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자의 꿈, 존뮤어트레일
존 뮤어 트레일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요세미터 계곡에서 미국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 봉에 이르는 장장 358킬로미터의 산길, 이곳에서는 곰과 사슴, 그리고 빙하시대에서 살아남은 세코니아 거목과 지천을 빛나는 호수가 주인이다. 자연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손님이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야 할 정도의 긴 거리를 한 번에 종주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기에 3박 4일 씩 고작 두 구간을 걸었다. 전체 트레일에 비하면 극히 일부만 접했을 뿐이다.
혼자만의 오랜 꿈을 함께 이루어 준 동료 이겸, 김미란, 특히 밤마다 옆에서 화물열차처럼 코를 골았던 오랜 친구 하워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요세미터 캠핑장에서]
영어권은 물론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달력 사진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요세미터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될 만큼 뛰어난 비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유명 관광지답게 캠핑시설이 훌륭했다.
곰에게 먹이를 주면 5천불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경고 문구도 보인다.
요세미터라는 이름 자체가 곰을 뜻하는 인디언 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의식이 더욱 또렷해졌다. 게다가 앞으로 보름 넘게 저 야생 곰들과 인적 드믄 숲에서 동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요세미터 공원의 총 면적은 자그마치 3079평방킬로미터로 제주도보다 두 배 가까이 넓다. 마치 들판처럼 광활한 계곡의 바닥 한 가운데로 머세드 강이 흐르고 있다.
달팽이처럼 걷는 것이 첫 시작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4명이었다. 촉망받는 젊은 사진작가 이겸과 개인전을 통하여 화단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여류화가 김미란, 그리고 LA에서 합류한 나의 오랜 친구 재미교포 하워드가 함께했다.
하루 평균 18킬로미터씩 걸으면 약 20일이 소요되는데 우리는 하루 20킬로미터를 주행거리로 잡았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18일이 걸릴 것이다.
우리가 17일간 걸어온 방향을 보니 산맥이 회색빛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최고봉 휘트니는 1864년 처음 측량되었다. 당시의 측량은 정확하지 않았는데, 추정 표고는 4570미터로 미합중국 최고봉이라고 알려졌다. 지금은 알래스카의 매킨리(6194미터)에 이어 2위봉이지만 알래스카가 미국 땅이 되기 전인 1867년까지 최고봉의 지위를 누렸다.
[에필로그]
혼자 보는 풍경보다 함께 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산처럼 좋은 사람들과 그 속살을 헤집고 걸으면서 우리의 기쁨은 더 커졌다.
[Review]
이번 구정 설 연휴 날씨는 마치 봄 같이 따뜻했는데, 월요일 아침 조간신문에 “제주는 벌써 봄"이라는 작은 기사가 올라왔다. 어제는 한낮 기온이 섭씨 15도를 오르내렸다. 아마도 며칠 있으면 노란 산수유꽃과 함께 신문 머리기사로 등장할 것이다. 봄이 온다고 마냥 즐겁지만 않다. 어김없이 함께 따라오는 불청객 미세먼지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에 깔아놓은 "날씨"와 "미세 미세"앱부터 확인하는 일이 일상의 시작이다. 오늘 아침에도 영상 7도, 미세먼지는 ”최악” 절대 나가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못 하는데 가볍게 동네 한 바퀴 도는 아침 산책도 포기하게 만든다.
존 뮤어(1838~1914)와 핸리데이빗 소로우(1817~1862)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자연 주위 활동가였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작은 오두막을 짓고 보낸 2년 동안에 “월든”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면, 존 뮤어는 열정적인 자연 보호가로 활동하며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었다. 그의 활동에 감명을 받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재임 1901~1909)이 1903년 요세미터에 머물고 있던 ‘존 뮤어’를 직접 찾아가서 사흘간 함께 야영을 한 후 세쿼이아 큰 나무 아래에서 세계 최초 통합 국립공원의 틀을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책 <걷는 자의 꿈, 존 뮤어 트레일>은 한국인으로서 17일간 ‘시에라네바다 산맥’ 전 코스를 완주한 신영철 씨와 사진작가 이 겸 두 사람이 공동으로, 요세미터 국립공원을 출발해서 세쿼이아 국립공원까지 장장 358㎞의 산길을 하루에 15~20킬로미터씩 걸으며 마지막 날에는 미국 본토에서 두 번째로 높은 휘트니 봉(4570m)을 오르는 대 장정을 멋진 사진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사색적인 글이 아니기 때문에 각 구간마다 자연의 생생한 모습이 떠올려 질만큼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곰들과 맞닥뜨리고 사슴의 눈망울을 지척에서 대하는 생생한 이야기들, 수천 년의 수령을 자랑한다는 세퀘이어 나무, 그리고 빙하가 만든 맑은 호수에서 송어를 낚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창문을 막았던 책상 자리부터 바꾸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자신의 침대를 창가 쪽으로 옮겨가고 싶은 마음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잠시 자리를 바꾸는 일이다. 그곳 역시 얼마 지나면 일상이 되고 사람들은 다시 또 다른 자리를 생각하게 될 것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얻는 심신에 자극이 생활에 강장제가 되기 때문이다.
산을 왜 오르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산이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대답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말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등산 인구가 예년과 비교해 많이 늘어나고 하천 길에도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렇게 걷는 행동이 지난날 같으면 정신 나간 행동이지만 이제는 그냥 걷는 게 목적이 되는 일이 평범해진 세상이다.
며칠 전 지인이 보내준 카톡에 85세 어르신이 올해 제주 한라산부터 등정을 시작해서 백두산까지 간다는 기사를 보고, 오래전부터 생각만 해오던 동해안 해파랑길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산행은 못하더라도 평지길이라면 하루에 10~15㎞라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읽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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