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도종교와 차이-각묵스님의 회고>
소납은 인도에서 10년 유학을 하면서 베다와 제사학(미맘사, Mimāṁsā)을 전공하였다. 학교 수업 외에는 10년 동안 은퇴하신 노교수님들(모두 힌두 브라만 출신으로 교수를 역임하신 분들)을 방문하여 개인교수를 받으면서 리그베다와 초기 우빠니샤드들과 자이나교의 교전들을 범어로 읽었다. 특히 3년에 걸쳐서 인도 제사학의 기본이 되는『샤따빠타 브라흐마나』(Satapatha Brāhmaṇa)를 산스끄리뜨 원전으로 다 읽었는데 초기불교의 중요 술어들이 아주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인도사상 특히 제사학과 초기 우빠니샤드와 초기불교를 비교해서 하고 싶은 말들이 적지 않다.
불교와 자이나교를 포함한 인도 종교와 사상 전반에서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주제는 ① 신 혹은 절대신 혹은 신들(brahma, devatā)의 문제 ② 윤회(saṁsāra)의 문제 ③ 해탈(mokṣa)의 문제의 셋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도 이 세 가지는 중요한 주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절대 신의 문제와 윤회의 주체 문제와 진정한 해탈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①초기불교에 의하면 절대 신은 없다. 신들은 인간들보다 뛰어난 존재이지만 그들도 윤회한다. 그리고 윤회의 주체(ātman)는 없다. 범아일여가 되는 것 혹은 아뜨만에 계합하는 것은 진정한 해탈이 아니라고 여긴다. 자아가 있다는 인식이나 해탈했다는 인식에 사로잡힌 것(착각, 견해의 집착)일 뿐이다. 그리고 절대 신의 문제는 인도철학 안에서도 달라진다. 신은 인간에게 감응을 하는가? 인간에게 복을 주는가? 복을 준다면 어떻게 주는가? 인간은 신 혹은 신들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 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6파철학과 자이나교와 불교에 서로다르다.
예를 들면 8세기에 베단따의 거장 상카라(Saṅkara, 흔히 상카라차리야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대승불교를 배웠으나 나중에 힌두로 전향하였다)는 절대적 신성이라 할 수 있는 브라흐만을 니르구나 브라흐만(nirguṇa brahman)으로 설명한다. 절대적 신성은 이법이나 진리이지 어떤 공덕이나공능을 상정할 수 없다는것이다. 11세기에 라마누자(Rāmanuja)는브라흐마는복덕을 구족하였고(saguṇa brahman) 그래서 인간에게 감응을 한다고 주장한다. 14세기에 마다와(Madhava)는 완전한 이원론으로 브라흐마를 설명하였는데 브라흐마는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단독자로 이해하였다 한다. 그의 사상은 인도를 정복한 이슬람교도들의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① 그러면 윤회의 주체가 없는데 어떻게 윤회하는가? 14세기에 마다와(Madhava)가 인도철학을 베단따 철학의 입장에서 정리한 사르와다르샤나-상그라하(전철학강요,Sarvadharśana-saṅgraha)에서도 이것을 들어서 불교를 공박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의 불교학자들 조차도 이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기도 한다. 초기불교의 주석서들은 한결같게 오온의 흐름으로 윤회를 설명한다.
“5온․12처․18계(蘊․處․界)가 연속하고 끊임없이 전개되는 것을 윤회라 한다(khandhānañca paṭipāṭi dhātuāyatanāna ca abbhocchinnaṁ vattamānā saṁsāro ti pavuccati).”(DA. ii.496; SA.ii.97)
“윤회란 오온등이 끊임없이 전개되어가는 연속이다.(khandhādīnaṁavicchinna-ppavattāpaṭipāṭi)”(SA.ii.156)
상호의존적인 흐름[相續, santati]을 강조하는 이러한 초기불교의 입장은 오히려 문자적으로 함께 흘러감을 뜻하는 삼사라(saṁ+√sṛ, to flow)의 언어적 의미에 더 가까운 설명이라 할수 있다.
*요즈음 향봉스님과 도법스님 등이 윤회를 부정하는 말을 함으로써 불자들의 마음이 흔들릴 소지를 제공했으나, 윤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확인된 사실이다.
③ 인도의 모든 철학 혹은 종교체계는 해탈(mokṣa)을 설한다. 이것은 인도철학의 가장 큰 특징으로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는 주제이다. 그러면 해탈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불교의 가장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주제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해탈은 착각일 뿐이며 견해일 뿐이라는 것이 불교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탐․진․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체해서 봐야하고 무상과 고와 무아를 꿰뚫어 봐야 하며 그래서 염오가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해탈(vimutti)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