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Pearl S. Buck)의 소설 대지(The Good Earth)》
주인공인 가난한 농부 왕룽과 그의 지혜로운 아내 오란이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야기
"지금의 아파트 값이나 예전의 토지나, 결국은 실질생산과 무관하게 자본이 대중을 수탈하는 방식 아닌가"라는 설박사님의 화두는 소설 대지의 핵심 메커니즘이자, 현대 자본주의의 지독한 병리를 정확히 짚어내신 통찰
세 가지로 짚어봅니다
소설 대지 속 황부자 집안의 몰락과 지주 피탈 장면
대지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대지주인 '황부자(黃大人) 집안'의 몰락입니다.
황부자 가문은 직접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부를 창출하지 않습니다.
땅을 소유했다는 권리 하나만으로 소작농들에게 지대를 수탈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편을 피우고 첩을 들이며 무위도식합니다.
불로소득의 함정입니다
생산적인 노동 없이 지대에만 의존하는 계급은 결국 자본의 선순환을 이루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부패하여 몰락합니다.
토지의 상품화입니다
가난한 농부 왕룽은 땅을 '생명의 근원'으로 대하며 땀을 흘렸지만, 성실함으로 부를 모은 뒤에는 그 역시 몰락해 가는 황부자의 땅을 사들이며 대지주가 되어갑니다.
희극적인 결말입니다
노년의 왕룽은 아들들에게 "절대 땅을 팔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실속만 차리는 아들들은 겉으로만 네네 하고 뒤에서는 땅을 팔아 치울 궁리를 합니다.
토지가 삶의 터전에서 '금융과 투기 자산'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토지 지대에서 '아파트 계급'으로의 수탈 방식이 진화합니다
설박사님께서 말씀하신 "지금의 아파트 값도 예전 토지처럼 경제 수탈의 방식"이라는 점은 경제학적으로 지대 추구(Rent-seeking) 자본주의의 핵심을 꿰뚫고 계십니다.
과거의 토지 수탈과 현대의 부동산(아파트) 수탈을 비교해 보면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판박이입니다.
대지주, 매판 자본, 수탈적 국가에서 건설과 금융 자본, 부동산 자산가 계층 으로 바뀔뿐입니다
피땀 흘려 농사짓는 소작농이 수탈되다가 노동으로 월급을 버는 실거주 청년과 서민들이 수탈됩니다
고율의 소작료 납부에서 막대한 주택담보대출 이자 및 월세 지출로 바뀝니다
생산 자본의 고갈, 농촌 피폐화 문제가 청년층의 자산 형성 불가능, 저출생, 노동 의욕 상실 로 바뀐 것입니다
소작농이 일년 내내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로 다 뺏겨 겨우 목숨만 연명했듯, 현대의 직장인들은 한 달 동안 일한 노동 대가의 상당 부분을 '아파트 대출 이자'나 '월세'로 바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 소득이, 오직 자산을 먼저 점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거둬들이는 '불로소득 자본'으로 합법적으로 수탈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생산적 경제로의 전환은 사라졌습니다
이 수탈 구조를 계속 파헤치고 밝혀내야 소용이 없을 꺼 같습니다
사회가 "아파트 값이 오르는 것이 개인의 자산이 늘어나는 복"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실상은 실질 생산성은 그대로인 채 주거 비용만 인플레이션되어, 금융 자본과 부동산 기득권이 서민의 미래 노동력을 담보로 돈을 버는 구조일뿐입니다
소설 대지에서 왕룽이 가장 건강하고 진실했던 시절은 흙을 만지며 땀을 흘릴 때였습니다.
아파트가 주거와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기 상품'과 '계급 사다리'로만 작동할 때, 청년들은 생존의 한계로 몰리고 사회의 재생산 구조(출산과 양육)는 파괴됩니다.
새로운 연대와 경제 모델의 필요성이 항상 주청됩니다
자본이 노동을 수탈하는 '부동산 지대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지역의 자립이나 공생적 경제(협동조합, 지역 자산화 운동 등)가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자산 투기가 아닌 '노동과 삶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경제적 전환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이 수탈의 메커니즘은 계속해서 폭로되고 밝혀져야 합니다.
사실 소용은 없어 보입니다
설박사님의 직관대로, 펄 벅의 《대지》는 단순히 먼 옛날 중국 농부의 일대기가 아니라, 자본이 어떻게 본래적 가치(토지/주거)를 기형적인 수탈 도구로 바꿔 놓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경제 사회학적 보고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