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낯선 일본. 배우인 남자는 광고를 찍으러, 신혼 2년차인 여자는 사진사인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왔습니다. 사소한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일본생활이 어색하고 불편한 남자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남편을 무료하게 호텔방에서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여자는 며칠동안 시간을 함께 합니다. 마치 환영받지 못한 손님처럼 쭈삣쭈삣 서성거리다가 비로소 속마음을 꺼낼 말상대를 찾은 셈이죠.
사실 일본은 "삶이란 무대"에서 역할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두 사람의 처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 볼 수 있겠네요. 둘은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 탓에 가까워진 잠깐의 말상대가 아니라, "삶이란 항해"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가 혼란스러워 노를 젓지 못하는 타이밍에 만난 동료이자 벗에 가깝고요.
그랬던 그들은 짧은 동행이 어정쩡하게 끝이 납니다. 사랑에 닿을 듯 아닐 듯 모호한 관계에서 마침표 대신 말줄임표를 남기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네요. 그렇게 남자가 모든 일정을 끝내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치 않게 택시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하네요.


그러자 남자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그녀의 뒤를 쫓는 남자의 발걸음이 인상적입니다. 그녀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거나 주저하는 망설임은 전혀 없기에 성큼성큼 내딛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연인을 급하게 붙잡으려는 것처럼 뜨겁지는 않습니다. 둘의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둘의 관계가 사랑은 아닌 그 미묘한 지점이 여자를 쫓는 남자의 어중간한 속도에! 남자가 여자를 부르는 "Hey, you!" 라는 어중간한 호칭에! 그렇게 묻어납니다.
짧은 포옹을 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귓속말을 남깁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내용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참 손끝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엔딩이지요. 낭만적이면서도 "차라리 속 시원하게 들려줘!"라고 궁시렁거리게 만듭니다. 영화에 밀착하고 호응하며 덥혀진 마음에, 이런 투덜거림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잔열처럼 퍼져 더욱 오래 온기를 남기겠지요.


남자가 남긴 귓속말이 무엇이었는 지는 알 수가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남자가 마침내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했다는 점이겠지요. 그들이 서로 같은 마음이었음을 짧은 포옹과 키스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단 한번의 완벽한 소통이 평생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주춧돌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 전까지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양 방황하며 수동적으로 흘러가기만 했던 가벼움을 털어내고, 힘찬 발걸음으로 둘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니까요. 그렇게 사랑은 왔다가 갔고, 둘은 변했네요.
영화는 남자를 태운 택시가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일본어 표지판을 쭉 화면에 담습니다. 이 엔딩의 의미는 아마도 우리의 삶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싶네요. 낯선 외국땅을 걷는 것 같은 어려움과 난감함을, 우리는 인생길을 나아가며 견뎌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택시의 시선을 비추며 "이렇게 살면 된다. 말해주는 통역이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 싶네요. 영화 속 두 남녀의 만남처럼 우리에게도 찾아오는 좋은 인연이 긴긴 인생길 동안 꺼지지 않는 연료가 되어줄 테고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일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담담한 이별을 한 남자는 뜬금없이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립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였으나, 시간을 흐르는 동안 조금씩 사랑의 크기는 깎여나가고 사랑의 온도도 식어가기 마련이기에. 그렇게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의 사그라듦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을 마주하여,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 남자가 그 슬픔을 쏟아내는 대사입니다.
마지막 불씨마저 새하얗게 다 태워버린 사랑은 그렇게 영영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그녀를 정말 사랑하였기에 다시는 볼 수는 없을 테지요. 온 마음을 다해 함께 하였던 사랑은 이별조차 너무 소중해서 건드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영화는 이별한 여자의 일상을 담담히 쫓습니다. 처음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는 자포자기하여 엉망진창이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는 모습이나 깨끗하게 정돈된 집안의 풍경에서 이제는 그녀가 단단하게 세상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헤어졌지만, 그녀는 "사랑이 머물렀던 순간들"을 지나 성장했습니다. 더 이상 호랑이 같은 두려움도 깊은 해저에 갇히는 절망도 물고기처럼 세상을 헤엄치며 살아갈 그녀에게 달라붙지 않을 테니까요. 사랑은 왔다가 갔고, 조제는 변했네요.
이런 그녀의 변화가 바로 영화가 전하는 "사랑의 가치"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별을 "사랑의 실패"로만 여기며 날카롭게 마음에 상흔을 남기는 흉기로 규정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서 지워내고 찢어버려야 할 흔적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끝나버린 사랑"이 주체할 수 없는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에 고이 품을 수 있는 소중함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요. 사랑의 가치는 이별했다고 다 허무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지금의 나"로 남겨지는 셈이니까요.

[만추]


시애틀의 짙은 안개로 흐릿한 날씨. 낙엽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빛깔을 띈 남녀의 코트. 그렇게 고요하기 보다는 적막하고, 차분하기 보다는 가라앉은 공기에 휩싸인 배경 속에서 그들은 키스를 나눕니다. 외로움이 절정으로 무르익은 계절. 만추(滿秋)에 어울리는 사랑입니다.
감옥에서 복역 중에 모친상으로 잠시 외출을 나온 그녀는 자신을 외면하는 가족과 예전 애인을 만나며, 세상에 덩그러니 버려진 듯한 외로움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당장 거대하게 덮쳐오진 않지만 섞어버린 뿌리 끝이 잔잔히 삶 전체를 퍼져가는 듯한 고통이지요. 그 외로움의 고통에서 여자를 구해준 것이 바로 남자입니다. 외로움이 침범하려는 자리에 자신을 대신 채워주는 것. [만추]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전하네요.
사실 그렇지요. 인생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 동안 우리들은 때때로 넘어지고 좌절하기 마련이고, 분명 그때마다 끝내 홀로 일어서야 하겠지만! 외로움이 꺾어버린 의지는 오로지 체온 닿을만큼 곁에 머무는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둘의 키스는 이별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알고서 그녀에게 사랑을 가장 확실히 전해주는 장면이거든요. 그런 남자의 키스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마지막 남자가 전한 귓속말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랑이지만 둘에게 허락되는 것은 이별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순간 제대로 꽃피운 사랑은 계속해서 이후의 삶을 충만하게 채우게 되네요.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두 남녀처럼, 외로움에 무너졌던 [만추]의 그녀도 자신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출소한 여자는 약속했던 카페에서 남자를 기다립니다. 영화가 직접적으로 알려주진 않지만, 아마도 여자는 남자가 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자의 표정과 희미한 배경음으로 암시를 해줬거든요. 그녀를 일으켜 세운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을 테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며 작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 미소. 세상 그 어떤 지저분한 찌꺼기가 삶을 얼룩지어도 다 정화시켜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먹먹하고 따스한 미소를 여자는 가졌네요. 그녀는 남은 것이 차갑고 혹독한 겨울 뿐이었던 가을의 절정 만추를 지나 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은 왔다가 갔고, 그녀는 변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