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야 잘 자라' 작곡에 얽힌 이야기 http://www.chogabje.com/
조갑제
1950년 10월은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으로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듯 하던 시절이었다. 가슴 설레던 그해 10월의 나날들을 떠 올리면 자동적으로 되살아나는 멜로디가 바로'전우야 잘 자라'. 작사가 유호(본명 유해준·77)는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가 한 강을 넘지 못하고 적치하에서 숨어서 살았다. 그는 9·28수복 뒤 신문사로 나갔다.
전우야 잘 자라 박시춘 작곡 유호 작사 현인 노래
1절.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유호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북진 장병의 주제곡이 되었던 이 노래는 중공군의 침입으로 후퇴할 무렵에는 육본에 의해서 금지곡이 된다. 육군에서는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란 대목이 불길하다는 것이었다. 휴전 이후에 이 노래는 복권되었다. 한편 국군은 인민군 포로들을 잡으면 '신라의 달밤'을 불러보게 했다. 부를 줄 아는 포로는 남한에서 동원한 의용군, 못 부르는 포로는 진짜 인민군으로 분류되는 수도 있었다. 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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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1945 경북 청송출생 /부산고등학교 졸업 하버드대 연수 / 부산국제신문 수습기자 /월간마당 취재부장,/ 조선일보 월간조선 (독립법인) 편집장 대표/ 조갑제 닷컴 대표 / 저서 박정희 전기 13권외 |
출처: 오태환의 그림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나이스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