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은 우듬지에 붙어 있는 잔털마저도 떨쳐낼 듯 거세게 불어오고, 년 말 이맘때는 항상 쫒
기며 세파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하나 이룬 것도 없이 아쉽기만 한 세월이지만, 못 이룬 일들
을 하나씩 되돌아보고 내년으로 계획을 넘기려한다.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고 다음 해의 세월
이 또 시작하며, 윤회(輪廻)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현재의 연속이기에 떨어지는 낙조의 그림
자를 망연히 쳐다보고 있다.
세상에는 완전이라는 것은 드물다. 어떤 일을 놓고 완벽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이지 절대적인 완전이란 있을 수 없는데 많은 사람들은 완전하고 완벽함을 추구하기에 어떨
때는 두렵기 조차해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당하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부당
함을 지적하며 괘도수정을 요구한다. 문중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일이 일어나면 책임을
가진 사람들은 일의 추이를 신속히, 그리고 정확히 가늠하고 거기에 대비하는 통찰력과 행동
력을 발휘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상대적 대상(對象)이 요지부동이면 난감해진다.
더욱이 혈족지간이면(?)…
문중 일은 모든 회원의 공통된 일이지 한 개인의 사소한 일은 아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기 양심에 어긋남이 없다면 당황할 필요 없이 묵묵히 견디어 내는 것이 좋겠지만 세월이 더
흘러가면 용두사미해지기 십상이다. 세상사는 우리 생각대로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불쾌해지는 회원이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님을 확
인하였다. 따라서 문중이 초연(超然)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이 터지기 전 문단속을 해 놓았으면 이렇게 수고로움을 초래할 필요는 없었지만 서로 믿다
보니 종래 발등에 불은 떨어졌고 이를 악용하는 통 큰 간(肝)도 보았다. 이는 혈족(血族)간 신
뢰의 골이 패이고 서로가 멍에를 질 수밖에 없다. 설령 해결을 본다고 금이 간 생채기가 아물
려면 또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송사(訟事)는 졌어도 재판은 잘하더라
고 했다. 비록 졌을망정 재결자의 판정이 공정했으니 유한(遺恨)이 없었다고도 했다. 나라이든
개인이든 간에 판관은 법의 정신에 따라 판결하면 변명이 없는 법이다. 모든 일을 법으로 돌
릴 수는 없겠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풀고 봉합할 때다. 벌써 만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허송세
월이며, 이번 일로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열 낼 일도 아닌데 목청을 돋웠다.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 줄 아는 이들에게 써먹긴 사치가 아닐까. 하여 세월을 죽이고 잠만 자고 있으면
법(法)도 보호하지 않음을 새겨둘만하다.
염치는 청렴할 염(廉)과 부끄러울 치(恥)가 합쳐진 한자어이다. 국립국어원 정의로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했고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는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를 염치(廉恥)라고 했다. 우리 선조들은 염
치의 반대말인 파렴치 혹은 몰염치하다는 말 듣기를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 심지어 일반범죄
자보다 파렴치범을 더 비난하고 있는 것이 세상 흐름이다. 적어도 살아가면서 염치만은 있어
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망각은 서럽고 무관심은 더욱 두렵기에 항상 깨어있어야 했고,
우린 옛 선대의 길을 따라 맑은 가슴으로 추부로, 진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느꼈다. 먼 곳에서
우릴 즐겁게 해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이젠 우리 스스로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