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A(64)씨가 B씨 가족 9명을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돼 채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B씨 가족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의 아버지는 1990년 한국토지공사의 매수 의뢰에 따라 서귀포시 서홍동 4744㎡ 부동산을 매각하기로 하고 매매 계약을 B씨에게 위임했다. 이에 B씨는 10억1800만원에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토지공사로부터 대금을 수령했다. A씨의 아버지는 사망하기 직전 A씨에게 매매대금 반환채권을 증여하고 이를 B씨에게 통지했다.
B씨는 매매대금의 반환을 요구하는 A씨에게 매매대금 7억여 원에서 양도소득세 등을 제외하면 6억원 정도가 남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이 중 5억원을 돌려줬다. 이후 B씨는 1992년 12월 A씨와 나머지 1억원에 대해 채무 변제 계약을 맺은 뒤 다시 2000만원을 갚았다.
A씨는 그러나 B씨가 8000만원을 갚지 않자 2004년에 소송을 냈으며 1심 재판 과정에서 B씨가 매매대금을 평당 50만원인 7억1700만원에 불과하다고 속여 실제 가격의 차액인 3억여 원을 빼돌린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B씨 가족들은 재판 진행 괴정에서 “약정 체결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2002년 12월에 소멸시효가 끝나 이 부분에 대한 채권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맞섰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A씨가 손해배상 채권의 소멸 시효 기간이 경과하기까지 권리 행사나 시효 중단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은 채권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A씨와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B씨의 기만행위에 따른 것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B씨 가족들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만 “B씨의 재산 상속에 관해 법원에서 한정승인 신고가 수리된 만큼 A씨에 대한 변제 책임은 B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로 제한돼야 한다”는 B씨 가족 중 2명의 상고는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환송했다.
<고경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