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인구 과밀화로 인해 토지 및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일반 주택의 대안으로 1960년대 부산에 아파트가 등장하였다. 창선동 신창[1960]을 시작으로, 영주동 황금[1966], 대연동 천주교[1967], 신창동 신생[1967], 대연동 대연 공영[1968], 영주동 영주[1969], 신선 2가 신선[1969], 영선 4가 영선[1969], 보수 1가 보수[1969], 수정동 수정 시영[1969], 좌천동 좌천 시영[1969], 남부민동 남부민 시민[1969], 등이다
당시 우리나라 아파트는 외국 아파트와 달리 연탄을 이용하여 부엌의 아궁이와 온돌방이 연결되는 전통 구조가 가미된 공동 주택이었다. 공동변소, 공동 수도, 3층 이상의 규모를 가진 아파트의 등장은 전통 양식에 익숙한 시민들의 큰 구경거리이자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연탄가스가 샌다’, ‘고공(高空)병이 생긴다’며 시민들은 입주를 기피하기도 하였다. 다음의 신문 기사[『매일 경제』, 1970. 11. 5]를 보면 당시 아파트에서의 주거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외에 장독이나 김장독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빨래는 어디서 말려야 하는지 등에 대한 것도 논란거리였다. 아파트에 처음 거주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주거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으며 공중도덕 의식도 미약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발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아파트는 대중적이지 못하였고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특히 부산시가 건설한 시영 아파트는 33.06㎡1[10평] 규모로 크기도 작았고 공동변소를 사용하는 등 질적 수준도 낮았다. 또한 부산시의 예산 부족으로 골조와 주요 설비만을 공급하고 내부는 입주자들이 직접 마무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도심 주변부와 산비탈에 위치하여 교통이 불편하거나 기반 시설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다. 1970년 부실 공사로 무너진 서울 와우 시민 아파트 사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시민들은 부실 공사를 탓하기보다는 아파트라는 건물 자체의 결함이 빚어낸 결과로 여겼다. 이처럼 시민들은 서민 주거라는 선입견, 부실 공사에 대한 불신 등으로 아파트보다는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을 더 선호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등장한 아파트에는 초기 아파트에 등장하였던 형태보다 개선된,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싱크대와 찬장이 부엌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주부의 신장, 활동 범위, 규격화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 장식적인 느낌이 많았다. 그리고 연탄을 이용하여 취사와 난방을 해 연탄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 뒤편 발코니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쓰레기 투입구가 세대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겨울 김장철이면 아파트 화단 한편에 김장독을 묻기도 하였다. 당시 반상회가 활발하였고 주민들은 계단, 아파트 주변을 함께 청소하였다.
민간 건설 업체가 자본 및 기술 축적으로 대량,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지어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도심 위주의 건설에서 수영구 남천동, 북구 만덕동 ,서구 동대신동 옛 부산형무소 부지에 지은 대단위 아파트를 시작으로 남천동 삼익 맨션[1976], 수정동 수성[1977], 문현동 한양[1978], 범일동 한양[1978], 장전동 예그린[1979], 만덕동 만덕 대진[1979], 반여동 왕자[1979], 당감동 무궁화 등이다
아파트 내부 시설에는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파이프를 바닥에 깔고 온수를 공급하여 방을 데우는 연탄보일러가 등장하였다. 10층 이상 고층 아파트를 중심으로 연탄 대신 석유[벙커 C유]를 이용한 난방 방식이 보급되었다. 또한 라디오, 선풍기 등이 고작이었으나 점차 흑백텔레비전, 냉장고 등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사치성 가전 제품이라 여겨지던 세탁기는 1970년대 후반 인건비가 높아지고 제품의 실용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인식 하에 필수품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매일 경제』, 1977. 9. 30].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남천동 삼익 비치
대부분의 아파트는 평형이나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자연 환경, 입지 조건,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획일적으로 건축되었다.
1982년 10월 부산에서 도시가스가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가정 연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동아 일보』[1980. 11. 12]에 따르면 취사용 각종 연료의 경제성을 조사한 결과, 5인 가족 기준으로 1개월당 연탄은 6,900원, 석유는 9,090원, 전기는 1만 1,574원, 액화 석유 가스[LPG, 일명 프로판가스]는 1만 4,025원이나 도시 가스는 6,35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도시가스는 석유 화학용 원료인 나프타를 분해하거나 LPG를 기화하여 사용한 것이었으며, 보일러는 국산화가 되지 않아 일본에서 수입하여 사용하였다. 1987년 공해가 적고 가격이 저렴한 액화 천연 가스(LNG)가 개별난방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자동차 보급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 예외 없이 주차난을 겪게 되면서 녹지 공간, 어린이 놀이터 등이 주차장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지상 주차는 보차분리가 안 된 경우가 많아 크고 작은 사고도 많았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반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지하 주차장이 도입되었다. 또한 위아래 층을 계단으로 연결한 복층형 아파트와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까지 등장하면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곧 중산층의 주거지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였다. 특히 132㎡[40평] 이상의 대형과 고층 아파트의 증가로 정원과 연못이 있는 양옥 단독 주택뿐 아니라 아파트도 부자들이 거주하는 고급주택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게 되었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지어졌던 대부분의 아파트는 낡고 쇠퇴하여 재건축, 재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구서 주공[1979], 사직 주공[1979], 화명 주공[1981], 엄궁 주공[1985]이 재건축되었고 안락 주공[1976], 해운대 AID[1981]은 재건축 중이다. 그리고 부곡 금강 롯데[2012], 명륜 쌍용[2007], 연지 자이[2007], 장전 SK[2008], 청학동 신도 브래뉴[2009], 중동 SK부산진구
또한 불법 무허가 주거지도 재개발 사업에 포함되었다. 동부 올림픽 타운[1999]이 들어선 해운대구 우 2동 승당 마을승당 마을승당 마을
한편, 지형적 특성상 구조적 개선이 어렵거나 고도 제한, 용도 지역 제한에 묶여 재건축이 힘든 아파트에는 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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