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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새의 노래
유인봉
땡, 땡, 땡.
서무실 외팔이 아저씨가 처마 밑에 매달린 무쇠 종을 내리칠 때마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뚫고 쇳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다.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썰물처럼 교실 문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철봉 아래 모래밭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옥이도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손바닥에는 냇가에서 주워 와 차돌로 쪼아 만든 각진 공깃돌 다섯 개가 땀과 모래범벅이 된 채 쥐어져 있었다. 옥이는 습관처럼 공깃돌을 검정 무명 치마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허기진 점심시간을 함께 견뎌 준 유일한 동무들이었다.
교실로 향하기 전, 옥이는 수돗가로 달음박질쳤다. 얼어붙은 수도꼭지를 힘주어 돌리자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지하수가 콸콸 쏟아졌다. 옥이는 두 손을 모아 물을 한 바가지 받아 마셨다.
꼬르륵.
야속한 배꼽시계가 울릴 때마다 차가운 물을 연거푸 삼켜 배 속을 채웠다. 이른바 ‘물배’였다. 속이 쓰라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위장을 채우자 그나마 요동치던 허기가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치맛자락에 대충 손을 닦은 옥이가 교실 뒷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조개탄 냄새와 허기를 자극하는 짭조름하고 고소한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멸치볶음 냄새, 묵은김치 지지는 냄새가 조개탄 난로의 온기와 함께 교실 안 가득 진동했다. 점심시간은 진작 끝났건만, 부유한 집 아이들이 싸 온 도시락의 잔향은 오후 수업이 시작되도록 떠날 줄을 몰랐다.
옥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맨 뒷줄 구석에 있는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가 눈길을 돌려 거칠거칠한 나무 책상 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후 수업은 산수 시간이었다. 칠판 가득 담임선생님이 분필로 숫자를 적어 내려갔지만, 옥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품속에 품은 강냉이 빵 생각뿐이었다.
호주머니에 슬며시 손을 넣자, 아직 미약하게나마 온기를 품고 있는 강냉이 빵의 감촉이 느껴졌다. 학교마다 배급 나온 강냉이 가루와 분유를 반죽해 주먹만 하게 뭉친 뒤, 육학년 언니들이 가마솥에 뿌연 김을 내며 쪄 낸 구호품. 전교생 중 담임선생님의 까다로운 호구조사를 거쳐 가려 뽑힌 스무 명 남짓한 ‘극빈 가정’ 아이들에게만 나오는 특혜이자, 가난의 낙인이었다.
점심시간에 배급받았을 때,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옥이의 등에 화살처럼 꽂혔었다.
"야, 옥이 너는 좋겠다. 맨날 맛있는 빵도 공짜로 받고."
철없는 옆자리 금자의 한마디에 옥이는 빵을 쥔 손을 부끄러움으로 부르르 떨었다. 차마 그 자리에서 베어 물지 못하고 보물처럼 품고 있는 빵이었다.
‘앞으로 두 시간… 수업이 끝나면 완전히 굳어 버릴 텐데.’
옥이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교사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이 오후의 희미한 햇살을 받아 뚝, 뚝, 눈물 흘리듯 낙숫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바닥에 작은 동그라미 파문을 수없이 그리다 이내 사라졌다. 검은색 몰탈을 바른 판자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아이들의 무리 속에서, 자신은 언제나 저 낙숫물처럼 홀로 떨어져 튕겨 나가는 섬 같은 존재였다.
옥이의 시선이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있는 먼 산을 향하고 있었다. 문득 눈을 감자 마을 어귀 개울가 징검다리에서 동동 발을 구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동생 금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금이는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추위도 잊은 채 언제나 그 자리에 나와 건너편을 바라보곤 했다.
코가 빨갛게 얼어서도 언니가 내미는 강냉이 빵을 받아 들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배시시 웃던 아이.
‘금이야, 언니가 빵 안 먹고 그대로 가져갈게. 조금만 기다려.’
옥이는 쪼르륵거리는 허기를 한 번 더 참아내며 호주머니 속 빵을 꼭 쥐었다. 금이의 기뻐하는 얼굴을 떠올리니, 신기하게도 꼬르륵거리던 허기가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조 옥이! 칠판에 있는 문제 나와서 풀어봐라."
담임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옥이의 공상을 깨뜨렸다. 옥이는 흠칫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닳아빠진 고무신 코 사이로 삐져나온 얼어 터진 발가락이 교실 바닥에 닿을 때마다 가난의 통증이 밀려왔지만, 옥이는 고개를 바짝 들고 칠판을 향해 걸어 나갔다. 가난했지만, 금이의 언니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교실 창밖으로는 여전히 고드름 녹은 물방울이 똑, 똑, 소리를 내며 단단한 땅 위에 작은 웅덩이를 파 내려가고 있었다.
*
마지막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꼬리를 물며 지울 수 없는 아쉬움처럼 운동장으로 번져 나갔다. 아이들의 얼굴에 해방감이 감돌기 시작했지만, 옥이는 오히려 책상 위에 놓인 몽당연필을 꼭 쥐었다.
"자, 중학 입학시험 준비하는 애들은 그대로 남고, 나머지는 청소하고 하교한다."
담임선생님의 지시와 함께 교실이 둘로 쪼개졌다. 책상을 요란하게 밀치며 가방을 메는 아이들 사이로, 몇몇 아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두꺼운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방과 후 자습의 시작이었다.
옥이는 주춤거리며 가방을 챙겨야 할지,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징검다리에서 기다릴 금이에게로 가야 했지만, 옥이의 시선은 자꾸만 칠판 옆에 붙은 ‘중학교 입학시험 일정표’로 향했다.
매일 아침 등굣길마다 옥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풍경이 있었다. 빳빳하게 풀기를 먹인 하얀 깃을 단 검정 치마저고리, 그리고 자주색 책가방을 들고 또래끼리 깔깔거리며 신작로를 걸어가는 중학생 언니들은 옥이에게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요정들 같았다. 지독한 가난도 굶주림도 모를 것만 같은 눈부신 모습. 옥이는 은밀하게, 그러나 아주 간절하게 그 언니들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책상 밑으로 쥔 옥이의 손끝이 이내 파르르 떨렸다. 현실은 얼어붙은 교실 바닥보다 더 냉혹했다.
‘아부지…….’
집에는 벌써 몇 년째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폐가 짓물러 한 걸음 떼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아버지의 오랜 지병은 집안의 놋그릇이며 숟가락까지 모두 삼켜버린 지 오래였다.
가세는 이미 기울 대로 기울어, 오늘 당장 먹을 시래기죽 거리조차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더군다나 이 동네에서 계집아이가 중학교에 간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사치였다. 옥이 또래의 여자아이 중 진학을 준비하는 애들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동네에서 제일가는 정미소 집 딸이나 지주 집 자식들이었다.
"계집아이가 공부 배워서 뭣 하노? 다 남의 식구 될 건데. 그 돈 있으면 아들놈 책 한 자 더 읽혀야지."
길목에서 만나는 동네 어른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들이 우선이고, 딸자식은 그저 살림 밑천이나 공장 노동자로 부려지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집안의 가난과 주변의 고지식한 눈총 속에서, 옥이는 ‘중학교’라는 세 글자를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속으로만 삼키고 삼킨 비밀은 가슴 깊은 곳에 멍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조 옥이, 너는 가방 안 싸고 뭐 하냐? 진학 안 할 애들은 어서 가라."
담임선생님의 무심한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자습을 준비하던 정미소 집 딸 순이가 슬그머니 옥이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부끄러워 옥이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무명 책보를 끌어안았다.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연필 굴러가는 소리를 뒤로한 채, 도망치듯 교실 문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 내내 가슴이 납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배급받은 강냉이 빵이 든 호주머니가 걸을 때마다 묵직하게 허벅지를 쳤다. 옥이는 학교 건물 모퉁이를 돌다 말고,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교사 처마 밑을 바라보았다.
낮 동안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던 고드름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다시 단단하고 날카로운 얼음 창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뚝, 뚝 떨어지던 낙숫물 소리도 어느새 멎어 있었다. 얼어붙은 땅 위에 남은 작은 웅덩이만이 낮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옥이는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차가운 신작로 바람이 뺨을 때렸지만, 치마 속 강냉이 빵의 온기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자습을 못 해 속상한 마음도, 중학생 언니들을 향한 동경까지도 몰아치는 칼바람에 흩날려 보냈다. 지금 옥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 멀리 개울가 징검다리에서 동동 발을 구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동생 금이 뿐이었다.
*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식장에 울려 퍼지는 졸업식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서러운 이별의 합창이었다. 정든 교정을 떠나는 설렘 따위는 없었다. 시골 국민학교의 졸업식장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그나마 살림이 괜찮은 정미소 집 딸 순이와 몇몇 아이들은 빳빳한 새 교복을 입고 읍소재지 중학교로 향하는 배움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소수였다. 옥이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졸업은 소년, 소녀라는 이름을 박탈당하는 간이역에 불과했다. 어떤 머슴아이는 서울로, 어떤 계집아이는 부산과 마산 등 낯선 도회지로 나가 야 했다. 남자아이들은 고무신 공장이나 이발소에 취직하거나 구두를 닦고, 여자아이들은 섬유공장 직공이나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가야 했다. 차마 떠나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평생 논밭에서 흙의 노예로 살아갈 운명이었다. 가난은 이 어린것들을 매몰차게 사방으로 내몰았다.
국민학교 졸업장은 옥이에게 배움의 끝이자 서글픈 가장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었다. 아침 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뽕밭 머리에서 옥이는 부르튼 손가락으로 연한 뽕잎을 따거나, 소먹이를 위한 꼴을 베어 담기에 손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검정 교복을 입고 신작로를 내달리는 동창들의 웃음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려올 때마다, 옥이는 머리에 인 꼴망태의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와 여린 동생 금이의 배고픈 투정, 그리고 날품을 팔다 지쳐 밤마다 무릎을 문지르던 어머니 숙자 씨의 한숨은 열세 살 옥이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조석으로 누에 판에 뽕잎을 얹어 잠밥을 주고, 낮이면 논두렁 밭두렁을 타며 들녘에서 일소가 먹을 풀을 베어 나르는 일은 온전히 옥이의 몫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땀을 쏟아부어도 기울어가는 가세는 좀처럼 일어설 줄 몰랐고, 엄마의 남의 집 날품마저 끊겨가는 막다른 골목 끝에서 옥이의 고민은 캄캄한 밤처럼 깊어만 갔다. 이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이제 자신이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형편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옥이를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마른기침을 토해내며 파리해지는 아버지와 아직 품 안의 자식인 동생 금이를 엄마 숙자 씨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향에 남아 또래 친구들이 하얀 깃을 단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며 등하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가슴에 시퍼런 멍을 들이는 잔인한 고문이었다. 선망과 서러움이 뒤엉켜 숨이 막힐 바에는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떠나는 게 나았다.
낮 동안 남의 집 밭매기 품을 다녀온 어머니 숙자 씨가 흙먼지 묻은 치맛자락을 털며 들려준 이야기는, 옥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가난에 대한 원망을 일깨워 놓았다.
"글쎄, 이웃 봉골댁이 마을 우물가에서 입이 마르도록 딸 자랑을 안 하겠냐. 정희 그 계집애가 마산 방직공장 들어가서 몇 달 만에 모은 돈으로 외양간에 송아지 한 마리를 들여놨단다. 그 어린것이 타지 나가서 돈을 번다고…"
어머니의 지나가는 한마디는 옥이의 가슴에 커다란 돌멩이를 던진 것과 같았다. 정희 언니.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구멍 난 버선발로 함께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던 그 언니였다. 그런 정희 언니가 마산이라는 거친 타지에서 제힘으로 돈을 벌어 집에 송아지를 사들였다는 소문은 옥이의 잠잠하던 마음을 가차 없이 흔들어 놓았다.
그날 이후, 옥이의 눈길은 자꾸만 마을 어귀 너머 신작로로 향했다. 한 끼 밥거리를 걱정하며 매일 밤 한숨으로 문창지를 적시는 어머니의 등은 점차 굽어가고 있었고, 낡은 툇마루에 앉아 있는 자신의 처지는 가마솥에 낀 그을음처럼 어둡기만 했다. 옥이의 마음은 이미 정희 언니가 있다는 마산의 방직공장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날 저녁, 보리밥에 시래깃국뿐인 소박한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였다. 옥이는 툇마루를 내려서려는 어머니 숙자 씨의 낡은 옷소매를 살포시, 그러나 단단히 붙잡아 앉혔다.
"엄마."
옥이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서늘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숙자 씨는 딸의 이례적인 태도에 의아한 눈빛으로 옥이를 바라보았다.
"나, 마산 가렵니다."
"뭐라구?"
"정희 언니 있는 마산 방직공장에 가겠다고요. 이대로 이 가난을 이겨낼 길은 없어요. 내가 타지에 나가서 공장 취직해 돈 버는 것 말고는… 우리 식구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요."
숙자 씨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아이고, 이 미친 가시나야! 네가 거기가 어디라고 간다는 거냐? 어린것이 타지 나가서 그 험한 공장 일을 어떻게 견디려고! 절대 안 된다. 굶어 죽어도 내 눈앞에서 굶어 죽어라!"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러나 옥이는 눈썹 하나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옥이의 앙다문 입술과 응시하는 눈빛 속에는 이미 모든 결론을 내려놓은 단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말로도 돌릴 수 없는 고집이었다.
한참 동안 옥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숙자 씨의 기세가 서서히 꺾여 갔다. 자식이 품을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어미의 만류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숙자 씨는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숙자 씨의 굽어진 어깨가 툭 떨어지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희한테 단단히 기별을 넣어 두마. 마산 가거든 그 애 손 꼭 잡고 다니거라."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졌지만, 옥이의 가슴 한구석은 오히려 묵직하게 아려왔다. 그날 밤, 옥이는 옆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어머니의 기척을 느꼈다. 숙자 씨는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까맣게 그린 천장을 바라보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딸을 낯선 타지로 내모는 것이, 마치 자신이 무능하여 딸을 사지로 밀어 넣는 것만 같은 지독한 자책감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창살 너머로 서서히 새벽빛이 스며들었지만, 모녀가 누운 작은 단칸방에는 여전히 가난의 짙은 그림자와 이별의 슬픔이 낮게 깔려 있었다.
*
읍내 차부의 공기는 가차 없이 차가웠다. 매캐한 석유 냄새와 먼지가 가득한 대합실 한구석에서 숙자 씨는 옥이의 손목을 꼭 쥐고 놓지 못했다.
"옥이야, 이거 가다가 배고프면 묵어라. 옥수수 달인 물로 말아 쥔 주먹밥이다."
숙자 씨는 보자기에 싸인 주먹밥 뭉치와 몇 안 되는 옷가지를 싼 보따리를 옥이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치마 안감 속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 몇 장을 옥이의 손바닥에 꼭 쥐여주었다. 투박하고 갈라진 엄마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이게 너보다 두 살 손위인 뒷집 언니 주소다. 그 집도 가난해서 큰딸 정희가 국민학교 졸업하고 마산으로 내려가 방직공장 취직해서 돈 잘 벌고 있는가 보더라. 명절 때 다녀가는 품새를 보면 제대로 자리 잡은 거 싶더라. 한 달 전부터 너 내려간다고 기별을 넣어놨으니, 역전에 마중 나와 있을 거다. 절대로 이 종이 쪼가리 잃어버리면 안 된다, 알았지?"
"응, 엄마. 걱정하지 마소. 나 씩씩하게 잘 갈 수 있다."
옥이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가방을 고쳐 맸다. 품속에는 한 달 전 학교에서 배급받아 금이에게 주었던 강냉이 빵의 감촉 대신, 차갑고 딱딱한 주먹밥과 사촌 언니의 주소가 들어있었다.
"마산, 마산 가실 분 타소!"
운전사의 거친 외침과 함께 버스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매연을 뿜었다. 옥이는 버스 계단을 올랐다. 차창 너머로 낡은 목도리를 칭칭 감은 엄마 숙자 씨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숙자 씨는 자식이 타지도 않은 버스 바퀴를 붙잡을 듯이 따라오다, 이내 차부 마당에 주저앉아 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덜컹거리는 버스가 매캐한 매연을 뿜으며 거친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지긋지긋한 가난, 그리고 남편의 오랜 지병을 수발하느라 이미 영혼까지 타버려 눈물마저 말라붙은 줄 알았던 숙자 씨였다. 하지만 자식을 태운 버스의 뒷머리가 신작로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시야에서 멀어지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치받쳐 올랐다. 잊었던 눈물이 깊게 파인 주름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숙자 씨는 거친 광목천 수건으로 연신 눈을 훔쳤지만, 한 번 터진 눈물샘은 멈출 줄을 몰랐다.
덜컹거리는 버스 창가에 이마를 기댄 채, 옥이는 지나가는 고향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겨우내 학교 처마 밑에서 눈물을 흘리며 단단한 땅바닥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내던 고드름 낙숫물이 떠올랐다. 물방울은 제 몸을 깨뜨려 파편처럼 흩어지면서도 끝내 너른 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도 그 낙숫물처럼 살 거다. 부서지고 깨져도, 내 갈 길을 내고야 말 거다. 그리고 너른 바다로 향하는 물길을 탈 거야.’
옥이는 손바닥에 쥔 정희 언니의 주소를 더 꼭 쥐었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고향의 신작로 위로, 단단하게 다져진 옥이의 결연한 눈빛이 붉은 노을빛을 받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
버스는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한없이 달려갔다. 창밖으로 익숙한 논밭과 대나무 숲이 지나가고, 이름 모를 산들이 몇 번이나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숨이 턱 막히는 먼지와 차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땀 냄새 속에서, 버스는 멈추고 쉬기를 반복하며 종일 낯선 길을 재촉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버스는 마산 시내로 접어들었다.
창밖을 보던 옥이의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고향 읍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콘크리트 건물들, 밤을 잊은 채 번쩍이는 네온사인 간판들, 그리고 도로를 가득 메운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까지 거대한 도시의 소음과 불빛이 옥이를 압도했다.
버스가 마침내 멈춰 서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지만, 옥이는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툭 떨어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버린 듯했다. 옥이는 품에 안은 보따리를 꼭 안아 쥔 채,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터미널을 나섰다.
엄마가 신신당부했던 말을 떠올리며 옥이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마산역’이라 커다랗게 적힌 기차역 건물을 찾아 들어갔다. 수많은 인파가 역전을 오가고 있어 옥이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과연 이 넓은 곳에서 언니를 만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나 눈물이 핑 돌려던 찰나였다.
"옥이야! 조 옥이!"
시끄러운 인파를 뚫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옥이의 귀를 때렸다. 고개를 번쩍 들자, 저만치서 뒷집 정희 언니가 치렁치렁한 머리를 휘날리며 옥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고향에서 보던 모습보다 조금은 야위었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따뜻한 얼굴이었다.
"어이구, 이 계집애야! 내 한참을 기다렸다!"
정희는 옥이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낯선 타지, 얼어붙을 것 같던 외로움 속에서 만난 고향 언니의 존재는 구원과도 같았다. 옥이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정희의 품에 안겼다.
두 사람은 정희가 사는 공장 근처의 작은 자취방으로 향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비좁고 서늘한 방이었지만, 방 한구석에 놓인 석유곤로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두 사람을 반겼다. 정희는 먼 길을 달려오느라 지친 옥이를 위해 초라한 저녁을 차려냈다.
밤이 깊어갈수록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옥이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고향 소식을 전했다. 여전히 마른기침을 콜록거리는 아버지 이야기, 언니가 오기만을 징검다리에서 기다리던 금이 이야기, 그리고 눈물바다가 되었던 국민학교 졸업식 풍경까지. 이야기를 전하는 옥이의 목소리에는 짙은 그리움이 묻어났다.
언니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정희 역시 지독한 객지 생활의 고단함과 방직공장 기계 소리 속에서 버텨온 날들을 덤덤하게, 때로는 언니답게 다독이며 털어놓았다.
"옥이야, 처음엔 다 무섭고 힘들다. 그래도 눈 딱 감고 버티면 고향에 돈도 보내고, 네 동생 금이 공부도 시킬 수 있다. 내 다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창밖으로 마산항의 차가운 밤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문창살을 흔들었지만, 단칸방 안의 두 소녀는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밤을 지새웠다. 가난에 떠밀려 온 낯선 도시의 첫날밤, 고향을 떠나온 서러움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채 마산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
낯설고 서늘한 낯선 땅에서의 아침을 맞은 옥이는 서둘러 간밤에 정희 언니가 챙겨 둔 물 한 바가지로 세수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설렘보다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심장이 방방이질 쳤다.
정희의 손을 잡고 십 분 남짓 신작로를 걸어 내려가자, 잿빛 콘크리트 담장이 끝도 없이 이어진 거대한 공장 지대가 나타났다. 육중한 철문 위에는 아침 햇살을 받아 서슬 퍼렇게 빛나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제일합섬(第一合纖)], 옥이가 정희를 따라 철문을 들어서자, 마치 다른 세상의 입구인 듯 육중한 초록색 작업장 철문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이미 달포 전부터 "동생을 데려오겠다"라는 정희의 기별을 받아 둔 재봉부 반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은 옥이의 왜소한 체구와 앳된 얼굴을 한 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에서 엄마 숙자 씨가 틈틈이 삯바느질하며 재봉틀 돌리는 것을 옥이가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으리라는 정희의 귀띔 덕분이었다. 그것은 이 거대한 기계 도시에서 옥이가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자격증이었다.
"문 열릴 때 정신 바짝 차려라. 처음엔 귀가 먹먹할끼다."
정희가 옥이의 손을 꼭 쥐며 나직하게 귀뜸을 해 주었다. 철문을 열고 반장이 작업장 문을 활짝 열어젖힌 순간, 옥이는 저도 모르게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수백 대의 재봉틀이 일제히 지면을 울리며 쏟아내는 바늘 소리는 거대한 천둥소리 같았다.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고 사방이 탁 트인 공장 안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사방에 먼지 같은 하얀 보풀이 눈송이처럼 날아다녔고, 그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것은 수많은 이방의 언니들이었다.
하나같이 하늘색 저고리 작업복을 입고, 머리에는 먼지를 막기 위한 하얀 무명 수건을 질끈 동여맨 시골 출신의 여공들이었다. 거대한 기계 라인을 따라 줄지어 앉은 언니들의 모습은 마치 푸른 바다의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누구 하나 고개를 들거나 옆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오직 앞만 바라본 채, 저마다의 재봉틀 앞에서 무서운 속도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재봉부 반장의 안내로 옥이는 공장 한구석에 있는 빈 재봉틀 자리에 멈춰 섰다. 기름때 묻은 무쇠 재봉틀이 마치 거대한 짐승처럼 옥이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옥이, 니 자리는 여기다. 정희한테 잘 배워서 오늘부터 바로 물량 맞춰야 한데이."
반장이 가고 난 뒤, 옥이는 조심스럽게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옆자리 언니들의 능숙한 가위질과 발판 밟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언니들의 손에 쥐인 알록달록한 옷감들이 재봉틀의 뾰족한 노루발 밑으로 끊임없이 말려 들어갔다.
드르륵, 드르륵.
은빛 노루발이 톱니바퀴 위를 밟고 지나간 흔적을 따라, 각기 떨어져 있던 천과 천이 순식간에 촘촘한 실로 엮이며 단단한 한 몸으로 이어져 나갔다. 그 일사불란하고 정교한 움직임에 옥이는 넋을 잃었다.
저 노루발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실이 박히듯, 자신의 어린 삶도 이제 이 차가운 방직공장의 바늘귀에 꿰어져 가고 있었다. 고향 집에서 쿨럭이던 아버지의 마른기침 소리, 징검다리에서 언니의 강냉이 빵을 기다리던 금이의 맑은 눈망울, 그리고 차부 마당에 주저앉아 울던 엄마의 젖은 수건이 환영처럼 재봉틀 바늘 끝에 어른거렸다.
옥이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무명천 너머로 발판을 지그시 밟았다.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난에 떠밀려 온 열네 살 소녀 옥이의 객지 생활이 그 거대한 굉음 속에서 비로소 첫 바느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
바다 건너에서 밀려드는 수출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공장은 밤낮없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결국 기존의 3교대 제도가 폐지되고, 악명 높은 2교대 ‘맞교대’가 시작되었다. 12시간을 고스란히 일하고 12시간을 쉬는 잔인한 쳇바퀴였다.
오후 해거름이 질 무렵 재봉틀 앞에 앉으면, 다음 날 새벽녘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릴 때라야 비로소 자취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퇴근길, 옥이의 어깨는 언제나 천근만근 납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주위를 둘러보면 재봉부의 고참 언니들은 이미 등이 활처럼 둥글게 굽어 있었다. 하루에 12시간씩 고개를 숙이고 노루발만 쳐다본 대가였다. 어느 날 문득 앞서 걷는 정희 언니를 보았을 때, 옥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향을 떠나올 때만 해도 꼿꼿했던 정희 언니의 등 역시 몰라보게 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정 무렵, 공장 벽면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거친 잡음과 함께 야식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12시간의 사투 중 허리를 펴고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간식으로 나온 것은 손바닥만 한 빵 한 조각과 미지근한 우유 한 팩이었다.
정희는 파리해진 옥이의 손을 잡고 공장 뒤편 우물가로 내려갔다. 차가운 달빛이 두 소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옥이는 우유를 한 모금 삼키며 빵을 베어 물었지만, 목이 메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툭 치면 터질 것만 같던 그리움이 결국 눈물이 되어 빵조각 위로 뚝뚝 떨어졌다. 고향 집 철봉 아래에서 공기놀이하던 일, 금이에게 주려고 품고 다녔던 강냉이 빵의 온기, 징검다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동생 금이의 얼굴이 달빛 속에 어른거렸다.
옥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이 울자, 정희는 말없이 다가와 옥이의 가녀린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정희의 작은 품에서 전해지는 체온만이 낯선 타지에서 옥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온 새벽 3시. 쏟아지는 잠은 송곳처럼 눈꺼풀을 찔렀다. 옥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졸음을 쫓기 위해 수돗가로 달려가 수도꼭지를 세차게 틀었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을 얼굴에 사정없이 끼얹으며, 내리누르는 잠을 악착같이 쫓아냈다.
‘이대로는 절대로 못 돌아간다.’
옥이는 젖은 얼굴을 닦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
창고 내부를 가득 채운 야간작업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형광등 불빛 아래로 끊임없이 흩날리는 하얀 천 먼지가 옥이의 속눈썹 위로 뽀얗게 앉았다.
'드르륵, 드르륵.'
종일 거대한 작업장 안에서 재봉틀 발판을 구를 때마다 노루발이 천을 씹어 삼키며 힘찬 발소리를 냈다. 처음 낯선 타지에 내려와 공장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이 기계 소리는 옥이의 목을 죄어오는 환청 같았다. 밤을 새우며 하얀 천을 누비는 야간작업은 어린 몸으로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으나, 어느덧 삼 년이라는 세월은 그 끔찍함마저 무딘 일상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이제는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는 노루발의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딴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손놀림마저 익숙해져 있었다.
공장과 좁은 자취방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가는 삭막한 삶이었지만, 삶의 균열 사이로 작은 볕이 들기도 했다. 교대 시간이 찾아와 꿀 같은 휴식이 주어지면, 또래들과 시내의 극장가를 기웃거리기도 했고, 쉬는 날엔 도시락을 싸 들고 공원에 올라 바람을 쐬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옥이에게 그 여유는 늘 허락된 크기보다 좁고 빠듯했다. 뒤에는 반드시 축축한 죄책감이 기어들었다.
중풍으로 수년째 자리를 보전하고 계신 아버지의 가라앉은 숨소리, 그 곁에서 지친 기색으로 베갯잇을 꿰매던 엄마,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엄마의 손발이 되어 밥 짓기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을 금이의 모습.
'금이는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할 사춘기 소녀이었지만, 가난이란 굴레에 갇혀 외톨이가 되어버린 금이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자신이 가난과 수발의 굴레에서 도망치듯이 낯선 타지의 공장으로 올라오면서, 옥이가 짊어졌어야 할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어린 금이에게 온전히 떠맡겨버린 꼴이었다. 영화관 매표소 앞에 서 있을 때마다 그 자책감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두 발목을 찌르는 것 같았다. 옥이는 번번이 영화표를 사려다 발길을 돌렸다.
그런 생각이 가슴을 밀고 올라올 때마다, 옥이는 고향의 금이를 생각하며 버텨나갔다. 옥이의 일상은 회사와 자취방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았지만, 월말이 다가올수록 생일처럼 기다려지는 날이 있었다.
월급날이었다. 한 달 수고를 보상받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날만은 옥이가 가장 길게 숨을 내쉬는 날이자, 동시에 가장 마음이 아린 날이었다.
"옥아, 이번 달엔 야간 특근 많이 뛰어서 봉투가 좀 두툼하네?"
경리과 언니가 건네준 노란 월급봉투를 품에 안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옥이는 방바닥에 촛불을 켜두고 정갈하게 앉았다. 그리고는 봉투를 열어 지폐를 차곡차곡 세었다. 손때 묻은 지폐를 나눌 때 옥이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가장 먼저 떼어놓은 것은 동생 금이의 학비였다. 그다음은 아버지의 약값. 자신의 방세와 최소한의 쌀값을 제외한 거의 전부가 다시 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 옥이는 침을 바른 연필을 잡았다. 꾹꾹 눌러 쓴 서툰 글씨로 엄마에게 보낼 편지를 정성껏 적어 내려갔다.
‘엄마, 저 옥이에요. 이번 달에는 야간 일을 조금 더 해서 월급이 조금 더 나왔어요.’
글씨 위로 촛불 그림자가 흔들렸다. 옥이는 침을 한 번 삼키고 편지지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썼다.
‘함께 보내는 돈 중에 금이 학비로 먼저 써주세요. 금이 기죽지 않게 교복이랑 공책값 빠짐없이 내주셔야 해요. 그리고 남은 돈은 아버지 약값이랑 병원비에 보태 쓰시고요. 제 걱정은 마세요. 밥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럼 이만 총총 줄입니다.’
‘금이야, 언니가 조만간 예쁜 옷 한 벌 사서 내려갈게.’
몇 번이고 "금이 학비가 먼저"라는 말을 편지 속에 신신당부로 써 내려가는 옥이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고였다.
편지를 봉하고 노란 봉투에서 뺀 돈을 겹쳐 넣은 뒤, 옥이는 창문 너머 캄캄한 고향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들판에 남아있는 잔설이 마치 늙은이의 희끗희끗한 새치처럼 서글프게 빛나던 설날 아침이었다. 차례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가쁜 숨을 내쉬며 자식들을 안방으로 불러 모았다. 병마에 찌들어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가 마침내 유언 같은 당부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짓눌린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아버지는 움푹 파인 눈으로 자식들을 둘러보더니, 뼈만 남은 손으로 이불자락을 죄어 쥐며 무겁게 입을 뗐다.
“금이야, 옥이야… 너희도 알다시피 내 병이 깊어 이제 살아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갈랐다. 아버지는 문가에 멍하니 앉아 있는 늦둥이 아들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하지만 이대로 눈을 감으려니 가슴에 한이 맺혀 떠날 수가 없구나. 저 어린 만수가 장성해서 우리 가문의 대를 잇는 꼴을 봐야 하는데… 그 모습을 못 보고 가는 게 눈에 밟혀 잠이 오지 않는다. 내가 이 가난까지 저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구나. 금이야, 옥이야. 너희에게 이 당부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만수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너희가 꼭 보살펴야 한다.”
아버지는 잠시 목이 메는지 콜록거리더니, 두 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덧붙였다.
“만수만큼은 이 늙은 아비처럼 평생 흙탕물에 발 담그고 땅이나 파먹게 두지 마라. 이 아비 소원이니 너희가 어떻게든 뒷바라지해서 공부시키고, 어디 면서기라도 한 자리 차지하게 해 다오. 그래야 내가 눈을 감아도 저승에서 조상님들을 뵐 염치가 있지 않겠느냐.”
아버지의 안중에는 오직 아들 만수뿐이었다. 그 애끓는 당부 속 어디에도 두 딸에 대한 걱정이나 안부는 없었다. 애초부터 딸들이란 시집가면 그만인 출가외인이라며 배움의 길을 턱 막아섰던 아버지였다. 금이와 옥이는 이 집안의 가족이 아니라, 오로지 삼대독자 만수의 미래를 위해 바쳐진 제물에 불과했다.
금이의 가슴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왈칵 솟구쳐 올랐다. 매서운 겨울바람보다 더 차갑게 가슴을 파고드는 소외감에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자신은 이 집안의 자식이 아니라 그저 변방을 맴도는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그 간절한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다.
금이는 떨어지는 눈물을 치마폭으로 닦아내며,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서러움을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모깃소리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아버지… 너무 염려하지 마셔요. 만수는 우리 집안을 일으킬 대들보 같은 삼대독자인데,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뒷바라지 잘할게요. 걱정 놓으셔요.”
그제야 아버지는 가슴에 품었던 큰 짐을 덜어낸 듯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이제야 내가 마음을 놓겠구나.”
아버지가 손짓으로 자리를 물리자, 금이는 멍한 걸음으로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두 어깨가 천근만근 쇳덩이의 무게로 다가왔다.
그때, 부엌 구석 어둠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옥이가 보였다. 옥이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꺼 억, 꺽’ 숨죽여 울고 있었다. 서러움에 얼룩진 동생의 작은 등덜미가 차디찬 부엌 공기 속에 가냘프게 흔들렸다.
금이는 슬그머니 다가가 옥이의 떨리는 차가운 등을 살며시 쓸어안았다.
“옥이야…”
금이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전해진 따뜻한 체온에 옥이는 비로소 참았던 참담한 서러움을 언니의 품에 묻어내기 시작했다. 겨울 산의 잔설보다 더 차가운 시간이 그들 자매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
기적 같은 소식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날아왔다. 며칠 전부터 공장 안에는 가난한 어린 여공들의 가슴을 들끓게 하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내년부터 회사 내에 부설 중학교 야간반이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수많은 사춘기 소녀들이 산업단지로 몰려들면서 섬유, 가발, 신발등 경공업이 눈부신 성장을 이루면서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눈부신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어 준 소년 소녀들의 공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정부에서는 공단을 중심으로 산업체 야간학교를 설치하여 배움의 길을 터 주자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옥이가 정든 고향을 떠나 이 먼 타지까지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하얀 깃을 단 검정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 재잘거리며 학교 길을 오가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던 서러움 때문이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한(恨)이었다.
중학교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 보이자, 거짓말처럼 일이 고된 줄을 몰랐다. 12시간의 맞교대도, 살을 파고드는 재봉틀의 굉음도 옥이의 가슴 속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노루발 밑으로 밀려들어 가는 천 조각들은 이제 단순한 옷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옥이가 스스로 엮어가는 미래의 책장이었다. 요란한 기계 소리 속에서도 옥이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옥이는 꿈속에서조차 작업복 대신 빳빳하게 풀기를 먹인 하얀 깃의 교복을 입고, 검은 책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활짝 웃으며 신작로를 달리는 단발머리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옥이는 다시금 의자를 단단히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재봉틀의 발판을 힘차게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노루발이 세차게 지나간 자리마다, 희망의 신작로가 푸른 지평선 위에 펼쳐졌다. 먼 산등성이로 새벽을 알리는 푸르스름한 여명이 옥이를 향해 찬란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첫댓글 유인봉 작가님의 단편소설 《굴뚝새의 노래》는 1960~70년대 한국 현대사의 그늘과 그 속에서 피어난 민초들의 생명력을 정교하고 밀도 높은 서사로 담아낸 수작입니다.
《굴뚝새의 노래》는 우리 세대의 어두웠던 가난과 여공들의 눈물겨운 희생사를 옥이라는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묵직하게 그려낸 감동적인 단편입니다. 가난의 서러움 속에서도 배움과 가족을 향한 온기를 잃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비극적이고 잔혹한 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지나친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시적인 문체를 유지하고 있어 특히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나병훈/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