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던 골프회원권 이외에도 틈만 나면 나의 사부인 황극성씨와도 공을 같이 쳤다.
그는 토지공사에서 나와서 골프로 세월을 낚고 있었다.
큰형이 건설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주위 친척들이 "언제까지 동생을 이렇게 공만 치게 놔둘거냐?"는
성화에 못이겨 전주에 있는 현장의 주재 임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와는 3년간 교류가 뜸해졌다가 현장이 끝나고 다시 덕소로 와서 연락이 왔다.
나는 초창기의 사부를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라운딩을 할 수 있었다.
골프를 막 배울 무렵부터 "연습장에 가면 꽃뱀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골프 10년내내 한번도 꽃뱀들은 만나지 못했다.
어디가나 남녀가 모이는 곳에는 꽃뱀들이 있었는데 청산에 있어서는 이상한 일이다.
아마 집사람의 감독하에 대부분 같이 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엊그제 집사람에게 물었다"황사장이 골프장에는 꽃뱀이 많다고 그랬는데, 나는 왜 십년동안 하나도 만나지 못했지?"하자
내 추측대로 집사람이 "그야 내가 감독하고 다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디가나 춤추는 데는 춤 잘춰야 대접받고 골프치는 데는 골프 잘쳐야 대접받는데 어느 꽃뱀이 당신 공치는 것보고 오겠어?"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공을 잘치지 못했기 때문에 꽃뱀에게 물리지 않은것이 다행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듯 싶다.
오랜만에 만난 황사장은 나에게 많이 늘었다고 칭찬했지만 여전히 실력은 까마득했다.
그는 자기 와이프에게 옷이며 골프채며 신발등 몇천만원어치(5천만원정도 라고 했슴) 걸치게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헌 장갑,헌공을 사용했으니 그런 의미에서는 청산과 비슷했다.
이때쯤 김춘진 의원의 발의로 "결혼중개업법"이 입법화 되면서 결혼업게는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나에게 "공만 치지 말고 협회에 나와서 힘을 합해달라"고 성화였다.
나는 초창기 한번 협회라는곳을 갔다가 실망하고 관심밖이었다.
그렇지만 결혼협회 사람들은 "국제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주피터 고석홍 사장이 도대체 누구냐"고 다들 궁금해 하고 있었다.
실로 10여년만에 협회에 나가자.업체사장들은 환호했다.
심지어 여자 사장들은 나와 잘아는 것처럼 찾아와서 다정히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나를 협회 발전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나는 그간 직접 참여하진 안않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 협회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성원인 결혼회사 사장들의 수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협회를 안정적으로 이끌 자신도 없었다.
어떻든 국제결혼을 제일 초창기에 시작하여 상당한 실적을 올리고 있던 하나로 최사장을 고문으로 추천했고
그외 능력있는 사장들 20명을 임원진으로 구성했다.
그렇지만 처음 염려했던 바와 같이 전혀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1인이 결혼회사를 운영한 회사가 많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도와주기만 바랄 뿐
자신이 협회에 나와서 협력할 준비와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맡은 지 1년만에 발전위원장 직을 사임햇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단체의 리더가 될 재목은 못된 것 같다.
소위 "잘난 너희들끼리 잘해먹고 잘살아라"는 식으로 떠났다.
나는 그간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여러가지 일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했지만 골프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단독연습,프로레슨,골프회원권 매입 등 별짓을 다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내는 내가 레슨 프로를 붙여주어도 시덥게 생각하고 연습도 하는둥 마는둥 했지만 실력은 나보다 나았고
심지어는 필드에 나가서도 화이트티에서 쳐도 남자들 보다 더 많이 나가서 남자들을 놀라게했다.
아내는 항상 나를 놀리듯"이 세상에서 골프처럼 쉬운 게 없다"고 말했다.
정말 더깊은 프로세계에 들어가면 몰라도 아마추어의 수준에서 보면 아내는 골프를 너무 쉽게 배우고 쉽게 쳤다..
나보다 더 잘하는 것은 애들 낳은 것과 골프치는 것 딱 두가지뿐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보통 80대 중반쳤는데 나는 백돌이이니...그런데 2012년 가을 대명콘도에서 라운딩도중 카터에 부딪혀 중상을 입고 다리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혼자 가야했기 때문에 골프에 대한 열정도 식어갔다.
바람도 마누라가 있어야 하는 맛이라고 마누라가 못치게 되니 골프도 재미도 없었다.
그리고 2013년4월 인후염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골프에 미친 10년 막이 내렸다.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국제결혼 만13년도 접었다.
지난 2016년 4월27일 오빠들과 용인에 있는 강남300C.C에서 라운딩한 것이 마지막이 될 것같다.
지난 6월초 사촌여동생이 오는 9월쯤 나가자고 했는데도"그때 보아 건강이 허락하면 기자"고 일단 보류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게 다 때가 있나보다.
사업도.사랑도.골프도,미친듯이 뛰었지만 이젠 모두가 까마득한 옛날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