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
제목 직분 어떻게 감당할까?
본문 고전16:15-18
우리는 주님의 교회 직분자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워졌지만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세워진 직분자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직분 자들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일까요? 고린도교회를 잘 섬겼던 스데바나가 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데바나는 어떻게 감당하였을까요?
바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도록 섬김
사도 바울의 기억 속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뜻 꺼내어 말할 수 있는 사람, 여러 사람이 회람하도록 쓴 편지에 드러내어 말해도 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공적 편지에 내세울 정도가 되려면 많은 시간을 두고 검증을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누구나 잠깐 몇 년, 몇 개월은 잘할 수 있지만, 스데바나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변함없는 신앙인으로 인정받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목회자의 마음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진 직분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되는 직분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정하고 섬김
본문 15절에 보면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스데바나는 고린도 지역에서 믿음의 첫 열매로서 고린도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회자인 바울을 섬김에 전심을 다 했지만, 성도 섬기는 일에도 작정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섬기거나 사람의 눈치를 봐가며 적당히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집을 모임의 장소로 내놓았고, 그의 섬김을 누구나 공인해 줄 정도로 열렬한 섬김의 사람입니다. “너희가 다 아는 바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인정해 주었습니다. 누가 보든지 그의 말과 행동이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사장단은 모두 비서실 출신들이라고 합니다. 먼저 섬겨본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세상도 지시하고 명령하는 리더가 아니라 섬기는 리더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요즘 국회의원들 후보들이 “머슴처럼 열심히 섬기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근본 원리는 섬김입니다. 섬김이 교회의 핵심 가치입니다. 교회 직분 자들은 스데바나처럼 섬기기를 작정하고 나서야 합니다. 진정한 직분 자는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높이는 자가 아니라,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섬길 생각을 더욱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 섬기기로 작정하는 직분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협력자들과 함께 섬김
16절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스데바나가 훌륭해도 혼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협력자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교회도 목사 혼자서 잘할 수 없습니다. 함께 협력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몸 공동체입니다. 서로 협력하고 함께 해야 효율적인 섬김이 이루어집니다.
일반 세계에서도 네트워크를 중시합니다. 미래는 어떤 세계가 될까요? 융복합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환경부서와 건축부서가 서로 별도의 기관이지만 서로 협력이 되어야 행정의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기러기는 혼자 나는 것보다 무리를 지어 V자 대형으로 날면 71%나 더 멀리 날 수 있습니다. 기러기들은 날면서 계속 소리를 하는데 이는 자기의 위치를 알림으로써 방향을 안내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라고 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격려할 때 더 좋은 결실을 얻게 됩니다.
사탄은 교회가 함께 예배하며 함께 섬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단이 교회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는 분열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분열입니다. 분열은 교회의 거룩한 에너지를 허비하게 만듭니다. 분열은 아니지만 비협조도 교회의 전진을 막습니다. 지도자에게 힘을 보태주고 협력해 주어야 합니다. 각 기관도 기관장을 협조해 주어야 합니다. 구역에서도 인도자에게 협조적이어야 합니다. 담임목사의 목회 사역에도 적극 협력을 해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협력할 때 건강해지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서로 협력하는 직분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 집안이 함께 섬김
스데바나를 소개할 때 스데바나의 집이라고 했다. 집도 모임 장소로 내주고, 그 집에 사는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하였습니다. 지난주 김진두 장로님 가족은 손자들까지 함께 찬양했던 것처럼 온 가족이 함께 섬기면 교회가 더욱 힘이 생깁니다. 부모는 잘하는데 자녀들이 협조하지 않거나 부인은 잘하려는데 남편이 비협조적이면 힘을 잃고 맙니다. 교회에 나오는 가정마다 가족들 두세 명이 함께 섬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시내권은 물론 여수, 광양에 사는 자녀들은 고향 교회에서 부모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학교도 모교를 살린다고 자녀들을 고향의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던가요? 그렇게 협력하니 도사초, 인안초가 잘 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보다 더해야 합니다. 멀리 있는 자녀들도 출석은 못하더라도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십일조를 보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동안 저의 자녀들만 해왔는데, 1년 전부터 서정인 장로님의 딸 서영애 집사의 남편 김대환 집사께서 십일조를 보내주고 있어 참 기뻤습니다. 이런 협력이 이루어져야 농촌교회가 지속 가능해집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우는 섬김
17절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본래 교회는 모자란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채워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스데바나와 그의 동료들이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워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내게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 자들은 다른 사람의 부족을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함을 감쪽같이 채워주는 사람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 중에는 믿음도 부족하고, 섬김도 부족한 사람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직분 자는 남이 하지 못한 부분까지 맡아줍니다. 모자란 재정도 채우고 모자라는 일손도 채워줍니다. 어른스럽고 성숙한 신앙은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우는 사람입니다. 구역 모임이 부족하지 않도록 채우시고 목사님의 부족을 채우는 직분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시원케 한 섬김
스데바나와 그 일행은 바울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18절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시원함의 반대는 답답함입니다. 목회자를 답답하게 하고 성도들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면 나쁜 직분자입니다. 교회의 일군들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직분 자는 목회자와 성도들을 답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본성도 좋고 성품도 좋은데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부탁하면 성의 없이 반응하거나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부탁하든지 꼭 들어줄 것 같고 실제로 협력해 주는 너그러운 직분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빠도 틈을 내어 도와주는 사람, 참여하지 못해도 참여한 만큼 성의를 가진 고마운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부탁하기 전에 알아서 도와주는 친절한 사람도 있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때라도 예의를 갖추어서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시원하게 하게 함을 통해 주님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하는 직분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스데바나는 바울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던 사람,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 협력을 끌어내는 사람, 온 가족이 함께 섬기는 사람,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운 사람, 마음을 시원케 한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좋은 직분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