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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잔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우리 각자는 세상 전체의 색조를 바꿀 수 있다.
비록 산꼭대기에서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쁨의 느낌을 만들어냄으로써
다른 이들이 기쁨을 느끼는데
도움이 되는 파동을 보낸다.
- 로버트 슈워츠의《웰컴 투 지구별》중에서 -

* 모든 물질은
저마다 고유의 파동이 있습니다.
납과 철, 돌과 수정의 파동이 다릅니다.
사람도 저마다 다른 특유의 파동이 있습니다.
나타나면 갑자기 방안이 싸늘해지는 사람도 있고,
온 방안이 훈훈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내는 작은 기쁨의 파동이
세상을 기쁘게 합니다

․ “당신은 원래 온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는 곳에 살았다.”
․ “당신이 바로 그 음악이다.”
․ “우리의 몸은 지금 내가 나를 표현하고 있는 방식이 진정한 내 자신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감정을 통해 말해준다.”
․ “우리 모두는 이 세계의 현재 진동수를 끌어올릴 때 세상의 진동수 역시 안으로부터 상승한다.”
․ “물 잔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우리 각자는 세상 전체의 색조를 바꿀 수 있다.”
․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는 그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더 잘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더 높은 차원이라고 해서 좋고 낮은 차원이라고 해서 나쁘다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다.”
․ “배움은 물질계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할 때 더욱 깊이 각인된다.”
․ “영혼의 세계에서 배우는 것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같지만,
이 지구의 삶에서 배우는 것은 배운 것을 적용하고 시험할 수 있는 실습과 같다.”
․ “모든 영혼은 자유롭고 조건 없이 사랑을 주고 또 받으려는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영혼이 다른 영혼의 성장을 자극하기 위해 ‘부정적인’ 역할을 맡기로 동의한 것이다.”
․ “깊은 내적 평화는 우리가 중립성을 기억해 낼 때 온다.”
․ “태어나기 전에 계획한 시련을 넘어섬으로써 인류를 치유하는 ‘공명’ 을 만들어낸다.”
․ “자기에게 중요한 다른 영혼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기란 많은 영혼들에게 숙제이다.”
․ “현들은 높은 자기와 낮은 자기 사이를 오가며 진동한다.”
․ “눈물은 에너지가 계속 흐를 수 있게 해주며, 그리하여 더 깊이 치유가 일어나도록 돕는다.”
․ “느낌은 한계에 갇히지 않는 에너지이므로 전화기와 같은 장치를 통해 교통할 수도 있다.”
․ “음악가가 그 진동에 더 집중하기 위하여 귀머거리로 오는 수가 많다.”
․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삶에서 얻을 것을 모두 얻었기 때문이다.
다만 죽는 자가 제대로 인식하고 강을 건너야 한다.”
․ “우리가 태어나기 전 지혜롭게 삶을 계획했다는 믿음과 신념이 있다면,
우리가 사랑한 그들이 이 삶에서 애초에 찾던 성장과 아름다움,
풍요로움을 모두 누리고 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독자들의 편지-웰컴투 지구별을 읽고|작성자 샨티
이 책을 다 읽고난 후 세상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모든것이 사랑이라는 믿음이 더해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책의 핵심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자기 삶에 닥친 시련에 긍정적으로 반응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시련을 다루는데 도움이 되는 에너지의 길을 연다.
우리 모두가 에너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세계의 진동수 안에 심어진 씨앗과 같다.
우리가 시련을 통해 성장하며 자신의 진동수를 끌어 올릴때 세상의 진동수 역시 상승한다.
비록 산꼭대기에서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쁨의 느낌을 만들어 냄으로써
다른이들이 기쁨을 느끼는데 도움이 되는 진동을 보낸다.
평화의 감정을 만들어 낼때는 전쟁을 끝내는데 도움이 되는 에너지를 퍼뜨리는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할때는 그 만나는 사람 뿐 아니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더 잘 사랑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높은 진동은 사랑이며 진동수를 높이는 방법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그 진동에 자신을 매어두는 것이다.
우리가 시련을 계획하는 공통적인 목적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치유다.
지난번의 생애에서 풀어버리지 못한 부정적인 에너지의 치유다.
영혼을 성숙시켜준 시련으로 사랑과 이해를 일깨우고 깊은 고마움을 느낄때 치유될 수 있다.
치유란 기억해 냄이다.
자신이 사랑이라는걸 기억해 내는것, 살아가는 동안 사랑을 표현하는것이 곧 치유다.
우리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시련을 계획한다.
영혼인 우리는 물질계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할때 더욱 깊이 각인된다.
영혼의 세계에서 배우는 것은 교실에서 배우는것과 같지만,
이 지구의 삶에서 배우는 것은 배운것을 적용하고 시험할 수 있는 실습과 같다.
모든 영혼은 자유롭고 조건없이 사랑을 주고 또 받으려는소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영혼이 다른 영혼의 성장을 돕기 위해 부정적인 역할을 맡기로 동의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삶의 시련은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그리하여 사랑인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하는 기회를 준다.
우리는 물질계를 들어올때 우리 자신인 사랑을 일시적으로 숨긴다.
우리가 자신이 진실로 누구인지를 기억해 낼때 우리안에 들어있던 빛, 즉 사랑은 모두가 볼 수 있게 환히 빛난다.
우리를 넘어뜨린 영혼들과 함께 짰던 전생계획을 기억해 낼때
그들의 빛은 우리에게 다시한번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몸을 입고 장막뒤에 가려져 있는 동안,
즉 스스로 선택한 망각 때문에 진정한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빛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영원하고 비물질적인 영혼이며,
물질계라는 무대에서 일시적인 역할을 맡고있는 배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때 우리는 그 숙제를 완성하게 될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신성한 빛의 불꽃이며,
원래는 우리와 하나인 초월적인 존재, 사랑의 존재임을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진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착각이다.
오직 빛만을 본다는 것은 지구위를 걸어다니는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신성함만을 본다는 뜻이다.
그때에야 우리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기억해 낼 것이다.
전에는 세상에 대해 판단을 내렸지만, 이제는 그 모든것 안에 신성한 질서가 있음을 본다.
전에는 결점을 보던곳에서 이제는 완벽함을 본다.
바로 우리가 계획한 그대로 펼쳐지는 삶의 완벽함을.
그 어느 것 하나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법이 없으며, 모든것은 신성한 질서 속에 있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데는 자신만의 배움을 얻는것 외에 더 신성한 목적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기억해 내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질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 또한 시련을 계획한다.
관용, 치유, 진실한 의사소통, 친절, 연민, 신념, 열정, 사랑의 영원함, 우리안의 회복력, 어둠속에서 빛을 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저마다 자신인 사랑이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하나같이 용감한 영혼들이다.
문학·책, 웰컴투지구별
[출처] 웰컴 투 지구별|작성자 순애
“장애, 질병, 불의의 사고 등 삶의 시련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계획했다!”
누구나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는 크든 작든 고통과 슬픔이 없는 사람이 없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죽는다거나, 암 같은 불치의 병에 걸린다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한다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거나, 직장을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다거나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오느냐고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고 끝없는 절망에 떨어지기도 한다.
왜 우리는 이처럼 원치 않는 시련을 겪고 사는 걸까? 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더 큰 고통과 아픔을 맞는 걸까? 전생에 정말로 뭔가 잘못을 저질러서 그 업보를 받고 있는 걸까? 질문은 끝이 없지만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고 용기의 말을 건네는 정도이다. 그러나 자기한테 주어진 시련의 이유와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지 않는 한 절망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이 점은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의지를 잃고 방황하던 저자는 우연찮게 영매와 채널러(의식 수준이 뛰어난 영적 존재와 교신 행위를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겪어온 수많은 고통과 시련이 실은 태어나기 전 영혼의 단계에서 스스로 계획한 것들임을 알게 된다. 아울러 이번 생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고 어떻게 성장해 나아가고 싶은지, 지난 생들에서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넘어서려면 어떤 경험들이 필요한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부모와 형제들을 택해 태어나는 것이 좋으며 또 어떠한 시련들이 필요한지를 영혼의 단계에서 미리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저자는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채널러와 영매들의 도움 아래 그와 같은 ‘전생 계획’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에이즈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유방암으로 가슴을 도려낸 사람, 자폐증 아이를 둘씩이나 둔 사람, 청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 태어나자마자 시력을 잃은 사람, 반평생을 알코올 중독으로 보낸 사람,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사람, 사랑하는 이와 연거푸 사별한 사람, 폭발 사고로 죽었다 깨어난 사람 등 만만치 않은 고통의 무게를 지고 산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전생 계획을 확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하나같이 자신이 원래 사랑의 존재임을 기억해 내고자 그러한 고통을 계획했으며 그 계획을 완수함으로써 영적인 균형과 성장을 꾀하려는 참으로 용감한 영혼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설령 우리가 그러한 전생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그와 같은 영혼의 원대한 계획 아래 이 지구별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을 알고 이해한다면, 자신이 현재 직면해 있는 시련에 대해 분노하고 원망하기보다는 그 시련에서 뭔가 배움을 끌어내려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며 나아가 자신과 비슷한 시련에 부딪친 사람들을 도우려는 열망까지 품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시련을 통해 성장을 이뤄가는 열 명의 용감한 영혼들
그러면 이들은 어떤 목적에서 삶의 고통과 시련을 계획한 것일까? 예컨대, 불의의 폭발 사고로 인생이 뒤바뀌어버린 젊은 여성 크리스티나는 그 사고를 통해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일지라도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배웠다. 또 자신은 눈에 보이는 몸 그 이상의 존재이며, 세상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반평생을 알코올 중독자로 살며 아내와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줬던 팻은 그 상처와 낭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자신을 그토록 괴롭힌 고독감이 기실은 그가 결코 한 순간도 홀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바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날 때부터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를 갖고 있었던 페넬로페와 밥은 장애로 겪은 외로움과 고통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에 경계를 허물고 진정으로 공감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몸에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꼈던 도리스는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모두 도려낸 뒤에야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감을 버리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옳으니 그르니 하는 판단을 내려놓고 깊은 내적 평화에 이를 수 있었다. 동성애적 성 정체성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존은 오늘날 어떤 질병보다도 부끄럽게 여겨지는 에이즈에 걸림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기회 그리고 관용과 연민을 생생하게 표현할 기회를 주었다. 또 자폐 등의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 자녀 중 둘이나 되는 제니퍼는 세상과의 소통에서 느끼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기 확신 속에 질서 있는 삶을 유지하고 삶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시련을 계획한다. 영혼의 존재인 우리는 윤회를 거듭하며 그 사이에 많은 것을 배우지만, 배움은 물질계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할 때 더욱 깊이 각인된다. 영혼의 세계에서 배우는 것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같지만, 이 지구의 삶에서 배우는 것은 배운 것을 적용하고 시험할 수 있는 실습과 같다. 그리하여 앎은 깊어지며, 이는 영혼에게 더없이 중요한 경험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생에서의 삶, 그것도 고통스러운 삶을 태어나기 전 계획했다는 말은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 전생 계획이니 채널링이니 하는 개념도 낯설고 기이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이 책의 주된 목적이 아니다. 다만 저자는 이런 관점이 있을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를 당부한다. “만일 그 말이 맞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정말 태어나기 전에 이 경험을 계획한 것이라면? 나는 왜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시련에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자기 발견의 여정이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성장이란 우리가 어떤 경험을 계획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경험 자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웰컴 투 지구별|작성자 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