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2
부패카르텔 수단 된 ‘불체포특권’… 일상적 방탄국회로 후진정치 추락
‘부당한 권력행사로부터의 보호’ 취지 오간 데 없어… 중범 혐의받는 의원 방탄용 반칙 도구로
선진국, ‘특권 완화’ 법제화 추세… 권력형 부패를 체포동의안 대상서 제외하는 ‘합리적 제한’ 필요
각종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회 불체포특권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3·9대선 패배 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때 이미 불체포특권을 염두에 둔 ‘방탄용 출마’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었다. 평소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부르짖어온 이 대표는 최근 자신에 대한 수사 국면에서는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고, 민주당 내부도 체포동의안 부결 분위기가 강하다.
입법부와 국회의원을 부당한 행정적·사법적 침해로부터 보호하려는 불체포특권은 지금 한국에서 부패 정치인의 보호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탄국회가 일상화하면서 후진국형 부패·특권 카르텔이 점차 악의 모습을 드러내는 형국이다.
◇ 기원과 정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헌법 제44조에 규정돼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
불체포특권은 1603년 전제군주에 맞선 영국 의회의 ‘의회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에 명문화됐다. 이후 1788년 미국 연방헌법 제1조에 규정되면서 각국의 헌법상 제도로 발전해온 민주주의 정치의 오랜 전통이다. 한국은 1948년 제헌헌법에 불체포특권이 규정된 이래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행정부의 ‘부당한 권력 행사’로부터 국회의원을 보호함으로써 의회의 정상적인 기능이 이뤄지도록 하고 ‘의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취지를 고려해 해외에서는 의정활동의 목표·기능과 무관한 경우 불체포특권을 완화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은 1967년 의회 특권특별위원회의 ‘폐지 권고’ 이후 불체포특권을 약화해 왔고, 일본은 헌법상 우리와 유사한 규정을 갖고 있으나 국회법으로 불체포특권을 제한하고 있다. 독일도 공동정범·범죄 후 은닉자 등에 대해서는 불체포특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형사사법 절차를 방해하고 구속 혹은 체포를 막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거나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는 찾기 힘들다.
◇ 반칙이 된 특권
1948년 이후 한국에서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은 총 65건이 제출됐다. 가결과 부결이 각 16건, 나머지 33건은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역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던 16대 국회(2000년 6월~2004년 5월)에선 총 15건 중 부결 7건, 폐기 6건, 철회 2건으로 가결률은 0%였다. 직전의 15대 국회(1996년 6월~2000년 5월)에선 총 12건의 체포동의안 중 1건이 부결됐고 나머지 11건은 모두 폐기됐다.
문제는 특권의 남용이다. 논란의 핵심은 불법정치자금 수수, 권력형 부패와 같은 반사회적인 부정·비리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이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지난 2003년 SK그룹 비자금 100억 원을 지하주차장에서 넘겨받는 등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여야 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무더기로 부결됐었다. 2004년에는 한화 그룹으로부터 10억 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불법정치자금으로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서청원 의원에 대한 석방요구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구속 12일 만에 풀려난 일도 있었다. 최근엔 자택에서 출처 불명의 현금 3억 원이 발견된 노웅래 민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지난해 말 부결됐다.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속하지 못한다’는 헌법 규정을 악용한 ‘방탄국회’도 오랫동안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1999년 서상목 의원이 관여한 국세청 불법 대선자금 모금 관련 ‘세풍’ 사건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7개월간 5번의 방탄국회를 열었다. 이재명 대표를 보호하려고 회의 한 번 하지 않는 임시국회를 연 민주당의 방탄국회도 지금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 불발된 개혁
지난해 대선 시기 이재명 후보는 10대 공약 중 하나로 ‘중대범죄에 대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약속했다. 지난해 1월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위원장 장경태)는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되는 즉시 의결하고 반드시 기명투표로 표결하도록 하는 안을 개혁 방안으로 제시했다. 당시 민주당은 “기명투표로 방탄국회 논란을 없애고, 억울하거나 당당하다면 검경 수사에 협조해 충분히 소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개혁안 제안 취지를 설명했다.
2016년에는 민주당의 원혜영 의원이 박홍근·조정식·민병두·안규백 의원 등과 함께 제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불체포특권 남용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체포동의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고 기간 경과로 폐기되도록 방치해온 폐단을 막기 위해 일정 요건 아래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되도록 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선거 때마다 나온 불체포특권 개혁 공약이 늘 공염불로 끝났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불체포특권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후보도 “낡은 구시대의 관행에서 탈피해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가 요구되고 있다”며 특권을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대한변협이 비리 의원들의 보호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불체포특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한 건 2004년의 일이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2018년 당시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체포동의안 표결을 기명투표로 전환하는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최근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 합리적 제한
불체포특권은 입법권의 중요성을 고려해 국회의원을 부당한 외적 침해로부터 보호하려는 제도이지, 범죄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수단이 아니다. 이 특권이 특정인이나 정파 이해관계에 따라 남용됨으로써 이제 존재의 이유조차 의심받게 됐다. 방탄국회는 일상화됐고 후진국형 ‘부패·특권 카르텔’ 정치의 상징이 됐다.
불체포특권은 합리적 범위에서 제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백한 개인 비리나 권력형 부패에 대해서는 체포동의안 대상에서 제외하고, 75년째 내려오고 있는 비공개 투표 방식을 기명투표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종민 /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문화일보
■ 용어설명
‘의회특권법’은 부당한 외부 간섭으로부터 의회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영국 법. 1512년 표현의 자유를 지킬 권리에서 시작돼 1603년 불체포특권으로 확대되고 1689년 권리장전으로 일반화.
‘미국 연방헌법 제1조’는 ‘의원은 반역죄나 중죄, 평화 훼손 행위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에 체포되지 않는다’고 규정. 하지만 ‘중죄’의 경우 체포할 수 있도록 해 방탄의회로 기능하는 것을 막음.
■ 세줄요약
기원과 정신 : 불체포특권은 영국 ‘의회특권법’ 제정과 미국 연방헌법 명문화를 거치면서 민주주의 전통이 됨. 부당한 권력행사로부터 의회를 보호하려는 것. 하지만 선진국은 특권의 제한·완화를 추진하는 추세.
반칙이 된 특권 : 한국에서는 불체포특권이 부정부패 등 중범 혐의를 받는 의원 방탄용으로 도구화함. 이를 통해 후진국형 부패·특권 카르텔이 점차 강화하는 형국. ‘이재명 수호’를 위한 민주당의 방탄국회도 반칙임.
합리적 제한 : 선거 때마다 나온 불체포특권 개혁 공약은 늘 공염불로 끝남. 불체포특권은 합리적 범위에서 제한돼야. 권력형 부패에 대해서는 체포동의안 대상에서 제외하고 기명투표를 도입하는 것 등이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