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사찰의 미(美)' (동국대 교수 자현스님 /btn) 16회
스투파 - 탑파(음사) - 탑 (음사한 걸 잘라내 - 중국의 특징)
산스크리트어 dhyāna 팔리어 jhāna의 음사 - 선나 - 선(禪) (자르는 데 기준도 없고.. 상당히 비상식적 ㅎㅎ)
부처님 살아계실 당시에도, 인도 사람들은 호신용으로, 탑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다

무엇을 넣었을까? - 머리카락, 손톱
사리? - 인도에서는 사리의 폭이 훨씬 넓다: 유체, 머리카락(미얀마 쉐라곤 스투파), 손톱
나중엔 부처님이 사용하시던 물건(발우, 빗자루, 지팡이..)으로 탑을 만들고
나중엔 경전을 넣는다 (일종의 기념탑 / 이런 탑은 스투파라고 하지 않고 다른 이름 - '지제')
부처님은 왕의 자리를 포기했지만 깨달음을 얻고나선 왕에 비길 바 아니게 국제적 존경을 받았고
돌아가셨을 때는 8개 국에서 사리를 얻기 위해 전쟁을 할 뻔한 정도였다

사리탑 8개 중에 하나 - 랑그람탑 (부처님 어머니와 부인 종족 콜리족의 나라)
아소카왕이 8개 중 7개 탑을 열어서 사리를 전인도에 재분배했는데 이 탑만큼은 열지 못 함 - 그래서 더 큰 의미
열으려고 갔더니 용이 반대해서 못 열었다는 전설 (아마도 용을 숭배하는 나가족이 결사반대했을 것)



사리와 사리장엄구를 넣었던 곳
네팔과 인도 양쪽에서 서로 자기네 나라에 부처님 나라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
둘 다 맞는 말 - 석가족이 살다가 망해서 유민이 이동(네팔쪽에서 인도쪽으로)한 것
☞ 석가족의 비극 실화 http://cafe.daum.net/santam/IaMf/237
사실 마하나마는 비유리의 외할아버지니까 죽을 염려는 없었다
신분은 떨어질지언정 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백성을 책임지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그때 빠져나간 유민들이 세운 부처님 사리탑이 바로 이 탑(↓)이다.

8개 중의 3번째 탑 (Piprahawa 피브리하와 스투파)
가장 놀라운 것은 이 탑에서 사리가 나왔는데
만약에 인도에 사리가 하나밖에 없다면 이 사리가 가장 유력하다 (랑그람보다도)

(이 사리 용기도 스투파 모양)



사리는 후대에 탑이 무너지고 증축하고 하는 과정을 계속 거치게 되는데
잘못하면 섞이거나 유실될 우려 높다 (진짜인가? 정확하게 입증할 방법 없어)
그래서 이 사리야말로 진짜일 확률이 가장 높은 사리(↑)이다.
부처님을 화장했던 자리에 세운 기념탑 (↓)


(어린왕자의 보아뱀, 모자 같다 ㅎㅎ)
그리고.. 산치대탑 (↓) - 직경 36m, 높이 16m





부처님 발자국 - 불상을 만들기 이전

여자가 하나 누워 있고.. 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위에서 코끼리가 앞발을 귀엽게 오므리고 들어오고 있다 - 부처님 태몽
물 위를 걷는 부처님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의 제일 큰 종교지도자였던 카사파 삼형제(제자 1000명)를 제도할 때 물 위를 걸으셨다고 함
우기 때 물이 꽉 차오르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다 피했는데 부처님은 미처 피하지 못 했어
사람들이 가보니 부처님이 물 위를 걸어오셔 - 불상 만들기 전이라 그림에 그려 넣지는 않음
(착한 사람 눈에만 보여 ㅎㅎ)
마치 웃고 있는 거 같은 악어
산치대탑에 여러 탑이 있는데 그 중에서 작은 탑
[※참고] 지제(支提): ⓢcaitya(차이티아) ⓟcetiya(세티야)의 음사, 탑 ·묘(廟) ·영지(靈地) 등으로 번역
화장용 장작의 퇴적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치타'에서 유래된 말. 원래는 사자(死者)의 유골 위에 구축한 총(塚)과 그 지점을 표시한 수목을 뜻했다. 후에 불교와 자이나교에서 성자의 유골 위에 기념탑을 세우게 된 뒤부터는 특히 탑과 동의어로 쓰이게 됨.
부처님 입멸 후 신자들은 그 진신사리를 탑 속에 안치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예배공양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가 널리 퍼지고 탑파가 더욱 많이 세워짐에 따라 극히 한정된 진신사리로는 그 많은 신자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머리카락, 손톱, 치아 등을 봉안 예배하거나 옷이나 좌구(座具) 등의 유물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세에는 이것마저도 그 진위를 가려낼 수 없게 되자, 절대로 변함이 없는 석가의 유적지인 탄생지 ·초전법륜지 ·성도지 ·열반지 등 4대 성지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그곳에 탑파를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신령스러운 장소, 고적(古蹟)을 표시하는 기념탑적인 것을 지제라고 하여 불사리를 봉안하는 탑과 구별하게 되었다.
어떤 경전에는 '사리가 있는 것을 탑파라 하고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후세에 이르러 사리가 있고 없음을 외관상으로 구별하기란 사실상 매우 곤란한 문제여서, 이러한 정의는 하나의 해석에 불과할 뿐, 오늘날에는 탑과 지제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천관산(天冠山) - 전라남도 남쪽 해안가 장흥
천관산이란 산명은 천관보살이 머무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
과거 한때의 이름은 지제산(支提山) - '지제란 곧 탑묘를 이름이니,
이 산의 형상이 그와 같은 이유로 지제산이라 했다'고도 기록에 전한다.
☞ 부처님 '사리'에 얽힌 진기한 이야기들.. <자현스님> http://cafe.daum.net/santam/IZ0A/206
나란자라 강을 건너는 부처님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news/view.html?no=67107§ion=93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