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장판 위의 딱정벌레』 (최성호 작사/작곡)는 「인순이」가
1987년 발표한 음반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에 수록된 타이틀
곡입니다. 도입부에 '스페니쉬(Spanish) '음악이 연상 되는 기타
소리, 이어지는 익숙한 뽕짝 기타 리듬.....
일단 가창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순이」의 목소리도
좋지만, 뽕짝 리듬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나른한 서정미와
이국적인 기타의 멜로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구성 등 흠잡을
데가 없는 곡입니다.
"깊은 우물을 오래 들여다보니 거기에 '아라베스크 무늬'가 그려
지는 것과 같은 들을 수록 깊은 맛이 우러 나오는 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톱 클래스(Top Class)에 속하는
「인순이」가 부른 오리지널 곡 중 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 곡이
오래 남겨지지 않았다는 점이 한편으로 의아 하면서도,
염세적 퇴폐미가 그윽한 이 '저주 받은 명곡'이 사람들의 기억 속
에서 사라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에레나》는 「인순이」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전 모습입니다.
딱정벌레의 몸 빛깔은 검은색이죠. '검은색 딱정벌레'가 황색 비닐
장판 위에 있습니다. 검은색 피부의 《에레나》는 황색 피부의
사람들 앞에 노출되어 그들의 손가락 질을 받습니다.
그래서 《에레나》는 세상으로 나가기 싫어하고,하루 종일 공상
(空想)만 합니다. 《에레나》는 자신의 처지를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딱정벌레에 투영(投影)시킵니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지요.
딱정벌레는 《에레나》를 위로합니다.
"울지 마요 예쁜 얼굴/예쁜 화장이 지워져" 이 대목에서 「인순이」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물기가 묻어 납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사랑 받는 「인순이」도
《에레나》인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딱정벌레와
얘기하던 시절이었죠. 그 절대 고독의 세월을 이겨 냈기에 ‘국민 가수’
로 설 수 있었습니다.
『비닐 장판 위의 딱정벌레』는 1987년 혼혈의 이야기를 「인순이」가
직접 쓴 소설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의 OST 곡 이었는데 무척
의미 있는 노래고요."
「인순이」는 무대가 있었기에 화려한 조명 아래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관객이 있는 모든 무대는 규모와 장소를 막론하고 소중
합니다. 그녀는 "난 혼혈이란 뿌리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
스럽게 살았다"며 "난 150% 노력해야 사람들이 80-90%를 알아줬다.
많이 넘어져 보니 어떻게 넘어 져야 덜 아픈지, 빨리 일어나는지
알겠더라. 이젠 90% 노력하면 120%를 알아 준다"고 말했습니다.
"《에레나》는 내 우울한 유년 시절, 어두웠고 어려웠던 시절에
자화상(自畵像)이기도 하고 나를 온갖 속박으로 부터 의식의
자유로움으로 인도케하는 황금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 「인순이」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음반 뒷면의 자서(自書)중에서.>
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인순이」의 자서전(自敍傳)적인 음악은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1987)입니다. 이 음반은, 「인순이」 가
초안을 쓰고, 이 앨범의 작사자가 정리한 소설 한 권과 짝입니다.
"주인공인 혼혈아가 편견(偏見)으로 점철되던 한국도, 아버지가
있는 미국도 자신의 조국(祖國)이 아니라는 깨닫고 자살(自殺)한다"
는 비극적 내용의 소설을 따라가며 노래화 된 음반입니다.
말하자면 이 음반은 소설의 '사운드 트랙'이자 '컨셉 앨범'인 셈
입니다. 이 음반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되며 추앙(推仰)
받은 음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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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에레나' 무얼 하나
종일도록 멍하니 앉아 어떤 공상 그리할까
시집가는 꿈을 꾸나 돈 버는 꿈을 꾸나
정말 '에레나'는 바보 같아
오늘 하루 일어날 일 딱정벌레야 너는 아니
비닐 장판 위에 딱정벌레 하나 뿐인 '에레나' 친구
외로움도 닮아가네 외로움이 닮아가면
어느 사이 다가와서 슬픈 '에레나'를 바라보네
울지마요 이쁜 얼굴 이쁜 화장이 지워져요
이 낮이 가면 마음은 설레이네
둥근 골목마다 사랑을 찾는 외로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