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 분쟁과 고소,고발 사태는
큰비상이다.
자기 자신들의 권의만 챙기고 건강과 청결에는 끔찍하도록 예민하게 반응을 하고 있다.
비를 맞으며 전도하는 아산시 00목사는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가?
어떤 교회는 비온다고.눈온다고.바람분다고.
우한바이러스 때문에 전도를 중단하는 교회가
있다. 또 어떤교회는 전도를 하지 않는 교회도
있다...
이 땅에 평신도들의 영혼들은 죽어가는데 영혼들을 향한 목회자와 장로들의 긍휼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고 분쟁과 고소,고발로 인한 피해자들은 힘없는 양들이다.
목회자와 장로들에게서 긍휼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내가 죽지 않을까에만 골몰하고 있는 형국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하셨다.
사도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양들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내가 평생에 한번은 죽자
이번만은 일년에 한번은 교회를 위해서내가 먼저 죽자 는 마음이 목사도
장로도 없었다.
긍휼이 필요한 자들이였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의 은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심령에 긍휼히 여김이 보이지 않는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갔다.
그런데 요나서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박넝쿨보다 귀한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니느웨의 수많은 영혼들을 향한 긍휼히 여기심이 아닌가.
도망가려는 요나 선지자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긍휼의 마음을 구하시는 것이 아니신가.
북한이 우리 나라와 관계가 좋지 못하고
핵무기 원자폭탄 수수폭탄 핵미사일
실험발사로 긴장상태 분단상태는 지속되고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안에 있는 그러한 선입견과 악감정을 내려놓고
요나가 앗수르에 대해 품었던 적개심과 같은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옷을 갈아 입을 때이다.
북한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북한 땅에서 쫓겨나고 순교하는것을 보면서
선교사를 불쌍히 여기기는 했어도 더이상 북한을 위해,
강팍한 북한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우리는 선교지를 다른 곳으로 바꾸고 말았다.
그러나 북한땅에 있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여전하시다.
공산당을 통해 선교가 어려워지는 것은 그만큼
그 땅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커져가는 것이고,
악한 영의 대적하는 역사가 더 커져가는 것이다.
지금은 북한을 위해 기도할 때이고
통일준비를 위해 기도할 때이다.
우리 나라만을 위해서,
우리 교회의 성도들의 안전만을 위해서 기도할 정도의 사태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영혼의 무게는 지역과 상관 없이 똑같다.
우리와 악감정을 가진 민족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하나님은 니느웨가 회개 하기를 바라시고
회개 가운데 구원받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북한이 회개 하기를 바라시고 북한의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그 땅에 있기 때문이다.
그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면,
북한선교를 감당하는 자랑스런 크리스천이라면
탕자의 형과 같은 마음으로 창기들과 놀아난 불쌍히 여길 것 없는
파렴치한 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아버지의 심정으로 맨발로 달려나가 그들을 끌어안는 모습이 필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살아가는 영혼에게는
어렵다고 회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 일은 오직 한 가지...통일준비와 기도뿐이다.
실제로 우리 통일선교회가 일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우리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도함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하게 기도함으로,
긍휼의 심정으로 간구함으로 주님께서 일하셔서 그 땅을 고치시고,
그 땅을 치유하시기를 구해야 한다.
우리 맘 가운데 강팍함을 제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인 긍휼의 마음으로 그 땅을 바라보면서
고통받는 영혼들, 죽어가는 영혼들, 이산가족의 사망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부모 형제조차 생사를 알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영혼들,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품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에 퍼준다고 비난하는 목사님들이
있다는 현실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한 강팍한 심정이 아닌가?
북한땅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이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 땅의 영혼들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눈물로 간구해야 할 때이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이 땅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가 이제 우리의 상처를 넘어서서
북한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품고 기도할 때이다.
북한의 고난은 결코 북한만의 고난이 아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해 왔을 때 그 피해가 우리만이 아닌 자신들에게 오히려 더 큰 손해를 일으킨 것과 같이
우리 나라와 정치, 경제적으로나
영적으로 결코 무시하거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땅이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큰 상급이 되어질 땅이다.
그들이 많이 고통당할 수록
그 고통의 여파로 분명히 우리에게도 큰 생채기를 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속히 복음으로, 민족통일로, 회복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일이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일어나 북한을 위해
우리 땅, 우리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먼 나라와 이웃나라 백성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들을 품도록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우리는 넓은 땅덩어리보다 더 크고 깊은 믿음으로 북한땅의 상처를 품어낼 때이다.
마치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아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보아주듯이 말이다...
감리교 성직자와 장로들은 진정으로 반성하고 합덕교회 분쟁, 예산지방 분쟁 등이
다시는 발생하지 못하도록
교회별 정관과 회의록 작성법 등
기초교육과 임원교육과 소통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노력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