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의 미학 -박문자의 「강남에 둥지 틀기」
이신현 ․ 소설가
박문자는 이제 막 문단에 고개를 내민 신인이다. 작품을 계속 산출할 수 있는 역량이나 미학 구성의 재기(才氣)를 논하기 전에 벌써 한 편의 장편을 완성했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비록, 늦게 문단에 나왔지만 그가 지금까지 많은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을 이 한 편의 글을 통해 입증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작품「강남에 둥지 틀기」가 작가의 그러한 내면을 어렴풋이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진숙과 세호는 소위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문화를 창출해 낸 세대의 전형적인 인물들로 작품 속에 등장한다. 집안 배경도 없고 변변히 배우지도 못한 그들은 한바탕 휘몰아치는 시대의 격변기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 수도 서울에 또 하나의 별천지를 이룬 저 유명한 서울 강남의 전답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파헤쳐지던 시기에 그들도 인생의 새벽을 여는 것이다. 가난한 결혼식을 시작으로 광활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들의 모습은 남의 모습인 아닌 그 시대를 살아온 이 나라 대다수 서민들의 모습이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연약한 여인이 맨손으로 시작하여 강남에 둥지를 틀기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표현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끈질긴 삶의 원천에는 가정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둔하지만 정직한 그녀가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짐으로써 이루어내는 삶의 과정을 조명하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이 글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주인공 진숙은 아주 가녀린 여인이다. 마음만 연약한 게 아니라 그녀의 현실 또한 그녀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그녀는 자기만큼이나 가난한 남편 세호를 만나 두 사람이 겨우 잠을 잘 수 있는 외양간 방을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이 방은 창문도 없고 손바닥만한 창호지 창이 있을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엌도 없고 방문 옆에 연탄아궁이가 있는 것이 전부이다. 신접살림 역시 가난하기 짝이 없다. 이불과 스텐요강, 밥그릇과 냄비 하나가 살림의 전부이다. 나무 사과궤짝을 옆으로 뉘어서 찬장을 삼고 밥상은 방바닥을 이용했다. 맨 땅에 해딩하는 피눈물 나는 삶의 여정이 시작된다. 몇 가지의 재산이 있다면 신혼의 달콤한 애정과 더운 피가 펄펄 끓는 청춘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삶에 대한 투지이다. 진숙은 집안에서 동양자수로 콩나물 살 돈이라도 벌어보자고 노력한다. 세호는 무일푼으로 공사장에서 벽돌 쌓는 사업을 시작한다. 이렇게 사생결단하고 뛰다 보니 가끔씩 기회가 주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꽉 조여오던 삶의 숨통이 트이곤 한다. 하지만 배고프고 힘든 세월은 쉽게 그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들은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된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밑천이 없는 빈 털털이인 그들에게 돈은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 무수한 졸부들이 생겨나 강남은 점점 별천지가 되어가고 세상이 한바탕 뒤집히고 있지만 진숙과 세호는 여전히 변두리 인생으로 빌빌거린다. 하지만, 신은 마침내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돈 많은 한 사람이 세호와 부동산업을 함께 해보자고 한 것이다. 강남땅이 점점 금값으로 뛰어오르던 그 때 세호는 돈줄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잡아 내 것으로 만드는 기술도 터득하게 되었다. 이제 세호는 한 사람의 멋쟁이 신사가 되었다. 부동산업을 능수능란하게 해 나가는 사장님이 되었다. 그래서 아파트도 사고 좋은 차도 샀다. 진숙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단맛을 느끼며 한 동안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젊은 아가씨가 당신 남편의 아기라며 젖먹이 갓난 애 하나를 데리고 와 던지듯 맡긴다. 사업 때문에 바쁘다며 걸핏하면 외도를 하던 세호의 난잡한 행적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었다. 진숙은 큰 충격을 받았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것이다. 세호와 무던히 다툰 그녀는 마침내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과 남은 인생의 시간들을 위해 이혼이라는 극단의 길을 외면한다. 한 없이 분하고 억울한 점이 없지 않으나 남편의 실수를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가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정이 무너진다면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이다. 진숙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세호는 사업의 실패로 인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의 사이는 천방지축 앞만 보며 뛰어가던 인생의 방향을 조정하는 사이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정과 부부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하여도 점점 더 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다. 그러나, 시련의 바람은 끝나지 않았다. 남편 세호는 또 한 번 거친 세파에 사업의 고배를 마셨다. 진숙도 나름대로 고향에 펼쳤던 사업을 접었다. IMF라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무서운 생의 폭풍을 만났다. 그러나 이미 시련으로 다져진 진숙은 평생 한으로 남겨 놓을 뻔했던 대학공부를 시작하는 등 닥쳐오는 생의 바람을 정면으로 뚫고 나간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아들과 사업을 하게 되고 사업은 성공한다. 그녀는 땅을 사서 공장을 짓고 노인들을 돕기 위한 사업도 시작한다. 위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박문자는 그녀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대로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들을 상당히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과 남편 세호에게 닥쳐오는 여러 사건들은 결국 인생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과정으로 처리한다. 인간은 고난을 통하여 생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내성이 강화된다는 그녀의 삶에 대한 신념을 소설 전면에서 말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회 안에서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인물들의 등장이 제한되는 한계도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그녀 나름의 메시지를 위해 하나의 스토리를 성실하게 이끌어가는 힘과 세상을 보는 긍정적인 시선은 아주 고무적인 작가의 역량이다. 몇 가지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면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 희망을 주는 아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현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 역할을 감당했던 우리 사회 모든 서민들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서울 강남으로 지칭되는 이 나라 개발시대의 빛과 어둠을 서민적인 문체와 시선으로 자신의 역량만큼 잘 그렸다. 작가는 모두 다 자기의 시대를 읽고자 하지만 그 시대를 정확하기 읽기란 쉽지 않다. 박문자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과 같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들에게 시대를 읽는 한 방법도 제시해 주고 있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더 성과를 추가한다면 작가가 가정에 대하여 보여주는 견고한 신뢰이다. 작가는 개발시대의 온갖 헛된 바람들이 따스한 가정의 골짜기에 들어와서는 마침내 기세가 꺾인다고 말한다. 그녀는 가정이야말로 변화무쌍한 현대의 모든 불안정한 풍조들을 정화시키고 조정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이러한 작가의 신념은 앞으로의 작품 창작에 좋은 요소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