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당시, 스타급 신여성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악의적 루머 그리고 황색 저널에 윤심덕은 지쳐갔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 닛토레코드(日東畜音器)주식회사와 26곡 취입계약을 체결하고 오사카로 출발하였다.
여기서 그는 계약조건을 모두 이행한 다음, 자신이 한곡만 추가하겠다고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킨 27번째 곡이 바로 [사의 찬미]라 한다.
1926년 8월 발매된 [사의 찬미] 원판은 루마니아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편곡하여 윤심덕(혹은 김우진)이 번안 가사를 붙이고 그의 동생 윤정덕의 피아노 반주로 취입한 음반이다.
이 음반은 윤심덕의 悲戀과 맞물려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광막한 황야(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으니(같구나)
生(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윤심덕 원창/Covered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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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일본)와 식민지 조선을 가르는 조선해협(대한해협). 여기서 玄海灘(玄界灘, 겐카이나다)은 대마도와 큐슈 수역 가운데서도 일부 수역만을 말한다.
일제병탄기... 내지에선 시모노세키(下関)-관부연락선(부관연락선)-경부선-경의선을 통해 남만주철도(만철)와 연결된다.
김우진(1897-1926)은 목포 갑부 김성규(지방관, 대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본 쿠마모토농림학교를 거쳐 1924년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한 엘리트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였다.
김우진은 당시 연극계와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기대주였으나 부친과의 세계관 차이로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고 염세주의 철학과 죽음의 미학에 빠져들어 동병상련의 윤심덕과 함께 인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김우진 초혼묘
그는 생전에 시 48편, 희곡 5편, 소설 3편, 문학평론 20여 편을 남겼고, 비록 요절하였으나 목포문학의 밑바탕이자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자료/목포문학관)
윤심덕과 김우진 사건은 당대 최고 엘리트(동경유학 등)라는 신분적 요소와 유부남과의 情死라는 비극적 요소로 인하여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여러 형태로 재조명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