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서예과 설치가 비교적 늦었으므로 교수진들조차 확고한 자격 여건을 구비할 수 없었다. 학생의 교육 방침도 없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대학 바깥의 서예학원에서 지도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구태의연하게 공모전을 바라보면서 학교의 바깥에 있는 서예학원을 다니면서 공모전을 준비하였다.
곽노봉은 대학 졸업생의 전시회 평에서 서예과 출신의 작품에는 창의적인 변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창작에서 그들이 전통에 벗어나 얼마나 창의력을 표출하였는가.에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서예 전문지인 ‘서예문화’에서 2004년에 대학의 서예과 학생을 일선에서 지도하는 교수의 좌담회를 주선하였다. 그들의 대담을 들어보면 서예과 교수가 서예과 학생을 지도하는 교육관을 엿볼 수 있다.
“서예과를 지원하면서 다들 처음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입학을 했지만, 졸업을 앞 둔 상황에서는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너무 지엽적인 것이 아닐까요. 조금 더 크게 생각해보면 졸업 후에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소한 생활 걱정에 급급하다 보니까 진짜 생각해야 될 방향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너무 소극적인 것에 관심을 두바 보니 엉뚱한 곳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백영일ㄹ)
“대학 학부라는 것은 서예를 통해서 기초 학문을 연마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문자의 전통적인 서예관을떠나서 지나치게 현실에 영합한다고 할까요?”(전윤성)
대학에서 교육을 맡고 있는 교수는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므로 본직에 충실하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서예과 교육이 얼마나 현실과 떨어진 교육을 하는 가를 보여주는 사례도 될 것이다. 오늘의 대학이 예전처럼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고, 생활인을 교육하는 곳이라면, 이들의 사고방 식은 너무 아카데미즘하다고 할 수 있다.
2007년에는 신설한 지 겨우 4년 째인 경기대학에서 서예과를 폐지하려는 학교의 방침이 알려지자 서예과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한 사건이 있었다. 그들이 제시한 교육 과목의 자료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서예이론(서예론과 서예사)과 서예 실기로 채워져 있었다. 이론 보다는 실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실기라면 서예학원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는데도 굳이 대학에 가는 이유는 ‘학위증 취득’을 위해서 이다. 학위증을 취득하고 나면 어떤 현실적인 이득이 따르는 것일까?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현실의 벽을 도외시 할 수 없다. 교수의 좌담을 통해서 보면 대학은 그들의 욕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서예과 학생은 졸업후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생계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서예문화’지가 주선한 서예과 학생들의 좌담을 들어보면 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괴리가 바로 오늘의 대학 교육의 현실이다. 대학 교육을 학생들이 잘못이라고 나무라는 교수의 생각대로 시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이 원하고, 요구하는 대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건지는 깊이 연구해부야 할 것이다. 서예과 4학년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옮겨 보자.
“모든 예술 분야가 다 똑 같겠지만 서예를 가지고 생계 유지를 할 수 있느냐, 가 저희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에요. 그래서 졸업하고 학원을 경영하는 선배님을 만나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학원이 잘 되는지 여부랍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계 유지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지요.”(김소희)
서예과 교수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수는 생활 걱정을 사소하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서예를 소홀히 한다고 하였다. 학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계 유지가 기본이라고 하였다.
교과 과정을 짚어 보기로 하자.
“저희 계명대는 초창기는 이론과 실기를 같이 교육하였는데, 제가 군대에 갔다 오니까 이론 수업이 많이 축소되었어요. 실기 위주로 하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이론을 도외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인화, 전각 및 각종 서체 별 실기 수업과 중국, 한국 서예사, 서론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미학이나, 고문자론, 금석학 같은 수업은 예전가는 달리 현재는 없습니다.”(안승기)
학생의 좌담을 듣다보면 모든 대학에서 이론을 없앤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따라서 이론의 비중이 무거운 곳도, 가벼운 곳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었다. 대학은 서예와 서학을 병합해서 공부하는 곳이라면 서예 실기 일변도로 교육의 방향이 바뀌어가는 것은 우려할 만 하다. 요즘은 대학의 서예 교육이 학원을 따라간다는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교수 중에는 학생들이 베끼기 위주의 공부를 함으로 학생이 보는 앞에서는 아예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교수도 있었다. 대학 전시회도 창의성은 없고 베끼기만 한 것이라는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안승기의 말 대로 라면 대학 교육의 현실은 암담하다. 베끼기만 하는 교육이라면 서예 학원이 안고 있는 교육의 단점은 그대로 대학으로 이식되어 올 뿐이다.
“학원 서예 교육의 문제점은 폐쇄성이 강한 데 있습니다. 물론 예술에서는 도제 교육이라는 형식이 상당히 중요한 일면도 있습니다. 폐쇄성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한 선생 밑에서 지도를 받으므로 모든 서체를 공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한태상)
대학에서도 지도하는 교수의 서체를 따르다 보니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베끼기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서예 교육을 지배하는 지배적 요인은 대학이 아니고 공모전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려가서 폐쇄적인 서예 교육의 희생자가 되는 것도 공모전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대학의 학위증이 공모전의 입상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이 글을 쓸 때는 몇 개의 대학 서예과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가 폐과가 된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첫댓글 촌정님! 잘 읽고갑니다...^^
네 잘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현실이군요 배우고 갑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감사합니다 촌정선생님...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