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 안에서 비교적 진보적인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개신교 측에선 '신학사상연구소'에 천주교 측에선 '분도출판사'에 빚진 바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도출판사가 포교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관에 본원이 있는 성 베네딕도 수도원은 1962년에 분도출판사를 설립한 뒤로 그동안 960권 정도의 책을 출간했으며, 시대정신을 밝히고 한국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놓는 데 막대한 공을 들여왔다.
지난 9월 12일 성 베네딕도 수도원 한국진출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충남대 김수태 교수는 '분도출판사의 도서간행'이라는 발제를 통해 1960년대 이후 지금에 이르도록 10년을 주기로 분도출판사가 어떤 모색을 해왔는지 정리했다.
분도출판사가 문화공보부에 출판사 등록을 마친 1962년 이전에 이미 왜관 수도원에서는 마오로 기숙사에 활판기 두 대를 들여놓고 인쇄를 시작했으나, 정식 출판을 시작한 것은 1962년에 나온 <성 베네딕또 수도규칙>과 <예수의 생애>가 첫 책이다. 분도출판사는 처음부터 수도원이 속한 대구대교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책을 출간했다.
우리말과 전례에 관한 집요한 관심
또한 1962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시작되던 해였으며, 성 베네딕도 회는 이미 1930년대에 우리말로 된 미사경본과 성무일보서, 성가책 등을 편찬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출판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사례로 1964년에 이미 공의회 문헌인 <전례헌장>을 간행했다.
1960년대의 출판물들은 주로 <성주간 전례서> 등 전례 관련 서적과 성서 및 성서신학 분야의 번역서였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서들을 통해, 김수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분도출판사는 "적절하고 훌륭한 우리말로 번역하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분도출판사가 평신도 번역가들을 양성하는 발판이 되었는데, 김윤주와 정한교 등을 편집부에 두어 교회 내에 제대로 된 번역문화를 만들어 갔다. 예나 지금이나 분도출판사에 들어간 원서는 번역하고 편집하는데 1년 넘어 상당한 시일이 걸렸는데, 출판사가 얼마나 번역과 편집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케 한다.
바티칸공의회 성과를 연이어 책으로 출간
1970년대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서 새롭게 제시된 교리서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는데, <가톨릭신앙-화란교리서의 구조와 양식>, <하나인 믿음-새로운 신앙고백서>, <세상에 열린 신앙> 등이 그것이다. 특별히 [분도소책] 시리즈는 토마스 모어를 다룬 한스 큉의 <세속 안에서의 자유>를 시작으로 73권에 달하는 책을 냈다. 30년 가까이 애정을 쏟아 만든 [분도소책]은 "작지만 크고, 얇지만 깊고, 가볍지만 무게 있는 사상의 보고"였다.
[분도소책]은 공의회가 추구하던 주제들을 모두 다루었는데 공의회 교부, 성서신학, 심리학, 해방신학, 음악, 여성신학, 사막의 교부, 교회 쇄신, 사회정의, 농민사목, 타 종교에 대한 관심 등에 걸쳐 있었다. 특히 칼 라너의 <일상> 등은 일하고 먹고 쉬고 자고 하는 일상을 통해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지 밝혀준다. 그 밖에도 서강대 신학연구소와 공동기획하여 <성령은 나의 희망> 등 공의회 정신을 담은 [신학총서]를 내고, <꽃들에게 희망을> 등의 [분도우화] 시리즈 등을 간행했다.
교회쇄신과 관련해서 한스 큉의 <교회란 무엇인가>를 내고, <형제애-공의회와 오늘>, <교회의 미래상> 등이 출간했으며, 이런한 전통은 1980년대 이후에도 지금까지 이어져 제도교회의 누추한 역사를 낱낱이 밝힌 한스큉의 <그리스도교>,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재고한 <왜 그리스인인가>, 교황청에서 문제 삼았던 이제민 신부의 <교회-순결한 창녀> 등 교회쇄신에 관해 무수한 논란을 일으킨 정양모, 서공석 신부등의 저서들이 출간되었다.
세상 속에 투신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 다뤄
그러나 무엇보다도 1970년대에 분도출판사가 유신정권하 독재권력 아래서 시대의 징표를 읽으려고 노력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1972년 임 세바스티안 신부가 분도출판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교회쇄신과 사회참여에 관련한 서적이 두려움 없이 간행되었다.
<정의에 목마른 소리>가 이미 1970년에 나왔으며, <성난 70년대>, <평화혁명> , <교회와 인권>, <자유에의 소명>, <침묵 위에 떠오르는 소리>, <공생의 사회>,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등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서적들이 간행되었다. 특히 1977년에 간행된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의 출간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만큼이나 충격을 주어, 유신 독재정권에 의해 번역자인 성염, 성찬성 형제가 구속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해방신학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가 나오고, 1984년에 교황청의 심문을 받기도 했던 레오나르도 보프의 <구원과 해방-신앙과 정치의 균형을 찾아서>, <해방신학의 영성>,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등이 나왔고, 호르게 픽슬레이 등의 <해방의 실천과 전략-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선택>, 그리고 중남미 농어민들이 바닥공동체에서 성경을 바탕으로 토론한 <말씀이 우리와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가톨릭교회 안의 보수진영와 진보세력 사이의 갈등과 중남미에서 투쟁하는 예언자적 사제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룬 페니 러녹스의 <민중의 외침> 등은 분도출판사가 발견한 시대의 징표가 무엇이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용감한 투신을 보여주었는지 가늠케 한다.
200주년 기념으로 우리말 신약성서 번역했으나..
그리고 분도출판사의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우리말 성경 번역이었다.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제대로 된 우리말 성경을 가지고자 했던 열망으로 1974년에 시작된 36회의 독회 끝에 1986년에 신약성경 전체 번역을 확정지었으며, 1981년에 정양모 신부가 주석까지 단 <마르코복음서>가 출간되면서 2002년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18권의 시리즈가 완결되었다.
이 번역성경은 <공동번역 성서>의 의역을 극복하면서 어렵사리 우리말 신약성서을 마련한 것인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장은 당시 최창무 대주교)는 2005년 춘계정기총회에서 1988년부터 주교회의 차원에서 따로 번역해 왔던 신구약 새번역본을 '공용성서'로 승인했다. 당시 8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에서는 우리말 새 번역 성서의 이름을 ‘성경’으로 정하고, "하느님 말씀 보급의 취지를 살리고 상업적 남용을 막기 위해 '성경' 번역문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키로" 했다.
이 당시 새번역 성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양모 신부 등은 기왕에 분도출판사를 중심으로 완역된 200주년 신약성서 우리말 번역본이 있으니, 신약은 200주년 번역본을 쓰고, 구약만 번역해서 합본하자고 제안했으나 주교회의에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당시 주변에선 분도출판사와 주교회의 사이에 저작권과 관련한 혼란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저작권 독점을 위해 주교회의가 200주년 번역본 신약성경을 버린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분도출판사의 노력으로 간행된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는 번역성경 중 유일하게 예수의 말씀을 존댓말로 표현한 것이어서 가장 실제상황에 적절히 번역된 판본으로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 밖에 분도출판사는 1980년대 이후 [아시아 신학총서], [사목총서], [종교학총서], [교부문헌 총서] 등 한국신학 정립을 위해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타 종교와 다양한 신학 사이에서 개방적 자세를 잃지 않았다. 현재 분도출판사는 교회 안팎에 많은 독자들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른바 '돈 안 되지만 필요한 책'을 출간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다고 말한다.
성공이 아닌 복음적 충실이 중요해
발제를 마무리하면서 김수태 교수는 상티 오틸리엔 연합회(성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이해 총 아빠스인 예미아스 슈뢰더가 한말을 인용해서 분도출판사와 베네딕도회에 대한 소감을 가름했다.
"한국 선교는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사도라는 우리 연합회의 소명이 가장 잘 실현된 사례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한국은 풍요로운 문화유산이 있었지만 미지의 나라였습니다. 초기에 파견된 수사들과 수녀들은 정말로 대단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로 말미암아 큰 결실을 보았으며, 많은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신앙과 수도성소로써 충실하게 호응한 것도 성공의 한 요인입니다. 한편 선교사들은 폭력과 핍박을 당했고, 그 중에는 36분이 순교하여 신앙의 증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열망이 가시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마침내 그 열망은 왜관 수도원이라는 꽃을 다시 피워냈는데, 왜관 공동체는 우리 연합회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사상가 마르틴 부버는 성공은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순교에 대해서 말을 할 때도, 이 단어는 성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 선교를 성공한 역사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우리의 소명이 충실하게 실현되엇고, 그것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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