육안으로 정확히 확인 심사"해야 하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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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집계부 빨간 원 안의 개표사무원이 계수된 투표지 다발을 고무 밴딩해 곧장 바구니에 넣고 있다. |
ⓒ 정병진 | |
이 작업은 보통 선관위 직원과 공무원들로 구성된 개표사무원 5~7명이 맡아 진행한다. 개함부의 개표사무원은 일반인들도 많이 참여하지만 심사집계부 단계는 숙련된 공무원들이 주로 맡는다. 그만큼 개표의 여러 절차 중에서 핵심에 속한다. 심사집계부에는 책임사무원도 배치돼 투표지 확인 심사의 절차를 지휘하며 개표 결과를 상황표에 기록한다.
선관위 사무국장과 관리계장 등도 개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개표장 전반을 부지런히 살피며 관리 감독하게 돼 있다. 개표가 시작되기 전 개표사무원들이 그 업무를 충분히 숙지하도록 교육해야할 의무도 있다. 참관인들도 개표 과정을 감시하다가 문제점을 발견하면 이의제기를 하여 시정을 요구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영상 속 대구서구의 대선 개표 현장은 매뉴얼과는 사뭇 달랐다. 화면 가까이 보이는 심사집계부의 한 개표사무원이 투표지 확인 심사 절차를 줄곧 생략한 채 투표지를 고무줄로 밴딩하여 바구니에 담는 일만 하는데도 이를 지적해 바로잡는 사람이 없었다. 심사집계부 이후 검열위원석에서 투표지의 유무효에 대한 세심한 검열이 있다면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검열위원들은 기껏해야 무효표와 개표상황표를 살펴볼 뿐 투표지 다발에 대한 검열을 거의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중앙선관위 선거과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검열위원들의 역할을 바로잡고자 법 개정까지 추진 중이다. 결국 심사집계부의 투표지에 대한 정확한 확인 심사 절차가 생략되면 사실상 투표지분류기가 분류한 개표 결과가 그대로 확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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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지분류기(전자개표기) 선관위의 투표지분류기 홍보 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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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공직선거법상 투표지분류기는 개표의 '보조수단'이다. 이 기기는 투표지를 후보자별로 분류하는 일을 돕는 보조적 역할만 해야 한다. 실제 개표는 심사집계부가 수작업으로 후보자별 득표수를 정확히 확인 심사 하도록 규정 돼 있다. 따라서 심사집계부의 투표지 확인 절차가 생략되면 개표 결과의 효력 유무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대구시선관위 관계자는 "(개표사무원들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고 시켰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며 "그 많은 개표사무원들을 일일이 지도 감독하긴 힘들다"고 하였다. "개표무효" 시비에 대해서는 "지도 감독을 잘못한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개표무효의 사유로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중앙선관위 담당 주무관은 "아직 영상을 못 봤지만 실제로 개표사무원이 투표지 확인 심사를 안 했다면 그건 잘못"이라며 당혹스러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