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30 이화음(김윤환 처)
이화음(김윤환 처)이 일찍이 무진년(개도55년 1928년) 정월 20일에 남명촌南明村 부인의 안내로 입도한 후에 포교에 전력해서 충청과 경기 각지를 두루 다니면서 불고가사不顧家事하니라.
갑술년(개도61년 1934년)에 성사께서 승하하시기 전날에 경성에 사는 명경섭이 입도 치성 준비로 유성에 가고자 하여 성사께 고하니, 명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가라” 하시고 문밖에 나오시어 정녕 말씀하시기를 “이생에서는 생극락을 누리고 또한 내생에서는 사극락을 누리리라.
네가 나의 문하에 입도함이 완연히 양의 뿔이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린 것과 같으 격이니, 네가 내 제자 될 것을 알았노라. 나의 병은 지나치게 심려하지 말고 잘 다녀오너라.”
화음이 엎드려 고하기를 “고향으로부터 천한 몸이 되어 양자를 구하고자 해서 부르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까?” 말씀하시기를 “딸을 둔 것이 아들 둔 것보다 못하지 않으니 절대로 고향에 내려가지 말고 여기에서 일하라.
수년 후에는 네가 포교할 인연이 남쪽에 많이 있으리니 때를 기다려 행하여라. 앞날에 청학이 잘 교도하리니 너에게 거듭 말하노니 너는 양이 탱자나무 가시에 걸린 격과 같으니라.”
또 신신부탁하여 말씀하시기를 “잘 닦고 잘 닦아라. 네가 만일 잘 닦으면 너의 앞길이 양양하며 무량하리라” 하시고 특별히 가르침을 더 하시니라. 화음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유성에 갔다가 이튿날 돌아오니, 성사님께서 이미 승하하신지라.
이로써 전날에 거듭거듭 하교하심이 앞길에 무궁한 유훈이 됨을 깨달은 까닭에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종사함이요, 더욱 감동되는 것은 성사님께서 가르치시고 경계하심이 정녕하신 고로 승하하신 후 수년 동안에 김창희(호 운봉)와 함께 비로소 남쪽으로 가서 포덕하여 거창, 함양, 산청, 합천, 진주 등지에 수천 명 도인을 얻어 거창에 금강도 지부를 설치하고 합천, 산청에 몇 개의 포교소를 두니, 이것이 엄청난 성은이 아니겠는가! 머리를 구천에 돌이킴에 감격하여 흐르는 눈물이 비와 같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