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바다-2.mp3
삼국지(三國志) (186) 쓸 수없는 화공법(火攻法)과 주유의 혼절(昏絶)
조조와 주유가 위계(僞計)의 혼전(混戰)을 벌이는 가운데 삼강(三江)에 진을 친 조조의 수군은 어느덧 주둔지 인근의 물길에 익숙해지고 훈련도 모두 마친 상태가 되었다.
그리하여 수군 대도독 우금이 조조에게 수군 사열을 요청하니, 조조는 크게 기뻐하면서 수락한다.
"좋아 ! 십일월 보름 정오에 문무 대신들을 이끌고, 사열을 하도록 하겠다."
"네 ! 소장이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수군 사열의 날이 왔다. 수군 병사들의 함성과 진고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조가 탄 대전함(大戰艦)이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정박한 수군 전함 사이를 유유히 운항하였다.
사열을 받는 병선은 각각 오색기(五色旗)를 달고 있었는데,
중앙의 황기(黃旗)는 우금과 모개의 수군 군사요,
홍기(紅旗)는 장합의 군사고,
흑기(黑旗)는 여건(呂虔)의 군사였다.
좌군(左軍)의 청기(靑旗)는 문빙(文聘)의 군사요,
우군(右軍)의 백기(白旗)는 여통(呂通)의 군사였다.
조조가 강을 뒤덮은 장중한 전함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은 어조로 수군 대도독 우금을 호명 하였다.
"우금, 모개 ! 정말 내 눈이 의심스럽군, 관도가 천지를 개벽하니 역사 이래로 이렇게 웅장한 수군이 있었던가 ? "
"승상이 아니시면 이런 수군은 누가 조성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 그리고 우리의 병선은 승상의 군령대로 오륙십 척씩 모두 연결해 놓고, 땅에서와 같이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역사이래로 이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수군은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거병한지 이십 여년 동안 나라를 위해 힘쓰면서도 아직 강남을 취하지 못해, 성에 차지를 않았는데 오늘날 수륙 양군을 통틀어 백만 대군과 전함 팔천 척으로 강남을 수복하고 대업을 달성할 기반이 조성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분연히 이를 달성하게 되면, 나와 여러분들은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가 있다 !"
조조가 이렇게 감회에 젖은 소리를 외치자, 배안의 문무 대신 들은 일제히,
"승상, 만세 ! 만만세 !"
를 외치었다. 그러자 만세소리는 옆 배에서 옆 배로 계속해 이어지면서, 삼강 하구는 만세 소리로 뒤덮혔다.
잔뜩 감흥이 오른 조조가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외친다.
"오늘 밤 보름달이 뜨면 삼군을 위해 연회를 베풀어, 그동안 훈련과 전쟁준비에 노고가 많았던 장수들과 병사들을 위로할 것이니 모두들 마지막 승전을 위하여 일치단결하여 노력하자 !"
조조가 뱃전에 높이 올라서 만족스러운 어조로 말하자, 또 다시 북소리가 울리고 모든 병선이 서서히 움직이며 조조에게 사열 대형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이날은 바람이 제법 불어 물결이 높았지만 병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수군 병사들은 멀미를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정욱(程昱)이 말한다.
"승상, 배를 서로 연결해 놓으니 미상불 편하기는 합니다만, 만약 적이 화공법을 쓰게 된다면 아군의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보여 걱정입니다."
"그건 쓸데 없는 걱정이오. 화공법이란 반드시 바람을 빌려야 되는 것인데, 지금 같은 한겨울에는 서풍이나 북풍은 불어도 동풍이나 남풍은 절대로 불지않소. 우리는 서북편에 있고, 적은 남쪽에 있는데, 저들이 만약 불을 쓴다면 오히려 저들이 불에 탈 것이 아닌가 ? 물론 봄이나 여름에는 적들이 화공법을 쓸 수는 있지만, 요즘같은 겨울에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니 걱정을 마오."
모든 장수들이 그 말을 듣고 감탄한다.
"과연 승상께서는 천문(天文)에도 밝으신 어른이십니다."
조조가 다시 말한다.
"우리 수군들은 대부분이 청주(靑州), 서주(徐州), 연주(燕州) 출신인 까닭에, 이런 연쇄철환(連鎖鐵環)법을 쓰지 않았다면, 물결이 거친 이곳 삼강에서 어떻게 이처럼 자유롭게 항행할 수가 있었겠나 ?"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측근의 수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조조의 선견지명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조조가 수군 사열을 마친 이날 밤, 대소 병사를 위한 연회가 진중 곳곳에서 벌어졌다.
조조의 군영에서는 조조를 위시하여 정욱,우금, 모개, 장합, 여건, 문빙, 여통을 비롯하여 이진, 악진, 하후연, 하후돈, 조홍, 조인, 허저, 장요 등 수륙 양군(水陸 兩軍) 제장들이 함께 자리했다.
조조가 이들을 둘러보며 뿌듯한 자신감을 가지고 입을 연다.
"여러 수륙 양군의 장수를 비롯한 문무 대신과 형제들이여 ! 나, 조조가 올해 쉰 하고도 넷이 되었소.
옛날을 회상해 보면, 황건적(黃巾賊)과 여포(呂布)를 없앴고, 원술(袁術)을 멸하고, 원소(袁紹)를 깨치고, 다시 삭북(朔北)에 진격하여 요동(遼東)을 평정하였소. 뿐만 아니라 근자에는 형주(荊州)까지 취했으니, 이제 최후로 남은 것은 강동이오. 이렇게 내 말(馬)은 북쪽 끝, 검(劒)은 동북까지 미쳤고, 천하를 질풍같이 누비며 기세를 드높였소. 나의 삶이 이럴진대, 무얼 더 바라겠나 ! 허허허허! ..."
조조는 기분이 양양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으면서, 손에 술잔을 들고 즉흥시(卽興詩) 한편을 읊는다.
술 들고 노래하세, 인생이 그 얼마인고.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 같다고나 할까,
지난날이 꿈 같구나.
슬픈 일을 당할 때면 근심을 풀 길이 없어,
그 많은 세월을 술을 약으로 풀었네라.
푸르른 그대 옷깃 유유한 이내 마음,
사슴은 울어대며 풀을 뜯어 먹는구나.
귀한 손 모시고 비파 타고 피리 불면,
밝고 밝은 저기 저 달 기울 줄이 있으랴.
...
한편, 조조가 수군을 조련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때, 주유는 오늘도 포구에 나와, 나부끼는 깃발을 응시하며 바람의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바람은 북풍으로, 깃발을 남쪽으로 힘차게 흔들기만 할 뿐, 이를 지켜보는 주유의 가슴속을 태우고 있었다.
주유가 바람의 방향을 관찰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십 여일, 그가 기다리는 동풍과 남풍이 불어올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바람이 부는 방향을 유심히 살피던 주유가 어느 순간, 입에서는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푹> 고꾸라졌다.
"대도독 ! 대도독 !"
여몽을 비롯한 측근의 병사들이 크게 놀라며 달려와, 주유를 내실로 옮겨 눕혔다.
주유의 혼절 소식을 듣고, 그의 아내인 소교가 달려왔다.
"서방님 !... 혼절을 하시다니, 어디가 아프신가요 ?"
"아니오, 난 괜찮소...."
병석에 누운 주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오...."
주유가 혼절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노숙이 달려왔다.
"공근 ! (주유의 字), 공근 ! .. 혼절하였다는 말을 듣고, 너무도 놀라, 아직도 진정이 되질 않소. 지금은 어떻소, 응 ?... "
노숙은 병석의 주유를 내려다 보며 안타까운 말을 하였다. 그러나 주유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조금 흔들어 보인다.
"괜찮소...좀 쉬면 낫겠지...내가 아픈 사실을 절대 소문내지 마시오. 군심이 흔들릴거요."
"알았소. 걱정말고 몸조리를 잘 하시오. 아무 것도 신경쓰지 말고...응 ?"
노숙은 이렇게 말한 뒤에 밖으로 나와 주유의 군막앞을 서성대었다. 잠시후 주유의 처(妻) 소교가 밖으로 나와 말한다.
"선생, 의원이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프신 것도 처음 보았고요. 원인이 뭘까요 ?"
"하늘의 뜻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노숙은 밤하늘을 우러러 보며 대답한다.
"아 !... 서방님이 이번 전쟁을 앞두고 많이 괴로워하신 것 때문은 아닐까요 ?"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연일 전략을 세우는데 노심초사 하였으니..."
노숙은 여기까지 말을 한 뒤에, 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라면 공근과는 마음도 통하고 애기도 잘 되니, 그가 나서면 공근의 병을 고칠 방법을 알 수도 있겠군요."
하고,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누구요 ? 제갈양 선생 말씀입니까 ?"
"그렇습니다. 그를 청해 오면 방법이 나올 것 같습니다."
노숙은 그 길로 공명을 찾아갔다.
노숙이 공명에게 말한다.
"의원이 가서 진맥을 봤으나, 대체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 하였소. 여몽 장군 말로는 당시 공근은 조조군 진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며 깃발이 휘날리는 순간, 그것을 보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혼절 하였다고 하오."
"바람이 몰아치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자경, 그 당시 풍향은요 ?"
공명이 노숙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숙은,
"이맘 때라면 ?... 당연히 서북풍이겠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듣고 공명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서북풍이라 ?.. 후훗, 자경, 공근의 병은 내가 잘 아는 병인지라, 고칠 수도 있을 것 같소."
하고, 말하였다. 노숙이 반가운 얼굴을 하며,
"호 ?.. 가능하시겠소 ?"
하고, 반문한다. 그러자 공명이 고개를 노숙 쪽으로 기울이며 말한다.
"허허허허 ! .. 제가 이래뵈도, 천문 지리와 기문 둔갑은 물론이고, 고금의 난제와 사람의 질병까지 모르는 게 없지요."
"좋소, 선생 ! 그럼, 어서 가십시다 !"
노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장 서서 길잡이를 자청한다.
"어서요, 어서 가봅시다 !"
...
그 길로 공명과 노숙이 주유의 거처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노숙이 먼저 주유의 병석으로 찾아가니, 주유는 소교의 극진한 병구완을 받고 있었다. 노숙이 소교에게 묻는다.
"부인, 공근의 차도가 좀 있습니까 ?"
"지금까지는 속이 좀 거북하다고 하셨는데, 조금 전부터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노숙이 주유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공근, 조금 전에 공명을 만났는데, 병세를 애기했더니 공근의 병을 고치겠다고 하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소."
"음 ... 소교, 일으켜 주시오. 옷도 내오고. 제갈양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소."
자존심이 강한 주유는 공명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예..."
잠시후, 노숙은 공명과 함께 다시 들어왔다.
주유는 병석에서 곧 일어난 모습으로 힘없이 자리에 기울여 앉아 있었다.
"아 ! 대도독 !"
공명이 황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와 예를 표하자, 주유는 공명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공명이 자리에 앉은 뒤,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며칠 못 뵈어 걱정이 많았는데, 이처럼 많이 편찮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인생의 길흉화복을 누가 다스리겠소."
주유가 기운이 진한 듯 고개를 숙이고 대답한다.
"하늘의 섭리를 어찌, 사람이 예측하겠습니까 ?"
공명이 거기까지 말을 하였을 때, 주유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린다. 그리고 가슴을 쥐어 잡으며,
"가슴이 터질 듯, 견디기가 어렵소. 힘들어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공명이 묻는다.
"가슴이 답답하십니까 ?"
"그렇소... 마치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 처럼 말이오..."
"그럼 약을 드셔야지요."
"흠, 약이 소용없는 것 같소."
"약이 소용없다면 다른 방도가 있기는 한데, 치료가 가능할 지 모르겠군요."
주유가 그 말을 듣고 공명을 반신반의하며 다시금 쳐다본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그럼, 선생이 처방을 내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붓을 들자, 시종이 달려와 종이와 먹을 공명의 앞으로 대령한다.
공명은 지체없이 일필휘지로 처방을 써내려갔다.
노숙은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만을 듣고 있었다.
주유와 소교는 공명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명의 처방문이 잠깐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공명이 붓을 거두자, 시종이 다가와서 공명의 처방문을 주유의 책상위로 옮겨갔다. 주유의 책상위로 처방문이 올라가자 공명이 입을 열어 말한다.
"보십시오. 그게 처방문 올시다."
주유가 공명의 처방문을 받아들고, 입을 <딱> 벌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선생은 정녕 신선이시군 !..."
하고, 말하며,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자 소교가 주유의 손에서 공명이 써 준 처방문을 들어 보았는데, 그 처방문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欲破曺公 (욕파조공) 조조를 멸하려면
需用火攻 (수용화공) 불을 써야하는데
萬事皆備 (만사개비) 준비는 끝났으나
祗欠東風 (지흠동풍) 동풍 만이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