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그 댕댕한 자존심 .오래된 고가들을 이제 막 앉힌 것처럼 꾸미고 사는 마지막 자존심 안동
엘리자베스 영여왕이 우리나라를 찾았을때 가장 한국다운 곳은 어딘가 ??
모두 찾아보니 바로 안동이었답니다.
여왕께서는 목조건축으로 700년이 넘도록 자랑스러히 서있는 봉정사 극락전의 역사와
그 당당함에 반해 봉정사 용마루 한가운데에 청기와 한장을 올려놓으셨답니다.
안동, 양반고을의 대명사로 알려진 전통의 고향 .
불교문화도 유교문화도 그리고 토속문화도 한번 접수하면 절대로 놓지않은 전통고수의
저력으로 지금도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퇴락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마을을 지키고,
마을을 휘감아돌아가는 낙동강은 하회마을을 금방 피어나는 연꽃송이를 받들듯이 은은히
흘러 돌아가는 곳.
다른지역에는 보기드문 기와집이 왜 안동에는 그렇게 많은 걸까?
안동사람은 종가를 지키는데 참으로 많은 공력을 들인답니다. 돈이 없어 하고싶은
다른일은 못하더라도 종가를 보존 하는 일만은 절대로 지키는 안동인의 그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우리의 뿌리가 보이지 않으면 안동으로 가시면 보입니다.
자존심 강한 안동인. 안동인과 친하려 할때 그들의 자존심을 절대 건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
멋모르고 어린아이한테도 함부로 말하면 안동답사는 그순간 바로 쫑입니다.
안동의 원 이름은 고창이었다. 신라 말엽 후백제의 견훤과 왕건이 신라를 놓고
공산 싸움에서 왕건이 크게 패하여 고창으로 후퇴,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도망하여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마침 고창의 호족인 김선평. 권행. 장길 세 사람이 향군을
데리고 와서 왕건을 도와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왕건이 싸움에 이길 수 있었다.
여기서 왕건은 삼국을 통일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왕건은 삼국이 통일되고 안정이 됐을 때 이 고을에 동쪽을 편안하게 해줬다해서 “안동”
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셨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서원 중 가장 대표적인 서원 병산서원 .
퇴계이황선생의 도산서원 .이언적의 옥산서원.한훤당김굉필의 도동서원.최초의 사액서원이며
안향과 주세붕을 모신소수서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원.
그러나 자연을 운용하는 것이나 그 품새는 병산서원이 가장 으뜸으로 치는 사람들이 많다.
소백산을 절집마당으로 끌어않은 부석사의 장쾌함이 있다면 낙동강과 병산을 서원의 마당으로
품은 병산서원은 어느누가 봐도 절묘한 공간운영.
서애선생을 모셔서 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 자연과 하나로 조화된 서원의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
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 서원이 되었다.
서원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
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병산서원은 낙동강과 병산을 서원 속에 끌어 안았을 뿐 아니라 특히 병산은 이 서원의 병풍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음을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 맘껏 느낄 수 있다.
자연을 서원앞마당으로 끌어들인 절묘한 구조의 병산서원.서애유성룡을 모시는 서원
안동 하회마을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로 유운룡·유성룡 형제 대(代)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낙동강
줄기가 Ω자 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 돌고 있고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유씨가 집단 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이 씨족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유의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한 이 마을은 크게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유서 깊고
제법 크기를 갖춘 많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북촌택(중요민속
자료 제84호), 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 겸암정사 (중요
민속자료 제89호) 등 많은 건축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
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더할 수 없이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정신
문화의 연구·보존·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하회마을은 집집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마을. 한 성씨가 터를 잡고
6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동성마을을 이루어 살아왔으며 임진왜란을 슬기롭게 극복하신
서애 유성룡 선생의 유품이 보존되어 있고, 지금도 이웃간 정이 넘치고, 탈춤으로 삶의 정서를
달래며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마을이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에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사람
들이 알고 있고, 찾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하회마을이 아닐까
충효당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신 후, 선생의 문하생과 사림이 장손(長孫)
졸재(拙齋) 원지(元之) 공을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의하(宜河)공이 확장한 조선중엽의 전형적
사대부(士大夫) 집으로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남아있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 기념 식수(구상나무)가 있다.
서애유성룡의 고택 충효당. 가운데 멋지게쓴 글자는 미수 허목의 글씨.반가의 고택답게 위풍당당한데
서애선생이 사실때는 이렇게 거창하지는 않으셨답니다
삼신당 느티나무
마을중앙의 삼신당에는 수령 6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를 잘못 건드리면
동티(-재앙)를 입는다는 토속신앙이 마을에 전해지고 있으며, 풍산류씨 입향 시조 전서공(典書公)
께서 심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서낭당, 국사당과 함께 삼신당은 풍수지리상 마을의 혈(穴)에
해당하는 곳으로, 하당(下堂)으로도 불리며 정월과 대보름에 마을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가
여기서 이루어 졌고, 하회 별신굿 탈놀이 춤판이 가장 먼저 행해지는 곳이다. .
삼신당 느티나무.옛여인들은 이나무에 아들을 점지해달라 빌고 요즘 현대인은 소원을 써서 새끼줄에 걸고 빌고
양반고장에 왠 삼신당 ? 안동은 한번 접수하면 절대로 놓지않은 저력을 가지고 있어서무속의 세계도 불교의
세계도 다 한몫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봉정사
안동 지리지인 <<영가지>>에 따르면 '부(府) 서쪽 30리에 있는 천등산 아래에 있다.
신라시대에 이름난 절이 되었다. 1566년 봄에 퇴계 선생께서 절의 동쪽 낙수대 건물에 붙인
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정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봉정사의
역사에 대하여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창건에 관한 사실도 전설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도 몇 차례 중수한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무한 편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로는 봉정사 극락전(국보15호)을 꼽는다.
봉정사의 극락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된 목조건축 봉정사 극락전 700살이 넘었어도 아주 건재해요
봉정사에 있는 고려 중기·후기의 목조건물. 국보 제15호. 앞면 3칸, 옆면 4칸의 단층맞배지붕
건물이다. 크기가 다른 자연초석 위에 배흘림 기둥이다. 정면 가운데에 널빤지로 판장문을
달고 양 옆에는 광창(光窓)을 내었으며, 나머지 벽면은 토벽(土壁)으로 막아 감실(龕室)처럼
만들었다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등천장이며, 후대의 건물과는 달리 대들보 위에
2구의 복화반(覆花盤)으로 중대공을 얹어 덧보를 받치는 고식을 따랐다.
1972년 해체수리시 발견된 상량문은 1625년(인조 3) 중수하면서 쓰여진 것인데,
1363년(공민왕 12)에 중창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늦어도 13세기에는 이 건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심포계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이다.
봉정사의 대웅전
봉정사에 있는 조선 초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55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이다.
건물 외부로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는 유일한 예로 사찰건축의 특이한 모습을 ....
별신굿
상설공연하회별신굿
하회마을에서 펼치는 별신굿.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의 즐길거리인 하회별신굿과 양반들이 즐기는 선유줄불놀이가 있다 .
해마다 9월 말부터 10월 초순에 국제 탈춤 퍼스티발을 이곳 하회에서 개최하면서 선유
줄불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국제 탈춤대회가 있을때 하회는 전세계적인 무대가 되서 왁자지껄 ...이축제에 참여할려면
오후 7시까지 하회에 입장해야하며 두달전에 민박을 예약해야만 가능하다.
하회탈은 병산탈과 더불어 국보로 지정되어있으며 하회탈은 오리나무로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