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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썼던 것은 조금 오래 전입니다. 2000년 혹은 2001년 초로 기억을 하는데, 정확하게는... ^^ 시점을 그 무렵으로 가지고 가셔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9. 당구의 정파와 사파
당구에 있어서도 무림의 정사 유파와 같은 구분이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당구에는 정사의 구분이 없다.
정확하게는 아직 없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정사의 구분이라는 것은 확립된 이론 체계를 같춘 기득권 세력의 존재 여부를 이야기 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당구에는 아직 이러한 틀이 갖추어지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구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역사에 기인한 것인데, 지난 시대 유럽에서 당구가 귀족 계층에 한정된 스포츠였던 사실과 관련이 있다.
다른 많은 운동 종목과는 달리 당구는 처음부터 귀족 스포츠 였고, 근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시민 계급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였다.
그러한 탓에 내부에 어떤 갈래가 있어도 그것이 기존의 그것과 다른 세력이라는 인식을 받을 정도가 되지 못하였으며, 또 그것도 역시 귀족의 것이었으므로 똑같이 그들의 것으로만 인식했을 뿐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흐름이 단일하다고 할 정도의 동질성이 유지될 때에는 이론 체계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으며, 다양성을 나타내며 상호 교류가 필요할 때 비로소 틀을 갖추는 과정을 거쳐왔다.
당구도 이와 같은 역사의 보편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신대륙 미국에서 당구가 유행을 하면서 상황이 변하였다.
귀족층이 없는 미국에서 당구는 당연히 서민들의 차지였고, 당구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제 당구 내부에서 어떤 흐름이라는 것은 상당한 지지층, 혹은 추종자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충분히 하나의 유파라고 할 만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이에 동조하여 유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최근 2,30년 사이에 당구 이론은 체계를 갖추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아직도 어떤 정통성을 주장할만한 틀을 이루지는 못하였다고 판단되기에 그 자체로 정파와 사파를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용어의 정의에 따른 정파와 사파의 구분이 아닌, 당구의 특성에 따라 무림의 정파와 사파의 특징을 대입한 구분은 충분히 가능하다 할 것이다.
가령 초식의 종류와 내공의 정도, 수련 과정에 따른 차이 등을 당구의 시스템과 스트록, 자세와 그립 등으로 비견한다면 당구의 정사 유파 구분은 오히려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무림 정파의 특징을 요약해보자면 우선 체계적 이론을 갖추었으며, 연역적인 접근을 하며, 초식을 상당히 중요시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구로 표현하면 공을 공략할 때 시스템에 밝으며, 기본 배치로 부터 시작하여 차차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사용하며, 극단적인 변화가 필요한 공보다는 중간정도의 두께와 회전에서 처리 가능한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경기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는 공격과 수비에 거의 비슷한 비중을 두어나간다.
이것을 조금 더 실전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된다.
당구에서 정파는 교과서적인 자세와 표준적인 스트록을 사용하며 많이 알려진 시스템을 사용하여 득점을 노리는 스타일이다.
경기에서 득점을 할 때 초식과 내공을 반 정도씩 분배하여 사용한다.
즉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많은 내공을 싣지 않은 채 평이하게 수구를 보낸다.
말하자면 별로 특이한 점이 눈에 띠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처럼 별로 특이한 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 들에게 그리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며, 고수로 인정 받는데 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다.
그러나 일단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면 실제 이상으로 강하게 보여 상대를 압박하며 특히 상대가 어지간한 수준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하수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그저그런 정도일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인데, 조금 넉넉하게 잡아주려고 생각하고 있는 하수들은 맞공으로 붙어도 좋다고 설쳐서 괴롭게 하고, 비슷한 정도로 예상되는 고수는 잡아달라고 우기는 황당한 일이 생긴다.
한 마디로 1대 1로 하는 시합 경기 외에는 재미 볼 일이 없는 그런 스타일이다.
잘 알고 있는 클루망이 정파의 전설이다.
클루망은 거의 표준적인 자세와 스트록을 구사하며, 각 배치마다 최선의 초식과 그에 적절한 스트록이 있다는 믿는 절대주의자이다.
클루망은 자신이 구사하는 공에 대해 이론적으로 완성에 가깝게 체계화한 골수 정파라고 할 것이다.
정확한 두께의 공을 구사하는 딕 야스퍼스도 정파의 또 다른 일맥이다.
그는 극히 표준적인 스트록을 구사하며 초식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에서 정파로 분류된다.
수비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정파와 맥을 같이 한다.
아울러 일견 특별히 강해보이지 않는 다는 점도 정파의 특징에 부합된다 할 것이다.
다른 글에서 거론된 바 있는 프레드릭 쿠드롱이나 스페인의 산체스도 정파의 일맥이다.
앞서 무술의 정파를 이야기하면서 기초 이론과 기본 자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진보가 없으나, 그 이후에는 빠르게 발전한다는 표현을 한 바 있다.
정파의 지존이라는 클루망의 경우를 살펴 보면 이 부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당구라는 것이 순간적인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거의 일생을 두고 연마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일생동안 당구를 한다고 할 때 개인의 당구가 완성되는, 말하자면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언제쯤일까.
클루망은 거의 60세 경까지 실력이 계속 늘어왔다.
사람들은 물론 그의 40대 초반을 전성기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시합 성적으로 칠 때 그럴 뿐이다.
기록을 보면 그의 평균 득점은 50대 후반까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최근 2년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 말 까지 그는 계속 발전하고 있었고, 그의 전성기에 비해 50퍼센트 이상 더 강해졌다.
이것은 그와 동년배 혹은 그 보다 다소 나이가 많은 다른 선수들과 아주 다른 점이다.
신체적인 모든 모든 부분에서 발전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운 나이에도 발전된 당구 이론을 적용하여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것, 이것은 정파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사파의 무술은 실전적이며 귀납적인 접근이고, 창의성과 뛰어난 기억력을 요구한다고 하였다.
당구의 사파도 이와 완전히 똑같다.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시스템과 무관하게 특정 상황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특별한 초식을 많이 사용하며, 거기에 관해서는 어떠한 이론이나 체계보다도 훨씬 강하다.
그리고 그 특별한 경우를 조금씩 확장 시켜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혀 나가면 사파의 고수가 된다.
이것을 정파의 경우와 비교를 하자면 이렇다.
정파의 경우 아주 평범한 앵글샷을 놓고 하수가 공을 치면 고수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배치에서 쳐도 역시 똑같은 차이가 난다.
사파의 경우는 어떤 평범하지 않은 어려운 포지션을 놓고 그 처리법을 배운 하수가 공을 칠 때 고수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배치에서 1적구를 옆으로 한 바퀴 굴려 놓고 시도를 하면 사파의 하수와 고수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이 특별한 상황에 적용되는 초식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고수인 것이다.
사파의 특성이 이러하기 때문에 사파는 특정한 초식에 대해 대단히 강한데 어떤 초식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말하자면 초식에 관해 다른 사람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특정 초식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빠른 샷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대개 내공이 높거나, 아니면 특이한 장비를 사용한다.
물론 내공과 장비를 겸한 경우도 있다.
경기에 임하는 전략 면에서는 다소 공격적인 편으로 수비는 조금 약한 편인데, 특정 배치에서는 완벽한 수비를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배치에 따라 공격과 극단적인 수비가 갈라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렇게 어려운 배치에서 공을 쉽게 공략하고 특정한 배치에서는 상대가 전혀 손을 쓸 수 없게 수비를 하는 등 인상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상대에게 강하게 보인다.
특히 이 점은 하수에게 더 해서 아주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수가 많다.
사파의 속성이 이렇다고 할 때, 사파에 속하는 선수로는 미국에 있는 이상천 선수가 대표적이다.
고수라고 보기 어려운 자세에서 나오는 특이한 스트록,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운 코스를 선택하여 큰 공을 만드는 능력, 번득이는 독창성, 이 모든 것이 사파의 특징에 너무나 잘 부합한다.
여기에 고수들 사이에 천재로 소문이 나있는 그의 탁월한 암기력까지 사파의 고수로 모자랄 것이 없다.
그의 스트록은 짧은 거리를 가장 빠르게 나가며 큐가 공에 맞는 순간에 모든 변화를 처리한다.
이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뱅크 샷 등의 화려한 초식과 더불어 그의 엄청난 실전 경험에서 다져진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자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힘 조절이 가능한 것은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제 2 적구에 동전을 올려 놓고는 공략을 하여 동전을 떨어 뜨리지 않은 채 득점에 성공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예술구로 유명한 시그너는 유파를 특정하기 어려운 선수이다.
그의 자세는 표준에 가깝지만, 가공할 스트록 속도에서 나오는 빠른 공을 위주로 초식을 선택하며 그런 탓인지 의외로 기초에 약하며 기복이 심하다.
그의 예술구는 가공할 만큼 빠른 샷에서부터 나오는 것으로, 무게감이 많이 실리는 다른 선수들의 공과 차이가 있어보인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시그너는 사파의 계열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지만 유럽에서는 잘 나가는, 자네티도 사파의 거두이다.
그의 스트록은 이상천에 버금가는, 아니 이상천 이상으로 단점이 많아서 절대로 배우면 안 되는 반면 교사의 표본이라 할 정도이나, 그 스트록으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정확한 진로를 만들어 내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한다.
시합 중에 발휘하는 창의성에서도 사파의 거두로 손색이 없다.
무술의 유파에서 비교적 근래에 생긴 개념인 마도는 정사의 구분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마도는 패도라는 용어와 일맥 상통하며, 정파나 사파의 분류와 관계없이 강한 카리스마와 도에 지나친 파괴력을 지향하는 일단의 세력이다.
당구에서는 과다한 내공, 즉 모든 초식에 다소 지나칠 정도로 강한 회전이나 두께를 구사하는 유파가 여기에 해당한다.
조금 부연 설명하자면 마도의 특징은 내공이 깊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상의 평범한 초식에도 많은 내공을 실어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배치의 공도 때로 어렵게 해결할 수가 있지만, 어려운 배치에서는 오히려 쉽게 처리하고 그것도 지나칠 것을 염려한다.
대부분의 공을 초식의 변화에 의해 처리하기 보다는 강한 스트록의 조절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옆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쉽게 처리하기에 처음부터 그 공이 쉬웠던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사실 마도에서 고수의 경지에 이르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공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러기에 항상 자신감에 차있거나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며, 경기에 임해서는 대단히 공격적이다.
여간해서 수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며 포지션 플레이도 그렇게 중요시 하지 않는다.
다른 유파의 고수들이 부러워하며 하수들에게 경외심을 일으키나, 하수가 흉내 내다가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된다.
그 유명한 브롬달이 이 마도의 지존이다.
브롬달은 강한 스트록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시스템의 확장, 가장 공격적인 경기 운영 등 가장 이상적인 마도의 속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정파의 고수를 능가하는 안정된 자세와 시스템의 이해도, 사파의 고수에 못지 않은 창의력 등 당구 선수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첫댓글 이 글을 쓸때 거론되었던 스타급 선수들이 아직도 정상의 위치에 있는 것을 보면서(연로한 클루망을 제외하고...) 그들의 뛰어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상천 선수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문득... ㅜ.ㅜ
새이그너선수 정사중으로 지금은 봐야하지 않을까. 자네티선수도 레벨업 됐고 .....이상천선수............너무 아쉽죠.
지금도 간간이 이름이 거론되는 "장성출" 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한국 당구계로 범위를 한정한다면 저는 이 분이야말로 마도의 대표격으로 봐야한다고 감히 추천합니다.
10년전 인천에서 40대25로 중대에서 만나 봤습니다. 무협에 많이나오는말 피떡 됐습니다..........뉴턴회원중 행복빵빵님이 얼마전 섞어서 ko된 마도일절 만마대군 입니다요.
이십년도 더 지난날인 학생시절, 이 분과 공을을 쳐보기도 하고 대화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제 경우, 3구를 모르던 시절이었지만.....걍 꼬리내리고 존경하기로 작정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세이기너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그냥 자유자재한 유아독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