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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素女소박한 여인) 1
- 여강 최재효
30년만의 꿈이 현실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힘차게 용솟음치면서 굉음을 내고 있다.
약 10분 정도 비행기의 머리 부분이 15도로 치켜들고 경사를 유지하면서 비행기동체와 승객들은 숨을 죽인 채 일체가 되었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고도에 접어들었으니 안심하라는 기장(機長)의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다행히 창밖에 있는 좌석이어서 마치 신선이나 선녀들이 살 것 같은 꿈속 같은 구름나라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그녀의 나라 유력 신문과 방송국 홈페이지를 수천 번도 더 들락거렸다. 30년 전의 인연을 도저히 그냥 한때의 추억으로 묻어버릴 수 없었다.
하얀 피부와 모나리자의 미소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의 저편에 묻어버린다면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스튜어디스가 천천히 다니며 승객들에게 음료수를 따라 주고 있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알코올만한 것이 없다.
한 달 전 그녀의 나라 유력 신문기자 T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려야 했다. 그레실은 Q시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근무 중이라고 하면서 간신히 찾았으니 만약 자신이 한국에 가거든 크게 한턱 쏴야한다고 T는 너스레를 떨었다. 이전에도 T는 서울에 서너 번 다녀갔다고 했다. 또한 최근에 그녀의 병원까지 찾아가서 촬영한 그녀의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첨부물로 보내 왔다. 그녀의 모습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때 그녀에게서 온 편지와 사진을 보여주면 신기해하면서도 혹시 막내아들이 국제결혼을 하여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며느리를 맞는 게 아닌가 하시면서 은근히 걱정하시곤 했었다.
두서너 달마다 배달되는 국제 우편물에 어머니보다 아버지께서 더 좋아하셨다. 영어를 모르시는 아버지는 막내아들에게 그녀에 대한 내용을 꼬치꼬치 여쭤 보시곤 했다. 아버지 역시 막연하나마 외국인 며느리를 기대하시는 눈치였다. 칠 남매 중 나는 가족들에게 대학가면 외국어를 전공하여 세계를 안방 드나들 듯 할 거라고 공표를 해놓은 상태였다.
“손님, 어떤 걸로 드릴까요?”
카트를 앞에서 끌며 스튜어디스 아가씨는 상냥하게 웃으며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배시시 웃는 모습이 큰 딸과 비슷하다. 4-5년 후 큰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큰 딸의 희망이 세계 굴지의 항공사에 입사하는 것이다.
“코냑 한 잔 마실 수 있어요?”
스튜어디스 아가씨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님, 먼저 손님들께 음료수를 드리고 난 뒤 갔다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죠?”
아가씨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국으로 주는 대로 먹지 뭘 특별한 걸 찾느냐?‘하는 무언의 항의가 담겨 있었다. 선임인 듯한 스튜어디스 아가씨가 레미 마텐에 레몬조각을 띄워 언더락스 잔 가져왔다.
“고마워요. 좋은 인연이 되길 빌어요.”
“......”
아가씨는 나의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에 얼굴이 빨개졌다. 나의 인연이란 세상 사람들이 이미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6시간 만에 P국에 도착했다. 4월 말이지만 아스팔트에서 후끈 달아오른 열기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국제공항이라고 하지만 인천공항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비좁고 낙후 된 시설물들이 P국의 경제사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미리 국내 여행사를 통해 3일간 묶을 호텔과 일정을 대충 잡아 놓았다. 여행사의 다른 여행들과 오고 가는 항공편과 숙박 장소만 같고 나머지는 나 홀로 여행이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에게 나의 사정을 말하자 본국에서 이미 연락을 받았다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나라보다 치안이 좋지 않고 특히 한국인들은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이유로 현지 소매치기나 강도들의 가장 손쉬운 표적이라고 귀띔했다. 호텔에 도착한 뒤 바로 T에게 전화를 걸었다. T는 이미 내가 묶을 호텔을 알고 이미 라운지에 도착해 있다고 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아 기본적인 일상생활 대화는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라운지로 내려갔다. 몇 차례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은 사진에서 금방 T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늘색 와이셔츠 차림의 T역시 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죽마고우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저녁 시간이지만 T와 M시내 한국인 식당을 찾았다. 이미 상당히 많은 동포들로 식당은 북적였다. 준비해 간 팩 소주를 내놓으면 소주 자랑에 침을 튀겼다.
“자, 건배!” T는 일방적인 나의 건배 제안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자신의 나라를 찾아 온 나를 극진히 대접하려고 무척 애쓰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식당에 오면서부터 그레실에 대한 소식을 기대했었지만 T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주 서너 팩이 비워지자 T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미스터T, 그레실은 어찌 된 거에요? 그녀와 함께 나올 줄 알았는데.”
그녀는 보통 밤 10시가 되어야 퇴근한다면서 퇴근하면 바로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밤 10시면 아직도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T는 최근 한국에 연수 간 자국민이나 시집간 여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매를 맞거나 구타를 당해 죽임을 당한 사건이 종종 발생하여 한국에 대한 국민 정서가 좋지 않다고 했다. 특히 한국인만 노리는 갱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되도록 많은 현금을 몸에 지니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T의 말을 듣고 그레실 역시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은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주던 나라였다. 그 나라가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추락하면서 우리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뒤 떨어지지만 자존심만은 굉장해 보였다.
3시간 동안 술만 마실 수 없어 대충 저녁 식사와 소주로 배를 채운 다음 T에게 시내 관광을 부탁했다. 시내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나는 이곳이 서울의 어느 번화가쯤이라고 착각하였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쇼핑센터 그리고 나이트클럽 주변은 몽골계통의 혈통을 지닌 사람들로 만원이 었고 어떤 호객꾼은 나를 보자 서툰 한국말, 일본말, 중국말로 좋은 곳이 있으니 가자며 유혹 하였다. 시장경제의 활황과 성공을 만끽하는 극동 아시안들이 순박한 이 나라 사람들을 망쳐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시내 야경은 그런대로 볼만 했지만 쇼핑몰에 진열된 상품은 모두 서양이나 중국, 일본제품들 일색이었고 한국산은 가전제품과 휴대전화가 눈에 많이 띄였가. 가까운 공원에 앉아 가방에 있던 소주와 오징어를 꺼냈다. T는 한국에 갔을 때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 기절하기도 했다면서 웃었다. 공원에는 중국계와 현지인들이 나와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무척 행복한 표정들 이었다. 늘 인상이 무표정하거나 무거운 한국인들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가져 온 소주 팩이 거의 동이 날 때 쯤 T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레실이 정규 퇴근 시간 보다 빨리 병원을 나와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오고 있다고 했다. T는 그녀를 호텔 라운지로 오라고 했다. 우리는 얼른 오던 길을 바삐 걸었다. 30년 전 이어진 인연과 만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면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처음 그녀를 만나면 인사부터 나에 대한 소개 그리고 내가 왜 왔는지에 대한 소개말을 영어로 적어 달달 외웠지만 막상 그녀가 나를 만나기 위하여 오고 있다고 하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T를 라운지에 먼저 가 있으라고 하고 나는 얼른 객실에 들러 회색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한국에서 준비해 간 선물을 챙기고 다시 라운지로 내려갔다. 라운지 저쪽 끝에서 T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대략 40여 미터 쯤 되는 거리였다. 갑자기 양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얘, 그럼, 나는 외국인 시어머니가 되는 거니?”
“허허허허, 우리 동네 외국인 며느리가 들어오겠구나?”
순간 아버지 어머니께서 그레실의 사진과 선물을 보시면서 미소 짓던 일이 생각났다.
30년 전의 빛바랜 추억의 편린들이 일시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얼마 있다 대구에서 군대 생활 하는 동안에도 나는 늘 그녀의 사진을 지니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군에 입대하면서 나와 그녀의 인연은 끝이 나는 것 같았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과 동시에 선을 보러 다녔다. 형수, 누님들, 주변의 친인척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처녀들을 소개했다. 그때마다 나는 선보는 아가씨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내 앞에 앉아있는 여인이 그레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했었다.
우연히 나와 사상이 같고 이야기가 통하는 여인과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도 나는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그녀에 대한 애틋함이 점점 더해갔다. 만약 그녀의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무난히 진입했더라면 아마도 그녀가 나를 보기 위하여 서울에 몇 번 다녀갔을 수도 있을 법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나와 그녀 사이에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었다.
40여 미터가 십리 되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그녀는 노란색 투피스에 연한 녹색 블라우스를 입고 붉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생머리에 하얀 얼굴의, 사진에서 늘 보았던 그녀였다. 굉장히 지성적이면서 도회지풍의 여인이었다.
30년 전 그녀의 사진을 처음 받아들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몇날 며칠 상상의 나래를 펴가며 향학열을 높였다. 먼 훗날 내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무역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하는 것이었다. 무역학과를 나오면 무역회사에 취직해 세계 각지를 누비며 기회가 되면 그녀의 나라를 찾아가 그녀를 만나 사랑을 꽃피우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어를 잘해 그녀가 사는 나라에 유학을 가거나 그녀의 나라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위하여 그녀의 나라를 방문하면 자연히 그녀와 가깝게 될 것이라고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그녀에게 거의 다가갔을 때 그녀와 T는 얼른 일어나 나더니 그녀가 나에게 두서너 발짝 다가왔다.
그녀는 30년 전의 인연을 처음 면전에서 만난다는 감격에 활짝 웃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믿기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좌우를 흔들며 나에게 시선을 맞추느라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오우, 미스터 C, 반가워요. 그레실 터그방이에요.”
그녀는 30년 전 나와 펜팔을 하면서도 자주 한국말에 대하여 인사하는 방법이라든가 한국의 풍습에 대하여 물어오곤 했다. 그때 마다 나는 정성을 다해 편지를 통해 한국말을 가르쳤고 한국어 회화 책과 한국 풍습에 관한 많은 책자를 보냈다. 나는 그녀가 하얀 손을 내밀자 그만 콧등이 찡해 왔다. 눈물이 많은 나는 잘못하면 사내답지 않게 처음 만나는 외국 여인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 했다.
‘아아, 한국에서 비행기 타면 6시간 밖에 안 걸리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이렇게 예쁜 여인을 두고 내가 그동안 무엇을 찾아 헤맸단 말이냐?’
“아이엠 미스터C, 해피 투 미투 유”
“오우, 우리 그냥 한국말로 해요.”
그녀는 약간 어눌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보였다.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잡고 나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있었다. 입 안에서 여러 가지 영어표현들이 뱅뱅 돌았지만 선뜻 내 뱉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자 T가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녀와 내가 한 동갑이니 그녀도 중년이어야 했지만 30대 초반의 섹시한 미시의 모습이 나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했다. 눈가에 잔주름 하나 없고 배시시 웃는 가지런한 하얀 치아에서 건강관리를 무척 잘 했을 거란 짐작이 갔다. 핑크색 립스틱이 엷은 초록과 갈색 생머리에 무척 잘 어울렸다.
나는 지금 이 현실이 꿈이 아니길 바랐다. 그녀 역시 나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얼굴을 왼쪽으로 돌리며 조용히 눈가를 닦고 있었다. 순간 나와 T는 숙연해졌다.
나는 얼른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났다. 그녀가 조용히 눈물을 찍어 내고 있을 때 나 역시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었다. 화장실에 들어오자 T가 급히 나를 따라오더니 갑자기 나더러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려보내도 좋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원 나잇 스탠드 같은 방식의 남녀들 애정행각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오우, 노노. 나는 한국에서 일부러 그녀를 보려고 왔어요. 절대로 이대로 돌려보내면 안 돼요. 그녀를 만나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나는 겁니다. 얼른 가서 내가 금방 올 거라고 하세요. 미스터T, 얼른요.”
"오우케이."
호들갑을 떨며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T의 허둥대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테이블로 다시 돌아갔을 때가지 그녀는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내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자고 제의하자 T는 싱가폴슬링을 주문했고, 그레실은 카카오피즈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페파민트를 주문하면서 카카오피즈와 페파민트에 보드카를 1/2온스 가미해 달라고 했다. 얼굴이 약간 상기된 그녀가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른 그녀에게 오른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씽긋 웃으며 내 손등에 키스를 했다. 순간 나의 양 볼이 화끈 달아 올랐다.
“오오, 탱큐 베리 머치, 그레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 어쩔 줄 무르는 나를 보자 T는 배꼽을 잡았다. 나는 T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T는 못 본체 하고 박수까지 쳐가며 즐거워했다. 방금 전까지 촉촉해 있던 그녀의 눈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에게 손을 잡힌 채 나도 그녀의 두 눈동자를 유심히 보았다. 갈색 눈동자에 내가 그만 빨려 들어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디스 이즈 마이 기프트.”
내가 한국서 준비해 온 예쁜 복주머니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문양의 복주머니를 보더니 그녀는 신기한 듯 바라보며 살며시 받았다.
“프리즈, 오픈 댓.”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떡거리며 어서 풀어보라고 의사를 전달했다. 복주머니를 풀더니 그녀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우, 제이드 링! 미스터C, 원더풀, 원더풀. 아이 러뷰 유어 컨츄리 엔드 컬춰.”
나는 서울 떠나기 전날 종로의 귀금속 가게를 돌며 그녀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비취반지 한 쌍을 선물하기로 했다. 한국적인 것이 그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 일 것 같았다. 쌍가락지 비취반지를 고르면서 그녀의 손가락 사이즈를 몰라 내 손가락 보다는 약간 작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구입하였다.
“그레실과 그대 남편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요.”
“오오, 원더풀. 원더풀. 미스터C."
T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반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반지를 선물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부부의 연을 맺거나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하여 주는 선물이지만 나는 이런 저런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30년 전 주고 싶었던 선물을 30년이 지나서 준다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의 선물을 받은 그레실은 약간 들뜬 기분이었다. 내가 하는 말끝마다 오버 액션을 취하는가 하면 얼굴은 웃고 있었다.
페퍼민트 한잔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나서야 떨리던 가슴이 진정될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에는 짙은 우수(憂愁)가 배어 있었다. 태어난 나라가 틀리고 가정이 다르고 환경이 전혀 다른 두 문화권의 남녀의 만남은 전혀 어색하거나 이방인들의 해후는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하면서도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대를, 그대를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어떤 날은 한국영화 비디오를 하루 종일 보기도 하면서 그대를 상상해 보았어요.”
그녀는 어렵게 말을 마치고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갑자기 나를 보자 눈물샘이 터진 것인지 나는 약간 의아해 했다. 나를 한번 바라보고 그레실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눈 가장자리로 가져갔다.
‘당신 남편은 몇 살이고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몇 명의 아이들을 두었으며 그동안 나를 얼마나 자주 생각했었어요? 한국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혹시 한국에 와 본 적은 있어요? 당신은 30년 전 나에 대하여 얼마나 호감을 가졌었나요?’
내가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면 금방 입에서 속사포처럼 나올 법 한 질문들이었다.
물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할 뿐 내가 의도한 내용은 꼭 영어로 만들어 의사를 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띄엄띄엄 영어를 구사하는 나는 보면 그녀가 얼마나 답답해 할까.
“그레실, 남편과 아이들은 잘 계시지요?”
“......”
“그레실, 가족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요?”
“가족? 오우, 마이 패밀리?”
“예스, 유어 패밀리?”
“아임 매리드 밭 해브 노 칠드런.”
‘아이들이 없다고?’
내가 자신에게 질문공세를 펼 것을 미리 짐작이나 한 것처럼 그레실은 정색하더니 약간은 어색하지만 한국말로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그동안 서울에 두 번 다녀왔어요. 그때마다 당신을 찾으려고 우리나라 대사관에 협조를 구했지만 당신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어요. 그리고 나는 30 중반이 되어서 결혼을 하였어요. 혹시 하고 서울에 갈 때마다 당신에 대한 아련한 마음과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아쉬움을 금할 길 없었어요. 저는 병원 소아과 의사로 재직하고 있어요. 나는 30년 전 당신이 나에게 한 약속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약속?’
나는 30년 전 내가 내손으로 써서 보냈던 편지의 내용을 생각해 보았다. 2년 동안 나는 100여 통의 편지를 그레실에게 썼고 그녀는 90여 통의 답장을 보내왔다. 물론 내가 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었고 편지 내용 또한 상당히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30여년 이 지난 100여 통의 편지가 모두 기억날 수는 없었다. 분명 내가 그레실에게 ‘사랑한다.’, ‘언젠가 그대를 만나기 위하여 찾아 갈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 것도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나에게 기억을 환기하도록 요구하는 그 ‘약속’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레실, 그 약속이 혹시?”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그녀가 먼저 이야기 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먼저 그 약속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은 지난 30년 동안 내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지조를 지켰는데 느닷없이 내가 그 약속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눈물을 뿌리고 미련 없이 일어서서 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왜 이제 오셨어요? 나는 당신이 보내 준 사진을 보며 지금도 당신을 그리고 있었답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여러 장의 투명한 지갑 갈피에서 빛바랜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지갑을 가까이 가져다 눈 가까이 대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련복을 입고 찍은 내 사진이 그곳에 있었다.
‘아아, 내가, 내가 이 여인의 지갑 속에 있다니?’
나는 그만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그만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최근 T에게서 내가 그녀를 만나러 온다니까 앨범이나 어디 처박혀 잠자고 있던 내 흑백 사진을 찾아 지갑에 끼워 넣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자 T가 얼른 손수건을 꺼내 나에게 건네 주었다. 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 고교시절의 흑백 사진을 외국 여인 지갑 속에 있었다.
“그레실, 아직도, 아직도 내 사진을 ......”
“나는, 당신 사진을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보아 왔어요. 잘 생긴 당신 얼굴, 여인을 사로잡는 순한 미소,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말한......”
“내가 당신에게 말한?”
나는 잠시 다시 한 번 머리를 짜보았다. 30년 전 펜팔 내용이 모두 기억난다는 것은 기계라도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당신, 나에게 청혼했잖아요? 꼭 우리나라에 오셔서 저와 결혼하시겠다고 하신 말씀 잊지 않으셨지요?”
‘아, 내가, 내가 그레실에게 그런 약속을 했었나?’
“으응, 물론 당신에게 한 그 약속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말고요. 그러나 그 약속을 나는 지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늘 소화 안 된 음식물 찌꺼기처럼 뱃속에 묵직하게 말 못할 그 무엇인가가 남아 있었어요. 그레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경솔한 것 같아요.
용서해주세요.”
나는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서 허리를 반 쯤 굽혔다.
“오오, 노노. 그러지 말아요. 저도, 저도 결혼했잖아요. 이제 와서 30년 전 약속을 들먹거린 제가 죄송해요. 미안해요.”
“그레실, 아니오. 내가, 내가 나쁜 놈이오. 나를 용서해주오.”
“아니에요. 제가 나쁜 여자에요. 좀 더 기다리려고 했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더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어요.”
‘아니, 그러면 이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10년 전 까지도.’
나는 빛바랜 교련복을 입고 찍은 내 사진과 그레실을 번갈아 보면서 눈물을 흐려야 했다. T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가뜩이나 눈물이 많은 탓에 아이들과 TV 연속극을 보면서도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자주 사내가 눈물을 함부로 흘리면 안 된다고 하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 저녁 먹으러가요. 제가 저녁을 준비했어요. 꼭 가셔야해요.”
‘꼭 가야한다? 이건 또 무슨 제안인가?’
“그레실, 어디 맛있는 음식점 있으면 안내해요. 저녁은 내가 사겠습니다.”
“오오, 노노. 파파와 마마 그리고 마이 허스번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응? 아바, 엄마 그리고 남편이 나를 기다린다고?’
“그레실 가족들이 나를 기다린다고요?”
“네에, 우리 가족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지금 외국 여우에게 홀린 건 아니겠지? 아냐, 이건 분명히 현실이야. 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어.’
“그레실, 나는 당신 가족을 전혀 모르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30년 전부터 당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요.”
‘응? 30년 전부터? 거참, 갈수록 묘하네. 도대체 뭐가 어찌된 거야? 차마 나를 어디 으슥한 곳에 가두고 돈을 빼앗으려고 하거나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혹시 이 여인이 정말로 내가 30년 전 펜팔을 하던 여인이 아니고 그레실을 가장한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슬그머니 지갑 속을 열었다. 달러와 페소(Peso)로 환전한 화폐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사관과 대사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확인하였다.
만일 내 앞에 앉아있는 여인이 T와 짜고 어수룩한 한국 남정네를 사기 치기 위한 범죄 조직이라면 나는 하나밖에 없는 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유명 개그맨이 돈을 모두 잃고 몇 년째 이곳에서 고생을 했다는 연예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 대한민국 사나이가 까짓것 이국의 여인을 겁낸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강아지도 웃을 일이야. 암, 그렇고말고. 범을 잡으려면 범굴로 들어가야지. 그래 가보자. 이 여자의 표정을 보아서는 분명히 30년 전 인연을 맺은 그레실 터그방이 분명해. 그리고 T도 이 나라 유명 일간지 기자가 분명하고. 이미 내가 미리 다 알아본 것 아닌가?’
나는 문자로 여행사 가이드에게 밤늦게 들어 올 테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T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뒷좌석에 나와 그레실이 타고 앞에 T가 앉았다. 남국의 밤 향기가 코끝에 전해 졌다. 서울서 느끼던 그런 향기가 아니었다. 어딘가 풋풋하면서도 약간은 비릿했다. 택시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저리 복잡한 도로를 잘도 헤쳐 나갔다. 20여분 정도 달리던 택시는 10층 규모의 아파트 앞에서 멈췄다. 아파트는 도로변에 한 채만 있는데 굉장히 크고 화려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갔다.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멈추자 그레실은 웃으며 나를 문 앞으로 안내했다.
“그레실,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는 우리 파파와 마마가 사는 곳이에요. 그리고 제 남편도 와 있고요. 점심때부터 당신 맞을 준비를 하셨을 거에요.”
‘점심때부터?’
나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로로 빠져드는 느낌이었지만 더 이상 물어 보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일까?’
그레실이 벨을 누르자마자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대한민국~~”
“안-녕-하-세-요?”
“어-소-오-세-요. 화-녕-하-니-다.”
여섯 명의 남녀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거의 그들에게 등을 떠밀리다 시피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면서 나는 또 한 번 놀래야 했다. 거실에 아리랑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자세히 보니 벽에 대형 태극기와 P국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나는 그만 외국인들 앞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파트는 대충 40여 평은넘어 보였다. 고급스러운 가구며 벽에 걸려있는 대형 그림으로 보아 그레실 아버지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오우, 어서 오세요 미스터C. 나는 그레시 아버지입니다. 58년 전 한국에 파병 나갔다 왔답니다.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
그레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수십 번 외국을 드나들었지만 외국인들로부터 이러한 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먼데 나갔다 돌아 온 자식처럼 그레실 아버지와 가족들은 나를 반겼다. 그레실의 여동생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두 자매가 나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거실 한쪽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십 중반의 사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빙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간 그레실의 남편일거라고 생각했다. 반백의 사나이인데 다리 한쪽이 없었다. 천천히 나에게 휠체어를 움직여 다가오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코라손 이라고 합니다. 그레실의 남편이기도 하고요. 나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기술자로 일했답니다. 이렇게 미스터 C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와 코라손이 악수를 하자 그레실은 환하게 웃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 모두가 지한파(知韓派)같아 보였다.
그레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M시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며 상당히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세 딸들 모두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고 했다. 자신은 한국전쟁 때 의무병으로 차출되어 3년 가까이 서울서 근무했다고 하면서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그레실 어머니는 김치와 삼겹살을 구워 식탁에 올리면서 연신 나에게 들라고 손짓을 하였다. 어떻게 내가 삼겹살을 좋아하는지 알고 김치와 삼겹살을 구했는지 신기했다.
미처 그레실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당초에 없는 갑작스런 스케줄이어서 정당한 변명거리는 있지만 생전 처음 방문한 그레실 부모에게 최소한의 무엇으로도 예의는 지켜야 했다. 온 가족이 식당에 둘러 앉아 만찬을 즐겼다.
내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대화를 하다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T가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그럴 때 마다 그레실의 가족들은 웃으며 환호했다.
갑작스런 초대에 당혹해 하면서도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혹시 납치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생각이라는 것이 금방 확인 되는 순간이었다. 그레실 남편은 불편한 몸이지만 나에게 자꾸 건배를 제의 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만 빼고, 추석이나 설 명절날 객지에 나가 있던 온 가족이 빙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과 같았다.
그레실 어머니는 계속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자주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의미가 대충은 나와 관련한 그 무엇일거라 생각하면서 모르는 체 했다. 그레실 아버지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혼자 이야기 하면서 기분 좋아했다. 이야기는 대충 한국전쟁 당시 당신이 본 한국의 이야기 같았다. 한국 전쟁 이후 한 번도 한국을 찾지 못해 서운하다는 말과 함께 곧 온 가족을 데리고 서울을 방문할 거라는 이야기 였다.
휠체어의 사내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에 몰두 해 있는 것 같았다.
그레실를 비롯한 가족들은 술을 별로 즐기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레실 부모가 나를 위해 내 놓은 술은 스카치위스키 였다. 커티샥 두병이 비워지고 나는 일어나려고 하였다. 시간이 거의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멀리 한국에서 큰 딸의 30년 전 친구가 온다고 하니까 파격적인 환대가 준비된 듯 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까 그레실은 좀 더 파티를 즐기다 가라고 하였다. 내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자 그레실이 따라 나섰다.
“굳나잇 그레실. 씨유 투머로우.”
“오, 노노. 아니에요. 나는 그대와 함께 할거에요.”
‘응? 함께?’
“예스, 투 나잇 나이 윌 비 데어 윗유.”
‘응? 데어? 윗유?’
T가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금방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나와 그레실이 뒷 좌석에 타고 T가 먼저처럼 앞좌석에 앉았다. 택시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 했다.
T가 얼른 내리더니 서류봉투로 그레실의 머리 위를 가려주었다. 한국의 남정네들 같으면 자신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T처럼 진심어린 마음으로 여인의 안전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빗방울이 제법 굵었다. 상의를 약간 적신 나는 옷에 묻은 빗방울을 툭툭 털며 그레실을 바라보았다. 집에서 마신 술로 그녀의 얼굴은 분홍빛을 뗬다. 막상 호텔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여행사에서 호텔 예약할 때 남자 두 명이 객실 하나를 쓰도록 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혼자 독방을 쓴다면 그레실과 T를 방으로 안내하여 밤새도록 술을 퍼 마시고 싶었다.
그렇다고 T를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그레실과 호텔에 들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함께 호텔에 투숙하자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지 무척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역만리 온 것은 농염한 여인의 육덕(肉德)이나 받자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이성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레실 곁에서 농담을 주고받던 T를 불러 잠시 보자고 했다. 갑작스런 그레실의 동행에 그는 태연하였다.
“어떻게 하죠? 나는 한국에서 함께 온 남자와 방을 함께 써야하는데?”
T는 되레 내가 이상하다는 눈치다.
“오우, 미스터 C. 당연히 다른 객실을 대여 해 그레실과 함께 밤을 지새야지요. 내가 지난번 그녀를 세번째 병원으로 찾아 갔을 때 그녀를 설득하여 미스터 C와 함께 밤을 지내는 것으로 했어요.”
‘뭐라고? 나와 밤을 지새는 것으로?’
나는 갑자기 종아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안돼요. 나는, 나는 그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지 다른 그 어떤 것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내가 기분 나쁜 어조로 T에게 항변조로 말하자 T는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늦은 밤 남녀가 호텔까지 왔으면 당연히 함께 밤을 보내는 것 아니냐‘하는 시선으로 T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나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레실은 나와 T가 옥신각신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두 남자가 언쟁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T에게 프런트로 가서 객실이 있느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곧 함지박만한 T가 뛰어오면서 다행히 호텔에 객실이 딱 하나가 남아 있다고 했다. 방이 두개면 모르지만 하나 가지고 남자 둘에 여자 한명이
방 하나를 쓴다면 접수하는 남자 직원은 우리를 무슨 해괴망측한 짓을 하러 온 사람으로 볼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어떻게 한다?’
그렇다고 이 시각에 T보고 집으로 가라고 하면 그는 ‘너도 별 수 없는 남자로구나.’하고 나를 속으로 비아냥거릴 것이다. T에게 세 명이 방 하나를 얻어 함께 밤새도록 술이나 마시자고 했지만 T의 표정은 그리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면 일단 방을 하나 대여해서 T와 그레실을 들어가라고 하고 나는 짐을 풀어놓은 내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면 되겠지. 그리고 밤새도록 셋이서 술을 마셔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될 거야.’
T는 나의 제안 마지못해 따랐다. 두 남녀를 먼저 객실로 올려 보내고 나는 내 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행사에서 지정해준 나보다 나이가 좀 어려 보이는 룸메이트는 잠을 자지 않고 성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혼자서 어디를 다녔느냐면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호텔 지하 바(Bar)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대여한 객실이 2312호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0개 층을 더 올라가야 했다. 호텔은 A급이어서 호텔 벽 내장재는 흰색과 검정색 대리석으로 치장하였고 복도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어 호사스러움을 더해주었다. 벽에는 고흐와 렘브란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아무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금방 2312호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막상 노크를 하려고 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남의 정사(情事)를 훼방 놓는 것 같았다. 노크를 하려다 잠시 멈추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나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나 몰라라 방치할 수는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똑똑똑 -
10초가 지나도 안에서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세게 노크를 하였다.
똑똑똑 -
또 10여초가 흘렀지만 안에서 아무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순간 나는 여우에 홀린 것 같았다.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분명 통증이 전해졌다.
“그레실, 그레실, 나에요. 미스터 C.문 좀 열어주세요.”
계속 문을 세게 두드리며 그레실을 불렀다. 서너 번을 더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Mr, C?”
“Yes, I am”
문이 열리면서 은은한 조명 속에 하얀 나이트가운 차림의 그레실이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T는 화장실에 있거나 안에서 술을 마실 거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객실 안에 T는 없었다.
“그레실, T는 어디 있어요?”
“......”
“그레실, T는?”
“그는 자신의 집으로 갔어요. 내일 아침 10시쯤 이 호텔로 온다고 했어요.”,“뭣, 뭐라고요? 그럼, 이 방에 나와 당신 단둘이 있단 말이에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는 내가 객실 안에 들어오자마자 나가더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온다고 했어요. 미스터 C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거 아니었어요?”
“네에? 내가 시킨 거 아니냐고요? 오, 노노. 나는 이방에서 우리 세 명이 밤을 지새워가며 술을 마시고 즐겁게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레실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나를 들어오라고 했다.
‘아아, T가 장난을 쳤구나. 망할 자식 같으니. 내가 결국은 그레실의 육신이 그리워 이 방으로 온 것 밖에 안 되는 구나. 어찌해야 나의 순수한 마음을 설명해야하나?’
난감했다. 냉수 한 컵을 입안에 털어 넣고 그레실에게 차근차근하게 나의 계획을 설명했다. 나의 진땀나는 설명을 다 듣고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Darling, Please Come here.”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따랐다. 창가에 있는 타원형 테이블 위에 스카치위스키 병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대의 진심을 알아요. 만약 T가 눈치 없이 이 방에 있다면 내가 내보냈을 거예요. 나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그, 그레실?”
“Honey, Please don't say anything now. Please......”
“......”
“당신은 30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 까지 내가 겪었던 일을 들어보세요. 나는 언젠가 당신이 나를 찾아오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레실은 위스키를 스트레이트 잔으로 연거푸 석잔 을 마시더니 핸드백에서 말보로를 꺼냈다. 담배를 맛있게 피워대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은은한 불빛에 서서히 녹고 있었다.
30년 전 그녀는 꿈 많은 여고생이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배달된 편지를 받아 든 순간 그녀의 가슴은 콩닥거리며 엉성하지만 또박 또박 쓰여진 이국 소년의 영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사진 속에 자신보다 1살 많지만 우수에 젖은 눈과 연한 미소의 이국 소년이 마음에 쏙 들었고 그날부터 하루에도 열 번도 더 내 사진을 꺼내 봤다.
소년이 살고 있는 코리아의 지도를 거의 매일 보면서 언젠가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다짐했고 그 꿈은 20년 후 이루어 졌지만, 소년은 만날 수 없었다. 아직도 그녀는 병원 사무실에 그때 이국 소년이 보낸 편지의 대부분을 보관하고 있으며, 자주 읽어보며 30년 전 추억을 되씹곤 한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면 남자나 여자나 과거에 자주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특히 현재의 자신의 주변이 과거보다 못하거나 곁에 있는 반려자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과거로의 회귀는 더욱 빨라질 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녀가 웃으며 혹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한마디 한마디 토할 때 마다 나는 그녀가 고질병에 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백약이 무효인 불치의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30년 전이면 그녀의 나라가 대한민국보다 풍요했다. 그녀는 소년에게 편지를 보낼 때 꼭 선물을 동봉했다. 그녀가 소년에게 자주 보낸 것은 티 셔츠였다. 세계의 유명 축구인 얼굴이 인쇄는 빨강, 노랑, 흰색 등 다양한 티셔츠를 보내왔다.
소년은 답으로 한국 전통 인형을 보내 주거나 과자류를 예쁘게 포장해서 항공우편으로 부치곤 했다. 특히 그녀는 방울이 달린 머리끈을 좋아하여 소년은 자주 여성 액세서리 판매점이나 누이에게 부탁해 백화점에서 예쁜 물건을 구입해 보내 주었다.
소년이 보낸 선물로 머리를 동여매고 찍은 사진과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 선물이 오고가고 편지의 사연이 점점 핑크빛을 띠면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소년, 소녀는 많은 밤을 지새우거나 한숨으로 보내야 했다.
이야기를 잠시 멈춘 그레실은 나에게 술을 건넸다. 나도 연거푸 석잔 을 마셨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그녀의 눈이 촉촉이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술잔을 건넸다. 술잔을 비운 그녀는 말보로를 태우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그 연기는 어느 무심한 소년에 대한 원망을 30년 만에 토해내는 것 같았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그녀는 의학 학술세미나 참석 차 한번 그리고 개인적 볼일로 또 한 번 서울을 방문했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여러 날을 함께 숨 쉬면서도 그녀는 옛 소년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더 라면 쉽게 소년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사내가 인터넷을 이용하여 30년 전 여인을 만난 것처럼. 자신의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떠날 때 그녀는 속상하고 원통한 마음에 눈물을 뿌려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M시에 착륙할 때까지 그녀는 계속 울면서 가곤했었다. 30년 전의 소녀가 토해내는 한(恨) 어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레실, 미안해요. 나도 그동안 당신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당신을 찾을 길이 없었어요. 아마 내가 당신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무역을 담당하는 부서에 입사하였다면 분명 당신을 만났을 것이오. 그렇게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당신과 결혼을 하였을 거예요. 이렇게 이국에서 밤을 지새우며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예요.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내가 당신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로 미안해요. 나를 미워해도 됩니다. 나를 차라리 실컷 때려주세요.”
“What were you doing when i was staying in Seoul?”
“나 역시 서울에 있었고, 회사 일에 눈코 뜰 새 없었답니다.”
“아아, 흐흐흐흑-”
내가 동시에 서울에 있었다는 말에 그녀는 흐느꼈다. 어깨를 가늘게 떠는 그녀를 나는 살며시 안아 주었다. 30년 전 한때 내가 꿈꾸었던 일이 이제야 현실이 되었다.
내가 안아주자 그녀는 더욱 크게 흐느꼈다.
“그레실,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나 역시 당신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나나 당신 곁에 새로운 사람이 있으니 어찌할 수 없잖아요. 그냥 친구처럼 지내요.”
내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자 그녀는 지나간 긴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려는 듯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오년 전 끊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녀의 통곡 소리에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뿌렸다.
“그레실, 울지말아요. 이렇게 당신 곁에 30년 만에 찾아왔잖아요. 이젠 우리 영원히 구하기로 해요. 영원히......”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당신을 만나는 순간부터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당신이 아버지 집에 들러오는 순간 우리 가족들 모두는 무척 흥분했었어요. 30년 전 사윗감이 왔다고 아버지는 속으로 무척 기뻐하셨을 거에요. 아버지 역시 당신에게서 편지가 올 때마다 신기해하시며 당신 편지를 읽고 또 읽으셨어요.”
“아아, 그랬어요?”
“어머니와 동생들 역시 당신에게서 편지가 오면 빙 둘러 앉아 당신의 메시지를 읽고 기뻐했어요. 특히 어머니는 당신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내가 당신에게 보낸 티셔츠는 모두 백화점에서 어머니가 골라 주신거에요.”
“그레실,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군요?”
“저는 그때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나요. 우체국에 가서 당신에게 편지를 부칠 때가 나는 가장 행복했어요. 늘 두 여동생들과 갔었는데 그 애들도 당신을 무척 좋아했었어요.”
“아, 내가 당신아버지 집에 갔을 때 꽃을 준 그 여인들이 당신 여동생이었군요.”
“그 애들도 한국말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요.
나는 당신이 보내준 한국어 회화책으로 혼자 공부를 하였어요.
그리고 나중에 우연히 이곳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알게 되어 한국말을 꾸준히 배웠어요.”
그레실은 담배를 다 피우고 나더니 위스키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에게서 더 이상의 아무런 소식도 없고 나를 찾기 위해 서울엘 두 번이나 다녀갔지만 별 소득이 없자 그녀는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고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결혼 상대자는 같은 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코라손 이라는 남자였다. 코라손 은 다정다감하고 무척 가정적인 남자였으며 처가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남자였다. 코라손 과 결혼은 했지만 그녀는 습관처럼 북녘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그녀가 결혼한 다음 해 어느 여름, 그녀는 남편과 함께 남부의 휴양도시로 바캉스를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한 낮에 자동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나갔던 남편은 그만 운전 부주의로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바람에 거의 죽음 직전에 구조되었지만 다리 한쪽을 잃는 대가를 치러야했다. 3년 동안 병원에 누워있던 코라손은 퇴원했지만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혼하려고 수백 수천 번을 결심하였으나 크리스천인 그녀는 차마 곤경에 처한 남편을 버릴 수 없었다. 지금은 재활의학 덕분에 의족(義足)을 하고 겨우 혼자 걸어 다닐 수는 있지만 금방 힘에 겨워했다. 코라손 은 인정 많은 친정 부모의 배려고 현재는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서 아버지의 병원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아아, 그레실은 한창 나이인데......’
나는 그녀의 눈물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비록 나이는 나와 비슷하지만 그레실은 아름다운 미시였다. 그런 이국의 미인과 호텔에 들어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난 30년의 슬픈 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이 가슴을 짓눌렀다.
평소 불교에 심취해 사소한 인연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깊은 밤 눈물을 흘리며 30년 전 이국(異國)의 사랑에게 자신의 속내를 토해내고 있는 여인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나의 책임이고 나의 부덕의 소치라고 자책하였다.
냉장고에서 다시 스카치위스키와 캔 맥주를 꺼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위스키 1온스를 큰 컵에 따르고 8부정도 맥주로 채운 뒤 휘휘 돌린 후 마셨다.
술이 고소하면서 입에 착 달라붙었다. 내가 혼합주를 만들어 마시자 그녀도 한잔 달라고 하였다. 이곳에서도 남자들이 자주 이렇게 만들어 마신다고 했다. 자신도 직원과 회식 때 가끔 마셔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레실, 집에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Yes, My mother knows me.”
“네에? 그럼, 당신 남편도 알고 있단 말이에요?”
“남편도 내가 당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안심할거에요.”
‘안심?’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떤 정신 나간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호텔로 간 행위에 대하여 안심을 한단 말인가? 갑자기 정신이 아득했다.
‘이국에서 온 남자와 30년만의 해후라고 해서 온 가족이 너그럽게 그녀의 행동에 대하여 이해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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