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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오래된 것의 진가를 바로 아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숱한 재개발의 위기 속에도 옛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사실 이곳은 입에 넣은 사탕처럼 바로 달달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뭐랄까, 오래 고아낸 곰탕처럼 깊고 진한 담백함, 그런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배다리라는 곳
‘배다리’는 나이 지긋한 인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친숙한 동네다. 인천역을 출발한 경인선 전철이 동인천역을 지나자마자 철교 위를 통과하는데, 그 오른편에 자리 잡은 오늘날 금창동 지역을 세칭 ‘배다리’라 불러왔다. 개항 이후 몰려온 일본인들의 요구로 제물포 해안에 개항장이 조성되면서 떠밀려온 조선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당시 이 일대엔 성냥공장, 간장공장, 고무신공장 등이 들어섰고 조선인들이 터를 잡고 살며 노동자로 일했다. 사실 ‘배다리’라는 지명은 인천 이외에 다른 지역에도 사용되었다. 대부분 배를 붙여 다리를 놓은 데서 유래한 듯한데, 인천의 배다리는 19세기 말까지 수문통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갯고랑에 배가 닿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불리기 시작했다.밀물 때면 성창포구를 따라 들어온 바닷물이 긴 갯고랑을 이루어 작은 배를 댈 수 있었다. 근해에서 그물로 끌어 올린 해산물과 인천 인근의 논밭에서 가꾼 뭍의 물산들이 모여 배다리 일대에는 일찍부터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었다. 전쟁통에도 시장은 살아남아서 생존을 위해 모여든 많은 사람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전후 복구의 고단한 과정을 거치면서 배다리 주변으로 헌책방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향학열을 불태우던 인천 지성의 태반 또한 배다리 출신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배다리는 아직도 많은 인천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 [배다리갈래](스페이스 빔 발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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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 배다리마을 사랑방, 스페이스 빔
배다리 역사문화마을로 접어든 시간여행자를 위
한 길잡이, ‘스페이스 빔’. 여행의 시작은 이곳부터다. 입구를 지키고 선 깡통로봇이 이곳의 마스코트. 단단한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독특한 건물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1927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된 옛 인천 양조장 건물로 약간의 수리만 거쳐 활용하고 있다. 1층은 전시 공간, 2층은 사무실을 겸한 카페로 여행자들에게 안락한 쉼터가 되어준다. 계단을 오르니 난로 위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약차의 달달한 대추향이 카페 안을 가득 채운다. 난로의 온기가 추위에 얼어붙은 코끝을 사르르 녹인다. 따뜻한 차는 언제나 무료. 반갑게 맞이하는 민운기 대표를 만나 배다리마을에 관한 설명도 듣는다. 길라잡이 책자와 지도까지 챙기면 드디어 배다리마을 여행 준비 완료.
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7번지
전화 032-422-8630
입장료 무료
배다리마을 길라잡이 [배다리갈래] 가격 5000원
지도 리플릿 무료
홈페이지 www.spacebeam.net
about 역사문화마을
스페이스 빔은 인천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가 서린 배다리마을을 보존하고, 역사문화마을로 만드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1995년 ‘지역미술연구모임’으로 출발한 ‘대안 미술 활동 공간’. 2007년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배다리마을을 방문했다 이 일대가 산업도로 공사로 전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배다리에 눌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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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걷고 싶은 거리, 창영동 벽화골목
스페이스 빔에서 도원역 방면으로 철로가 나올 때까지 걷는다. 5분도 채 안 되어 잘 닦인 보도가 나타난다. 2012년 동구청에서 조성한 ‘걷고 싶은 거리’다. 솔직한 심정으론 걷고 싶다기보다 ‘걷기 편한’ 거리쯤 되어 보인다. 철로변에 딱딱 선을 맞춰 배치해놓은 작품에는 어쩐지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보다 왼편으로 줄지어선 가옥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모양과 소재를 달리한 독특한 형태의 집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걷다보니 담벼락에서 그림이 하나둘씩 튀어나온다. 띄엄띄엄 숨겨놓은 벽화를 발견할 때마다 어릴 적 자주 하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곳의 그림은 지난 2007년부터 2012년 봄까지 ‘기억과 새로움의 언덕’이라는 문화공방을 운영한 ‘퍼포먼스 반지하’가 우각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린 작품.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주제로 했다.
찾아가는 법 스페이스 빔에서 1호선 도원역 방면으로 도보 3분. 창영초교 근처
Don’t miss 옛 꿀꿀이죽 골목
벽화골목 한쪽에 위치한 어린이공원은 ‘옛 꿀꿀이죽 골목’이 있던 자리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곳에 얽힌 절절한 사연은 지금도 생생히 전해진다. 6・25전쟁 이후 먹을거리가 없어 배를 곯던 시절, 이곳에서 미군 부대의 잔반을 모아 ‘꿀꿀이죽’을 끓여 팔았다. 인천문화재단 이사이자 시인인 김윤식 선생은 끓여 퍼놓은 죽 속에 담배꽁초가 필터만 남은 채 풀어져 있거나 씹던 껌을 숟가락으로 건져내는 순간을 회상하며 정말 지옥이었다고 말한다.(참고문헌 [배다리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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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불맛이 일품, 용화반점
추운 계절이면 더욱 생각나는 배다리마을의 별미, 바로 ‘짬뽕’이다.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가 추천한 ‘용화반점’으로 향했다. 이곳 사장님은 1972년부터 40년 넘게 이곳 배다리마을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줄을 서서 먹는 것은 기본이요, 재료가 떨어지면 그날 장사를 마친다니 맛에 대한 자부심을 알 만하다. 찬밥을 달달 볶아 얼큰한 짬뽕 국물에 말아주는 ‘고추짬뽕밥’ 맛이 특히 기막히다. 사골국에 고춧가루를 살짝 푼 것처럼 국물색이 연하고 푸짐한 해산물이 특징이다. 흔히 알고 있는 백짬뽕에 바싹 볶은 고추를 약간만 넣어준 것이란다. 국물에 진하게 밴 불맛도 좋고, 직접 뽑은 면은 차지고 쫄깃하다. 가격도 착해 언제나 부담 없이 들러도 좋겠다.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경동 4-10
전화 032-773-5970
운영시간 12:00~15:00, 17:00~20:00
가격 짜장면 4000원, 짬뽕 5000원, 짬뽕밥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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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0 책 읽는 마을 배다리 헌책방 거리
배다리의 최고 명물은 마을 초입에 위치한 헌책방 거리다. 사실 남아 있는 헌책방은 5곳뿐이다. 겨울의 시린 공기가 더해져 쓸쓸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헌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으로 외관을 대신한 ‘아벨서점’으로 들어갔다. 막상 서점에 오니 문밖에서 한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헌책이 주는 끌림과 감상이 여전히 대단하다. 책을 한 권 한 권 쓰다듬는 주인장의 손길에서 오래된 책들이 다시 생명을 얻는 듯하다. 천장까지 빼곡히 찬 책장, 대체 얼마나 많은 이가 오고 간 것일까. 이곳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이후 궁핍했던 시절, 값비싼 새 책 대신 싼 헌책을 구하기 위해 학생과 지식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한때 40여 개에 달하던 헌책방은 현재 대창서림, 집현전,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5곳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공 서적이나 학생 서적은 한미서점과 대창서림에 많고, 아벨서점은 시와 소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1953년 문을 연 ‘집현전’이 가장 오래되었고, 1973년에 마지막으로 ‘아벨서점’이 문을 열었다.
찾아가는 법 아벨서점에서 10m 거리.
아벨서점 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 13-1
전화 032-766-9523
운영시간 월~토요일 09:00~20:00, 일요일 11:00~19:00, 둘째・넷째 목요일 휴무
Don’t miss 아벨전시관
2007년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가 전시관과 책방을 겸한 ‘시가 있는 작은 책길’을 개관했다. 책방을 찾는 누구나 편안한 공간에서 책과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 전시관은 1954년에 지어진 건물로 불에 타고 부서진 건물을 넘겨받아 정성스럽게 다시 꾸몄다. 1층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예술 관련 서적으로 채우고, 2층 다락방은 전시관으로 꾸몄다. 매달 이곳에서 배다리 시낭송 대회가 열리는데, 2월에는 최일화 시인과 함께한다.
13:30 헌책방 옆 갤러리, 사진공간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빠뜨리면 서운한 또 한 곳. 아벨서점과 한미서점 사이에 앙증맞게 자리한 ‘사진공간 배다리’다. 2층으로 난 좁은 계단을 오르면 갤러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언제든 무료로 사진전을 감상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사진작가이자 인천해광학교(시각장애) 교사로 재직 중인 이상봉 관장이 만든 인천 최초의 사진 전문 갤러리다.
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 14-10 2층
전화 010-5400-0897
운영시간 13:00~18:30, 매주 목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www.photobaedari.com
Don’t miss 2월 전시
1월 31일부터 2월 12일까지 2주간 배다리마을을 주제로 한 [함미화 사진전]이 열린다. 2월 14일부터 26일까지는 사진공간 배다리 이상봉 관장의 [배다리마을 기획사진전]을 선보인다. 인문학 강좌는 5주 단위로 열리는데, 오는 2월 4일 ‘빌렘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강좌가 새롭게 시작된다.
14:00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3곳
배다리가 간직한 보물, 역사지구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배다리마을의 오랜 역사적 가치를 가장 깊이 체감할 수 있는 코스다. 비록 남아 있는 옛 건축물은 단 세 곳뿐이지만, 이를 통해 얻는 영감은 결코 적지 않다. 과거 미국인 선교사가 인천을 선교 기지로 삼고, 교육활동을 전개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인천 근대교육의 문을 연 창영공립 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와 인천 최초의 서양식 초등학교 영화학교, 한국 초기 기독교의 인천 주재 여선교사들을 위해 세운 기숙사가 100여 년 전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건물들은 모두 뾰족한 지붕을 얹고 커다란 아치형 창문을 내는 등 이국적인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현대적인 건물 사이에 꼿꼿하게 자리하며,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모습이 묘하게 느껴진다. 아쉽게도 현재 내부 관람은 할 수 없다.
찾아가는 법 1호선 도원역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약 10분 거리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 창영초등학교(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6호)
1907년 4월 개교한 인천 최초의 보통학교로 1919년 3•1 운동 당시 인천만세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 서양식 초등학교, 영화초등학교(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39호)
1892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초등학교 영화학당이 1911년 현재 영화초등학교 부지로 이전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당시 교실마다 스팀 난방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현대식 건물이었다.
여선교사 기숙사, 갬블홈(Gamble’s Home)(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8호)
19세기 말 미국 감리교회가 여선교사들의 기숙사로 지은 건물이다. 근세 북유럽의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띠는 것이 특징. 현재 창영교회 소유로 사회복지관 교육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2월까지 보수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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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동화 속 벽화마을, 우각로 문화마을
어느새 도원역에 가까워졌다. 역전의 언덕길로 걸어 올라가니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나타난다. 이곳에 숨어 있는 우각로 문화마을은 예술인과 주민이 힘을 합쳐 꾸민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유명하다. 우각로 문화마을의 메인 거리에 이르자 동화 속 집처럼 알록달록 채색된 가옥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아기자기하고 재치 넘치는 벽화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좀 더 가니 벽면에 대추나무가 그려진 ‘게스트하우스 대추댁’과 ‘행복도서관’이 나오고, 맞은편 ‘인천둘레길’ 골목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골목이 나타난다. 파란 벽에 꽃풍차가 그려진 우각로 문화마을 사무실과 도예공방 ‘자기랑’이 자리해 테마공원을 연상케 한다. 굽이진 골목 곳곳을 누비다보면 동요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벽화를 만난다.
주소 인천광역시 남구 우각로 122번길
전화 032-772-0109
홈페이지 cafe.daum.net/art422
Don’t miss 알렌 별장 터
우각로 문화마을이 자리한 곳은 이 일대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쇠뿔고개’다. 이 고개에서 가장 높은 곳, 우각로와 배다리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알렌 별장 터’가 자리한다. 1884년 의료선교사로 들어와 고종의 어의를 지내고 의료기관인 광혜원을 세운 인물,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년)이 미국으로 영구 귀국하기 전까지 사용하던 곳. 현재의 모습은 옛 별장이 불에 타 없어진 후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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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 싸리재의 추억, 카페 싸리재
잠시 쉬어갈 시간. 배다리마을 초입 철교 건너편에 있는 ‘카페 싸리재’를 찾았다. 건물의 한쪽은 카페, 다른 한쪽은 ‘경기의료기’ 간판을 내걸고 투잡을 하고 있는 주인장. 사실 싸리재 박차영 대표는 경동에서 30여 년간 의료기기 상점을 운영해온 베테랑이다.
커피의 매력에 빠져 카페를 차렸는데,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외면할수 없어 가게 한편에 의료기기를 들여놓고 팔게 되었다. 카페 안은 정갈한 한옥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1930년에 지어진 한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골조와 흙벽을 원래대로 놔두고 창문과 문틀, 벽돌 등을 재활용해 지었다. 낡은 옛 대문을 가져와 탁자로 활용한 센스가 돋보인다. 특히 2층 공간은 그동안 모아온 3000여 장의 레코드와 턴테이블, 오래된 수동 카메라까지 볼거리가 많아 개인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2층 발코니는 1층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개항로 89-1
전화 032-772-0470
가격 에스프레소 3500원, 아메리카노 4000원, 생강차 5000원, 제주도 보리빵 1500원, 오렌지 반건조칩 50g 3000원
about 싸리재
예부터 인천 중구 신포동에서 배다리로 넘어가는 이 고개에 ‘싸리’가 많아 ‘싸리재’라고 불렸다. 인천이 개항장으로 활성화하면서 인천 최초의 항도 백화점, 포목점, 잡화점 등 다양한 상점이 생겨나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 구실을 했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엔 싸리재 상회와 싸리재 다방, 싸리재 약국 등 ‘싸리재’라는 상호를 애용하는 곳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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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추억극장 미림
중앙시장 들머리에 있던 미림극장은 1957년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천막극장으로 출발해 애관극장, 오성극장, 문화극장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영화관이었다. 이후 심각한 운영난을 겪어 2004년 폐관한 지 9년 만인 지난해 실버 전용 영화관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했다. 좌석 총 280석을 갖췄고, 영사기사와 매표원, 검표원 등 극장 관리 및 운영을 모두 어르신들이 맡고 있다. 상영작은 어르신 세대의 향수가 어린 고전 명작이 대부분이다.
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화도진로 31
전화 032-764-8880
운영시간 10:30~19:00, 연중무휴
가격 55세 이상(동반자 포함) 2000원, 학생 5000원, 성인 7000원
홈페이지 www.milimc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