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프로 84 장훈기 목사님이 직접 재배한 감자를 한박스 보내 주신 적이 있었는데 두고두고 맛있게 먹었었다. 교육이 끝나 한가해 지면 한번 찾아 가야지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아침 일찍 고양이밥, 개밥을 챙겨 주고 시골서 보내 온 쌀 한가마를 낑낑대며 실었다. 한 보름 전에 삼무곡 학교에서 사과 한박스를 주셨는데 아직 포장도 뜯지 않았는데 과연 상태가 궁금했다. 박스를 뜯어 보니 말짱하다. 우리 식량 창고에 얼마 전 부터 온도계를 달고 5~6도로 유지해 준 덕이리라. 온도 관리는 일절 수동식이다. 낮으면 부엌문을 열고 높으면 부엌문을 닫고. 다시 깨끗하게 테이핑해서 차에 실었다. 누가 선물한 것을 먹지 않고 처박아 뒀다가 썩히는 것 보다는 더 필요한 곳에 드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안흥에 들러 역시 안흥찐빵을 샀다.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안흥찐빵을 좋아하는 것이 나로서는 복이다, 어디를 가건 선물은 간단하게 안흥찐빵이면 그만이니까.
오늘 운행 코스는 새말에서 방림을 거쳐 평창, 미탄, 정선으로 해서 임계 까지이다. 평창 미탄 까지의 길은 과거 통나무학교가 미탄에 있어 무수히 다녀 너무나 익숙한데 요즈음도 일년에 서너번은 평창 구장으로 야구하러 가느라 다니는 길이다. 평창을 지나자 갑자기 길이 좋아져서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였다. 과거 통나무학교는 길에서 보이지도 않고 그 아래 주유소와 주유소 옆 우리가 밥 대먹던 식당은 고색 창연하게 늙어 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통나무학교 초창기, 미탄학교 시절은 용감 했었다. 그때 나와 나에게 현혹돼 같은 길을 가던 친구들은 바람 찬 들판에 버려진 꼴이나 마찬가지 였다. 노동에 시달린 몸을 누일 따뜻한 방도, 희망찬 미래도 없었다. 온통 없는 것 투성이였다. 있는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린애 처럼 순수했고 전사처럼 용감했다.
정선을 지나 북평까지의, 강을 끼고 철길과 붙어 함께 달리는 아름다운 길을 거쳐 드디어 목사님의 벧엘동산 공동체에 도착했다.
이곳은 일단 진입로가 대단하다. 거의 2킬로 넘는 길이 거의 길이 불가능한 곳에 만들어져 있다. 이곳을 개척하고 운영하시는 목사님의 불굴의 의지가 진입로에서 부터 과시되고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셔 조기축구도 하신다는 목사님은 이 비탈지고 외딴 땅에 노인분과 장애인, 공동체 식구 까지 거의 칠십명이 생활하는 모든 집과 시설을 직접 지휘하셔 만들어 놓으셨다. 이 정도면 불굴의 의지만으로는 안되고 그 보다 훨씬 깊은 뭔가에 힘 입어야 가능하지 싶었다.
감자를 두박스, 한마대 가득 차에 싣고 학교로 돌아 왔다. 귀한 식량 감사하긴 하지만 이 많은 감자를 어떡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무릎을 쳤다. 다음 주에 김종율 목사님 오시니까 거기 삼무곡학교 식구 많으니까 거기로 보내면 되는구나.
좋은 하루였다.
첫댓글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