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때, 그는 승용차 뒤 트렁크가 약간 열린 것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가방
하나를 훔쳐 재빨리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멀리 못 가서 미군 헌병들에게 붙잡혔다.
임종덕은 과거 미군 부대에 있을 때, 배운 서투른 영어로, 자신이 훔치지 않으면
자신이 데리고 있는 고아들이 굶어 죽는다고 말했다.
임종덕을 유심히 살펴보던 장군은 그를 절도죄로 파출소로 연행하려는 헌병들에게
종덕을 조선호텔 즉 장군의 숙소로 보내, 하우스 보이로 일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임종덕은 이 절호의 기회, 이 좋은 직업을 사양했다.
이유는, 내가 없으면 100여명의 고아들이 당장 굶어 죽는다고 했다.
장군은 헌병들에게 100여명 고아들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 고아들 전원을 美 공군이 운영하던 제주도 고아원에 입소시키고,
종덕은 자신의 하우스 보이로 일하도록 조처했다.
그 장군이 바로, 후일 종덕을 자신의 양아들로 입양한
미국 5공군 사령관 스티브 토마스 화이트 중장이었다.
당시 공군 사령부는 일본에 있었지만, 작전 업무로 서울 조선호텔에 상주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전투비행기 조종사인 그의 외아들이 전투비행 중 전사했다.
그 후, 화이트 장군은 임종덕을 데리고 약 1년 동안 유심히 관찰한 다음..
종덕에게,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 되었다”하며 양자로 입적시켰다.
그날, 장군의 가슴에 푹 안겨서 종덕은 ‘탱큐’를 연발하며 엉엉 울었다.
종덕은 다시 서울 중학교 3학년에 복학하여 중단했었던 학업을 계속했다.
어느 날, 임종덕은 사령관을 따라서 수원 미공군 기지를 갔다가,
거기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는 김장환이란 소년을 만났다.
(* 후일 1980년 여의도 1백만 복음화 대성회 빌리 그래함 목사 통역자
* 후일, 수원중앙교회 원로 목사)
김장환은 그를 아주 경계하면서, “너는 도대체 누구며,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느냐?”며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종덕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일하는 이곳의
하우스보이 자리를 임종덕이 차지하려고 온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오해가 풀린 김장환은 그에게, “너는 어떻게 장군의 아들이 되었니?,
무슨 빽이냐?”며 너무나 궁금하다면서 계속 캐물었다. 임종덕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살아온 과거와 특히 장군과의 인연이 된 사건까지 다 말해주었다.
그의 말을 다 듣고난 김장환은 종덕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자며
격려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하우스 보이가 된 사연을 얘기했다.
김장환이 동네 아이들과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는 길에, 당시 수원형무소
근처에서 미군들의 야외 회식 자리가 있었던 현장을 발견했다. 현장에는 미군들이
먹다 남은 각종 음식이 많이 있어, 김장환은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자 한 친구가 흙투성이가 된 미군 군화가 몇 켤레 있는 것을 보고서,
“저것도 가져가서 시장에 팔면 돈이 될 것이니, 가져가자”고 했다.
그러나 김장환은 절대 반대했다.
“음식은 남은 것이니까 다 먹고 가도 되지만, 군화는 가지고 가다 들키면,
도둑놈으로 형무소에 간다”면서 적극 만류했다.
김장환은 친구들이 떠난 후에도 혼자서 흙투성이가 된 군화들을 전부 깨끗이 닦아서
가지런히 놓고 일어섰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김장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행동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던 미군이었다. 장환은 이날의 인연으로 나무 지게꾼
소년에서 하루아침에 당장 수원의 미공군부대의 하우스 보이가 되었다고 했다.
김장환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종덕은 마음속으로 우리는 다 절도와 관련된
운명으로 하우스 보이가 되었구나 하면서,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했다.
김장환이 일요일이면 여중생들과 늘 모임이 있는데, 너도 놀러 오라고 했다.
그후 임종덕은 일요일만 되면, 초코렛과 온갖 과자를 가방에 가득히 넣고,
여중생을 만나기 위해 김장환을 꼭 찾아갔다.
김장환은 종덕과의 우정이 깊어질 즈음, 미국으로 건너간다.
하우스보이 제1호 출국이었다.
♡ 양아버지는 화이트 장군의 계획
양아버지는 화이트 장군은 종덕의 본격적인 신앙과 교육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1953년 어느 주일날, 종덕은 화이트 장군과 함께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 있는 미군 교회를 찾았다. 미군들의 예배가 끝나자
바로 한국 공군 장병들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날 예배석 제일 앞줄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김정열 국방장관, 김신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화이트 장군과 그외 외국 고관들이 앉아있었다.
임종덕은 이날 이승만 대통령을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이날의 설교를 맡은 한국 공군 군종감의 설교 중, 후반부의 설교가
임종덕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지금 이 나라는 온갖 부정부패의 척결을 단행치 않으면 이 자유당의 정부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자유당의 총재인 대통령에서부터 국방장관 그리고
군종감의 직속 상관인 공군 참모총장까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새파란 20대의
청년 군목이 거침없이 설교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임종덕은..
마음속으로 “저 목사님은 오늘 당장 형무소 가겠구나”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강대상에서 내려온 군종 목사를
덥석 안으면서, “아주 훌륭한 설교였소. 이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목사님의
설교를 모두가 다 깊이 생각하고, 각자 소임을 성실히 해 나갑시다”하면서
다시 군종 목사의 손을 잡고 목사로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공군 초대 군종감의 입장에서.. 제일 큰 애로사항은 현재 교회가 없어서
미군 교회를 빌려 쓰는데, 하루빨리 우리 공군도 자체 교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승만 박사는 앞으로 서울 대방동에 건설될 공군본부 건설 때에,
공군 교회부터 먼저 건축하라고 ‘공군 참모총장’에게 지시했다.
이날 설교했던, 공군 군종감이 바로 미국 LA의 동양선교교회 원로 목사였던
임동선 목사님이다 (2016년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